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배우들도 ‘사람’이다. 많은 연극 배우들은 꽃 같은 미혼 남녀들이고, 그들은 무대 위
에서 사랑을 연기하지만, 그들 또한 사람이니만큼 그들이 사랑을 하기도 한다. 젊은 미혼 남
녀가 같이 뒹구는 연극무대이니 만큼 그들 사이에 사랑이 싹트기도 한다. 서로간에 애틋한
감정이 일어나는 것을 도대체 그 누구가 막을 수 있으랴? 그런데 막상 연기하는 연극배우들
끼리 연인 사이이기도 하고, 또 그들 사이에 사랑이 싹튼다면 어떻게 될까? 실제로 이런 일
이 발생하는지 어떤지 알 수는 없지만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개연성이 있다는 말
이다. 그런데 이런 내용을 다루는 연극무대가 열렸다. 그 연극은 몇 개의 사랑 장면을 연출
하고 있는데, 연출자와 배우들, 그리고 배우들 상호간에 연인 사이이기도 하고 서로 사랑을
느끼는 사이이기도 하다. 몇 개의 작품을 연출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연극 전체의 일관
된 스토리는 없고 단지 그들 사이에 실제로 발생하는 사랑과 애증의 관계가 연극의 중심 기
둥이 된다. 그것을 감미로운 하모니카 선율로 감싼다. 극단 사계 제작 김만중 연출의 [Love
is]가 그것이다. 11월 2일 SH공간소극장. 늦은 7시 30분
이 연극은 여러 배우들이 등장하지만 그들이 분하는 배역들은 내가 실제로 그 이름을 알
고 있는 배우들이다. 권철, 호민, 민주, 자미등..... 물론 그 사람들이 실제로 이런 관계에 있
다는 말은 아니겠지만 그 배역들을 실제 사람으로 했다는 말은 연극판에서 그런 일이 실제
로 발생하고 있음을 은근히 암시하고 있는 듯하다. 자! 그리 되면 어찌 되나?
극은 이성규의 하모니카 연주로 시작된다.(프로그램에는 하피스트로 나오는데, 하모니키
스트라 해야 되는 것 아닌가?) 상당한 솜씨의 하모니카 연주인데, 소극장 무대이니만큼 그
냥 불어도 될 것 같은데, 마이크를 대고 부니 소리가 너무 커 조금 부담스럽다. 하지만 이
연극은 전체가 녹음된 반주부를 대동한 하모니카 연주를 음향효과로 수반하고 있다. 어쩐지
그것을 통하여 작품의 서정성을 도모하는 것 같기는 한데, 그리고 어느 정도 기여는 하고
있는데, 아까 말한 대로 음향이 너무 커 조금 거북하다. 그 상태로 [로미오와 쥴리엣]의 저
유명한 발코니 장면을 연출한다. 그런데 그 장면에서 쥴리엣 역을 하던 민주(김다송분)가 키
스장면 연출을 거부한다. 로미오 역을 하던 호민(양진억분)은 은근히 그 장면을 바라는 것
같기도 하고... 연출을 맡은 권철(김진욱분)은 지금 민주와 연인 사이인데 그 광경을 보고 화
를 벌컥 낸다. 그래!! 화낼만도 하다. 도대체 어쩌자는 말인가? 연극에서 하는 키스 장면을
실제 키스라고 받아들인다면 그 사람은 연극배우할 자격이 없다.
그런데 사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그들은 연극을 하면서도 연극적 상황과 현실 상황
을 구분하고 있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이래 가지고는 연극 못한다. 이들은 전문가라
고 말하기에는 너무나 철부지에 지나지 않는다. 연극적 상황은 [로미오와 쥴리엣]에서 로미
오와 쥴리엣이 첫 상봉을 하는 장면으로 이어지고 계속, 이강백의 [보석과 여인] 체홉의 [갈
매기], 그리고 [햄맅]에서 햄맅과 오필리어가 상봉하는 장면, 그 외 [돌아서서 떠나라]에서의
상봉 장면등으로 이어지는데, 그리고 그것을 서로 배역을 바꾸어서 해 보는데, 문제는 연극
을 하면서도 그 연극적 상황에 현실상황을 틈입시켜 연기에 도무지 열중을 하지 못하고 있
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지금 연극적 맥락은 뚜렷하게 두 가지의 흐름으로 갈라진다. 하나는 여러 작품
들의 연습장면을 모자이크 식으로 이어가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 연습 중에 권철과 호민,
민주와 자미(김희지분) 그리고 미선(권미영분)사이에 서로 오고가는 혹은 한쪽으로만 일방
적으로 흐르는 애정 노선이 서로 뒤엉키는 과정을 밟아가는 것이다. 연습 장면은 어차피 토
막토막 나 있는 것이니까 그 자체의 상황만 제대로 구성하면 되지만 작품 전체를 일관하는
것은 그들 사이의 애정노선이 어떻게 흘러가는가를 추적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
것을 엮어가는 방식이 이거 또한 복잡하다.
