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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 월에....
寶海/ 유 희 민
(제1장)
* 피보기 게임 *
* 피보기 게임 *
5월과 6월 두 달을 꼬박 경호회사 설립 하는 것으로 정신없이 돌아 다녔다.
경호 실무를 담당할 사내들은 쌍식이 형님이 뽑아서 훈련을 시켰지만
나는 사무실을 운영할 여직원들과 그리고 경리 부서를 만들어야 했다.
충무 경호 서비스의 모든 구상은 역시 기삼이 머리에서 나왔다.
기삼이는 나의 능력을 읽고 있었다. 빈약한 나의 행정 능력을 감안해서 인지
경리부서와 그리고 개인비서를 채용 하라는 특별한 주문이 있었고 나는 그렇게 했다.
나 라는 놈은 자금을 안 쓰고 모으는 재주는 있지만 있는 재력을 관리할 능력은 역시 없었다.
나는 순순히 그의 조언을 받아 들였고 많은 자금을 관리할
경리부서와 그리고 나의 사소한 업무를 챙겨줄 비서 까지도 채용 했다.
여타의 경호 회사와 경쟁을 염려한 기삼이는 100평 남짓한 큰 사무실을 여의도에 얻었고
사무실 입구는 은행처럼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로 꾸몄다.
사무실의 정식 개업을 7월 1일로 잡고 모든 걸 준비 하고 있던 6월의 막바지에
여당 대통령 후보인 노태우가 특별 선언을 했다. 이른바 6.29 선언 이였다.
1987년 6월 29일 민주정의당(민정당) 대표 노태우(盧泰愚)가
국민들의 민주화와 직선제 개헌요구를 받아들여 발표한 특별선언. 주요 내용은
1.대통령직선제 개헌을 통한88년 2월 평화적 정권이양,
2.대통령선거법 개정을 통한 공정한 경쟁 보장,
3.김대중(金大中)의 사면복권과 시국관련 사범들의 석방,
4.인간존엄성 존중 및 기본인권 신장,
5.자유언론의 창달,
6.지방자치 및 교육자치 실시,
7.정당의 건전한 활동 보장,
8.과감한 사회정화조치의 단행 등이다.
이 선언은 민중항쟁에 의한 급격한 변혁이나 지배층에 의한 점진적인 개혁과는 달리
양자의 타협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85년 2·12총선 이후 야당과 재야세력은 간선제로
선출된 제5공화국 대통령 전두환(全斗煥)의 도덕성과 정통성의 결여와 비민주성을 비판하면서
줄기차게 직선제 개헌을 주장하였다.
이에 전두환은 87년 4월 13일 일체의 개헌논의를 금지하는 호헌조치를 발표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울대 학생 박종철(朴鍾哲)이 경찰의 고문으로 사망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국은 대결국면으로 치달았다.
6월 10일 전국 18개 도시에서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가 주최하는
대규모 가두집회가 열리고, 학생과 시민들의 시위가 연일 계속되었다.
26일 전국 37개 도시에서 사상최대 인원인 100여만 명이 밤늦게까지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경찰력이 마비되자 정부는 한때 군 투입을 검토 하였으나 온건론이 우세하여
국민들의 직선제 개헌요구를 받아들이기로 하였으며, 6·29선언이 발표되었다.
권인숙 성고문 사건으로 인권 이라는 민주화의 단초를 제공한
이 정부는 결국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전 국민, 특히 야당 정치인과
민주화 운동을 주도한 모든 사람에게 꿈처럼 여겨 왔던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실로 대한민국에 김대중 과 박정희의 시대 이후 오랜만에 치러지게 될
대통령 직선제를 몇 달 남지 않고 실시하게 되는 국민의 승리 였고
또한 군사독재 체제의 붕괴를 알리는 서막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여전히 6.29 선언조차도 교묘히 정치적으로 이용 하려 들었고
언론은 국민의 승리라고 떠들어 대면서도 아직 국민의 편에 서 있지는 않았다.
