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린다. 무더위 끝에 내리는 장마비에 흙냄새가 섞여 들어온다. 윤경은 비가 집안으로 들어오는 것도 개의치 않고 반쯤 열려 있던 창문을 활짝 열었다. 창틀에 아무렇게나 걸터앉아 초록색 고양이 무늬의 레종을 한 대 꺼내 물었다. 습기 때문인지 불이 잘 붙지 않는 라이터가 짜증이 났다. 열 번 가량의 시도 끝에 불이 붙었다.
“후우......”
하얀 담배 연기가 퍼진다. 윤경은 머리가 어지러워짐을 느끼며 어제 편의점에서 초록색 고양이에 매료되어 레종 멘솔을 산 것을 후회하고는 담배를 꺼버렸다. 그리고 어딘가에 남아있을 말보로를 찾아 방안을 눈으로 훑었다. 책상 위에 있었다. 분명 두 개피쯤 남아 있겠지. 빨간 담배갑. 그리고 오른 쪽의 하얗고 네모난 종이.
저희의 사랑이 결실을 맺어 드디어 두 사람이 하나가 됩니다.
오셔서 축하해 주시기 바랍니다.
신랑 박 영 준
신부 이 세 영
청첩장이었다. 날짜는 한 달 후였다. 담배갑은 텅 비어있었다. 윤경은 아까 꺼버린 레종 멘솔에 다시 불을 붙였다.
“결혼식 올 거지? 날짜는 9월 22일이야. 청첩장 보낼게.”
2년 정도 사귄 세영과 결혼한다는 영준 앞에서 윤경은 그저 웃고만 있었다.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결국 다른 여자랑 결혼 하는구나.
영준과 윤경은 그냥 친구였다. 아니, 아주 친한 친구였다. 다른 어떤 동성 친구보다 둘의 사이는 가까웠다. 친구. 영준에겐 그랬다. 하지만 윤경에겐 영준이 친구 이상이었다. 처음 대학에서 만난 8년 전부터 영준은 윤경에게 그런 존재였다. 그녀는 두려웠다. 섣불리 고백했다가 그를 잃는 것이. 그리고 그녀가 받을 상처가 너무나 두려워 마음 속에서 커지는 감정을 부인해 보려고 애썼다. 그렇게 8년이 지나왔고 그 동안 영준과 윤경은 각각 다른 사랑을 하며 가족과도 같은 친구로 남게 된 것이다. 영준에겐 그랬다. 윤경은 어느새 영준의 전화번호를 누르고 있었다.
“영준아, 잠깐 만나자. 할 얘기가 있어.”
약속 장소인 커피숍은 어두웠다. 밖에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 곳을 자주 약속 장소로 삼는 아베크족을 위한 배려이기도 했다. 다른 곳에 신경 쓸 겨를이 없는 몇 쌍의 아베크족을 바라보며 윤경은 착잡한 심정이 되었다. 시선을 돌려 회반죽으로 주인이 직접 모양을 낸 듯한 거칠고 불규칙한 무늬의 벽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윤경의 어깨를 치는 사람이 있었다. 영준이었다.
“미안. 기다렸냐? 갑자기 세영이가 오는 바람에......”
“아냐. 나도 지금 왔어.”
“할 얘기가 뭔데?”
“우선 주문부터 하자.”
급하게 용건을 묻는 영준에게 서운함을 느끼며 윤경은 테이블 위의 벨을 눌렀다.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는 듯한 창백한 얼굴의 여자가 주문을 받았고 어느새 그들 사이엔 카페라테 두 잔이 놓여있었다. 그들은 한참을 말없이 앉아 있었다.
“영준아, 있잖아, 나.........”
“뭔데 그렇게 뜸을 들이냐? 불안하게...... 너, 이상하다, 오늘?”
“나, 너 좋아하는데...... 많이......”
