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찬송가 453장 (구 506장) / 누가복음 17 : 1 – 10
*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하겠습니다.
* 찬송가 453장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 하나님 말씀은 누가복음 17장 1절 – 10절입니다.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1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2 그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를 실족하게 할진대,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3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4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5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6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7 너희 중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그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말할 자가 있느냐.
8 도리어 그더러 내 먹을 것을 준비하고 띠를 띠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9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아멘!
오늘 본문은 실족케 하는 자에 대한 경고의 말씀 다음에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을 강조하셨고, 그 다음 종의 의무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먼저 실족케 하는 자에 대한 경고의 말씀은 죄 짓는 것을 경계함과 동시에 죄를 짓는 자를 용서하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3절에 예수님께서는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엄히 경계하라고 말씀합니다. 죄는 쾌락이 아니라 고통을 줍니다. 처음 죄를 지으면서 쾌락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결국에는 고통으로 끝납니다. 죄는 처음에는 유익을 주는 것 같이 여겨질지라도 결국 손해를 입힙니다. 죄는 그 사람의 인격을 파괴합니다.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손상시키며 하나님의 진노를 부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 1절과 2절 말씀은 다른 사람을 실족케 하는 것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것 역시 죄입니다. 여기서 "실족하게 한다." 는 말은 "걸려 넘어지게 한다." "죄를 짓게 한다." 는 뜻입니다. 사람은 자기 스스로 죄를 짓기도 하지만, 행동이나 말로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기도 합니다. 주님께서 이에 대해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오늘 본문 2절 말씀입니다. “그가 이 작은 자 중에 하나를 실족하게 할진대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아멘!
그러나 감사한 것은 오늘 본문 1절에서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실족하게 하는 일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용서받을 죄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실족하게 하는 일로 구원을 잃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리 용서 받을 수 있는 작은 죄라도 가볍게 여기지 말고 멀리해야 할 것을 강조하신 말씀입니다. 아무리 작은 죄 하나라도 사람을 지옥으로 보내기에 충분합니다. 아무리 하찮은 죄라도 그 죄를 씻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다음으로 예수님께서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형제가 회개하거든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덧붙여서 죄를 짓고 회개하는 것이 하루에 일곱 번이나 되더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왜 우리에게 죄 지은 사람을 용서해야 합니까? 첫째는 우리도 알게 모르게 다른 사람에게 죄를 짓고, 다른 사람들을 실족하게 하는 죄를 짓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용서하지 않는 마음은 쓴 뿌리가 되어 우리의 삶을 황폐시키고 영적인 성장에 걸림이 되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하나님께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우리의 죄를 모두 용서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넷째로, 죄에 대한 궁극적인 심판은 하나님께서 하시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우리에게 고통을 주고 손실을 입힌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기분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결국 오늘 본문 말씀의 예수님의 가르침을 요약한다면 자신의 죄에 대해서는 지나치리만큼 엄격해야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죄에 대해서는 지나치리만큼 관대해야 용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을 때에만 이렇게 지나치리만큼 관대해야 용서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대로 예수님께서는 형제를 실족하게 하지 말며, 다른 사람의 죄를 한없이 용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할 수 있겠습니까?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이러한 교훈을 받은 제자들은 자신들의 힘으로는 그렇게 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았기에 뭐라고 간구합니까?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믿음 위에 믿음을 더해 달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믿음으로 시작하고 믿음으로 살며, 믿음으로 끝맺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믿음을 더하소서라고 기도한 소원의 뜻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믿음을 더하소서라는 간구는 삶에 희망을 더하소서라는 뜻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며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바라는 삶이 믿음의 삶입니다. 그 바라는 믿음은 주님께 우리의 모든 것을 맡기는 믿음입니다. 내가 책임지려할 때 해결이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 다 맡겨야 합니다.(시 37:5, 잠 16:3, 시 55:22, 벧전 5:7) - 이렇게 주님께 믿음으로 맡기는 삶은 복된 삶입니다. 그의 삶에 평강이 있습니다. 감사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죽도록 충성합니다. 그래서 마음으로 믿고 행동으로 충성하는 삶이야말로 하나님을 향한 신뢰, 하나님의 행복으로 행복해지는 희망입니다.
둘째로, 믿음을 더하소서라는 간구는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믿음을 더하여 달라는 간구입니다. 오늘 본문 6절 말씀입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은 생명 있는 믿음을 의미합니다. 본문에서 뽕나무는 뿌리가 너무 깊어 불가능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으면 바다로 옮겨진다고 했습니다. 이 큰 믿음은 그 어떤 소원도 이루어지게 만드는 믿음입니다.(마15:28) 기도하면 능치 못함이 없이 이루어지는 믿음입니다.(막 9:25-27)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입니다.(마 8:13) 능력을 믿는 믿음입니다.(마 9:22-30)
생명력 있는 믿음은 하나님께 뿌리박는 믿음에서 시작됩니다.(요 14:1, 히 12:2 고전 3:21-23) 그러므로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믿음이 아니면 참 믿음일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성장하는 믿음에 믿음을 더하는 비결은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믿음이어야 합니다.(요 3:5, 고전 12:3, 롬 8:14-16, 갈 5:5, 고전 12:9)
셋째로, 믿음을 더하소서라는 간구는 말씀을 들으므로 믿음이 생기고 성장하게 해달라는 간구입니다. 믿음은 성경을 읽고, 그 말씀을 들을 때 생기는 것입니다.(롬 10:17) 성경 기록 목적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였습니다.(요 20:31)
넷째로, 믿음을 더하소서라는 간구는 기도하므로 믿음이 생기고 성장하게 해달라는 간구입니다. 기도는 호흡과 같습니다. 계속적인 호흡이 생존의 증거입니다. 기도는 구하고 찾는 것이요 두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와 믿음, 믿음과 기도는 항상 함께 합니다. 기도할 때 믿음이 대장부의 신앙으로 자랍니다.
다섯째로, 믿음을 더하소서라는 간구는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믿음이 생기고 성장하게 해달라는 간구입니다. 큰 믿음은 환난과 핍박 속에서 자랍니다.(살후 1:3-4, 벧전 1:6-9) 봄바람이 꽃을 피게 하며, 여름이 식물을 자라게 하고, 가을 바람이 열매 맺게 합니다. 겨울의 찬바람 속에 그 열매를 즐기게 합니다. 환난이나 곤고나 기근이나 칼이나 죽음과 같은 것들이 믿음의 성장과 축복을 더합니다.
여섯째로, 믿음을 더하소서라는 간구는 주님의 사역을 하므로 믿음이 생기고 성장하게 해달라는 간구입니다.(살전 1:3) 믿음에는 반드시 형통하게 하는 행위가 따라옵니다. 신앙으로 구원받고 행함으로 상 받는 것입니다. 이 행함이 곧 일이며,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열매로 그 행위를 안다고 했습니다. 사역하면 큰 믿음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날마다 믿음이 더하여지는 복된 기적이 삶에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으로 간구하고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