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서울에서 온라인으로 정토불교대학 입학식을 생방송하고, 논산에서 김홍신 문학관 개관 5주년 초청 강연을 하기로 한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8시부터 정토담마스쿨 학생들과 온라인으로 즉문즉설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정토담마스쿨은 영어로 진행되는 정토불교대학 과정입니다. 북미 서부, 북미 동부, 캐나다, 호주, 홍콩,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한국에서 15명의 학생들이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각 그룹을 대표하여 4명의 학생들이 지난 한 달 동안 인간붓다 교과 수업을 들은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소감을 듣고 나서 모두 스님에게 삼배의 예로 법문을 청했습니다.
먼저 스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지난 한 달 동안 저는 지진 피해 지역을 복구하기 위해 튀르키예-시리아 접경 지역을 방문했고, 이어서 지속 가능한 개발을 하기 위해 부탄과 동티모르를 방문했습니다. 동티모르를 방문한 영상을 여러분과 함께 잠시 나누고 대화를 이어가겠습니다.”
영상을 보고 나서 스님이 말을 이었습니다.
“세상에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세계 곳곳에는 지역 사회에서 각 지역의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활동가들을 찾고 그들과 협력함으로 해서 그들이 조금 더 효과적으로 일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영상에 나오는 분은 동티모르에서 지속 가능한 농업 시스템을 만들고 있는 분인데, 높은 산까지 저를 데리고 가서 물이 나온다며 아주 자랑스럽게 보여주었습니다. 막상 가서 보니 나오는 물줄기의 양은 수도꼭지 하나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작은 물줄기가 살아났다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들에게 물이 얼마나 부족하며, 또한 물이 얼마나 필요한 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지구촌 세계 시민으로서 우리가 해야 할 일
물을 풍요롭게 쓰는 우리들이 물이 부족한 사람들을 도와야 합니다. 배가 부른 사람들이 배고픈 사람을 도와야 하고, 옷을 여러 벌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헐벗은 사람을 도와야 합니다. 아플 때 병원에 가서 충분히 치료받을 수 있는 조건에 있는 사람들이 의료 시설이 없는 사람들에게 약 한 봉지라도 지원을 해야 합니다. 집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집 없는 이들이 비를 피할 수 있는 움막이라도 지을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합니다. 자기가 태어난 고향에서 살 수 있는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서 살아야 하는 난민들을 도와야 합니다. 이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고, 또한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내가 가진 종교가 불교인지 기독교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이러한 실천을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이어서 ‘인간 붓다’ 교과를 배우면서 궁금했던 내용에 대해 질문을 받았습니다. 두 명이 궁금한 점을 질문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부처님의 출가에 대해 의문이 나는 점을 이야기했습니다.
부처님의 출가가 납득하기 어려워요, 가족은 어떡하란 말이죠?
"When I read about the Buddha leaving his wife and newborn son and going away for many years before returning, I had a hard time accepting it. Because as a mother, I can't accept my husband leaving us to basically find himself and help society. I believe that he has to help your family first before you can help anybody else. I'm trying to understand, is it just historically that people of that time did this as a part of their life, or was it just him who was able to do this?"
(부처님이 아내와 갓 태어난 아들을 두고 수년 동안 출가했다가 다시 돌아온 이야기를 읽었는데,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습니다. 저 자신도 엄마로서, 남편이 자아를 찾고 사회를 돕기 위해 가족을 떠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을 돕기 전에 가족을 먼저 도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적으로 이런 것이 그 당시 사람들이 삶의 일부였던 것일까요? 아니면 부처님만 이런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일까요?)
"그런 의문을 가질 수 있겠다고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질문자가 말한 남편과 아내 사이의 관계와는 조금 다르긴 하지만, 제 경우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제가 출가를 하려고 했을 때 저의 어머니께서 많이 반대하시고 슬퍼하셨습니다. 제가 절에서 생활을 하고 있으니까 절에서 나오지 않으면 죽겠다고까지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만약 질문자가 이런 상황에 처했다면 어떻게 했을 것 같습니까?"