시기적으로는 7월 1일의 사무실 오픈은 맞아 떨어 졌다.
적절한 타이밍에 사무실을 개소하게 된 것은 기삼이의 탁월한 선택 이였다.
경호팀은 세종팀, 호국팀 뿐만 아니라 여러팀이 가동을 준비 하고 있었지만
그 어느 팀도 충무팀 처럼 발 빠르게 움직이지는 않았다.
무엇보다도 김대중 씨의 사면 복권은 아무도 생각 하지 못한 기삼이의 특별한 발상이기도 했다.
그런 정보가 안기부의 내부 문건이든, 아니면 시대의 흐름을 미리 간판한
그만의 독특한 미래 지향적 사고인지는 나로서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최소한 경호해야 하는 특별한 인물로 분류하기에는 충분한 인사임에는 틀림없었다.
언젠가 기삼이는 김대중 씨를 경상도쪽 경호팀이 맡아서 경호 할 거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때는 김대중 씨도 몸이 자유롭지 못한 그런 시기였기 때문에
아무도 그를 경호해야 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6.29 선언 이야 말로 경호 회사를 차린 그 로서는 사업상으로는 호기(好期)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경호 회사 어디에도 그의 이름은 없었다.
표면적으로는 쌍식이 형님과 대표이사인 나의 이름만 그곳에 있을 뿐 이였다.
우리는 예정 데로 사무실 개업식을 선언 했다. 여의도 한 모퉁이의 빌딩에는
아침부터 검은색 승용차가 줄줄이 들어 왔고 대부분 쌍식이 형님이 알고 있는
조폭 세계의 거물급 전국구 주먹들이 자기들의 세(勢)를 과시 하듯 큰 화환과 함께
조직의 식구들을 대동 하고 개업을 축하 해 주었다.
마치 여의도에 새로운 조직 폭력의 본부가 생긴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사무실을 찾아 왔었다.
사무실 주위에 있는 많은 상인들은 불안한 듯 그런 모습을 지켜봤고
불안해하는 동네 상인들을 의식한 듯 쌍식이 형님은 그들을 반갑게 맞이하면서도
그곳에 오래 머무르지 않게 돌려보내곤 했다.
그러나 나는 한사람의 방문을 기대하며 사장실에서 담배를 물고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정식으로 채용된 20여명의 경호 회사 직원들은 마치 잘 훈련된 군인들처럼
흐트러짐 없이 도열 하여손님을 맞곤 했다.
때론 90도 각도의 큰 인사로, 때로는 절제된 모습으로 손님을 쌍식이 형님께 안내하고는
제리로 돌아가 입구 쪽에 도열해 제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대가리’ 라고 불리는 김대석은 경호 하듯 쌍식이 형님의 뒤를 따라 다니며
쌍식이 형님의 모든 행동을 세심하게 관장 하고 있었다.
내가 큰 기대를 하며 기다리는 사람은 기삼이 였다.
오늘은 그가 축하 인사를 해 줄 법도 하였지만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먼저 전화를 해 볼까도 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마 그는 이곳에 나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는 이곳의 상황을 손바닥 쳐다보듯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전화를 하면 또 ‘그래? 언제 틈나면 가지.’ 정도로 간단히 마무리 할 친구다.
‘개업식 빠를수록 좋다. 회사만 오픈 되면 바빠질 테니까’ 했던 그 였다.
아마 그는 지금쯤 또 다른 곳에서 정상적인 개업을 선포하고 경호 해야할 대상을
물색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는 경호 대상자를 이미 물색 해 놓았는지도 모를 일 이였다.
저녁 식사 시간이 다 되어서도 끝내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회사의 실질적 사주(社主)이고 재정적 지원자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답답한 심정에 700 호실에 전화를 했다.
“난데, 이 팀장 연락 온거 없어?”
“지금 이곳에 와 계십니다. 혼자 술을 드시고 계시는데…….”
“개새끼……. 좀 바꿔 줘봐”
잠시 후에 그의 음성이 들렸다.
