<5일째> - 느린 걸음에서 생명의 소중함을 배워갑니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세와 가장 느린 발걸음에서 생명의 땅 대지를 온 몸으로 만납니다. 그리고 그렇게 느린 걸음에서 결과만을 중시하는 권력과 자본의 시각이 아니라, 엎드린 순례자의 앞을 무심코 느리게 지나가는 이름 모를 거미와 민들레 등 들풀에서 생명의 소중함을 배워갑니다.
<3일째의 순례길>
오체투지 순례는 참 느립니다. 오늘처럼 ‘삼보 후 반절’을 하면서 진행하여도 느리기는 마찮가지입니다. 오체투지로 순례는 보통 1시간에 500미터를 가기가 힘든 상황입니다. 10분 진행하고 휴식을 취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힘들고 고통스럽습니다. 대여섯번 오체투지를 하고 진행한 후에는 어김없이 ‘헉 헉’거리는 순례자의 고통소리가 듣는 사람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그 모습을 지켜볼 수 없어 괜히 먼 산으로 눈을 돌리게 합니다.
오늘은 오체투지가 아니라 앞서 이야기 한 바와 같이 ‘삼보 후 반절’ 형식으로 진행했습니다. 시암재휴게소에서 천은사 삼거리까지 경사도가 20‘를 넘어설 정도로 급경사를 이루고, 굽이치는 지리산 도로에 차량 통행의 시야가 확보되지 않아 안전상의 문제 등으로 긴급하게 변경하였습니다.
오늘 날은 무척이나 맑았습니다. 햇살은 따갑고, 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푸르렀습니다. 햇살과 바람, 산과 구름이 만들어 놓은 지리산의 아침 풍경은 절경이었습니다. ‘아.. 지리산이구나’하는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순례길의 고통이나 어려움은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현장에 도착하면서부터 모든 것은 바뀌고, 눈 앞에는 지리산 도로의 급경사만이 보였을 뿐입니다.
앞서 전한바와 같이 오늘은 ‘삼보 후 반절’ 형식으로 순례를 진행하였습니다. 하지만 오체투지나 ‘삼보 후 반절’ 방식이나 시간은 매 한가지입니다. 1시간에 800미터 정도를 갔으니 오체투지보다 빠르다 하지만, 여전히 고통스럽고 힘이 듭니다. 순례 내내 두 분 성직자나 참가자 모두 ‘삼보 후 반절’로 나아가는 순례의 어려움에 휴식시간이 되면 앉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쉬곤 합니다.
오후 일정이 끝나갈 즈음에 문규현 신부님의 큰 형님과 누님 수녀님이 순례 행렬에 함께하였습니다. 모두 사전 약속이 없었으나, 한날 비슷한 시간 무렵에 순례단에 도착하였습니다. 수녀님은 수경스님과 문규현 신부님 손을 잡고 한동안 말도 못하고 바라만 보셨습니다.
5일차 일정은 그렇게 차분하게, 하지만 여전히 고통스럽게 진행되었습니다. 여전히 익숙하기 않은 발걸음 발걸음이 고통스럽고, 내 딪는 발자국에 고통스런 호흡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규현 신부님께서는 오늘 일정을 마무리 한 이후 ‘오늘은 정말 주저앉고 싶더라.’ 하시면서도 여전히 웃음을 잃지 않으시더군요. 수경 스님은 상태가 좋지 않은 무릎 걱정을 하다가 ‘나 못가면 문규현 신부님이 업어서라도 간다고 했으니 걱정 없어’ 하시면서 문규현 신부님 등에 매달리는 시범을 보이십니다. 그 모습을 보며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어 눈을 돌릴 뿐입니다. 무엇이 이분들을 이토록 고집스럽게 아픔의 길을 가게 만드는지 헤아릴 뿐입니다.
오늘 순례는 시암재 휴게소 하부에서 시작하여 상선암 인근에서 주먹밥으로 점심 식사를 하였으며, 이후 오후에는 천은사 상류 도계암 인근 지점까지 약 6km(전체) 정도를 진행하였습니다. 내일은 천은사 삼거리까지 오늘과 같은 형식으로 진행하고, 이후 광희면을 향해 다시 오체투지로 나아갈 예정입니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
순례를 취재하러 오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 분들마다 모두 여러 생각과 단상의 순례를 이야기합니다. 진행팀으로서는 그 분들은 무슨 생각을 하실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지난주부터 오늘까지 오체투지 순례를 취재하는 분들의 생각을 한번 여쭈어보았습니다.
모 방송국에 PD로 계시는 안상미님은 “(오체투지가) 육체적으로 이렇게 고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며칠 취재를 하면서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는가 당황스러웠습니다만, 두 분의 해맑은 웃음이 위로가 되었다”며, “순례 출발하기 전 사전행사에서 ktx 농성자, 기륭전자 농성자, 대추리 등을 방문하신 것을 본 후 관용과 포용이라는 종교의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오체투지 순례가 소통의 부재로 답답해 하는 국민들에게 어느 정도 위안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번 순례에 많은 것을 배우고 간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오체투지 순례가 우리 사회의 갑갑한 상황을 모두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우리 시대 아픈 마음과 함께하는 순례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김광철(구례 수평교회 목사)님은 “처음 참여했을 때 왜 연세 드신 분들이 저래야 하는가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그러다가 차츰 순례에 참여하면서 여러 가지 만감이 교차했다.”며 말씀을 이어가셨습니다. “눈을 감고 내 자신을 돌아보고, 또 걷다가 다시 눈을 뜨게 되면 그동안 놓쳤던 것들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개미, 민달팽이 등 생명이 꿈틀거리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또 빠름보다는 느림, 느림보다는 멈춰 서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두 분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잠시 멈추어 돌아보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 같다.”며 직접 걸으면서 체험한 소감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국가적 위기에서의 대안은 무엇이 정답이라 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이렇게 스스로 걷고 각자 깨우쳐 가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며 국가적 위기의 해법도 제시해 주셨습니다.
<함께하는 사람들>
송희철(서울) / 정재권(서울) / 한성수 목사(순천 하늘씨앗교회) / 김광철 목사(구례 수평교회)/ 이영선 신부(나주 노안성당 )/ 한병학 신부(광주 치평동성당) / 진병섭 신부(광주 오치동 성당) / 정성종 신부(광주 중흥동 성당) / 이요한 신부(광주 두암동 성당) / 리따, 마리마(마중물) / 김형근, 최정옥(평화동 성당) / 김경애, 한태수 외 1명(지리산 산내) / 윤재송, 문대현(평화동성당)/ 김인경 교무님(잠실 교당) / 이 외에도 이름을 밝히지 않으신 분들이 함께 하였습니다.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일정 안내>
● 9월 9일(화) : 도계암 앞 800m 지점(시작) -천은삼(경유) - 천은사삼거리(경유) - 광희면 초입(종료) 예정
● 9월 10일(수) : 광희면 초입(시작) - 광희면(경유) 구만제 유원지 정자(종료) 예정
** 순례 현장 상황에 따라 매일 변동하므로, 참여하고자 하시는 분들은 전화 확인 바랍니다. (현장 문의 : 010-9116-8089 / 017-269-2629 / 010-3070-5312)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 국립공원관리공단 지리산남부지역관리사업소에서 많은 협조를 해주셨습니다.
* 원불교 잠실교당 김인경 교무님께서 마음을 모아 후원해주셨습니다.
* 순례 일정과 수칙은 http://cafe.daum.net/dhcpxnwl 공지사항을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2008. 9. 8
기도 -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찾아서
(진행 문의 : 010-9116-8089 / 017-269-2629 / 010-3070-5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