권철(김진욱분)은 연출을 하면서 도대체 진정한 사랑의 모습이 무엇인가를 규명해내려
발버둥친다. 그가 하는 말은 자기들이 연출하고 있는 이 연극은 사랑을 지극히 이상화된 상
태로 두고 남녀 한쪽이 죽어가는 것으로 그 이상화를 완결시켜버리는 형태인데, 진정한 사
랑은 그런 이상형태로만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현실적인 맥이 그것이 관여하고 있는
만큼 아무래도 그 속에 현실적인 칼라를 투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로미오와 쥴리
엣]을 연출할 때도 그 두 사람의 사랑을 지고지순한 이상형의 사랑이 아니라 십대들의 철부
지 사랑으로 그려야 한다는 말이다. 흐흐 철부지 사랑이라? 나는 그들이 철부지 같다. 도대
체 [로미오와 쥴리엣]을 그런 식으로 해석해야 한단 말인가? [로미오와 쥴리엣]이 사랑 이야
기라고? 그렇다면 [햄맅]은 햄맅과 오필리어의 비련의 사랑 이야기이고, [갈매기]는 트레블
레프와 니나의 비련의 사랑 이야기라는 말인가? 작품의 부분 부분을 토막을 내어 그리는 모
습부터 그렇지만 여기에는 연극작품이 가지는 총체성에 대한 접근법은 전혀 없고, 너무나
일방적으로 작품을 재단해 버리는 혐의가 짙다. 이 연출자는 지금 연출의 맥을 완전히 잘못
잡고 있다. 이리 되면 제대로 된 연극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문제가 악화되는 것은 이 상태에서 연습을 하는 그들이 자꾸만 연극적 맥락 속에 있으면
서도 현실 맥락의 자장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 속에서 허우적댄다는 것이다. 아까 [로미오와
쥴리엣]에서의 민주도 그랬지만, 호민(양진억분)도 마찬가지로 민주에 대한 개인적 집착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고 권철은 [햄맅]연기를 하면서 민주에 대한 개인적 원념을 그대로 쏟아
붓는다. 마지막으로 [돌아서서 떠나라]에 나오는 미선(권미영분)은 호민에 대한 애착을 이기
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까지 끊어버린다. 하하! 이리 되면? 미선의 목숨이 끊어지는 것이 아
니라 연극의 목숨이 끊어져 버린다. 관객은 연극을 볼 때 연극배우들의 개인적 애증관계를
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연극무대 위에서 그가 배역을 맡은 인물들의 상황 속으로 빨려 들
어가기를 바란다. 허구와 실제를 제대로 구별 못하는 얼치기 관객들이나, 배우들 사이의 시
시껄렁한 까십거리에만 관심이 있는 삼류 영화 관객들이나 관심을 가질지 몰라도 제대로 된
관객이라면 우리는 무대위의 배우에게는 그 배우의 모습이 아니라 그가 분한 배역의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것이고 그리 하여야 진정한 리얼리티가 확보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배우
가 그가 무대바깥에서 가지는 애증관계의 자장을 이기지 못하고 그것을 연극속에 그대로 재
현한다면 관객은 더 이상 연극을 볼 필요가 없다. 그리고 그런 배우를 전문적인 배우라 볼
수가 없다. 자기 개인 신상의 문제와 연극적 맥락도 구별 못하는 그런 배우들이 하는 연극
을 우리가 무엇하러 볼 것인가?
이 연극이 지향해야 하는 방향은 과연 어떠한 것이어야 했을까? 배우들이 개인적인 애증
관계를 가지게 됨은 정말 어쩔 수 없다. 그들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기까지는 충분히 이해
할 수 있다. 아마 그들은 그들 상호간의 애증관계에도 불구하고 그와는 무관하게 순수하게
연극적 맥락 속에 그들을 변신 시켜야 한다면 아마도 엄청난 인간적 고뇌와 고통을 감내해
야 하리라. 나는 차라리 그것을 보고 싶었다.
