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아들 면회 가기 / 권선희
나대지 일궈 농사짓는 양반이 찾아와 고라니 지킬 개 한 마리 달라지 않겠나 큰 놈 세마리도 속이 시끄러븐데 메칠 전 해피 저놈아가 새끼를 다섯이나 낳아부렀으이 우째 다 키울꼬 걱정하던 차에 얼씨구나 싶어 방울이를 딸려 보내지 않았겠나
그날 밤 비바람이 을매나 억시게 불어제끼는지 방울이 걱정에 날밤을 새운 기라 그 양반이 목수라 집을 잘 지어준다꼬는 했는데 제아무리 목수라도 하루 만에 집을 지었겠나 난생처음 혼자가 된 우리 방울이헌테는 얼마나 무서운 허허벌판이었겠냔 말이다
여서 걱정하는 것보담 내사 마 면회를 가는 기 낫지 싶아가 아침 일찍 앤 나섰나 도꼬마리는 떼로 달라붙제, 밭둑 흙은 줄줄 흘러쌓제, 그 어린것이 이 낯선 데서 우옜을꼬 싶아가 내사 마 미친 드키 기올라 개껌 꼭 쥔 주먹 번쩍 들어 디립다 괴함을 지르지 않았겠나
“방울아, 엄마 왔데이”
고랑마다 비닐 쪼가리들 풀떡풀떡 날리는 황량한 벌판에서 우리 방울이가 대답을 하더라 쇠줄 팽팽히 끌고 참말로 에미 만난 아들맨키로 워우워우 목이 젖어 울더라
- 『푸른 바다 검게 울던 물의 말』 , 창비, 2024.
감상 – 송경동 시인은 시집 뒷면에 적기를, 권선희 시인의 이번 시집에 신경림의 「파장」, 김종삼의 「장편(掌篇)」, 백석의 「여우난골족」, 양귀자의 『원미동 사람들』이 보인다고 했다. 「개 아들 면회 가기」만 떼 놓고 보면, 김종삼의 「묵화」와 「장편1」, 백석의 「거미」와 「노루」가 우선 떠오른다.
김종삼의 「묵화」는 할머니와 소가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교감하는 시편이고, 「장편1」은 두 마리의 염소를 재미나게 응시하다가 “나 같으면 어떤 일이 있어서도 녀석들이 죽이지 않겠다”고 노래하는 시편이다. 백석의 「수라(修羅)」는 거미 “이 작은 것을 고이 보드러운 종이에 받아 또 문밖으로 버리며” 거미 가족이 헤어질까 걱정하는 시편이고, 「노루」는 시장에 나온 산골사람과 노루새끼가 닮았다는 생각 중에 어쩔 수 없는 흥정으로 인해 노루의 “새까만 눈에 하이얀 것이 가랑가랑한다”는 시편이다.
아닌 게 아니라 소, 염소, 거미, 노루를 대하는 김종삼, 백석의 태도와 개를 대하는 권선희의 태도는 따스한 인간애가 바탕에 깔려 있다는 점에서 서로 닮았다. 인간애(人間愛)란 것이 단지 인간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을 대하는 인정과 존중의 마음이 만물에 두루 미치는 것임도 생각하게 한다. 앞의 두 시인도 그 정서가 비슷하다는 얘기지 시의 표현이랄지 기법이랄지 하는 것은 많이 다르다.
김종삼과 백석이 다르듯 권선희도 그렇다. 권선희 시인의 시편들은 서민들의 삶에 밀착해 때로 발랄하고 때로 안쓰러운 일들을 이야기 형식으로 잘도 푼다. 해학적 성격이 짙은 중에도 마냥 웃을 수만 없는 사정 혹은 현실을 환기해준다. 「개 아들 면회 가기」도 그렇다.
「개 아들 면회 가기」는 동네 아주머니의 육성을 시인이 전달하는 형식을 빌렸다. 입 하나 더는 심정으로 개 방울이를 다른 집에 내주고 그게 마음에 걸려 얼굴이라도 보겠다고 면회 가는 아주머니에게서 그분이 갖고 있는 정을 느끼면서도 슬며시 웃으며 상황을 지켜보았다면, 황량한 벌판에서 방울이와의 해후 장면에선 참았던 웃음을 터뜨릴 법도 하다. 그럼에도 목이 젖어 우는 방울이와 그걸 지켜보는 아주머니로부터 짠한 감정 또한 생기면서 시의 울림은 커져간다.
「개 아들 면회 가기」는 방울이 엄마 본인이 상당한 이야기꾼의 면모를 보여주었을 개연성도 있지만 결국 시인이 만든 이야기다. “도꼬마리는 떼로 달라붙제, 밭둑 흙은 줄줄 흘러쌓제”같은 묘사나 운율, “고랑마다 비닐 쪼가리들 풀떡풀떡 날리는 황량한 벌판”과 같은 생생한 상황 묘사는 내용과 별개로 시에 빠져들게끔 하는 장치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