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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조(靑鳥)
파랑새라는 뜻으로, 편지나 사자(使者), 선녀(仙女) 등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靑 : 푸를 청(靑/0)
鳥 : 새 조(鳥/0)
(유의어)
납취(蠟嘴)
청작(靑雀)
출전 : 한무고사(漢武故事)
한무고사(漢武故事)는 후한(後漢)의 반고(班固)가 찬(撰)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일설에는 남제(南齊)의 왕검(王儉)이 지었다고도 한다.
7월 7일 한나라 무제가 승화전에서 목욕재계하고 있는데 갑자기 한 마리 파랑새가 서쪽에서 와서 전각 앞에서 쉬었다(七月七日, 上於承華殿齋, 忽有一靑鳥, 從西方來, 集殿前).
한 무제가 동방삭에게 어찌된 일인지 물어보자 동방삭은, '이는 서왕모께서 오시려는 징조입니다(上問東方朔, 朔曰: 此西王母欲來也)'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과연 얼마 후 서왕모가 왔는데 두 마리 파랑새가 왕모 옆에서 시중을 들고 있었다(有頃西王母至有二青鳥)고 전한다.
이 파랑새에 대한 기록은 산해경의 대황서경(大荒西經)에 '세 마리 파랑새가 있는데 붉은 머리에 검은 눈을 하고 있다. 대추(大鶖), 소추(少鶖), 청조(靑鳥)라고 한다'고 기술되어 있는 점으로 미루어 서왕모의 소식을 전해주는 파랑새는 청조(靑鳥)이고 서왕모를 시중드는 두 마리의 파랑새는 대추(大鶖)와 소추(少鶖)이다.
◼ 칠석우(七夕雨) / 이인로(李仁老)
赤龍下濕滑難騎
靑鳥低霑凝不飛
신선이 타는 붉은 용이 내려왔으나 미끄러워 타기 어렵고, 파랑새는 날개 젖어 날지 못하네.
◼ 여지승람(輿地勝覽)
강원도 낙산사(洛山寺) 바닷가의 굴앞에 가서 지성으로 절하며 조아리면 청조(靑鳥)가 나타난다고 한다.
◼ 낙산사(洛山寺) / 석익장(釋益莊)
明珠非我欲(명주비아욕)
靑鳥是人逢(청조시인봉)
용이 의상대사(義湘大師)께 바친 옥과 여의주는 내 바라는 바 아니요, 청조는 그분이어야 만날 수 있으리.
◼ 청조야 오도고야 / 작자 미상
청조(靑鳥)야 오도고야 반갑다 님의 소식
약수삼천리(弱水三千里)를 네 어이 건너온다
우리님 만단정회(萬端情懷)를 네 다 알가 하노라
(解說)
작자 미상의 이 시조는 멀리서부터 온 임의 소식을 크게 반기며 기뻐하는 내용이다.
청조(靑鳥)는 새를 뜻하지만 '편지'의 뜻도 있다. 반가운 님의 편지가 왔다는 것이다.
그 먼 거리를 어떻게 건너왔느냐. 약수삼천리(弱水三千里)는 아주 먼 거리를 말한다.
우리 님의 만 가지 정과 회포(萬端情懷)를 어떻게 다 알겠느냐.