순간, 영준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쳐갔다. 그의 미간이 일그러지는 듯하더니 곧바로 미소가 떠올랐다.
“........나도 너 좋아해.”
“모른 척하지 마. 무슨 말인지 알잖아.”
“윤경아........나 한달 후에 결혼해.”
“...............그래..........그냥, 그렇다고.......”
“.................“
“...... 결혼하면, 이런 말 못 할 거 같아서......”
“.................“
“결혼식엔, 꼭 갈게. 축하해 줘야지. 그리고, 오늘 내가 한 말은 그냥 잊어버려.”
“.................“
“괜히 나오라고 했나보다. 나, 갈게...... 먼저 일어난다.”
윤경은 참담한 기분이 되어 몸을 일으켰다. 그 순간, 작은, 아주 작은 영준의 목소리가 그녀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조금만 더 일찍 말하지......”
순간, 윤경은 세영이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눈물 같은 건 나지 않았다. 영준의 마지막 말이 핏줄을 타고 기어다니는 것 같았다. 그저 온 몸이 메말라간다는 느낌 뿐이었다. 온 몸의 물기가 메말라버리고 마지막으로 뇌수까지 말라붙어 더 이상 생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고 윤경은 왠지 더 처량해보이고 싶어서 우산을 버리고 비라도 맞을까했지만 그만 두었다. 자신에겐 극심한 고통 혹은 비극일지라도 다른 이들의 눈에는 우스워 보일테니까.
그녀는 집 냉장고 구석에 있는 소주 3병을 생각해내고 담배를 사기 위해 편의점을 찾기 시작했다. 그 많던 편의점이 다 어디로 갔는지 10분가량 골목사이를 헤메었건만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구멍가게조차 없었다. 마치 길이라도 잃고 헤메는 기분이었다. 이미 바지는 무릎까지 젖어있었고 물기 때문에 접착력이 약해진 샌들 끈은 금방이라도 샌들에서 떨어져 버릴 것 같았다. 장마라고는 해도 여름이라 이마에선 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녀가 편의점 찾기를 포기하려는 찰나, 골목 저 끝으로 회색의 의류 수거함 옆에 마치 놀이공원의 회전목마를 연상케하는 화려한 파스텔톤의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25시 편의점. 이 골목을 몇 번이나 지나쳤는데 왜 저 특이한 간판을 발견하지 못했을까하는 생각도 잠시, 25시라는 글자에 윤경은 자신의 처지도 잊고 갑자기 우스워졌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틈이 없었다. 빗줄기는 더욱 굵어지고 있었고 습도는 물론 온도까지 상승하고 있는 것 같았다. 윤경은 역시 파스텔톤의 손잡이가 달린 유리문을 밀고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어서오세요!”
계산대에 앉아 있는 사람은 스무살도 채 안되어 보이는 소녀였다.
“저거요.”
윤경은 아무 담배나 가리키며 건조하게 말했다.
“2500원입니다.”
윤경은 지갑을 꺼내려고 왼쪽 어깨에 메고 있던 가방을 열었다. 그러나 지갑은 없었다. 아까 커피숍에 놓고 온 모양이었다.
“지갑을 안 갖고 왔어요. 잠깐만요. 가져 올게요.”
계산대의 소녀는 커다란 눈으로 윤경을 보며,
“괜찮아요. 그냥 가져가세요.” 하고 정말로 괜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뇨. 갔다 올게요.”
윤경은 편의점의 문을 열고 나와 아까 영준을 만났던 커피숍으로 향했다. 어두운 공기를 헤치고 영준과 마주 앉았던 테이블을 찾으며 잠시, 영준이 그대로 앉아있었으면 하는 기대를 가져보았다. 역시 그는 없었다. 지갑은 윤경이 앉았던 의자 위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아마 영준도 보지 못한 모양이다. 그녀는 지갑을 집어들고 커피숍을 나와 다시 아까의 25시 편의점이 있는 골목으로 들어섰다.
