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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태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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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역사참여마당 고구려 광개토태왕이 차지한 영토
대고구려민주주의통일연합공화국 추천 0 조회 8,245 12.01.05 21:40 댓글 1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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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2.01.05 22:26

    첫댓글 부여에서 나와 압록강지역(환인)에서 고추모 선조의 나라 고리의 국호로 일어난 고구려는 처음부터 강한 나라가 아니였고, 복속을 요구한 동부여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한군현(전한)을 기반으로 요하를 건너 오는 한나라의 침략을 격퇴하는 치열한 전쟁과정을 통해서 면역력이 강해지게 되고,고추모의 개국국시인 다물을 실현하고자하는 의지가 왕위계승자들에게 계속 이어지면서 강해져 간 나라입니다.동부여와의 전쟁에서 대소왕을 죽이고 최리 낙랑국을 정벌하여 만주와 한반도의 패권을 장악한 대무신 태왕의 명확한 자주노선이 고구려의 자주상무정신을 뿌리내리게 하였고,

  • 12.01.05 22:29

    요하를 건너 한군현지역을 공격하고 고구려 선조의 땅(서안평-서요하 지역=내몽골 임황)까지 회복하게 되었으나,한나라와 군사동맹을 맺은 부여의 후미공격으로 현도지역은 회복하지 못하게 됨.태조태왕은 회복한 번조선지역에 10개성을 쌓고 요수(난하)을 경계로 전한과 군사적 경계를 이루게 되지요.6대 태왕 고궁을 <태조>라 칭한 것은 아마도 요하를 건너 고구려 선조의 나라 고리국(단군조선의 봉후국:1대왕 단군왕검의 차남 부소)을 회복하고 번조선지역을 회복하여 지나세력과 당당히 어깨를 겨루는 강국으로 만든 인물이기 때문일 겁니다. 이후 아시아 모든 왕조를 개국한 인물들을 '태조'라 칭하게 되는데 고구려 6대 태조에서 비롯됨

  • 12.01.05 22:05

    대홍안령 산맥의 선비족이 강성해지면서 요하지역은 모용선비족이 전연을 세우면서 고구려 영토는 다시 요하 동쪽지역 만주로 영토가 축소되고 요하를 건너 고구려를 침공한 모용선비족이 고구려를 초토화시키고,백제 또한 고구려를 침공하여 지금의 북한 평양성(남평양성)에서 고국원태왕을 전사시킵니다. 백제 근초고대왕 시기입니다. 후한이 설치한 한군현(낙랑군:평양지역/대방군:황해도지역)땅을 서로 차지하기 위한 전쟁에서 벌어진 사건입니다. 고국원태왕의 전사는 광개토태왕시기에 백제정벌을 단행하는 직접적인 배경이 됩니다.

  • 12.01.05 22:09

    광개토태왕이 백제 한성을 포위하기 위해서 백제 관문인 한강하구의 관미성을 공격합니다. 관미성은 백제 한성으로 들어 가는 한강 하구지역인 강화도 교동도입니다. 관미성 위치를 알려면 백제의 한성이 어디인가를 알면 바로 해답이 나옵니다. 근초고대왕이후 백제 수도는 지금의 서울입니다. 서울 강동구에서 발견된 세계 최대규모의 10여기의 전방후원분 무덤이 바로 결정적 증거라 할 것입니다.그리고 장수태왕 당시 초토화되고 웅진으로 천도한 이후 백제 고도 서울은 그 유적.유물이 땅 속으로 파 묻혀 버렸습니다.풍납동 아파트 단지 땅 속에 묻혀 있습니다.일부 발굴을 통하여 계획도시였음이 또한 고고학적으로도 증명된 바 있습니다.

  • 12.01.05 22:14

    대백제(구다라)=대릉하 하류지역의 어하라(비류세력)<서해를 건너 한강지역에 십제를 세운 온조세력<요동지역에서 100가족을 거느리고 서해를 따라 웅진에 백제를 세운 부여왕의 아들 구태세력...부여왕의 아들 구태세력이 세운 나라가 백제고, 205년경에 서해 해상권을 장악하면서 한강지역의 온조세력도 통합하고 구태왕통으로 바뀌는 것입니다.그리고 고국원태왕을 전사시킨 근초고대왕 시기에 한강지역은 백제연방의 중심지역으로 바뀌는 것입니다.한강는 서해로 나가는 해양무역로이자 군사지역으로 관미성은 백제 한성을 방어하는 최전방 군사성이고, 고구려 수군은 압록강을 따라 강화도 교동도(관미성)을 20일간 공격하여 점령한 것임.

