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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부에는 행정지구와 업무시설 등이 들어서고 양 방향 날개부분을 동쪽은 동시(東市), 서쪽은 서시(西市)로 부르며 각각 대단위
주거지구가 들어서도록 계획됐다. 도시 중심부와 양쪽 시가지를 합쳐 50만의 인구를 수용하는 규모이며 추후 늘어나는 인구는 도시
외곽 전원도시 형태로 수용해 최대 1백만 인구를 넘지 않도록 계획했다. 도시의 무분별한 확산을 막기 위해 도시개발은 개발허가제를
도입해 완벽한 통제 하에 개발되도록 한다. 중심지구와 주거지역 및 전원도시 주변에 도시의 난개발을 막기 위한 그린벨트를
설치한다.
전체 도시계획 구역은 모두 3백㎢이고 이중 보상대상면적은 중심지구와 동시, 서시 및 주변부를 포함해 모두 2백㎢ 넓이로 했다.
중심지구
로 들어오는 자동차도로는 중심지구의 남쪽 끝과 북쪽 끝을 동서로 관통하는 도시외곽고속화도로와 동서(東西)주거지역에서 중심지구
중앙과 바로 연결되는 두 개의 횡단 주(主)간선도로(도로폭 60m) 및 이 도로들로부터 갈라져 각 시가지로 진입하는 보조
간선도로(도로폭 50m) 등으로 구성된다. 지하철은 서시(西市) 주거지역을 한 바퀴 순환한 뒤 중심지구를 거쳐 동시(東市)
주거지역 남측으로 빠지도록 계획된 2호선(28km)과 도시 중심부를 순환하는 1호선(7km)으로 계획됐다. 각 주거지역 및
중심부는 지하로 통과하며 동시에서는 두 개의 노선을 잡아 지상전철 및 일반철도와 연결시키고, 이는 다시 위성도시 및 전원도시들과
연결되도록 계획됐다. 지하철역은 평균 보행거리를 5백m로 하고 약 1km마다 총 35개를 설치하며 지상으로 나오면 버스정류장과
접속되도록 하고 지하로는 지하상가·지하통로·대형건물의 지하층과 유기적으로 연결시킨다.
교통계획에서 가장 특징적인 점은 중심지구에 보행자 전용도로를 설치하는 점이다. 중심 시가지를 자동차나 전철, 자전거 통행 등으로
방해받지 않고 걸어다닐 수 있도록 설계했다. 자연스럽게 흐르는 보행자 전용도로를 블럭 중앙부에, 주거지역에는 녹지 속에 보행자
전용도로를 설치한다. 또 인접 블럭으로 계속 연결시켜 중심지구 전체를 다양하고 깨끗한 보행공간으로 조성했다. 보행자 전용도로는
중심축을 비롯한 주위의 녹지공간과 바로 연결돼 도시 중심이 인간적이고 활기있는 분위기가 되도록 계획됐다. 또 중심지구 및
주거지역에 자전거 전용도로를 설치해 자전거 이용을 권장한다.
전국의 4대권역(서울권·영동권·호남권·영남권)으로 바로 연결되는 광역교통망을 계획한다. 행정수도에서 이들 권역으로의 진출은
물론, 이들 권역에서 행정수도로 쉽게 진입할 수 있도록 행정수도 외곽에서 광역교통망과 연결되도록 계획한다.
서울과 행정수도를 연결하는 초(超)고속철도는 행정수도의 서쪽 부도심으로 연결되도록 계획했다. 초고속철도는 서울과 행정수도를 우선
연결하고 장래에 호남 및 영남권역으로 확장할 계획이었다. 오원철 수석은 고속철도와 관련하여, 당시 행정수도 완공과 동시에
개통하게 될 서울신수도간 고속철도는 우리 기술로 개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고 설명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선 기존 철도를
직선화하고 전철화하되 기존 기관차의 출력을 높여가면 국산화가 가능했다는 것이다. 당시 기술만으로도 시속 2백km가 넘는 한국형
초고속전철 건설이 가능했다는 주장이다. 우선 그 정도 수준에서 개발해 놓고 점차 엔진기술과 각종 신호체계, 통신기술 등을 개량해
나가면 국제경쟁력을 가진 초고속전철의 기술자립을 이룰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노태우 정권은 외국기술도입에 따른 막대한 리베이트와 외교적 대가에 눈이 멀어 성급하게 기술도입을 결정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오늘날, 기반공사도 안 된 상태에서 기관차가 도입되는 부실투성이의 기형적 고속전철을 초래하게 됐다고 안타까워한다. 그때부터
기술을 축적해 갔으면 지금쯤은 고속전철을 수출도 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일반철도는 경부선에서 갈려나와 행정수도와 연결한다. 일반철도역은 도시의 동쪽 외곽으로 진입시켜 도시내 기존 교통망과 연결시킬
계획이었다.