골목으로 접어드는 순간, 그녀는 자심의 눈을 의심했다. 편의점이 사라진 것이다! 회색 의류 수거함이 있는 곳까지 전속력으로 달렸다. 의류수거함은 그대로였으나 편의점은 없었다. 윤경은 마치 귀신에 홀린 듯한 기분이 되어 미친 듯이 이 골목 저 골목을 뛰어다녔으나 그 어디에도 파스텔톤의 25시 편의점은 없었다. 갑자기 속이 상했다. 아까도 나오지 않던 눈물이 나왔다.
25시 편의점을 다시 보게 된 건 그로부터 이틀 후였다. 장마는 끝나지 않았지만 비는 오지 않고 있었다. 윤경의 머리 속은 텅 비었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가게 앞으로 뛰어가 힘껏 문을 열었다.
“어서오세요!”
계산대에는 예전의 그 소녀가 앉아있었다.
“여기, 분명히 이틀 전에 없었는데......”
“어머, 같은 사람이 두 번 오긴 처음인데!!!”
소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윤경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된 거예요? 이 가게..... 갑자기 없어졌는데... 그리고 오늘 다시 나타나고.....내가 착각한 건가?”
“훗. 어쩔 수 없네...... 같은 가게에 두 번 온 사람도 생기고... 당신한텐 말해야겠네..”
소녀는 장난기 가득한 눈동자로 윤경을 보며 말을 이었다.
“이 가게 간판에 뭐라고 되어 있었지? 25시 편의점이라고 적혀 있는거, 봤지? 말 그대로야. 25시 편의점. 25번째 시간에만 나타나거든. 아니, 정확히 말하면 25번째 시간에만 너희들 눈에 보이는 거지.”
“25번째 시간?”
“그래. 그건 인간이 계산할 수도, 느낄 수도 없는 시간이야. 인간의 24시간이 지나고 다 음 첫 번째 시간이 시작되면서 연결고리가 가끔 어긋나거든. 그때가 25시야. 물론 24시간이란 것도 인간이 나눈 거니까 의미 없는 거지만. 그런건 중요하지 않아. 이 가게는 여기에 계속 있지만 인간의 24시가 흐르고 있을 때는 단지 존재할 뿐, 인간이 계산하는 시간의 흐름에는 지배되지 않지. 이 가게가 시간의 흐름에 지배될 때는 25번째 시간, 딱 한 시간 뿐이야. 그래서 인간들 눈에 보이는 시간도 인간의 시간의 흐름에 지배받는 그 한 시간 동안이지. 무슨 말인지 알겠어?”
소녀는 윤경의 표정을 보고 말을 이었다.
“모르겠나보네. 큭큭큭...... 뭐, 몰라도 상관없어. 대신 선물을 줄게. 너, 소원이 있지?”
윤경은 소녀의 말을 물론 믿지 않았다. 이틀 전엔 너무 마음이 복잡해 가게의 위치를 혼동했을 뿐이라고, 그렇게 마음 속으로 되뇌었다. 그래.. 이 여자애는 단순히 처량해보이는 날 놀리는 사이코 영화광임에 틀림없어.
“아참, 잊고 있었네. 지금 내가 인간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건 이것 뿐이었지.”
소녀는 둥글에 말린 종이 뭉치를 꺼냈다. 한 눈에도 오래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누렇게 바래가고 있는 종지 뭉치엔 빨간 리본이 묶여 있었다.
“큭큭큭...... 이건 뭐냐면...... 내 거래 장부야. 네가 죽이고 싶은 사람을 말해. 그 사람의 이름과 생년, 월, 일, 시 그리고 그 사람이 어떻게 죽었으면 하는지도. 아아. 네가 여기에 직접 써도 상관없어. 인간들은 그런 거래 할 때 자신이 직접 적는 걸 선호하더라구.”
