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기록하고 싶지 않았던 아무 날의 일기 - 옮긴이의 말
휘 민
오늘 오후에 엄마와 배드민턴을 쳤다. - 아이의 일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아이가 처음으로 백핸드를 시도한 날이었다. 이 어려운 기술을 나는 두 번이나 성공시켰다. - 아이는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었다. 그런데 셔틀콕이 나뭇가지에 걸렸다. - 나는 느티나무 둥치를 잡고 흔들었다. 나무는 꿈쩍하지 않았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손에 들려고 하던 참이었다. 하지만 쉽게 물러날 엄마가 아니었다. - 나는 갈라진 줄기 사이에 한쪽 다리를 걸고 간신히 손에 잡힌 나뭇가지를 붙들고 매달렸다. 나는 온몸으로 나무를 흔들고 나무는 꽁지 뽑힌 깃털의 무게만큼 나를 흔들었다. 셔틀콕이 바닥에 내려왔다. 결국은 엄마의 승리였다. - 그러나 날개가 없는 나는 나무늘보처럼 늘어져 나무에서 내려오지 못했다. 나는 느티나무와 씨름하는 엄마가 스모 선수 같다고 생각했다. - 자기 몸의 줄무늬를 세다 기린에게 들킨 얼룩말의 기분 연필 끝에 침을 묻혀 내 것이 아닌 감정을 기록해 두기로 했다. 거위가 최초로 비행을 시도했을 때의 자세는 어떠했을까. 신탁이라도 받는지 아이는 자면서도 입을 실룩거린다.
- 시집〈중력을 달래는 사람〉걷는 사람 -
증력을 달래는 사람 - 예스24
200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휘민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중력을 달래는 사람』이 걷는사람 시인선 99번째 작품으로 출간되었다. 세계는 간절함을 배반하는 형식으로 이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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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민 시집 〈중력을 달래는 사람〉 걷는 사람 /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