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 병법에 "군왕은 전쟁터에 나가지 마라"는 경고가 들어 있다. 사정도 잘 모 르는 군왕이 섣불리 한 마디 하면 군왕의 명예를 위해 전쟁을 비합리적으로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땅굴과 같은 정말로 중요한 사인에 대해 일국의 대통령 과 육군참모총장이 "땅굴 의혹지점을 조사를 하지 말라"는 지시를 초장에 내렸다.
2000. 3. 2일 SBS가 연천 구미리 제5땅굴의 실체를 뉴스로 보도했다. 3월4일 국 방부가 조사도 해보지 않고 서둘러 자연동굴인 것으로 발표했다. 3월5일 SBS가 다 시 뉴스추적 에서 잠수부가 찰영한 땅굴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도했다. SBS가 보도 하기까지에는 동굴과 시추와 폭파에 대한 국내 최고수준의 전문가들의 조사가 있었 다. 100%의 전문가들이 분명한 인공 땅굴이라고 증언했고, 이름을 걸고 서명도 했 다. 그런데 김대중 대통령이 갑자기 나서서 "그것은 자연동굴"이라고 못박았다. 그 누가 대통령의 뜻을 거스르면서 진상을 밝히겠는가.
3월8일 80 여 개의 보수 시민단체가 연합하여 "보수국민연합땅굴진상규명추진위"를 만들어 8인치 시추공 5개를 뚫어 66회의 잠수와 13회의 찰영을 통해 상식인이 봐도 완연한 땅굴임을 의심치 않게 하는 비디오를 작성했다.
그 비디오에는 한국의 지질학계 전문가 대표들과 화약기술, 발파기술, 굴착 전문 분야 대표들의 전문적인 판단내용도 담겨져 있다.
지질학 박사 우경식 강원대 교수, 지질학회 이사 권기옥 부사장(삼안지질), 이정배 이사(주 신우엔지니어링사), 발파공법의 대가인 강전산(화약기술총연합회 회장), 굴착 전문가인 이상근 사장(다신쏘일테크), 제3땅굴 시추자 유태근 사장(동아수중 펌프) 등 한다하는 전문가들이 조목조목 자연동굴이 아니라는 것과 북괴식 발파공 법에 의한 땅굴임을 밝혀주고 있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를 방패삼아 국방부가 SBS를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걸었다. SBS는 위의 비디오를 법정에 제출했고, 위의 전문가들도 법정에 나와 땅굴임이 확 실하다는 식견을 진술했다. 위의 비디오를 관람한 한국지질학회에서도 땅굴이라는 여론이 팽배했다.
재판장이 국방부에 요구했다. "SBS측은 땅굴이라는 증거를 제출했고, 전문가들의 진술을 확보했습니다. 국방부도 땅굴이 아니라는 증거를 제출하고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전문가 진술을 확보하기 바랍니다".국방부가 이에 응하지 못했다. 국방부 주장을 뒷바침해 줄 전문가는 한 사람도 없었다. 국방부가 코너로 몰려 패소하게 돼 있었다.
당시 군이 SBS를 고발한 사건은 민사사건으로 사건번호 2000가합6552호이 며 재판장은 김민석 판사이다. 재판장은 SBS의 승소를 판결해야만 할 형편 이었다. 그런데 대통령이 나서서 땅굴이 아니라고 한 것을 법정에서 공식적 으로 땅굴로 판결하면 그 여파가 감당할 수 없었다 한다. 이렇게 해서 내려 진 판결이 "강제조정"이라 한다. 이 재판은 사실상 SBS의 승리였지만 대통령 과 맞서는 엄청난 파장을 고려하여 "강제조정"이라는 판결로 재판을 종결했 다.
분명한 땅굴을 대통령이 나서서 땅굴이 아니라고 막아준 것이다.
1992년 당시의 육군참모총장 김진영 대장: "땅굴이 나오면 내가 할복을 하겠다"
육군참모총장이 이런 말을 하는데 탐지과 간부들이 어찌 땅굴을 진정으로 탐지하 려 하겠는가? 방해를 해야 점수를 따지 않겠는가?
1988년 김포군 후평리에서 민간탐사자들이 시추공을 박고 북한 사람 말소 리, 기계소리, 레일 위를 구르는 소리를 녹음하여 군에 제출했다. 군이 이를 묵살하자 4년 후인 월간조선에서 이 문제를 시리즈로 다루었다.
이는 군에 대해 엄청난 압력이었다. 현재 민간땅굴탐사자 중에는 윤여길 박사(육사 20기, 공학박사)가 있다. 그는 1992년 당시 최세창 국방장관 보좌 관이었다. 그는 스스로 밤을 새워 땅굴 현장을 조사한 후 민간탐사자들의 편 에 섰다.
윤여길 박사의 강력한 건의로 당시 최세창 국방장관이 시추를 지시했다. 하지만 군 담당자들은 작업을 하는 척만 하고 한 달 이상 뜸을 드렸다. 불과 몇일이면 될 일을 이들은 48일간이나 이리저리 지체했다. 지체한 이유는 두 가지로 추정된다. 하나는 날치기식 기자회견을 준비하기 위한 작전기간일 수 있고, 다른 하나는 북측에 대비할 시간을 주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 민간 탐 사자들은 군의 땅굴 담당자들을 북과 내통한 사람들일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사건의 일지는 다음과 같다.
* 1992.10.7일 국방장관의 명령과 민간탐사자들의 압력에 의해 군이 시추장 비(T-4)을 현장에 투입했다.
* 1992.10.7일부터 92.11.25일까지 군은 뜸을 드리며 시추공 박기를 미루다 가 48일만에 시추공을 박고 기자들을 불러다가 시추공에서 아무런 징후가 나오지 않는다고 발표한 후, 시추공은 방치한 채 곧바로 시추장비를 철수했 다.
* 시추장비를 철수한지 23일이 지난 92.12.17일, 텃밭주인 김천환씨가 자신 이 개발한 찰영장비로 "이상공간현상"을 찰영하고 전화로 군에 긴급히 신고 했다.
* 신고를 받은 그날 군이 시추장비를 몰고 와서 출동하여 시추공에 흘과 돌 을 넣고 지상 돌출부분을 파괴하다가 사진을 찍자 장비를 두고 도망했다. 밤 에 시추공을 제거할 것이라고 예측한 민간 탐사자들이 잠복하던 중 군은 92.12.18새벽 6시(겨울이라 어두음)에 시추공을 제거하고 증거를 인멸했다. 이 에 대한 사진이 있다.
* 92. 12. 19, 김천환씨가 국방장관에게 파손 된 시추공과 증거인멸 활동을 담은 사진을 첨부하여 진상조사를 요청하는 진정서 발송했다.
* 92. 12.24, 국방장관이 중간 회신을 보냈다.
* 1993.6.28, 정지용, 김천환 등 7명이 국방부 검찰부장으로 땅굴관계자들의 증거 인멸 행위를 고발하는 고발장을 냈다.
제5땅굴을 앞에 나서서 은닉케 유도한 DJ나 땅굴이 나오면 할복하겠다고 공언한 김진영이나 똑같은 수법으로 땅굴 은닉 작전에 앞장섰다는 의혹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땅굴이 실제로 발견되면 이들의 죄는 명확히 드러날 수 있을 것이다.
첫댓글 이게 사실이라면 정말 큰일입니다. 철저한 조사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