"I think it would have depended on my relationship with my mother. If it was a good relationship then I would try to listen to her. It also depends on how old I would be at that time. If it wasn't a good relationship then I would leave."
(어머니와의 관계에 따라 달라졌을 것 같아요. 좋은 관계였다면 어머니의 말을 들으려고 노력했을 것이고, 그 당시 제 나이에 따라 달라지기도 할 것 같습니다. 좋은 관계가 아니었다면 떠났겠죠.)
“저는 어머니와의 관계가 아주 좋았습니다. 전혀 나쁜 관계가 아니었어요. 그런데 어머니와의 관계가 좋다고 해서 어머니의 말을 들어야 한다면, 결국 나는 평생 어머니의 노예로 살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어머니의 이야기를 따르지 않으면 어머니를 슬프게 하는 것이 되고, 반대로 어머니를 슬프지 않게 하려면 어머니의 말을 따라야 하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그런데 나의 결정이 어머니를 해치거나, 어머니의 물건을 훔치거나, 어머니에게 욕설을 하거나, 어머니를 괴롭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만약 그런 행위라면 당연히 하지 말아야죠. 그러나 스무 살이 넘은 성인은 누구나 자기의 삶을 살아갈 자유와 권리가 있습니다. 누군가 그걸 반대한다고 해서 그 길을 가지 않는 것은 속박 받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물론 어머니의 말씀에 충분히 동의가 되면 그만둘 수도 있지만, 그것도 자신의 결정에 의한 것으로 누구나 자기가 원하는 길을 갈 권리가 있습니다. 제가 가려고 한 길이 나쁜 짓을 하는 길이 아니잖아요.
역사적으로 보면 나라를 빼앗겼을 때 그 나라의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도 비슷한 어려움에 처했습니다. 다른 나라로부터 침공을 당했을 때 전쟁에 참가하는 군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민주주의를 위해서 운동을 할 때도 독재정부는 사람들을 감옥에 집어넣거나 그 가족에게 많은 피해를 주었습니다. 이처럼 사회적으로 정의로운 일을 할 때 때로는 가족을 떠나야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가족을 떠나는 것이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바라보는 것은 바람직한 관점이 아닙니다.
경전에도 나와 있습니다. 붓다가 아버지에게 집을 떠나는 이유에 대해 말을 전할 때 ‘나의 개인적 이익이나, 나 혼자 하늘나라에 태어나기 위함이거나, 누군가의 꼬임에 빠져서 출가하는 것이 아니다’ 하고 말합니다. 현대인들의 생각을 기준으로 보면 한 여자의 남편,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붓다 당시에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자식으로서의 부모에 대한 도리, 또 태자로서 왕위를 계승하여 나라를 이끌어야 할 사회적 책임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의 출가를 가장 많이 반대한 사람이 오히려 아버지였습니다. 바로 왕위를 계승할 사람이 태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싯다르타 태자는 자기가 집에 머물면 이러한 작은 요구들은 해결될지 몰라도 중생들이 겪는 고통과 나에게 앞으로 닥칠 죽음에 대한 과제를 해결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지금 집을 떠나서 이러한 문제를 풀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겠다고 생각한 겁니다. 10여 년 후 아버지와의 약속대로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경험하고 체험한 것을 친족들과 나누었습니다. 그 후 그의 어머니도, 그의 아내와 아들도 모두 붓다와 같이 수행자의 길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아버지만큼은 수행자의 길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왕이었고, 왕으로서 나라를 다스려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붓다가 속했던 나라는 이웃 나라의 침공을 받고 석가족 전체가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거의 인종 청소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석가족을 멸종시켰는데, 특히 석가족의 남자는 극소수가 살아남아서 도망갔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거의 다 죽였습니다. 석가족 여성들은 대부분 노예로 팔렸습니다. 반면, 붓다를 따라서 출가한 수행자들은 대부분 해를 입지 않았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서 어떤 것이 진정으로 가족을 위하는 것인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만약 질문자의 남편이 오늘날 우리 인류가 직면한 기후 위기를 극복할 대안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인류 전체를 구하는 게 나을까요? 아니면 자기 가족 때문에 그 길을 가지 않아서 결국 기후 위기가 찾아오고 자기 가족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공멸하는 것이 나을까요? 과연 어떤 길을 가는 것이 올바른 선택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결혼이라는 것은 성인과 성인 사이의 약속입니다. 