대규모 녹지계획
행정수도는 도시경계를 폭이 50∼5백m에 이르는 거대한 나무숲(樹林帶)으로 만들고자 했다. 나무숲으로 포위된 것 같은 푸른 벨트
내에 각종 도시공원과 녹지·자연대공원· 강변자연공원 등을 조성해 도시 전체가 거대한 공원을 방불케 하는 모습으로 계획됐다.
도시의 북쪽 바깥은 나무숲으로 경계를 삼고 남쪽은 금강변의 녹지공간을 경계로 한다. 도시 내부의 녹지체계는 세 가지로 계획됐다.
인공적으로 조성되는 중심축 녹지와 도시내 크고 작은 산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수계(水系) 중심의 구릉(丘陵)성 자연녹지, 도심
남쪽의 남산과 강변을 따라 조성되는 녹지공간 등으로 대별할 수 있다.
중심축 녹지는 도시중심부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주축(主軸) 녹지와 동서를 가로지르는 부축(副軸) 녹지로 조성된다. 주축 녹지는
폭이 5백m로서 중앙 1백50m는 녹지로 하고 중앙청으로부터 도심부 민족의 광장을 지나 남산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녹지축이다. 이
축을 따라 미술관·박물관·잔디공원·역사의 광장·민족의 광장·번영의 광장 및 기념시설물이 들어서며 도시민 전체를 위한 사회적
모임의 장으로 활용되도록 계획했다.
부축(副軸) 녹지는 폭 40m의 띠모양(帶狀) 호수와 가로공원으로 구성되며 입법부 및 사법부의 뒤편 자연녹지와 민족의 광장으로
이어지도록 계획됐다. 가로공원내에 자연스럽게 굴곡을 이루는 보행로를 설치하고 부축 외곽에 있는 정부유관기관 및 각 광장과도 바로
연결되도록 했다.
행정지구는 대단위 중정(中庭)을 두어 휴식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업무지구는 나름의 소단위의 중정을 둬 보행자 전용도로와
연결되도록 계획했다. 상업업무지구 내부는 모든 건물의 형상·층수·질감 등에 다양성을 살리되 간판이나 안내판 등은 규격화하여
도시미관상 무질서하게 되는 것을 예방할 계획이었다.
행정수도 남쪽을 흐르는 금강은 도시의 경계를 분명히 해줄 뿐 아니라 도시민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면 훌륭한 녹지 및
휴식공간의 구실을 할 수 있다. 따라서 강변의 수경(水景)상의 장점을 살리고 치수·교통·위락기능을 겸한 제방을 쌓아
강변순환도로로 이용할 계획이었다. 또 강변의 일정폭은 공공목적을 위해 반드시 확보하여 강변공원·산책로·자전거
전용도로·전망대·낚시터·마리나 보트장 등으로 활용할 계획이었다.
78년 당시 20년 앞을 내다본 한국인의 주거형태는 다음과 같이 발전할 것으로 기획단을 추정했다. 핵가족화 현상이 보편화되고
국민소득은 1만 달러 수준으로 향상돼 마이홈 욕구는 한층 강화될 것이다. 또 주택에 대한 국민들의 개념이 단순한 소유에 그치지
않고 편의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다. 주변환경에 대한 요구 또한 더욱 커질 것이다. 즉 단순한 주택 내부의 편의성뿐
아니라 주변환경의 중요성을 더욱 절실히 인식하게 될 것이다.
행정수도의 주거지 계획은 이같은 국민들의 주택에 대한 요구를 기준으로 해서 설계됐다. 우선 행정수도의 모든 주거지역은 약
1만5천명∼3만명 단위의 근린주구(近隣住區)를 기본단위로 계획되고 설계됐다. 즉 이 주거단위 내에서 시장과 아동들의 통학,
기초행정단위의 서비스, 걸어서 해결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근린주구의 주거단위 내에서 모든 일상생활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도시 주거지가 계획적으로 이뤄지지 못한 서울을 비롯해서 기존 도시들의 경우 마포구나 성동구 주민들이 남대문시장에 나가야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다. 성북구 미아동 미아리 고개 너머 사는 학생이 종로와 마포에 있는 학교를 다녀야만 하고 종로까지 나와야
참고서적을 살 수 있는 경우가 있다. 행정수도의 주거지 계획은 이같은 기존 도시의 불합리와 불편을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근린주거
방식을 기본지침으로 삼고 있다. 이렇게 하면 불필요한 도시 교통량을 근원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획단은 분석했다.