“다 끝났냐? 이리와라. 한잔 하자. 임마 그딴건 건달 새끼들한테 맡기면 되지.
뭘 쳐다보고 있냐? 난 네가 끝나기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직원들 회식을 해도 끗발들은 일찍 자리를 비워 줘야 즈들 끼리 또 한잔 할 거 아냐. 이리 와라.”
“알았다. 거기 꼼짝 말고 기다려.”
전화를 끊고 비서를 불렀다.
그리고 쌍식이 형님을 방으로 모셔 오라고 시켰다.
그리고 나는 서랍 안에서 도장을 하나 꺼냈다.
이 회사의 자금을 집행 할 수 있는 법인 통장의 도장 이였다.
오늘부터는 자금 집행 까지도 쌍식이 형님께 넘겨줄 작정 이다.
언제 까지 내가 이곳에 안주해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이였다.
잠시 후 쌍식이 형님이 사장실로 들어 왔다. 그리고 덜썩 소파에 주저앉았다.
하루 종일 손님들 접대 하느라 피곤한 증거 였다. 내가 그를 위로 했다.
“형님 수고 하셨습니다.”
“아따 주거따. 몇 놈 오고 말줄 알았드만 허벌나게 와브렀다.
예전에 삼청교육대에서 몇놈 빼줬다 안하데?
그놈들이 내가 사업 한다고 그랑께 또 뭔 술집 인지 알았는가....
여기저기 연락을 많이 했는갑다. 인자 다 시마이 했다.”
“예 준비 하신다고 힘드셨을 건데 오늘은 직원들과 회식이라도 하십시오.
그동안 체력훈련 한다고 직원들이 몸을 많이 굴렸을 건데.”
“운동 하는 것 이야 힘 들었겄어? 대가리 저 새끼가 아그들을 험하게 굴린께 그것이 힘들었겄제.
아그들이 운동 하는 놈 들이 되가꼬 평소에도 내가 먹는 것은 실하게 멕이는디,
그동안은 대가리가 술을 일체 못 먹게 해가꼬……. 오늘은 한잔 하라고 그랄 생각 이다.”
“예. 오늘은 형님 편하실 데로 직원들 포식 시켜 주세요.”
그리고 나는 도장을 형님께 건네주었다.
“이것이 뭐여?”
“법인 통장 도장입니다.”
“이제 자금 결재도 형님께서 알아서 해 주세요.
나는 수시로 비서가 연락을 해 주니까 보고만 받겠습니다.
당분간은 들어오는 돈이 없지만 이 통장에 돈이 많이 쌓이기를 바랍니다.
저도 가끔씩 이곳으로 출근 할 테니까 사장실 폐쇄만 하지 말아 주세요.”
“니가 사장인디 니자리 없애기야 하겄냐? 근디 우상아이…
니가 자리 비우믄 내가 괜히 좀 깝깝한께 자주 나와 주라.
이런 통장 쪼가리 가꼬 나를 위로 할라 그라지 말고… 알것냐?
나는 실무 책임자제 다른 건 모른께 하는 소리다.
언젠가 내가 말 안했냐? 나 하나 우째 되는건 상관없는디…….
인자 나도 딸린 식구들이 있응께 걱정이 돼서 허는 소리다.”
“그런 건 걱정 마세요. 내가 근무 하는 곳이 여기서 멀지 않으니까,
그리고 내가 형님이 보고 싶어서 자주 올 겁니다.”
“그래 나는 니가 어디 간다 그라믄 ‘뭔 일이 있는갑다’ 하고 말란다.
그라고 내 성깔머리가 통장 손에 쥐었다고 뭐 감격하고 그런건 없다.
니도 잘 알제? 그래도 회식을 하믄 사장인 니가 있어야 아그들이 힘이 좀 날것인디.
우짜겄냐? 일 땜시 갈것인디. 내가 알아서 잘 이야기 할랑께 일 봐라.”
나도 그렇지만 쌍식이 형님 역시 그렇게 돈 자체에 탐닉 하는 성길 은 아니었다.