약속은 이행될 수도 있지만, 상호 합의 하에 파기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붓다가 출가할 당시에는 수행자나 종교적 지도자가 되려면 우선 신분적으로 브라만으로 태어나야 했습니다. 혈통사회였으니까요. 그런데 붓다는 브라만이 아니라 크샤트리아, 즉 왕족으로 태어났습니다. 붓다는 왕족이었지 사제 계급은 아니었습니다. 이처럼 브라만 계급이 아닌 사람이 종교적인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과는 다른 자기 결단을 내려야 했습니다. 그들은 가족을 떠나고, 지위도 버리고, 재산도 버리고, 숲 속에 가서 아주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하는 출가수행을 했습니다. 이렇게 결단을 내릴 때 사회적으로 그들의 존재를 인정한 것입니다. 이런 출가자들을 ‘사마나(Samana)’라고 부릅니다. 당시 전통 사상가들을 브라만이라고 했고, 새로운 신흥사상가들을 사마나라고 했습니다. 크게 주류와 비주류 두 종류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는 혈통에 의해서 결정이 된 경우였고, 다른 하나는 자기 결단에 의해서 결정된 경우였습니다. 붓다는 브라만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사마나의 길을 선택해서 출발했기 때문에 출가를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붓다의 출가에 대한 사회적인 배경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출가하는 것을 가족 관계 때문에 비난해서도 안 되고, 출가했다고 해서 그 자체를 위대하다고 말해서도 안 됩니다. 다만, 붓다가 그런 자기 결단을 했다는 점을 통해 그가 새로운 길을 찾는 데에 얼마나 간절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출가한 붓다는 결국 깨달음을 얻었고, 사회로 돌아와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두 가지의 길을 열었습니다. 하나는 전통적으로 이어져 온 출가의 길을 따라서 깨달음을 얻는 출가 수행의 길이었고, 다른 하나는 세속에 있으면서도 수행 정진하는 재가 수행의 새로운 길이었습니다. 정토회는 붓다가 열어준 두 번째 길을 인류 사회에 보편적으로 전하기 위해 만들어진 수행 공동체입니다.
질문자처럼 가족에게 지나치게 집착하게 되면, 그 집착이 괴로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데에 큰 장애가 됩니다. 집을 꼭 떠나라는 것이 아니라 집착을 놓으라는 것입니다. 괴로움이 없으려면 집착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만약 남편에게 무슨 일이 생기거나 해서 내일 당장 죽는다고 하더라도 잠깐 슬픔을 느끼지만 곧바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있어야 수행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행이란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평정심을 유지하고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I'm not so concerned about him leaving his wife, but it's more about his child. To be grown for 12 years of that child's life, I think is being selfish and leaving the wife in a position to raise him by herself. I'm glad she came from a wealthy family, so maybe she had a lot of help. But the child is going to be different. Being raised by a single mom versus having both parents there, so that's where I come from. But I understand that you have to take care of yourself and look at your own suffering. I'm just saying that's what irked me as I'm trying to learn about Buddha. But thank you for your explanation."
(저는 붓다가 아내를 떠나는 것보다는 아이에 대한 걱정이 더 큽니다. 아이가 12살이 되기까지 아내가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은 이기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니 도움을 많이 받았을 테지만 아이는 다를 거예요. 싱글맘이 키우는 것과 부모가 함께 키우는 것은 다르니까요. 하지만 스스로를 돌보고 자신의 고통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은 이해합니다. 부처님에 대해 배우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불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설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대화를 마친 후 스님이 마무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앞으로도 부처님의 일생에 대한 공부를 깊이 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공부하는 과정에서 궁금한 것이 있으면 늘 질문해 주시기 바랍니다.”
잠시 쉬었다가 오전 10시부터는 정토불교대학 입학식을 시작했습니다. 이번 정토불교대학에서는 국내와 국외에서 2천여 명이 입학하여 온라인 불교대학 수업을 듣게 되었습니다.