◼ 동국이상국전집(東國李相國全集)
第2卷 / 고율시(古律詩)
七月七日雨(칠월 칠일의 비)
銀河杳杳碧霞外
은하수 머나먼 저 푸른 노을 밖에서
天上神仙今夕會
천상의 신선이 오늘 저녁 모이는데
龍梭聲斷夜機空
북 소리 끊기고 밤 베틀 비운 채
烏鵲橋邊促仙馭
오작교 향해 신선 행차를 재촉하네
相逢才說別離苦
만나선 서로 이별의 괴롬도 채 못다 나누곤
還道明朝又難駐
내일 아침이면 또 헤어질 걸 한탄하기도
雙行玉淚洒如泉
두 줄기 눈물 샘처럼 흘러내려
一陣金風吹作雨
한바탕 서녘 바람에 비를 불어 일으키니
廣寒仙女練帨涼
광한궁 선녀 명주 수건 설렁거려
獨宿婆娑桂影傍
계수나무 그림자 옆에 홀로 잠자다가
妬他靈匹一宵歡
저 신선 남녀 하룻밤 즐김에 샘나서
深閉蟾宮不放光
월궁을 굳게 닫고 광명을 내놓지 않네
赤龍下濕滑難騎
적룡은 등이 미끄러워 올라타기 어렵고
(도안공이 7월 7일에 적룡을 타고 하늘에 올라 갔다)
靑鳥低霑凝不飛
청조는 날개가 젖어 날아갈 수 없구려
(7월 7일에 왕모가 청조를 보내 漢나라 궁전에 이르렀다)
天方向曉汔可霽
곧 먼동이 틀 새벽이라 그만 개야 하리
恐染天孫雲錦衣
천손의 깨끗한 옷을 더럽힐까 염려되네
(註)
○ 동국이상국전집(東國李相國全集) : 고려 시대의 문신이자 명문장가인 이규보(李奎報)가 생전에 저술하고 편집한 내용을 전집(全集)과 후집(後集)으로 간행한 문집을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이라 한다. 이 중 전집에 해당하는 것이 '동국이상국전집(東國李相國全集)'이다.
○ 도안공(陶安公) : 선인(仙人)의 이름이다. 원래는 대장장이였는데 뒤에 적룡(赤龍)을 타고 승천했다 한다.
○ 왕모(王母) : 선녀(仙女)인 서왕모(西王母)의 약칭이다. 서왕모가 청조(靑鳥)를 사자(使者)로 부렸다 한다.
○ 천손(天孫) : 직녀성(織女星)의 이칭(異稱)이다.
◼ 청조가(靑鳥歌)
화랑 사다함, 나라를 위해 싸웠고 여인과 벗을 잃고 죽다
화랑은 요즘으로 치면 아이돌이다. 사다함은 그중에서도 최고였다. 내물왕의 7대손인 사다함은 화랑에 올라 낭도를 모집했는데 1천명이 몰려 성황을 이뤘다.
이 무렵 궁궐에서 쫓겨난 아름다운 여인이 있었다. 21세의 미실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옛집에서 쓸쓸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16세의 사다함은 우연히 그곳을 지나다 청아하면서도 슬픈 노랫소리를 들었다. "세상의 부귀는 한때일 뿐이네. 떠들썩한 사랑도 한때일 뿐이네. 하늘을 친히 모시던 몸이 하루 아침에 버림받고 깃털 빠진 새."
사다함은 절망에 빠진 여인을 위로해 주고 싶었다. 그는 다가가 말을 건넸다. 멋진 화랑 앞에 선 그녀는 몇 마디 따뜻한 배려의 말에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두 사람은 사랑에 빠졌고 마침내 부부가 되기로 언약한다.
561년(진흥왕 23년) 9월, 신라가 대가야와 격돌하는 전쟁이 일어났다. 화랑은 조국을 위한 길에는 거침이 없었다. 사다함은 왕의 만류를 뿌리치고 종군했다.
출병하는 사다함을 위해 미실은 노래를 부른다. "바람아 불더라도 임 앞에 불지 말고, 물결아 치더라도 임 앞에 치지마라. 빨리빨리 돌아오라 다시 만나 안고 보고, 아흐 임이여 잡은 손을 차마 물리라뇨"
사다함은 1천 낭도들을 이끌고 국경에 이르렀다. 장수인 이사부에게 기병 5천을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대담무쌍하게도 정공법을 써서, 대가야군 성문이 있는 전단량(고령지역)으로 바로 쳐들어 갔다.
적은 크게 놀라 방어할 태세도 갖추지 못했다. 사다함 기병이 뚫고 들어갈 때 뒤에서 이사부 대군이 몰려들어 대가야군을 무너뜨렸다.
16세의 아름다운 남자가 말을 타고 질풍처럼 달려 대가야군이 버티고 있는 성문 앞에 들이닥치는 이 장면은 화랑의 지혜와 용기, 그리고 대담한 병술을 그림처럼 보여준다.
설마 이렇게 빨리 들이닥칠 줄은 상상하지 못했던 적군은 사다함이라는 어린 전사에게 운명을 내줬어야 했다.
전승을 거둔 공로를 인정하여 왕은 사다함에게 가야인 300명을 주었다. 그런데 그는 이들을 한명도 남기지 않고 모두 풀어준다. 왕은 이 말을 듣고 이번엔 땅을 하사하려 했는데 그는 한사코 사양한다.
