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양주시에서 여는 김삿갓배가 6회째를 맞았다. 그럼에도 바둑관계자들조차 “김삿갓(본명 김병연)과 양주가 무슨 연관이지?” 아직도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가 있다. 김삿갓, 하면 그와 가족이 살았고 묘지가 있는 영월군이 첫머리에 떠오르기 때문이다. 영월이 16년 전부터 김삿갓문화제를 먼저 시작한 것도 ‘양주와 김삿갓의 연관’에 의문을 갖게 했으리라.
양주는 김병연(김삿갓)이 태어나 여섯 살 때까지 산 고향이다. 조부인 김익순이 선천부사와 방어사로 있을 때 홍경래의 난이 일어나 항복한 죄로 역적으로 몰려 처형됐다. 그때 폐족으로 몰린 일가가 부득이 뿌리박고 살던 양주를 등지고 몸을 숨긴 곳이 영월이었다.
양주시는 2007년 김삿갓 탄생 200주년 기념백일장을 시작으로 김삿갓의 문화적 계승지를 자처하며 여러 가지 기념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 중 하나가 바둑대회다. 방랑시인 김삿갓과 바둑, 참 어울리는 문화브랜드다. 전해지는 500여 수의 시 가운데 바둑시는 딱 한 편뿐인 게 안타깝지만, 양주의 김삿갓배는 함양의 노사초배와 더불어 역사적 스토리텔링이 있는(가능한) 소중한 대회다.
▲ 이만한 대회장 있을까? 김삿갓배가 열린 양주시별산대 놀이마당은 바둑대회장으로는 전국에서 으뜸가는 장소다. 600여 명이 모여 수담을 나눈 대회장은 한 폭의 풍경화였다. 김삿갓이 이 광경을 보았다면 필시 멋진 시 한 수 읊었으리라.
▲ 대회 마스코트 김삿갓 분장인물 이제는 대회 마스코트로 자리한 김삿갓 복장인물. 김삿갓기념사업회 정재진 회장은 대회 때마다 마치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처럼 방랑시인 김삿갓 복장으로 나타나 아이들에게 멋진 추억을 선사하고 있다. 바둑은 초보 수준이라는 정회장은 "바둑두는 어린이들이 김삿갓이라는 인물에 대해선 아직 잘 모르겠지만 이미지만큼은 기억하고 갔으면 하는 바람에서 시작한 일"이라며 양주와 양주바둑을 알리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제6회 김삿갓배 전국바둑대회가 9월8일 오전9시부터 양주시별산대 놀이마당에서 열렸다. 대회는 경기도 시군대항 단체전에 참가한 16팀을 비롯해 일반부(202명), 학생부(387명) 등 600여 명에 이르는 선수가 출전해 25개 부문에서 경합을 벌였다. 올해부터는 일반최강부를 시니어와 주니어로 나눴고 경기도 각 시군대항 단체전과 특기적성부 단체전을 신설했다.
관심을 모은 일반최강부 시니어부와 주니어부에서는 장시영 아마6단과 김정환 아마6단이 우승했다.
특히 전국대회에서 번번이 준우승에 머물러 ‘만년 준우승 제조기’ 소리를 들었던 노장 장시영 아마6단이 여자아마강자 이유진 아마5단과 저녁7시까지 벌인 접전 끝에 극적인 반집 대역전으로 우승해 큰 박수를 받았다. 40세 이상이 참가하는 시니어부라 해도 40~50대 강자가 여전한 아마바둑계에서 올해 만60세인 장시영 씨의 우승은 의외의 감동을 안겼다.
문국현 아마5단을 누르고 우승한 주니어부 김정환 아마6단도 눈길을 끌었다. 2003년 미추홀배를 석권한 이후 10년 만에 다시 맛본 우승이기 때문이다. 대회의 또다른 매력인 경기도 시군대항 단체전에서는 의정부시팀이 구리시팀을 꺾고 우승했다. 3위는 고양시팀.