앞서 불교대학을 졸업한 선배들의 축하 메시지와 축하 공연을 함께 본 후 입학생들의 소감을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한 분 한 분의 소감을 들으며 새롭게 시작하는 설렘과 기대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정토회 대표님의 환영사를 듣고, 다 함께 스님에게 입학 기념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먼저 축하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 드리고 환영합니다. 학생 네 분의 입학 소감을 들었는데요,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다고, 기대를 너무 크게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너무 큰 기대를 갖지 말고, 그렇다고 대충 하지도 말고, 그냥 편안한 가운데 꾸준히 해나가면, 여러분들이 생각지도 못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정토불교대학에서 배우는 교과 과정에 대해 설명해 주었습니다.
당신의 삶을 변화시킬 준비가 되었나요?
“정토불교대학은 5개월 과정으로 되어 있는데 크게 두 가지를 배웁니다. 첫째, 부처님이 가르친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원리와 수행을 해나갈 때 지켜야 할 규범을 중점적으로 배우는 ‘실천적 불교사상’입니다. 둘째, 한 인간으로서 부처님이 2600년 전 인도의 어떤 사회적, 역사적 배경에서 태어나 자랐고, 어떤 문제의식을 가졌는지, 당시 주류 사회의 사상과 철학은 무엇이었고, 반대하는 비주류 사회의 사상과 철학은 무엇이었는지를 배우는 ‘인간 붓다’입니다. 부처님은 그런 사회적 영향을 받으면서 세상에 대해 많은 의문을 가졌고, 비주류 쪽으로 출가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깨달음의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주류와 비주류 둘 다 버린 새로운 길을 제시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제3의 길인 ‘중도’입니다. 스스로 괴로움이 없는 상태가 되고, 괴로워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나눔으로 해서 그들 또한 괴로움이 없는 삶을 살게 도와주었습니다.
당시에는 많은 사회적인 모순이 있었습니다. 남녀 차별이 극심했고, 계급 차별이 아주 견고했습니다. 부처님은 ‘인간은 태생에 의해 주어지는 성별과 피부 빛깔이 다르다는 것으로 차별해서는 안 된다. 모든 중생은 다 평등하다’ 하는 관점에 서 있었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다 행복하고 자유로울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연히 기득권층과 마찰이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부처님은 그들을 시비하지 않았습니다. 저항은 받았지만 그 저항을 이해했기 때문에 미워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굴복하지 않고 당당하게 격파해 나갔습니다.
이런 부처님의 삶을 공부해야 부처님이 사회적 관점을 어떻게 가졌는지 알 수 있습니다. 사상과 이념만 공부하면 부처님의 가르침이 갖는 역사성과 사회성을 배울 수 없습니다. 부처님의 일생을 공부해야 역사성과 사회성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 사회에 일어나는 많은 문제에 대해서 불교는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하는지 알려면, 불교 사상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일생을 공부해야 합니다.
그래서 교과 내용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괴로움이 있는 사람이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배우는 ‘실천적 불교사상’입니다. 둘째, 복잡한 세상에서 그 가르침을 몸소 행하면서 행복하게 살아가신 분에 대해 배우는 ‘인간 붓다’입니다.
내 삶을 변화시키는 5개월
제가 절에 들어온 지 올해 55년째 입니다. 저는 책에 쓰인 얘기를 그냥 하는 사람은 아니에요. 경전에 있는 얘기 중에서 제가 직접 경험한 것만 말하고, 또 제가 경험을 했다고 해서 모두 다 얘기하지 않습니다. 혼자만 경험할 수 있는 얘기는 신비주의를 조장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경험한 것 중에서 경전에도 나와 있는 내용들만 얘기합니다. 이렇게 그동안 제가 불교 공부를 하면서 경험한 액기스들을 모아 놓은 것이 정토불교대학 교과 과정입니다. 그러니 대충 공부하지 말고 ‘법륜 스님의 50년 경험을 모두 배울 수 있다’ 이렇게 관점을 가지고 수업에 집중하면 좋겠습니다.