그래도 왕의 뜻인데 받아야 하지 않느냐고 강권하니, 알천의 불모지를 달라고 했다. 적국의 백성일망정 함부로 하지 않고 아끼는 어진 풍모와 물질적인 이익 앞에 무욕의 태도를 보여준 화랑.
사람들은 공자의 인(仁), 노자와 석가의 무위(無爲)와 공(空)을 실천한 당대의 진정한 풍류남이라고 입을 모아 칭송했다.
그러나 그가 거듭 고개를 흔든 것은 남 모를 실의에 빠져있었기 때문이었다. 전투를 끝내고 돌아왔을 때 미실은 이미 궁궐로 다시 불려 들어가 세종전군의 짝이 되어 있었다.
알천의 불모지를 달라고 한 뜻은 자신의 심경을 표현한 것인지도 모른다. 짝 잃은 화랑은 눈물을 흘리며 '청조가(靑鳥歌)'를 불렀다.
靑鳥靑鳥彼雲上之鳥
파랑새여! 파랑새여! 저 구름 위의 파랑새여!
胡爲乎止我豆之田
어찌하여 내 콩밭에 머물었던고
靑鳥靑鳥乃我豆田靑鳥
파랑새여! 파랑새여! 내 콩밭의 파랑새여!
胡爲乎更飛入雲上去
어찌하여 날아 들었다가 다시 구름 위로 갔단말고
旣來不須去又去爲何來
이미 왔으면 가질 말지 또 갈 것을 어찌하여 왔던고
空令人淚雨 腸爛瘦死盡
부질없이 눈물을 비오듯 하게 하며 창자가 문드러지도록 파리하게 여위어
죽어지게 하는가
吾死爲何鬼 吾死爲神兵
나는 죽어 무슨 귀신이 될꼬 나 죽어 귀신의 졸개가 되어
飛入殿主護爲神
임금이 계신 궁전에 날아 들어 호위신이 되어
朝朝暮暮保護殿君夫妻
매일 아침 매일 저녁 임금님 부부 보호하여
萬年千年不長滅
천만년 오래 오래 죽질않게 하리
신라5대(新羅五代) 풍월주(風月主) 사다함(斯多含)의 청조가(靑鳥歌)이다.
청조가(靑鳥歌)는 신라 진흥왕 당시에 5대 풍월주; 화랑도의 수장)이던 사다함이 자기의 정인(情人)이던 미실(美室)이 두사람의 약조를 깨고 임금이던 세종의 귀비로 떠나버린 배신을 슬퍼하면서도 미실을 못잊어서 토하는 애절한 간절함으로 자신의 사랑을 드러낸 향가(鄕歌)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청조(靑鳥)는 미실을 빗댄 것이고, 두지전(豆之田; 콩밭)은 사다함의 마음 밭을 빗댄 것이고, 전주(殿主; 궁전주인)는 임금 세종을 빗댄것이고, 피운상(彼雲上; 저 구름위)은 궁전(宮殿)을 빗댄 것이다.
이후 사다함은 친구 무관랑의 죽음을 겪는다. 혼인을 약속한 미실을 잃은 상심에 친구까지 잃었으니 세상에 끝난 것 같았을까. 몹시 애통해하다가 그 또한 7일만에 죽고 만다.
사다함의 용맹과 사랑과 우정과 절망. 화랑이 걸어간 피와 눈물의 길이었다. 사다함 스토리는 신라를 떠도는 아름다운 파랑새(靑鳥)이다.
(參考)
(七月)七夕
명절 중 하나로, 음력 7월 7일을 일컫는다. 칠석(七夕)의 유래는 중국의 '제해기(薺諧記)'에 처음 나타난다. 주(周)나라에서 한대(漢代)에 걸쳐 우리나라에 유입되었다.
견우와 직녀 설화를 바탕으로 헤어져서 못 만나던 견우와 직녀가 1년에 한 번 까마귀와 까치들이 만들어준 오작교 위에서 만나는 날이다.
칠석에는 비가 오는 경우가 많은데 이 설화에 의하면 견우와 직녀가 반가워서 흘리는 눈물이라고 하고, 칠석날 전후에 내리는 비는 견우와 직녀가 서로 타고 갈 수레를 물로 씻어서 준비하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다.