  • 12.01.05 22:30

    광개토태왕은 수군을 동원하여 관미성과 주변 해안성들을 공격하여 점령하였고, 일부 수군은 서해를 따라 백제가 일어난 웅진과 주변지역들을 공격하여(광개토태왕비문) 점령하고 충청도 속리산에서 제천의식을 행하고(환단고기) 한성을 포위하여 아신왕의 항복을 받고 국내성으로 복귀한 것임.광개토태왕은 한강을 따라 한성으로 들어가고 서해를 따라 웅진을 공격하는데 방어가 되는 백제 관미성을 먼저 공격하여 제압한 이유이고, 웅진을 공격하여 제압한 것은 한성백제를 후원지원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임.별 수 없이 아신왕은 항복하고 만 것임/광개토태왕비문 기록 중에 '백잔'는 한성백제을 의미하고, '이잔'은 웅진백제을 의미한다.

  • 12.01.05 22:22

    따라서 서해 해상권을 장악하고 지나 동해안 지역을 차지한 백제가 지나땅에서 개국했다는 헛소리는 그만해야 함.[구당서]"마한의 옛땅에서 일어난 백제의 영토는 서쪽으로 바다를 건너 월주(양자강 지역)에 이르고.."라고 명확히 기록하고 있고, [후한서]에서도 "마한 54개국 중에 백제국이 들어 있다."라는 기록이 있고,[만주원류고]에도"후한말 동명의 후예 구태가 요동태수 공손강의 사위가 되어 100가족을 거느리고 대방의 옛땅(해머리땅)에 나라를 세우니 동이강국이 되었다."라고 명확히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그리고 구태세력은 해머리땅에서 백제를 세우기 전에는 본래 요동 동쪽 1천여리에 있었다는 지나문헌들의 기록또한 맞다.

  • 12.01.05 22:37

    참고로 고구려는 백제못지 않는 수군 강국이였습니다.광개토태왕 시기는 개마무사로 무장한 육군과 더불어 수군이 더욱 강해져 백제를 정벌할수 있는 기반이 되었음.고구려 수군이 강했다는 역사적 사실은 비사성과 발해만 연안에 비석으로 남겨진 연개소문 여동생 연수영에 대한 기록이죠. 연수영은 고구려 수군제독으로 당나라의 수군을 발해만에서 모두 격퇴시키고 당나라 수군기지까지 공격하여 수백척을 불살라 버릴 만큼 당나라 수군에게는 위협적인 인물로 충무공 이순신을 능가하는 여성제독이였죠.이런 명백한 고고학 사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구려와 수.당 전쟁이 바다와 무관한 황하지역에서 벌어 졌다는 주장은 한마디로 코메디

  • 12.01.10 18:26

    역사가 꺼구로 가나 만리장성이 원 삼국시대에도 있었다니 진나라가 통일하면서 그후 만리장성이 생겨다고 하는데 일제의 조선총독부 왜놈이 조선사 편수회를 통하여 역사를 축소 조작 한 것은 다 알지요 그럼 얼마많금 조작이 되었는지 검증도 없이 반도사관 역사서를 믿으면 뭐가 될까요 xx 쪽발이 왜놈이 만들어준 역사서를 기준 잡으면 안 됩니다 그 시절 있지도 않은 후대의 지명을 태왕이 넘었다고 하면 말이 됩니가 그냥 조작이 표가 납니다 구당서 보다 날조가 더 많다는 신당서 조차 백제의 한성은 두 곳으로 동한(성) = 산동 태안 (태안 있는 곳) 과 서한(성) = 하남 등봉 (숭산 있는 곳) ,,,,>한국인의 역사 인식은 서울 = 백제한

  • 12.01.10 18:28

    ->성 으로만 알고 있으니 문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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