집중해서 수업을 들으면 ‘어떻게 이렇게 수업이 정교하게 짜여 있을까’ 하고 감탄하게 될 것이고, 대충 수업을 들으면 ‘그냥 상식적인 얘기만 할 뿐 별것 없네’ 하고 느낄 수 있어요. 그래서 집중해서 듣고 적극적으로 참여해 보면 좋겠습니다. 5개월 동안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우선적으로 시간을 내서 해봅니다. 중간에 싫은 마음이 들어도 일단 5개월 과정을 해보고 나서 평가를 하세요. 내 인생에 도움이 됐다면 다음에 이어지는 경전대학 공부를 계속하고. 도움이 안 됐다면 그만둬도 됩니다. 졸업식 때 한 분의 낙오자도 없이 얼굴을 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입학식 기념 법문이 끝나자 참가자 모두 조별로 화상회의 방에 입장하여 첫인사 및 자기소개 시간을 가졌습니다.
방송실을 나온 스님은 김홍신 문학관 개관 5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논산으로 향했습니다.
고속도로 주변으로 수확을 기다리는 벼들이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스님은 차창 밖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습니다.
“모내기를 한 게 마치 어제 같은데, 벌써 들판이 황금 물결로 출렁이네요.”
서울을 출발하여 차로 3시간을 달려 논산에 도착했습니다. 김홍신문학관은 건양대 캠퍼스 바로 옆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스님이 도착하자 김홍신 작가님이 반갑게 스님을 환영해 주었습니다.
“스님,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김홍신 작가님이 직접 문학관 이곳저곳을 자세히 안내해 주었습니다.
김홍신 문학관은 대한민국 최초 밀리언셀러 작가 김홍신의 문학 정신을 조명하고 지역의 문화 예술 진흥을 위해 고향 후배 남상원 회장의 후원으로 건립되었다고 합니다. 동향 선후배의 우정과 애향심이 만들어낸 문화 공간에는 다양한 전시물들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대발해 전시관에 도착하여 작가님이 말했습니다.
“스님께서 이 공간은 꼭 보셔야 합니다. 제가 스님과 함께 봉사 활동을 많이 한 인연으로 ‘대발해’라는 역사소설을 썼습니다. 이 전시관에는 대발해를 쓰기 위해 수집한 자료들과 집필 원고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스님도 웃으며 이야기했습니다.
“이 책을 쓰고 나서 몸이 상했다고 저한테 손해 배상을 여러 번 요청했어요.” (웃음)
작가의 일대기를 전시한 상설 전시실과 주제 전(展)을 위한 기획 전시실, 특별 전시실을 비롯해 아카이브 전시실, 문학 전망대, 관람객을 위한 열린 다목적실, 카페까지 다양한 공간을 한 바퀴 둘러보았습니다.
작가님은 사회의 부조리, 권력의 횡포, 빼앗긴 자들의 애환을 그린 소설 ‘인간시장’을 집필한 것으로 유명한데요. 곳곳에 이 책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작가님의 철저한 사회 인식과 비판 의식, 냉철한 지성과 날카로운 필치는 소시민들이 정치 권력에 순응하게 되는 것을 막고 민중의 자존감을 일깨워 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잘 봤습니다. 건물을 예상보다 크게 잘 지었네요. 축하드립니다.”
카페에서 사전 미팅을 하며 지역 인사 분들과 대화를 나눈 후 다 함께 문학관 앞마당으로 이동했습니다. 500여 명의 시민들이 자리한 가운데 스님과 김홍신 작가님이 모습을 드러내자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먼저 김홍신 작가님과 서혜정 성우 님이 북토크를 한 후 국악 공연이 펼쳐졌습니다. 사회는 김병조 선생님이 재능 기부로 해주었습니다. 좋은 말씀과 아름다운 음악이 이어지는 풍성한 시간이었습니다.
이어서 오후 3시 50분부터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스님이 먼저 인사말을 했습니다.