그는 기삼이가 주는 일거리를 충분히 해낼게 틀림없고 대선이 끝나면 영업사원 까지
갖춘 탄탄한 경호회사로 변모 될 것이다.
어쩌면 내 직장이 이곳이 될지도 모르는 일 이였다.
어차피 700호실이 나의 영원한 직장이 될 수는 없는 노릇 이였다.
아마 기삼이는 그런 것 까지 계산해서 이런 회사를 설립 했는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쌍식이 형님의 걱정을 뒤로 하고 나는 급하게 700호실로 걸음을 옮겼다.
기삼이는 벌써 소주가 몇 잔 들어간 얼굴이다.
“웬일로 대낮부터 술 이냐? 그리고 오늘 같은 날 축하해 주러 와야 하는 거 아니야?”
“사무실 하나 개소(開所) 하는데 무슨 축하?
그런 축하 일일이 할 것 같으면 난 일 년 열두 달도 부족하다.
그리고 거긴 네가 있을 곳도 아니야 임마. 내가 널 그곳에 평생 박아 둘 수는 없잖아.
이정도 했으면 일은 지들이 알아서 해야지.
그건 그렇고 좋은 것과 나쁜 것 어는 것부터 들을래?”
항상 기삼이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들고 와서
결국 나쁜 것마저도 좋게 만들어 내는 마술 같은 능력이 있었다.
오늘도 두 가지 좋은 소식을 들고 온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항상 나쁜 걸 선택 했고 그는 나쁜 것에 대한 이야기도 그렇게 오래 끌지 않았다.
그는 경호회사 따위에는 아예 관심조차 없어 보였다.
그러나 나는 경호회사에 대한 관심을 유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건 쌍식이 형님이 항상 염려하는 단발성 사업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 이였다.
누가 경영을 하더라도 우선은 많은 재원이 투자 되었고 그리고 번듯한 회사만큼이나
일거리를 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네 이야기는 좀 천천히 듣기로 하고, 회사를 차렸으면 일거리를 만들어 줘야 하는데
뽑아놓은 직원들 놀릴 수는 없잖아. 그래서 걱정이 돼서 하는 소리다.
어차피 며칠 있으면 또 급료가 지급 되어야 하는데…….
사실 지금 으로서는 딱히 어떤 곳과도 일과 관련해서 계약을 맺은 곳도 없어서 말이야.
걱정이 돼서 하는 소리다.”
“그래? 하긴 딴에 걱정도 되었겠다.
7월 10일부터 김영삼 씨를 경호해야 하니까 그렇게 알고 있으면 된다.
신문에 약간 보도가 되긴 했는데, 사실 5월1일에 김대중과 김영삼이 신민당을 와해 시켜 버렸다.
욕심 많은 두 양반들이 ‘내각제’를 정면으로 부인 하고 이민우를 떠난 거지.
우린 누구를 경호해도 상관이 없지만 일단 지금 총재로 있는 김영삼 씨부터 경호 하게 되니까
조만간 다른 법인체 소속의 직원이 정식으로 사무실로 찾아 갈 거다.
그놈들이 어떤 놈들 인지는 알려고 할 필요도 없다.
그 사람들도 그렇게 대 놓고 자금을 풀어야 하는 처지의 사람들은 아니니까.
그리고 어차피 그 사람들도 돈이 나가는 문제가 돼서 계약서나 기타의 요구를 할 거다.
주의해야 할 것은 담당자 에게 커미션을 주어야 하는데, 어색해 할 거 없이
당당히 물어 보는 게 그들 에게는 좋다.
그들이 원하는 금액을 더 붙여서 충분히 견적서를 제출 하면 된다.
그리고 일이 끝나면 세금 계산서 올리고, 그리고 나면 열흘 이내에 돈은 나오니까.
모든 게 형식적 이기는 하지만 공무원들 생리를 모르는
넌 그저 그쪽에서 요구하는 데로 청구서만 올리면 된다.
인원을 충분히 투입 하고 청구도 좀 무리 하다 싶게 많이 해도 상관없다.