이를 위해 주구(住區)내 차도와 보행로는 명확하게 분리하여 주민들이 걸어서 모든 일상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며 차도와 보도는
필요할 경우 보도 위주로 입체교차로를 설치해 보행의 불편을 최소화하도록 했다. 행정수도내 주택호수는 가구당 인원을 3.5명
기준으로 정했으며 주택보급률 1백%를 기준으로 설계했다. 주택의 형태는 단독주택·연립주택·아파트를 30% 대 25% 대 45%로
하고 주택의 규모는 독신자 및 신혼·장년가구·대가족 가구 등 다양한 가구형태에 맞게 여러 가지 형태를 갖추도록 계획됐다.
주택은 주로 구릉을 활용하는 정책을 쓸 계획이었다. 일반 근로자들은 도심 및 도시 인근의 아파트에 살도록 하고 여유가 있는
계층은 도심에서 1시간 이내 거리의 농촌에 단독주택을 지어 살도록 유도한다. 스위스식으로 구릉을 개발해 단독주택지로 활용하도록
하되 난개발에 따른 환경파괴를 막기 위해 녹화까지 책임지우도록 할 계획이었다. 즉 훼손한 만큼 조림을 의무화시키려 했다.
대청댐을
통해 용수공급이 이뤄지도록 계획된 행정수도는 1인당 6백ℓ씩 공급될 수 있도록 계획됐다. 배수시설은 빗물과 오수(汚水)를 분리해
처리할 수 있는 분리하수관 시설을 갖출 계획이었다.
또 모든 전선과 수도관·가스관·쓰레기 수송구·통신케이블·지역 냉난방관 등을 지하에 설치될 공동구(共同溝)로 모아놓을 계획이었다.
공동구의 형태는 간선도로 밑에 설치될 간선(幹線)형과 준간선(準幹線)형, 지선(支線)형에 따라 규모가 다르나 간선형의 경우 가로
8m, 세로 3m 크기로 각종 관로를 설치하고 사람이 들어가 시공·점검·고장수리를 하는 데 전혀 불편하지 않을 규모로 계획됐다.
공동구는 또 내부 순환설비와 조명·배수·고장탐지 및 경보설비 등을 갖춘 첨단시설로 계획됐다. 따라서 행정수도는 겉에서 보면
전봇대 하나 볼 수 없는 도시로 건설될 예정이었으며 지하는 지하철과 지하보도, 공동구 등이 층층으로 배치되고 지상은 자동차
전용, 사람은 모두 지상 1층으로 걸어다닐 수 있도록 하는 입체화 도시로 계획됐다. 건물높이는 도심이건 부도심이건 높아도 8층
이하로 짓도록 해 미관상의 효과와 혼잡함을 예방할 계획이었다.
오원철은
전국의 간선교통망을 4개의 환상선(環狀線)과 8개의 방사선(放射線)으로 연결하려고 계획했다. 남한 전체를 새로 건설될 행정수도를
중심으로 방사선으로 뻗어나가는 형태로, 마치 거대한 도시국가 모양으로 만드는 도로망 건설이다. 방사선 간선망은 신(新)수도권을
핵으로 전국의 중핵도시들과 주요산업기지들로 뻗어나가 직접 연결하는 동선(動線)체계를 뜻한다. 방사 1호선은 신수도와 서울을
연결하는 현재의 경부고속도로 서울대전구간에 해당된다. 방사 2호선은 신수도와 북평(현재의 동해시)을 직선으로 연결하는
간선도로다. 이 도로축은 영동권의 충주·영월·삼척 등의 중핵도시들을 연결하고 영동권내 태백지구 등의 산업기지들을 직접 연결하는
산업 대동맥으로 구상됐다.
방사 3호선은 신수도와 대구·부산을 연결하는 경부축의 대전부산구간에 해당된다. 3호선은 영덕과 포항·울산·온산 등 중핵도시들과
대규모 공업지역과도 연결되는 동맥선이다. 방사 4호선은 신수도와 진주·남부기지·거제를 연결하는 간선축으로 남부공업기지를 육성
발전시키기 위한 동선축이다. 방사 5호선은 신수도와 순천·여수를 연결하여 신수도에서 여천·광양 등 공업기지로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돕고 소백산맥에 가려 개발이 소외돼 왔던 내륙지방의 도시들을 중핵 거점도시들로 개발 유도하기 위한 노선이다.
방사 6호선은 신수도와 목포를 연결하는 현재의 호남고속도로 노선이다. 방사 7호선은 신수도와 서해안 군산비인 공업지역을
연결하는 노선이며, 8호선은 신수도와 중부산업기지를 연결하는 노선을 가르킨다. 환상(環狀)간선은 모두 4개로 구성되는데 우선
신수도 중심에서 반경 30km권을 둘러싸는 광역환상도로가 1호선으로 수도권 주변 중핵 위성도시들을 연결한다. 2호선은
평택충주김천군산중부기지를 연결하는 순환선으로 중부기지의 산업기지와 대단위 농업기지를 엮는 간선 구실을 하도록 계획됐다.