“김홍신 문학관을 개관한 지 5주년이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작가님과 저는 인연이 오래되었습니다. 그냥 스스럼없이 지내는 관계라서 5년 전에 개관할 때 초대를 받았는데 일정 상 오지를 못했습니다. 이렇게 늦게 참가해서 오히려 송구스러운 마음입니다. 저도 오늘 기념식에 참석해서 좋은 노래도 듣고, 좋은 말씀도 듣고, 그동안 이름만 듣던 여러 어르신들을 만나 뵙고 인사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즉문즉설은 인생을 살다가 의문이 들거나 괴로운 일이 있을 때 친구가 친구에게 얘기하듯이 가볍게 대화를 나누어 보는 자리입니다. 누구든지 손을 들고 질문을 하시면 되겠습니다.”
여기저기서 손을 번쩍 들고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첫 번째 질문자는 어린 작가 지망생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을까요?
“저는 작가가 되고 싶은 꼬마 작가입니다. 스님은 말씀을 잘하시니까 글도 잘 쓰실 것 같습니다. 저도 글을 잘 쓰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신나게 글을 쓸 수 있을까요?”
“글을 잘 쓰고 싶으면 글을 못 씁니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써야 글을 잘 쓸 수 있어요. 잘 쓰려고 하면 글을 지어내기 때문에 아무에게도 감동을 못 줍니다. 그러니 그냥 쓰고 싶은 대로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 질문자는 상대방이 계속 나쁜 행동을 할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스님의 조언을 구했습니다.
상대가 나쁜 행동을 해도 저는 참아야 하나요?
“제 고민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자꾸 문제가 생긴다는 거예요. 사람들과 일을 많이 하다 보니 갈등이 생기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에게 계속 참으라고만 해요.그런데 상대방이 실수를 반복하는데도 저만 참아야 하고, 저만 내려놓아야 한다는 게 이해가 안 됩니다. 상대방은 나쁜 행동을 계속하는데, 그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을 찾고 싶습니다.”
“질문자에게 누가 참으라 그래요?”
“모든 사람들이요.”
“모든 사람이요? 저한테는 안 물어봤잖아요.(웃음) 질문자 주위에 있는 몇몇 사람이 그런 이야기를 했겠죠. 그런데 그 몇몇을 가지고 자꾸 '모든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건 자기 합리화예요. 정치인들이 자기 마음에 들면 ‘온 국민이 그렇게 생각한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법원의 판결이 자기에게 유리하게 나오면 ‘사법부가 살아 있다’라고 하고, 불리하게 나오면 ‘사법부마저도 죽었다’라고 말하는 것처럼요. 그래서 '모든 사람'이라고 함부로 이야기하는 건 옳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할 때 다수가 지지한다는 걸 강조하려면 어떻게 말합니까? ‘동네 사람한테 다 물어봐라’ 이렇게 말하죠. 그런 말은 자신의 주장이 옳다는 증명이 하나도 안 됩니다. 그러니 질문자가 참고 싶으면 참으시고, 화내고 싶으면 화내시고, 싸우고 싶으면 싸우면 됩니다.”
“그렇게 살면 자꾸 세상에서 멀어지던데요.”
“그럼 그게 이익입니까? 손해입니까?”
“손해죠. 혼자 살아야 되니까요. 저는 답을 얻고 싶은 거예요.”
“답이 없어요. 손해가 나면 참아야 되고, 참는 게 너무 괴롭다면 손해를 감수하고 화를 내면 됩니다.”
다음 질문자는 욕심을 어떻게 버려야 하는지 질문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욕심을 버릴 수 있나요?
“욕심을 버려야 하는데 욕심을 못 버려요. 어떻게 하면 욕심을 버릴 수 있나요?”
“욕심을 못 버린다면서요? 못 버리면 들고 계세요. 뭐가 문제예요?”
“혹시 욕심을 버리는 좋은 방법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욕심을 왜 버려야 되는데요?”
“스님들은 보통 욕심을 버리라는 말씀들을 많이 하시잖아요.”
“사람들이 욕심을 못 버려서 괴롭다고 하니까 괴롭지 않으려면 욕심을 버리라는 이야기를 하는 거죠. 욕심을 부리면서도 괴롭지 않으면 그냥 사세요. 어떤 것도 정해진 것은 없어요.”
“네,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오늘은 많은 사람들의 질문을 받기 위해 평소보다 짧게 대답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