윤경은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세영이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은 있지만 진심은 아니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슨 말이예요? 누굴 죽여요? 그리고 말도 안되는 걸 내가 믿을 것 같아요?”
“큭큭...... 존댓말 같은 거 안 써도 좋아. 내가 너보다 나이는 훨씬 더 많지만, 지금 네 눈엔 어차피 인간 나이로 20살도 안 된 어린애로 보이는 거 알거든. 사실, 인간들마다 날 다른 모습으로 보더라구.”
“무슨 헛소리야? 나까지 정신 나갈 것 같아!”
“어...... 시간 없어. 한 시간은 금방 지나가거든. 내가 그렇게 소원을 들어준 사람은 꽤 많다구.”
소녀는 리본을 풀고 종이를 펼쳤다. 영어, 일본어, 프랑스어, 한문, 알 수 없는 나라의 글자들이 빽빽했다. 훈민정음도 보였다.
“할 거야, 말 거야? 대부분의 인간들은 이 거래를 꽤나 좋아하던데 말이지......”
윤경은 도저히 이 소녀가 제정신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러나 왠지 편의점 밖으로 나갈 마음이 들지 않았다.
“깔깔...... 너 지금 내가 미쳤다고 생각하고 있지? 근데 손해 볼 건 없잖아? 그 남자가 너한테 올지도 모르는데?”
이 계집애......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거야...... 순간 영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조금만 더 일찍 말하지......그녀는 결심을 한 듯, 소녀를 바라보았다.
“그래, 좋아. 그렇지만 네 말을 믿는 건 아냐. 어차피 장난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큭큭큭. 맘대로 해. 믿던 안 믿던 네 맘이야.”
“거래라고 했지? 그럼 대가는 뭐야?”
“대가는 두 가지야. 하나는 이 거래가 성립되면 자연히 나에게 와야 할 것, 하나는 내가 선택하는 거야.”
“그게 뭔데?”
“하나는 네가 죽게 만든 사람의 영혼. 하나는 그거.”
소녀는 이렇게 말하며 교활한 표정이 되어 손가락으로 윤경의 왼쪽 귀를 가리켰다.
“내...... 귀?”
“응. 그거 두 가지야.”
“....... 좋아.”
어차피 거짓말일 게 뻔한데.
“오케이. 그럼 시간이 없으니까 빨리 설명할게. 여기에 아까 내가 말한대로 죽이고 싶은 사람과 그 사람이 죽을 시간, 장소, 방법을 적어. 자세할수록 좋아. 이름과 생년, 월, 일, 시는 정확해야 해. 물론 정확히 같은 시간에 태어난 사람이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다면 고향과 태어난 장소까지 적어야 하는데... 그런 경우는 드물더라구. 아무튼 내가 그 사람이 누구인가를 알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단 말이야. 그 사람이 죽을 장소랑 방법은 반드시 적을 필요는 없지만, 안 적으면...... 내 마음대로 할 거야. 난 생각을 많이 하는 게 귀찮지만 널 위해선 특별히 상상력을 발휘해 주지. 큭큭큭. 그리고 이 거래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는데, 그건.......”
윤경은 소녀의 설명을 건성으로 듣고 있었다. 모든 사고가 정지해 버린 것 같았다.
“...............그럼, 이제 적어.”
윤경은 종이를 내려다 보았다. 눈에 띄는 이름들도 보였다. 미해결인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의 피해자 이름도 있었고 사고로 죽은 정치가도 있었다. 윤경은 어느새 마지막 줄에 이어서 이렇게 쓰고 있었다. 세영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이세영. 1978년 10월 26일.....세영과 꽤 친한 편이었지만 몇시에 태어났는가는 알 수 없었다. 망설이던 그녀는 예전에 세영의 고향과 태어난 병원이 어디였는지 들었던 것을 기억해냈다. 지역은 다르지만 자신이 태어난 병원과 이름이 똑같은 병원이었기에. 신림동 연희 산부인과에서 출생. 2005년 9월 10일 오후 2시. 지하철 신림역. 달려오는 열차에 뛰어들어 사망. 왠지 세영이 태어난 곳을 죽음의 장소로 선택하고 싶었다. 그게 가능하다면. 이게 사실이라면. 그 모습을 바라보던 소녀의 눈이 빛났다.
