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11월에 新潟県에서 중학교 1학년이던 요코다 메구미가 실종됩니다. 당시 13살인 메구미는 학교에서 배드민턴 연습을 끝내고 집으로 가는 길에 북한 공작원 신광수에 의해 납치됩니다 함경북도 청진항으로 40시간이 넘게 끌려가면서 하도 울부짖는 통에 배 선실에 가두었다는데 문을 열려고 손톱으로 수없이 긁어서 손이 피투성이가 되었다고 합니다. 13살 소녀가 얼마나 공포에 질렸을까요? 조선어를 공부하면 일본에 보내준다는 말에 필사적으로 조선어를 배우고 강제로 주체사상을 공부하게 됩니다.
1978년 군산 선유도해수욕장에서 남파간첩 감광현에 의해 납치된 16살 고교생 김영남 (본명 김철주) 를 만나게 되는데 김영남은 특수공작기관에서 근무했답니다. 1986년 결혼하고(강제 결혼이란 말도 있음) 이듬해에 딸을 낳지요. 평소의 우울증으로 평양시에 있는 정신병원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고 전해지는데 정확한지는 불분명합니다. 1994년에 사망했다지만 "95년도에 김정일 아들의 가정교사를 했다"는 목격담도 있고. 2011년에 탈북자의 증언에 따르면 메구미가 생존해 있다는 설도 있었답니다.
그러나 일본측의 극비조사에 의하면 메구미는 정신병원 완전격리병동에 감금되었다가 약물 과다 투여로 사망했다는 증언이 나오고 30세이던 1994년 4월 10일 사망했고 인근 야산에 묻혔다고 전해집니다.
2002년 9월에 고이즈미 총리가 방북하여 17명의 납치자 중에 5명을 데리고 귀국합니다. 비행기에서 내리는 뉴스에서 초췌하고 삐쩍 마른 모습의 납치 피해자들의 얼굴을 보면서 안타까움과 북한의 만행을 새롭게 알게 되고 같은 조선 사람으로서 부끄러움을 갖기도 했답니다. 그후 몇 달이 지난 후에 기자회견을 하는데 못 알아듣는 일본어였지만 북한에서 겪은 고통을 말하는데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더군요. 그 사이에 건강이 좋아지고 혈색이 돌고 살도 오른 모습을 보며 환경의 변화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새삼스레 느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당시 TV를 틀면 매일이다시피 메구미의 부모님 요코다 시게루(横田滋)씨가 전국을 돌며 기자회견도 하고 駅마다 순회하며 피해자들의 송환과 진실규명을 호소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지요. 미 연방 의회에 나가 북한 납치 만행을 고발하고 가짜 유골을 보낸 사실을 증언하기도 했답니다.
억울하게 죽은 자식의 죽음은 뼈에 사무치는 것이라서 오토 웜비어 부모의 마음과 메구미의 부모님 심정은 똑 같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恨은 죽음으로서 끝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영원히 구천을 헤매게 될까요?
일본은 납치 피해자를 귀국시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하는데 우리 정부는 왜 손 놓고 있을까요? 500명 넘게 납치되어 북한에서 생지옥을 살고 있는데도. 470여명의 남한 어부와 대한항공 납치 사건의 10명도 구출할 생각을 안 합니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 를 무심한 정부 관료에게 보여주면 가슴이 뜨거워질까요?
첫댓글 도꾜도청 청사에서 사진등 기사를 본 기억이 있습니다. 작년인가요.
처음 알게 되었지요.
일본어를 가르쳐 줄 사람을 납치하는 겁니다.
대한항공 폭파범 김현희도 다구치 야에코란 여자에게
일본어를 배웠답니다.
남파간첩들도 배운답니다.
ㅎㅎ
해석을 너무 잘하셨습니다.
내용을 뛰어넘어 넘넘 잘하셨어요.^^
회장님 올리신 글에 해석을 했는데 그만 삭제되는 바람에
이것저것 찾아보고 간추린 내용만 올립니다.
오랜만에 친구의 글을 읽어보고갑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들이었지요
글을 읽으니 친구의 모습이 떠오르고
보고싶어지네요~ ㅎ
무척 바쁜가 했지요.
시간 나는대로 일어방에서
자주 만나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