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낙안읍성 민속 마을 탐방 여행
[이완우 기자]
순천만 국가정원의 늦은 가을 11월 중순의 풍경은 이국적인 색채로 거대하고 다양하게 펼쳐져 있었다. 그러나 작은 것이 더 아름답고 소중할 수 있다.
옛날 고향의 둠벙. 오래전에는 흔했지만, 지금은 거의 사라진 둠벙(작은 연못)은 자연적인 습지로 친근한 사계절 정원이었다.
순천만 국가정원을 떠나서 해안에 가까운 평지의 성곽 마을인 순천 낙안읍성(樂安邑城)으로 여행의 방향을 잡았다.
낙안읍성에 도착했다. 낙안읍성은 조선 태조 6년(1397년) 흙으로 쌓은 토성이었다. 인조 4년(1626년)에 낙안군수로 부임한 임경업 장군이 석성으로 수축했다고 한다. 이 지역에는 임경업 장군이 하루 만에 낙안읍성을 쌓았다는 전설이 전해 온다.
낙안읍성의 성루(城樓, 성곽 위에 세운 다락집)에 올랐다. 초가집 마을이 우선 눈에 들어왔다. 초가집 사이에, 목화밭에 목화솜이 하얗게 보였다. 흙담의 담장에도 용마름을 얹은 이엉을 올렸다. 초가집 정겨운 마당과 뒤안에 울타리가 쳐졌고 사립문이 있었다.
초가삼간(草家三間). 가난한 백성들이 한 칸 방, 부엌과 헛간에 의지하여 엉겨서 살면서 가족들의 꿈, 기쁨과 슬픔을 함께하였다. 그 소박했던 삶의 정서와 풋풋했던 사람들의 성품도 너무 빨리 잊혔다.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 길도 넓히면서 세상을 빨리 변하였다. 우리 마음에도 아파트가 우뚝 들어섰고 고속도로가 휭 하니 뚫렸다
낙안읍성 같은 민속 마을이 보존되어 초가집 마을을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매년 가을 농사철이 끝나고 서리가 내리는 계절이면 초가집 지붕 새로 올리기가 집마다 벌어졌다. 이때는 온 마을이 십여 일 동안 함께 초가집 지붕에 이엉을 올리는 울력으로 한창이었다.
초가집 옆 텃밭에 목화밭이 있었다. 목화는 아욱과의 한해살이풀로 삼 모시와 더불어 대표적인 섬유식물이다. 목화는 꽃망울이 자라, 꽃이 피고 지면 다래(삭과)가 열린다.
이 열매가 성숙하면 긴 솜털이 달린 종자가 노출된다. 이 털을 모아서 솜을 만들고 무명실을 꼬아 베틀에서 무명천(면포)을 짰다.
목화의 갓 생긴 다래는, 산의 달래 넝쿨 열매인 진짜 다래처럼 달큰한 맛이 먹을 만하였다. 목화로 만든 무명천은 삼베보다 비쌌고, 조선시대에는 이 무명천으로 화폐를 대신하는 경우가 많았다.
20세기에 화학 섬유가 등장하면서, 목화는 역사의 뒤안길로 서서히 사라져갔다. 수십 년 전까지도 오래된 이불의 목화솜을 얇게 떠서 풀어서 새 솜처럼 만들어 주는 솜틀집이 흔했었다.
물레방아가 힘차게 돌아가면서 연달아 쿵더쿵 방아를 찧고 있었다. 이곳의 물레방아는 둥근 수차(水車) 위에서 물이 떨어지는 낙차의 힘을 이용하는 동채방아였다. 수차 아래로 물이 흘러가는 힘을 이용하면 밀채방아라고 한다.
물레방아는 산업화 시대의 기계적인 동력을 활용하기 전까지는 우수한 장치였다. 석기 시대 갈돌, 절구, 맷돌, 지레 원리의 디딜방아, 소가 끄는 활용 연자방아를 거쳐 수력 활용 물레방아까지의 농업에 이용한 도구의 발전을 헤아려볼 수 있다.
낙안읍성은 조선 시대 최초의 지방 계획 도시라고 한다. 낙안읍성을 에두른 성벽은 견고한데, 3개의 성문을 잇는 'T' 자형 길을 내고 민가와 관청 구역을 나누었다.
관청은 동헌, 내아와 낙민루(樂民樓)가 있고 임경업 장군 비각과 낙안객사가 있다. 이곳 낙민루는 남원 광한루와 순천 연자루와 더불어 호남의 3대 누각이었다.
낙안읍성 향토 음식 거리의 식당에서 꼬막 정식과 짱뚱어탕을 곁들여 점심을 먹었다. 짱뚱어탕은 청정 갯벌 순천만에서 잡은 짱뚱어를 요리한 순천의 향토 음식이다. 망둥어와 비슷한 짱뚱어는 미꾸라지와는 다르게 수입과 양식이 안 된다고 한다.
돌조갯과에 속하는 꼬막은 보성만과 순천만 등의 갯벌에서 널배(뻘배)를 밀고 다니며 잡는다. 벌교 장터는 예로부터 남도 음식으로 유명했다. 예전에는 늦가을 11월만 되면 벌교 장터에는 꼬막이 많이 나왔다. 물 인심 다음으로 꼬막 인심이 후했다고 한다. 그러나 요즘은 꼬막이 제법 귀한 몸이 되었다.
|
▲ 낙안읍성 향토 음식 거리, 짱뚱어탕과 꼬막 정식 |
ⓒ 이완우 |
낙안읍성을 둘러보고 조계산 송광사로 출발하였다. 우리나라 승보종찰 송광사의 가을 풍경을 감상하고, '무소유 길'을 찾으려 송광사 암자인 불일암(佛日庵)을 목표로 삼았다. 가을 산길을 얽매이지 않는 바람처럼 한 걸음씩 올라가 볼 예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