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예프스키를 위대하게 만든 것은 간질병과 사형수의 고통이었다.
로트레크를 위대하게 만든 것은 그를 경멸 덩어리로 만들었던 난장이라는 고통이었다.
생텍쥐페리를 위대하게 만든 것도 그를 일생 동안 대기 발령자로 살아가게 한 평가 절하의 고통이었다.
베토벤을 위대하게 만든 것도 끊임없는 여인들과의 실연과 청신경 마비라는 음악가 최대의 고통이었던 것이다.
고통은 불행이나 불운이 결코 아니다.
고통이란 도리어 행복과 은총을 위한 가장 아름다운 번제물인 것이다.
당신이 지금 지나치게 행복하다면 그것은 곧 불행이다.
당신이 지금 지나치게 불행하다면 그것은 곧 행복이다.
인간은 고통을 통해 비로소 자아를 불사를 용광로 속에 들어갈 자격을 얻게 되며,
용광로 속에서 신의 손에 의해 아름다운 은으로 새롭게 빚어지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암석이 용광로 속에 들어가지 않으면 결코 은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고통. 정말로 내게서 없어졌으면 하는 단어입니다.
그러나 주님과 함께 하지 않는 한, 고통은 내 곁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강유일, '아아, 날이 새면 집 지으리라' 중에서-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느님의 뜻이 아니다.”(마태 18,12-14)
주님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가 가진 것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영원하십니다.
영원하신 그분이 우리에게 손을 내미시어 우리를 끌어주시니 우린 영원을 향해 걸음마를 오늘도 배우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말씀처럼 그 주님께서 오늘도 잃은 양 한 마리 찾아 우리에게 오십니다.
사람은 자신이 처한 화경에서 사물이나 사건을 바라봅니다.
세속 사람은 세속이라는 눈으로 주님을 보려고 합니다.
주님의 사람은 주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보려 합니다.
주님의 기다림에는 끝이 없습니다.
오늘 이 시간은 다시금 우리가 무엇을 잃어버리고 사는지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지를 절박한 마음으로 살펴보는
은총의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마음이 잃어버린 것은 하느님을 향한 사랑입니다.
사랑을 회복하시길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