배우들이 무대위에서 연기를 하려면 정말 그 배역으로 완전히 변신해야 한다. 무대위에
선 [햄맅]은 미치는 연기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미쳐 버려야 한다. 아니 다시 말하
자. 정말 미치는 연기를 하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 [로미오와 쥴리엣]을 연출하려면 정말 두
가문의 증오 속에서 비련의 사랑에 몰두하는 그들의 처절한 모습이 리얼하게 잡혀져야 한
다. 그런 면에서 민주에 대한 원혐을 가진 권철이나 민주에 대한 애착을 느끼고 있는 호민
이 자신의 개인적 애증관계를 퍼붓는 것도 연극적 맥락에서 충분히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있
다. 이 점에서 본다면 [돌아서서 떠나라]에서 호민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못하는 미선도 그
애착을 극 속의 인물에 대한 강렬한 애정으로 전환시킬 수 있었으리라. 그런데 권철의 그
발악하는 듯한 연기에 민주는 “오빠 왜 이래?”라고 하며 물러서 버렸고, 호민은 그의 민주
에 대한 애착이 연극 속에서는 도저히 키스 장면 연출을 못하겠노라는 민주에 의해 좌절되
면서 연극적 파탄을 몰고 왔고, 결국은 연극 바깥에서 민주를 대하는 태도 때문에 권철과의
엉뚱한 대립관계만 야기시킨다. 그리고 미선의 호민에 대한 집착은 연극 바깥에서의 그녀의
죽음으로 막음하고 그리하면서 이 연극도 끝난다. 그러니 도대체 이게 연극이란 말이냐 아
니면 치정적 현실이란 말이냐? 나는 모르겠다.
그런데 또한 이리 보면 일견 이 연극은 상당히 심각한 톤일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
다 상당한 수준의 솜씨를 자랑하는 하모니카 연주로 하여 작품 전체가 대단히 서정적으로
윤색되어 있다. 어떨 때는 그냥 개인 리사이틀을 하는 듯한 분위기가 되기도 하고, 하모니스
트로 나온 이성규는 짙은 검은 색 선글라스에 히피족같은 차림을 하고 굵직한 베이스 목소
리로 이 작품의 연출자인 김만중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면 외상 갚으라는 둥 이야기까지 한
다. 아마 무슨 까페같은 곳을 연출하는 모양인데, 탁자 위에 음료수를 가져다 놓고 배우들이
그곳을 들러 술이나 음료를 마시는 장면을 연출하는 듯 하다. 처음 영화 [로미오와 쥴리엣]
의 테마 뮤직으로부터 양희은의 노래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노래가 무대 위를 넘실대며 작품
을 대단히 서정적으로 가다듬는다. 결과적으로 이 효과는 연극연습을 하는 배우들의 개인적
애증관계를 지극히 서정적으로 달콤쌉살한 분위기로 윤색시킨다. 이 작품의 서브 타이틀이
[로맨틱 라이브 뮤직 드라마]다. 아마도 연극은 무대 위에서 완전히 다른 배역을 연출해야
하는 배우들의 개인적 애환을 그리려 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 결과는? 연극의 죽음이다.
내 앞 좌석에 앉은 남녀관객은 연극을 보면서 대단히 진한 구애동작을 하고 있었다. 나
이 50줄에 든 나같은 사람들은 흔히 그런 장면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지만, 그리고 연극 보
러 와서 그런 행위를 하는 게 마뜩치는 않지만 난 그 행위 자체를 비난할 뜻은 없다. 남한
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솔로들의 염장을 지르는 닭살 돋는 행위라는 핑계는 빼기로 하자
-그들이 어떤 구애 행위를 하든 그것은 그들의 개인적인 문제일 뿐이라고 치부하고 싶다.
그런데 이 연극은 아마 그런 것을 노리고 있는 것 같다. 연극 전체의 느낌은 연극을 하면서
도 개인적 애증관계에 시달려야 하는 연극배우들의 애틋함을 그리려 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
문이다. 아마도 감칠 맛 나는 하모니카 선율에 의하여 그것이 어느 정도 성공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게 진짜 연극이 되려면 그리고 작품의 핵이 되는 진지함-이 연극은 절대로 웃
자고 하는 연극이 아니다-을 구축하려면 그 정도 선에서 그쳐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우리
는 연극을 하면서도 개인적 애증관계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번뇌하고, 그러면서 힘겹
게 그것을 벗어나는 진지한 모습, 그리고 진짜로 된 연극‘꾼’들의 모습을 보고 싶지, 그렇게
허망하게 자신들의 개인적 욕구에 무릎을 꿇어버리는 비참한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만약
진정으로 진정으로 저러할진대 나는 앞으로 연극을 볼 수가 없다.