그녀는 종이 뭉치를 다시 둘둘 말아서 리본으로 묶으며 말했다.
“좋아. 이제 거래가 시작된 거야. 댓가는 이 여자가 죽고 나면 받아갈게.”
윤경은 소녀를 바라보았다.
“어차피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하지만 계약은 성립되었어. 네가 이 장부에 적으면서. 믿던 안 믿던 네 자유지만 네가 원하는대로 되면 댓가는 지불해야 해. 자, 이제 시간이 다 되어간다. 빨리 여기서 나가지 않으면 내일 쯤 파출소의 실종자 명단에 네 이름도 올라가게 될걸.”
윤경은 문을 열고 나왔다. 물론 소녀의 말을 믿지 않았다. 세영이 자신이 정한대로 죽을 거란 것도, 소녀가 자신의 귀를 가져갈 거란 것도 모두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이불 속으로 파고 들었다. 거짓말이야...... 거짓말...... 윤경이 잠으로 빠져들면서 요 며칠간의 일들도 모두 그녀의 무의식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9월이 되며 장마는 끝나고 다시 더위가 찾아왔다. 영준과 세영은 결혼 준비로 정신이 없었다. 윤경은 그들은 진심으로 축하해 주기로 결심하고 9월이 되면서 금연을 시작했다. 그리고 벌써 10일째 담배는 쳐다보지도 않고 있었다. 대신 땅콩을 먹었다. 왠지 그 쌉싸름한 맛이 담배랑 비슷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오늘은 늘 한 두 봉지 있었던 땅콩이 다 떨어진 걸 확인하고 윤경은 점심식사 후 슈퍼마켓으로 향했다. 햇빛이 눈부셨다. 뜨거웠다. 그녀는 햇빛을 피하기 위해 가능한 한 건물 쪽으로 붙어서 걸었다. 다른 사람들이 그러는 것처럼.
슈퍼마켓은 오래된 한의원 바로 옆 건물에 있었다. 한의원 간판이 금방이라도 땅바닥으로 추락할 것 같이 아슬아슬했다. 너무 눈이 부셨다. 오늘이 며칠이더라? 금연한지 10일째.... 9월 10일이구나. 너무 덥다...... 저 한의원은 너무 낡았어. 더 이상 손님도 없는 것 같은데 그만 간판 내리지......큭큭큭...... 윤경은 자신이 그런 기괴한 웃음 소리를 상상하고 있는 것이 기분나빠 고개를 흔들고 위를 올려다보았다. 한의원 간판이 원래 매달려 있던 곳에서 떨어지려고 했다.
“꺄악------!!”
자신의 비명이 아닌, 주위 사람들의 비명소리를 들으며 윤경은 눈앞이 캄캄해짐을 느꼈다.
윤경은 머리와 얼굴 전체, 그리고 왼쪽 어깨에 극심한 통증을 느끼며 눈을 떴다. 흰 옷을 입을 사람들이 바쁘게 돌아다니는 것이 보였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어, 윤경아!! 이제 정신이 드니? 여기요!! 허윤경 환자 정신 들었어요!!”
주희였다.
“아......아파...... 어떻게 된 거야?”
윤경은 억지로 물었다.
“미쳤어, 기집애야... 왜 하필 그런데로 걸어 간거야... 길은 넓은데. 한의원 간판 떨어지면서 네가 맞았어.”
“응... 근데 너무 아프다......나 머리 맞은 거야?”
아까 주희가 부른 간호사가 윤경의 침대 쪽으로 다가왔다.