또한 칠석에는 까치와 까마귀가 오작교를 만들기 위해 하늘로 올라가기 때문에 지상에서는 보이지 않는다는?
칠석이 지나면 까치의 머리털이 벗겨져 있는데 오작교를 놓느라고 돌을 머리에 이었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견우와 직녀가 까치 머리를 밟고 지나갔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도 일찍이 삼국시대에 이 설화와 풍속이 있었던 듯하다. 고구려 고분 벽화 가운데 평안남도 남포시 강서구역에 있는 덕흥리 고분 벽화에 견우와 직녀 설화를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그림이 생동감 있게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기록에는 고려 공민왕이 왕후와 더불어 칠석날 궁궐에서 견우성과 직녀성에 제사하고 백관들에게 녹을 주었다고 하였고, 조선조에 와서는 궁중에서 잔치를 베풀고 성균관 유생들에게 절일제(節日製)의 과거를 실시한 기록이 있다.
궁중 밖의 민간에서도 칠석의 풍속이 활발히 전개되었던 모습은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등의 문헌을 통해서 짐작할 수 있다.
또, 칠석날 민간에서는 여러 가지 풍속이 행해졌다.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옛날 서당에서는 학동들에게 견우직녀를 시제(詩題)로 시를 짓게 하였다.
또 옷과 책을 햇볕에 말리는 폭의(曝衣)와 폭서(曝書) 풍속이 있었다. 여름 장마철에 장롱속의 옷가지와 책장의 책에 습기가 차면 곰팡이가 끼게 되므로 이를 막기 위한 것이다.
한편 여인들이 직녀성에 바느질 솜씨를 비는 걸교(乞巧) 풍속이 있었는데, 걸교는 원래 중국에서 유래한 풍속이다.
칠석날 새벽에 부녀자들이 참외, 오이 등의 과일을 상에 올려놓고 절을 하며 바느질 솜씨가 늘기를 빈다. 저녁에 상 위로 거미줄이 쳐 있으면 하늘에 있는 직녀가 소원을 들어준 것이라 여기고 기뻐한다.
다른 지방에서는 장독대에 정화수를 떠놓고 그 위에 재를 담은 쟁반을 올려 놓은 뒤, 별에게 바느질 솜씨가 좋게 해달라고 빌고 다음날 아침 재 위에 흔적이 있으면 영험이 있어 바느질을 잘하게 된다고 믿었다.
별과 조상과 자연과 부처에게 소원을 비는 풍속도 지역과 가정에 따라서 행해졌다. 지역에 따라서 칠석제, 용왕제, 밭제 같은 제사를 지내고 사당에 천신(薦新)하며 밀국수, 밀전병, 호박도래전 등 시절 음식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칠석음식으로 밀전병을 만들어 먹고 칠석놀이라 하여 술과 안주를 갖추어 가무로 밤이 깊도록 놀기도 한다.
또다른 칠석을 쇠는 나라에는 중국과 일본이 있다. 중국은 한국과 같이 음력에 쇠고, 일본은 양력이다.
일본에서는 타나바타(七夕; たなばた)혹은 호시아이(星合)라고 부른다. 양력 7월 7일은 장마 기간이라서인지 한달 늦게 8월 7일 혹은 음력 7월 7일에 지내는 관습은 남아있다.
중국은 연인의 날이라 하여 데이트를 즐기며, 일본은 대나무에 소원을 적은 탄자쿠를 걸어 소원을 비는 풍습이 있다. 한국은 옷가지나 책 등을 햇볕에 말리거나 직녀에게 음식을 바치고 가정의 평안을 빌었으며, 칠석날 내리는 빗물을 약숫물이라 여겨 약수터나 폭포수 등을 찾아 목욕을 하는 풍습이 있었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서는 명절로서의 의미가 많이 퇴색된 편0이다. 사실 휴일이 아닌 명절들은 퇴색될 수밖에 없다.
류근 시인의 시 '칠석' 도 있다.
하늘에 죄가 되는 사랑도
하룻밤 길은 열리거늘
그대여, 우리 사랑은
어느 하늘에서 버림받은 약속이길래
천 년을 떠돌아도
허공에 발자국 한 잎 새길 수 없는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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