다시 말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커미션을 포함해서 충분히 청구해라. 이제 일거리 주었으니까 됐냐?”
“대충 얼마 정도 요구를 할까? 난 커미션 같은 것 에는 전혀 감(感)이 없어서 말이야.”
“한 오천정도?”
“뭐 오천만원?”
“청구 액수가 있으니까 그 정도 달라고 할 거다.
그냥 ‘많이 도와주시는데, 업무 추진비는 얼마나 드리면 되겠습니까?’
이렇게 물어 보면 그놈들이 뻔뻔하게 이야기 할 거다.
그리고 서류 가지고 오면 쌍식이 애들 시켜서 술 한 잔 멋있게 사주라고 그래라.”
“개새끼들이네. 지금 동사무소 주사 월급이 34만 원 정도 인데 백배도 넘게 달라고 한단 말이야?
그걸 줘야해?”
“줘라. 견적서는 1억 5천정도 넣으면 될 거다. 그것도 한 달 청구 분량이…….
아마 그놈들 견적서 까지 지들이 수정해서 만들어 오라고 할 거다.
커미션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또 그런 돈은 지 혼자 챙겨 가는 게 아니니까…….
내부적으로는 지들도 여러 사람이 얽혀 있으니까 그렇게 많은 돈 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런 커미션을 네 회사에서는 잘 처리해야 하는데 아마 잘할 거다.
그래서 내가 경리 부서를 탄탄하게 짜서 운영 하라고 했잖아. 비서도 두라고 그랬고.
너무 걱정 할 거 없다.”
나는 그때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그리고 기삼이의 능력에 또 한 번 감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 회사를 차리기 전에 이미 담당자 에게 많은 뇌물을 주고
충분한 정보력으로 회사를 차렸을 게 틀림없었다.
그의 말은 계속 되었다.
“사실 야권에서는 아직 까지도 후보 단일화에 합의를 보지 못한 것 같은데….
우리가 자체 분석한 정보력으로는 아마 민정당 후보가 당선이 될 걸로 판단을 하고 있다.
왜냐하면 만약 야권이 단일화에 실패를 하면 그건 표가 양분되기 때문에
전체 국민의 표가 3등분 또는 4등분이 된다고 보면 아마 40% 정도의 득표만으로도 당선 된다고 본다.
웃기는 이야기 아니냐? 국민의 60%는 민주화를 열망 하고,
그런데도 열 명중 네 명이 선택한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는 게 웃기지 않아?
이런 분위기가 바로 시류(時流)다. 어쩔 수가 없는 거지.
결국 욕심이 많아서 그렇게 되는 거다.
차라리 신민당에서 내각제를 기초로 해서 한사람이 나오면 되는데,
카리스마가 강한 두 사람이 이왕에 정권을 잡으려면
대통령 중심제로 확실하게 전권(全權) 잡아야 된다고 생각 하고 있는 거지.
이런 노림수를 알기 때문에 여권에서는 그런 야권의 분열 조짐을 방관 하고 있는 거고.”
“아직은 여당도 대권 후보로 누가 나올지 모르잖아?”
“6.29 선언은 폼으로 한 게 아니란 말이야. 노태우가 전두환이 동기생이잖아,
그 두 사람의 고도의 전략이 맞아 떨어졌다고 봐야지.
김대중 이를 왜 사면 복권 했겠냐?
그리고 6.29선언의 취지가 ‘대통령선거법 개정을 통한 공정한 경쟁 보장’이잖아?
서로들 으르렁 거리고 싸우게 풀어준 셈이지.
우매한 백성들은 그게 금방 자유화나 민주화가 된 것처럼 승리의 기분에 들떠 있지만…….
결국 민주화가 정착되기는 그 시기가 좀 더 연장 될 거라고 보는 게 우리 입장이다.”
야권에서는 아직도 집회조차 하기 어려운 시국임에 틀림없었다.