어찌 보면 이 연극은 참 아름답게 포장된 연극이지만 그 아름다움은 그 속에서 연극인들
의 패배의식을 담고 있는 건강하지 못한 아름다움 같다. 그 건강하지 못함이 언젠가는 화안
하고 해맑은 표정의 건강한 아름다움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면 이 후기를 닫기로 하자. 사회
적으로 인간적으로 온갖 시련을 디디고 어려운 작업을 하고 있는 그들이기에 아마도 인간적
한계라고 하는 이 문제도 거뜬하게 이겨낼 수 있는 내성을 지니고 있으리라. 이 작품은 그
내성 지님의 역설적 표현이라 생각하며 후기를 닫는다.
연극인들의 인간적인 모습을 사랑하는 부산시민 김형민
추신: 제가 말을 좀 심하게 했죠? 올릴까말까 망설이다가, 극단 사계에 대한 저의 애정에 밀려 올립니다. 연극을 보고 아예 후기 쓸 가치도 없어 포기하거나 후기를 적어 놓고도 차마 올리지 못해 내 개인 파일로만 소장하는 경우도 있음을 알아 주시고, 그저 저의 개인사견을 솔직하게 올린 것이라 보아 널리 봐 주소서. 작은 놈이 휴가를 온 상황이라 인사도 못 드리고 그냥 왔습니다. 다음 기회 있으면 만나 모두들 한잔 합시다. 연극하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첫댓글후기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번 작품은 하모니카 연주에 중심을 둔 뮤직드라마라는 새로운 장르에 도전이었습니다. 기존의 연극적인 요소를 중심으로 하는 부분이 아니었던 탓에 많이 느낌이 많이 다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 보고자 하다보니 다소 미흡한 부분이 아직 많겠으나 어느 정도 가능성을 찾았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앞으로도 많은 발전적인 부분으로 거듭날 수 있는 새로운 소재로 마음 속에 두고자 합니다. 항상 함께 해 주시구요..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극중 극의 연기적 부분에서 미흡함을 보임으로 인해 명작의 해석과 표현의 부분에서 충분한 예술적 성과를 획득하지 못하고 보여진 점 먼저 사과드립니다. 공연중 라이브 연주와 드라마의 비중을 같은 위치에 두고자 한 것이 어느 한 쟝르에 초점이 맞춰지지 않은 지나친 욕심으로 드러나고 있지만 우선은 그것을 어떻게 어울리게 할 것인가가 작업의 목표였기때문에 일단 감행했습니다. 하모니카와 어울리는 사랑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그러한 작품들을 수집하며 하나의 선상에서 그러한 장면들이 연결을 원했기 때문에 아마츄어 연극동아리를 선택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명작들의 연극성이 회손된 것은 서두의 언급과 같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연극작업의 심각함이나 텍스트에 대한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평상시 잘 접할 수 없는 작품들을 일부분이나마 소개하고 하모니카 선율 속에서 철부지같은 아이들의 사랑을 흐르게 하는 기획적, 이벤트적 작품으로 시작을 한 작품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말씀드리며 선택된 텍스트의 예술적 획득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부단히 노력해가겠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저의 연극적 진지함이나 열정을 의심하지는 말아주십시오. 다음 작품은 선생님께서 다시 한번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 될 것이라고 미리 말씀드립니다. 따끔한 후기 감사드립니다.
나다님 제가 이 글중에 연기에 대한 부분은 거의 논의하지 않았습니다. 전에 허영길선생님께서 저의 글은 지나치게 희곡쪽 그러니까 문하이론쪽으로 기울어 있어 연극인들에게 직접적인 참조가 되기는 곤란하다고 하셨는데, 아직 저의 그 나쁜 버릇은 고쳐지지 않는군요. 저는 단지 그 연극에서 가장 강한 인상으로 남았던 것만 기록했음을 알려 드립니다. 연극 가운데 반드시 어떤 심각함을 담아야 한다면 그건 좀 무리겠죠. 나다님의 관점을 존중합니다. 그리고 저는 나다님의 연극적 진지함이나 열정은 결코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냥 이 글은 제 글쓰기의 한 버릇에서 나온 것이라고 만 보아주십시오.