“큰일날뻔 했어요. 간판이 떨어지면서 속도가 붙은데다 무게 때문에...간판이 완전 산산조각났거든요.”
윤경은 간호사와 주희가 뭔가 더 이야기하길 꺼린다는 느낌을 받고 불안해졌다.
“주희야, 거울 좀 줘봐.”
“윤경아, 일단 누워... ”
“거울 좀 달라니까!!!”
윤경은 침대에서 일어나 벽 거울이 걸려 있는 곳으로 갔다. 거울 속 윤경은 얼굴에 이상한 형태로 붕대를 감고 있었다.
“얼굴엔 흉터 같은 거 남지 않을 거래. 얼굴은 깨끗하거든. 근데....... 이상하게 간판이 떨어지면서 귀가 잘렸는데 사고 현장을 아무리 찾아봐도 귀가 없었대.”
윤경은 눈을 감았다.
“.........사고 난 게 정확히 언제였어?”
“오후 2시 5분.”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리고 오늘 너 사고나기 직전에, 세영이가 열차에 뛰어들어서 자살했어...... 하반신만 깔려서 즉사는 하지 않았고 5분 정도 살아 있었나봐......”
윤경은 안정을 취하다 퇴원하라는 주희와 의사의 만류에도 얼굴에 붕대를 감은 채로 퇴원했다. 그 소녀의 말대로 되었다. 아니 윤경이 적은 대로 된 것이다. 잊고 있었는데. 캄캄한 하늘에서 다시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철벅철벅..... 도둑 고양이가 비 피할 곳을 찾아 윤경의 집 창문 밑으로 온 건지 철벅거리는 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왼쪽 귀가 붙어있던 자리가 욱신거렸다. 1시가 되도록 잠을 이루지 못한 윤경은 컴퓨터를 켜 인터넷에 접속하고 뉴스 란에서 세영의 죽음을 확인했다. 암담했다. 내가 사람을 죽인 건가. 비는 점점 더 세게 내리고 있었다.
“이건 현실이 아니야. 꿈이야. 꿈일거야......”
꿈이어야 했다. 윤경에겐 죄의식 같은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심장이 두근거리며 뛰는 소리만이 들렸다. 그리고 철벅거리는 소리도...... 도둑 고양이의 몸집이 꽤 큰 듯 빗소리 속에서도 그 소리가 계속 윤경의 신경을 곤두서게 만들었다. 철벅철벅 끼기긱.... 끼익끼익..... 고양이가 발톱을 세워 창문을 긁고 있는지 유리 긁히는 소름끼치는 소리가 들렸다. 철벅철벅............... 끼익끼익......
윤경은 책상 서랍을 열고 담배갑을 꺼냈다. 철벅철벅 스으윽. 어두운 방 안에 담배 연기가 가득찼다. 윤경은 창문을 열었다. 비 냄새와 함께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상하다.... 아무리 비가 와도 이런 냄새는 난 적이 없는데......
하늘이 번쩍했다. 번개가 친 것이다. 번갯불에 한순간 주위가 밝아지며 방안의 모습이 윤경의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방 창문 바깥쪽 창턱과 창문 아래 쪽에 뭔가가 잔뜩 묻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우르릉 쾅. 윤경은 창문에 묻어있는 것을 더 자세히 보기 위해 머리를 숙였다. 번개가 다시 한 번 번쩍했다. 피였다. 창문이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마치 피투성이의 뭔가가 창문을 통해 윤경의 방 안으로 들어오려고 한 것 같았다. 우르릉 쾅. 윤경의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다시 한 번 번개가 쳤다. 사방이 밝아졌다. 윤경의 집 마당 구석에 뭔가가 기어다니며 재빨리 움직이고 있었다. 스으윽, 철벅. 도둑 고양이는 아니었다. 사람만큼 컸다. 아니, 보통 사람의 온전한 신체의 절반정도 되는 것 같았다. 윤경은 자신의 심장이 두근거리는 소리 때문에 고막이 터질 것 같았다.