민주화를 위한 투쟁을 위하여 많은 공을 들이고 있기는 했지만
아직 조직적인 선거 전략이나 분석은
국가 기관의 연구에 못 미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했다.
좀 심각 한 듯 했지만 그는 또 금방 내 친구로 돌아 왔다.
“짜식, 얼굴 보면서 소주 한잔하려고 왔더니 영- 분위기를 못잡네.
밖으로 나갈까? 어차피 식사도 해야 할 것 같고. 그리고 회사일은 너무 걱정 마라.
내가 어느 정도 손을 써 놨으니까 견적서 올리면 내가 볼 수 있게 연락이 올 거다.
선거 기간 중에 흘러나오는 돈은 먼저 본 놈이 임자야. 무슨 소리인지 알겠어?
쌍식이 그놈…….팔자 편 거지. 너도 그렇고”
그는 확실하게 쌍식이 형님을 알고 있는 듯 했다.
그러나 한 번도 그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언젠가 그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기회가 있겠지만
오늘은 그런 것으로 대화를 이끌고 싶지 않아
그 말에 대한 말꼬리를 잡지는 않았다.
“그래 나가자. 간만에 내가 한잔 살게”
“어디서? 또 포장마차냐?”
“왜? 싫어?”
“임마 사장 타이틀을 두 개나 줬고, 그리고 양쪽에서 월급 받아가는 놈이 기껏 포장마차냐?
좀 알싸 한데로 모셔 봐라.
나는 대놓고 어디 술집에 단골을 정할 형편이 안 되니까
그렇기는 한데 넌 어떻게 된 자식이 술도 제법 먹으면서 맨날 그놈의 포장마차냐?”
“ㅎㅎㅎ 친구야. 나는 아직도 택시 타는 것 하고 술집에서 아가씨 옆에 앉히는 건 안 되더라.
오늘은 간단하게 한잔 하자. 중국집 어때? 탕수육에 소주 한잔.”
“내가 우상이 너한테 술 사달라고 한 게 잘못이지. 좋다 중국집으로 가자.”
우리는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나는 중국요리, 특히 탕수육에 어울리는 빼갈(白酒)이 좋았다.
그러나 기삼이는 소주이상의 독한 술을 마시지 못했다.
나는 빼갈을 먹었고 기삼이는 소주를 마셨다.
내가 빼갈을 마시기 시작 한 것은 순전히 쌍식이 형님 때문 이였다.
쌍식이 형님은 음식에 따라 술의 종류가 달랐다.
그는 최소한 음식의 종류에 따라서 술도 바뀌었다. 쌍식이 형님은 술도 하나의 음식 이였다.
언젠가 쌍식이 형님의 권유에 의해 처음 마셔본 빼갈은 중국요리와 어울리는
음식의 하나 일뿐 술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만큼 기름기 많은 음식과 어울리는 음식 이였다.
나는 기삼이가 소주를 주문했을 때 빼갈을 권하긴 했지만
그는 빼갈의 향(香)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거절 했다.
그러나 나는 고집스럽게 빼갈을 주문하여 마치 쌍식이 형님의 주법(酒法)처럼
각각의 잔에 자기 술을 자기가 알아서 마시는 형국이 되었다.
오늘 기삼이 표정은 그렇게 밝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애써 나를 즐겁게 만들려는 그의 노력을 나는 보았다.
무엇보다도 좋은 것과 나쁜 것에 대한 질문은
나를 즐겁게 하기 위한 그의 노력처럼 느끼기에 충분 했다.
나는 그의 기분을 이해했고 그 이유는 확실히 모르지만
그렇다고 그런걸 내가 물어 봄으로 인해 지금 상황을 더 우울하게 만들 필요는 없었다.
기분 전환을 위해 내가 먼저 질문을 해 봤다.
첫댓글 게릴라성호우로 비 피해 없기를 바랍니다.... 언제나 좋은 날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행복하세요...!!1
행복한날되세요....^^
오늘은 늦은 시간에 까페에 들렀어요!..님의 글을 읽으며 살포시 미소를 띄워봅니다!..다음편이 기대되는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