3호선은 인천서울원주대구마산순천광주를 연결하는 순환선으로 서울과 내륙지방의 각 중핵도시들을 연결하는 환상선으로
계획됐다. 4호선은 동해안의 해안을 따라 속초강릉북평삼척포항울산부산창원순천목포를 연결하는 해안순환선으로 서해 및
남해안의 임해공업단지를 연결하는 산업기지 및 관광을 위한 주동맥 구실을 하도록 구상됐다.
“2000년대 국토구상”은 간선도로망을 건설할 때 기존도로망을 이용할 경우에도 직선화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교통용량은 각
지방의 교통량에 따라 도로규모를 정하도록 했으며 기존철도도 그 용량을 감안해 도로용량을 결정토록 했다. 중핵도시를 새로 건설하는
경우 기존 도심을 피하고 인근에 새로운 도시계획 하에 신도시를 건설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개발은 기본적으로 공영개발을 통해
개발이득을 환수하여 도시개발 및 도로건설의 재원으로 사용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었다.
skyscrapers카페
첫댓글 글의 읽기가 불편하네요. 솔직히 본문 안 읽었어요... 예전에 다큐로 본적 있는데 정말 흥미로운게 많더군요. 맨 위 지도 빨간 부분이 고속도로인가 그렇고요, 검은색이 좌측이 고속철도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도시가 블록 단위로 대각선으로 길이 나서 엄청 편하게 이동이 가능하고 지하도시 건설도 꽤 흥미로웠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애기들으면 만감이 교차합니다. 않좋은면도 분명있긴하지만 좋은점도 그못지않게 많은사람인데말이죠.
박정희 대통령 포병 출신이어서 지리에 아주 능했다고 합니다,,, 건설 하는것에 대한 여러가지 조언과 압박??을 했다네요 경부선이 그 일례
저 공주로 옮기는것때문에..지금 김종필땅이 저짝에 어마어마 하답니다...;;;;;;;;;;
진작에 옮겼어야 했다
행정수도 계획이 옛날부터있었구나.....현재 저 계획을 그대로 적용할수 있을정도로 엄청체계적이네요.....미래에 대한 준비가 철저한 개발계획이라고 해야되나??
박정희의 대단함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대해 상세히 뜯어보시면 알게 될겁니다. 다만, 그 방대한 계획을 추진하는데 있어서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자들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과 살해가 그를 독재자로 만들었지요. 계획도 좋고 실행도 그정도면 제 생각에는 잘한편이지만 다만 민주적이지 않은 독단적인 실행방법에는 지금도 반감이 들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그 경제개발 5개년계획.. 박정희의 쿠데타로 전복된 윤보선 정부에서 계획했던 겁니다... 그리고 그 '무자비한 탄압과 살해'.. 이건 정통성이 없는 정부이다보니 뭔가 실적을 보여야 했고 그러니 무리수를 두게 된 거죠.. 원래 쿠데타로 집권한 독재자들이 대부분 비슷한 길을 갑니다.
박정희의 공과를 얘기들을 하는데 말입니다.. 솔직히 주변의 어른들께 박통 얘기를 하면서 교사노릇을 하다 일제 사관학교를 나와 관동군 장교로 일제에 봉사했다는 것과 영남대, 정수장학회 등등 얘기를 해드리면 오히려 불편해들 하시더군요.. 선거 때면 라디오에 고무신 돌리고.. 그 라디오에선 위대한 박통의 업적을 노래를 해댔으니.... 뭐 세뇌의 위대한 힘이랄까요..
윤보선 정권에서 계획이 세워졌다고 전부 그대로 한건 아닙니다. 그에 대한 이야기는 9 년간 박 대통령 비서실장이던 김정렴씨 책에 잘 나와있으니 한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어느 한쪽의 이야기만 믿는것도 좋지는 않다고 봅니다.
우와... 흥미롭네요... 대구 도로망보면 정말 박정희의 그쪽 능력은 정말 찬양함... 대구는 진짜 도로망이 좋음... 신천대로ㄳㄳㅋ 몹쓸짓 안했으면 더 좋았겠지만 이제 어쩔 수 없고...공주도 이렇게 되면 좋을 텐데... 하지만 이제는 불가능하다는거... 투기가 판치는 대한민국에서 또 땅벼락부자되보려고 보상에 목숨것시는 분들이 많으실 테니^^;; 충남은 이놈의 땅벼락부자들때문에 베렸음... 다들 땅 땅 거리고 눈에 불을 켬...
대구도로망도 박정희 작품인가요? 대구는 정말 인구250만 대도시 답지 않게 도로교통 하나는 우리나라 최고인것 같음. 네비없이 지도만 보고 찾아가도 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