윤경은 침실에서 나와 거실로 갔다. 거실 창문도 역시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욕실 창문도, 부엌 창문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잠겨 있는 창문을 피투성이의 손이 억지로 열려고 한 흔적이 있었다. 그녀는 25시 편의점에서 그 소녀가 한 말을 기억해 냈다. 건성으로 듣고 흘려버렸던 그 말을.
-이 거래엔 부작용도 있을 수 있는데, 그건 네가 죽게 만든 사람이 나한테 오지 않고 널 찾아 갈 수도 있다는 거야. 보통은...... 죽은 모습 그대로 찾아가지.
철벅 철벅...... 스윽......
철벅거리는 소리가 아까보다 크게 들렸다. 윤경은 그제서야 침실 방 창문을 열어 놓고 나온 것이 생각났다. 철벅 철벅...... 그녀는 세영이 죽는 방법으로 달리는 열차로의 투신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아아... 첫번째 글입니다. 불안합니다... 유치할 것 같아~ 하나도 안 무서울 것 같아~ 이런 걱정만 생깁니다. 그리고... 문단을 어떻게 나누어야 할 지 잘 모르겠어서... 이렇게 했습니다. 그리고 줄 간격은 어떻게 늘리는 건가요? 카페 게시판에 이렇게 근 길을 올리는 것은 처음이라서요... 따끔한 충고 많이많이 해 주세요.. 그리고 소녀의 장부는 데스노트를 참고한 것입니다~!!
오 ㅇㅂㅇ 재밌게읽었습니다아'ㅁ'~~ 그런데 뭐랄까, 잘 읽어내리다가 '건성으로 듣고 흘려버렸던 그 말을' 에서 조금 인상이 찌푸려지네요. 뭐랄까, 어영부영끼워넣은듯한 느낌이 와서요;; 그리고 다 좋았는데 후반부가 좀... 약간의 억지가 있는것 같고... 여튼 문체도 좋고 재밌게 읽었습니다 ^^
첫댓글 25시라는 발상이 참신하네요. 역시 수상한 계약은 약관을 잘 살펴봐야 겠습니다;; 훈민정음에서 조금 키득 ㅎ
데스노트가 뭐죠?
만화책인데, 제가 설명하기 보다는 이 카페 북 리뷰였나? 걸작 호러도서였나..에 소개되어 있을 거예요.. 부족한 점 많이 많이 비판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잼있게 잘 읽었어요~
오오. 그랬군요. 꽤 긴데, 처음에는 두편으로 나눠서 내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읽어보니 좌르륵 넘어가네요, 시원하게. 잘 봤어요. 역시 좀 께름칙한 계약은 아무리 떙겨도 하지 않는 편이
오 읽다보니까 정말 데스노트가 생각났는데 ㅋㅋ 무서워요~
그러게 쉽게 계약하면 안되는것이예요..후후.. 재미있었어요.
오,재밌어요,그러길래 계약서에 동의같은거 함부로 하는게 아니죠,ㅋㅋㅋㅋ 마지막에는 세영이 귀신으로 나타났겠군요.ㅋㅋㅋ
음.... 귀신이라는 개념보단... 뭐랄까......음...... 설명을 잘 못하겠는데, 귀신이란 개념은 안 어울리는 것 같아요.
오 ㅇㅂㅇ 재밌게읽었습니다아'ㅁ'~~ 그런데 뭐랄까, 잘 읽어내리다가 '건성으로 듣고 흘려버렸던 그 말을' 에서 조금 인상이 찌푸려지네요. 뭐랄까, 어영부영끼워넣은듯한 느낌이 와서요;; 그리고 다 좋았는데 후반부가 좀... 약간의 억지가 있는것 같고... 여튼 문체도 좋고 재밌게 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