이날 대회에는 심판위원으로 강만우 9단, 김혜민 7단과 박성균 아마7단이 초청돼 지도기와 지도다면기로 참가자들과 즐거운 수담을 나눴고, 매년 대회 때마다 김삿갓 복장으로 대회장 분위기를 띄워주는 김삿갓기념화사업회의 정재진 회장이 올해도 걸음해 어린이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외 양주 특산물인 양주쌀, 참기름 등의 경품을 건 행운퀴즈 등을 마련, 나들이 온 가족들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 제6회 김삿갓배 부문별 입상자 명단
▲ 노익장이란 이런 것! 장시영-이유진의 일반최강부 시니어 결승전은 가장 늦게 끝난 대국이었다. 대회 폐막 예정시간이 6시를 훌쩍 넘겨 저녁7시까지 치열한 접전이 이어졌는데, 날은 어둑어둑해지는데 이미 공연장 관계자들이 퇴근한 상황이라 조명도 켜지 못한 채 종국을 치러야 할 정도였다. 이 바람에 시상식 상장을 휴대폰 손전등을 비춰가며 읽고 전달하는 이색 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기자 또한 컴컴한 무대에서 초점을 제대로 맞출 수 없어 곤혹스러웠다. ㅡ.ㅡ;;
▲ 시니어부 입상자. 왼쪽부터 준우승한 이유진 아마5단, 3위 김정우 아마7단, 김선광 양주시바둑협회장, 우승자 장시영 아마6단, 김혜민 프로7단.
만년 준우승자 소리를 듣던 장시영 아마6단은 1999년 런던에서 열린 마인드스포츠올림피아드에 한국대표로 나가 금메달은 딴 적은 있으나 국내에서 열린 전국대회에서 우승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만60세, 환갑의 나이에 이룬 우승이라 더욱 값졌다.
▲ 10년 만에 돌아온 두 바둑사나이 일반최강부 주니어부 결승전. 김정환 아마6단(왼쪽)이 문국현 아마5단을 따돌리고 우승을 차지했다. 김정환 아마6단 또한 10년 만에 거둔 우승이라 감격이 남달랐다. 미추홀배 우승자격으로 참가한 2003년 인천세계아마선수권대회에서 승승장구하며 결승에 올랐으나 통한의 반집패로 준우승에 머문 이후 전국무대에서 슬며시 사라지고 말았기 때문이다.
준우승한 문국현 아마5단 역시 10여년전 2002년에는 조남철배를, 2003년에는 이붕배를 내리 석권하며 이름을 날리던 어린이바둑 왕자였기에 이번 대회가 컴백무대가 되었다. 현재 경기대학에 재학중이다.
▲ 주니어부 입상자. 왼쪽부터 3위 정승현 아마5단, 준우승한 문국현 아마5단, 우승자 김정환 아마6단, 김선광 양주시바둑협회장, 김혜민 프로7단.
▲ 경기도 시군대항 단체전은 의정부팀(왼쪽)이 구리시팀을 꺾고 우승했다. 3위는 고양시팀이 차지.
▲ 다른 대회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대회선서. 스포츠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바둑의 단면을 보여준다. 장진원 씨가 선수대표로 깨끗하고 멋진 승부를 펼칠 것임을 다짐했다.
▲ 현삼식 양주시장이 개막식에 참석해 축사했다. 시장님! 김삿갓배처럼 멋진 대회장에서 기억에 남을만한 잔치로 자리한 지역바둑대회는 전국에 그리 많지 않답니다. 지역을 홍보하는 알리미로 이보다 더 좋은 종목은 없으니 앞으로도 꾸준히, 더 많이 후원해주세요! ^^
▲ 개막식에서는 지역 바둑유공자에 대한 표창 수여식도 병행되었다. 양주시바둑협회 전영진 씨가 양주시장 표창장을 받았다.
▲ 한덕희 덕계기원 원장 또한 현삼식 양주시장으로부터 직접 표창장을 받았다.
▲ 이 지역 국회의원 정성호 의원도 개막식에 참석해 양주를 찾아온 바둑인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나윤철(양주시청, 왼쪽), 박종오(경기도바둑협회 전무) 씨에게 국회의원 상을 표창했다.
▲ 양주시의회 정창범 의장도 축사를 하고 지역 바둑발전에 공이 큰 이승희(양주시바둑협회 여성위원장), 이복진(장흥면) 씨에게 양주시의회 의장 상을 표창했다.
▲ 허동수 한국기원이사장을 대신하여 강만우 9단이 김선광 양주시바둑협회장에게 아마5단증을 인허했다.
▲ 여류국수 김혜민 7단에게 지도다면기를 받은 어린이들은 마냥 신났다. 뒤늦게 달려와 지도다면기를 언제 또 하느냐고 문의하는 주민도 있었다.
▲ 알게 모르게 김삿갓배를 도와주고 있는 박성균 아마7단은 애초 시니어부에 출전하려고 걸음했으나 대회관계자들의 요청으로 종일 봉사활동으로 대신했다.
▲ 깜짝퀴즈 이벤트로 지역 특산물을 경품으로 나눠주는 풍경도 김삿갓배에서 볼 수 있는 진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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