연주자 이성규입니다. 평론 감사드립니다. 하모니카 연주자를 '하피스트' 라고 합니다. 마우스 하프 라는 말에서 비롯이 되엇는데 특히나 제가 연주하는 장르의 연주자들을 통상 '하피스트' 라고 합니다. 하모니시스트라는 말은 거의 사용을 않하고 있어요. 참고 되셨으면 합니다. ^^
첫댓글 후기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번 작품은 하모니카 연주에 중심을 둔 뮤직드라마라는 새로운 장르에 도전이었습니다. 기존의 연극적인 요소를 중심으로 하는 부분이 아니었던 탓에 많이 느낌이 많이 다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 보고자 하다보니 다소 미흡한 부분이 아직 많겠으나 어느 정도 가능성을 찾았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앞으로도 많은 발전적인 부분으로 거듭날 수 있는 새로운 소재로 마음 속에 두고자 합니다. 항상 함께 해 주시구요..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난 또 이런 글을 올려 기왕에 좋은 관계를 맺고 있던 극단 분들이 크게 서운해할까봐 조마조마했는데, 이렇게 좋게 받아 들이시니 마음이 다소 놓입니다. 뭐 듣기 싫은 소리가 있다면 그건 제 사견일 뿐이라고 여기시면 되리라 봅니다. 일간 한번 뵙도록 하겠습니다.
극중 극의 연기적 부분에서 미흡함을 보임으로 인해 명작의 해석과 표현의 부분에서 충분한 예술적 성과를 획득하지 못하고 보여진 점 먼저 사과드립니다. 공연중 라이브 연주와 드라마의 비중을 같은 위치에 두고자 한 것이 어느 한 쟝르에 초점이 맞춰지지 않은 지나친 욕심으로 드러나고 있지만 우선은 그것을 어떻게 어울리게 할 것인가가 작업의 목표였기때문에 일단 감행했습니다. 하모니카와 어울리는 사랑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그러한 작품들을 수집하며 하나의 선상에서 그러한 장면들이 연결을 원했기 때문에 아마츄어 연극동아리를 선택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명작들의 연극성이 회손된 것은 서두의 언급과 같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연극작업의 심각함이나 텍스트에 대한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평상시 잘 접할 수 없는 작품들을 일부분이나마 소개하고 하모니카 선율 속에서 철부지같은 아이들의 사랑을 흐르게 하는 기획적, 이벤트적 작품으로 시작을 한 작품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말씀드리며 선택된 텍스트의 예술적 획득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부단히 노력해가겠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저의 연극적 진지함이나 열정을 의심하지는 말아주십시오. 다음 작품은 선생님께서 다시 한번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 될 것이라고 미리 말씀드립니다. 따끔한 후기 감사드립니다.
객석에 선생님 보이시길래 마치고 한 잔을 기대했는데.... ㅋ 먼저 가셔서 섭섭했다는... ㅋㅋ 부끄럽지 않게 연기할 수 있도록 좀 더 노력하겠습ㄴ이다. ㅎㅎㅎ
나다님 제가 이 글중에 연기에 대한 부분은 거의 논의하지 않았습니다. 전에 허영길선생님께서 저의 글은 지나치게 희곡쪽 그러니까 문하이론쪽으로 기울어 있어 연극인들에게 직접적인 참조가 되기는 곤란하다고 하셨는데, 아직 저의 그 나쁜 버릇은 고쳐지지 않는군요. 저는 단지 그 연극에서 가장 강한 인상으로 남았던 것만 기록했음을 알려 드립니다. 연극 가운데 반드시 어떤 심각함을 담아야 한다면 그건 좀 무리겠죠. 나다님의 관점을 존중합니다. 그리고 저는 나다님의 연극적 진지함이나 열정은 결코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냥 이 글은 제 글쓰기의 한 버릇에서 나온 것이라고 만 보아주십시오.
너기님 저야 뭐 공간 소극장에 노상 들락거리니까 언제 또 한번 기회가 있으리라 봅니다. 그날은 집에 일이 있어 일찍 갔구요. 다음을 기약합시다. 언제던가? 나다님과 블바님과 같이 간 고기집 그 좋던데..... ㅋㅋㅋ
연주자 이성규입니다. 평론 감사드립니다. 하모니카 연주자를 '하피스트' 라고 합니다. 마우스 하프 라는 말에서 비롯이 되엇는데 특히나 제가 연주하는 장르의 연주자들을 통상 '하피스트' 라고 합니다. 하모니시스트라는 말은 거의 사용을 않하고 있어요. 참고 되셨으면 합니다. ^^
제가 모르는 내용이었네요. 하프 연주자하고 혼동되겠군요. 가르침 주시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