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녀의 이야기들을 읽다가 드는 생각
책을 읽기에는 방안이 너무 침침한 것 같아서 등이라도 갈 요량으로 전등갓을 벗겼다. 그러나 막상 갓을 벗기고 나니 전구도 멀쩡할뿐더러 방안이 눈부실 정도로 밝아졌다. 이왕 벗긴 김에 갓이나 씻어야 겠다.고 생각하고 들여다보니, 갓 속에 크고 작은 나방의 시체들이 즐비하다. 빈틈이라고는 것의 없이 촘촘한 이음새 사이로 도대체 어떻게 날개를 접고 들어갔는지 그 집요함이 근원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밝은 곳으로 밝은 곳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욕구가 제 몸이 뜨겁게 타 들어 가는 것도 잊을 만큼 황홀하단 말인가? 나방은 본성이 밝은 것을 좋아해서 불을 보고 날아온다. 그리고 그 주변을 돌다가 결국 더 가까이 불속으로 뛰어들어 제 몸을 사른다. 이옥전집 2권에는 구구절절한 열부들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렇듯 줄줄이 역어서 글을 읽다보니 동화에서, 전설의 고향에서, 드라마에서 간간히 볼 때와 사뭇 느낌이 다르다. 남편을 잃은 가련한 여자들이 좀비처럼 벌떡 일어나 무덤을 향하여 걸어가는 것 같은 환상이 눈앞에 펼쳐진다. 불나방이 밝은 곳을 찾아 떼 지어 모여들듯이... 그러나 그 가련한 처지를 어찌 천성을 따르는 나방에 비유할 것인가? 나방은 제 욕심껏 탐닉하다 죽음에 이르니 무슨 세상에 미련이 있고 아쉬움이 남겠냐마는, 과부는 남편이 죽는 순간 목숨은 붙어 있되 죽음의 경계에 머물게 된다. 살아 있어도 죽음에 속한 여인들. 가슴에는 언제든지 자살 할 수 있도록 비수를 품고 살아야 하며 "죽지 않나?" 하는 시댁식구들의 눈총과 또는 아직 젊은데 가뭄에 누가 되는 일을 하지나 않을까 하는 감시 속에 숨죽인 나날들... 바라보는 쪽도 살아가는 사람도 모두 숨이 막혀서 죽을 지경이다. 양반이 아닌 백성은 그나마 좀 자유롭다지만 사회 전체가 요구하는 열녀신드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자살을 요구하는 사회, 시를 짓고 문을 지어 자살을 미화하고, 자살로 인해 열녀문을 세워지며 그 집안이 빛나는 사회라니... 소위 말해서 시대의 지식인이라는 선비가 仁과 道를 말하고 풀 한포기의 생명의 소중함과 벼룩, 모기에 까지 仁을 베풀어야 함을 말하면서 과부들의 자살에 대하여 미화하는 글들을 써 대는 이 커다란 간극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러한 당대의 분위기와 글들은 과부들의 자살을 밀어 붙이는 것이다. 가히 시대가 만든 집단폭력이라 할 수 있는데 열녀 운운하며 우리나라의 미덕 어쩌구저쩌구 하는 단계에 이르면 이옥의 "고문(古文)을 배우다 허위에 빠지다." 라는 말에 생각이 미친다.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일지라도 남편을 잃게 되는 지경에 이르면 우울증에 걸릴 수밖에 없다. 이런 지경에 이르면 자살은 꿈처럼 달콤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주변으로부터 어떤 위로는 커녕 자살에 대한 은근한 압박까지 받고 있다면, 자살 외에 어떤 선택들을 할 수 있을까? 열녀들이 모두 우울증에 걸려서 자살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편안한 죽음의 유혹을 뿌리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선비들이 열부전을 쓰고자 했다면 남편을 따라 죽은 여인이 아니라, 살아서 남은 삶을 아름답게 갈무리하는 여인들을 찾아 글로서 써내려가야 했다. 그것이 인을 이야기하는 선비의 道고 活生의 학문이 아닌가? 몸과 마음이 모두 포박 당한 체 산다면 죽는 것보다 살아남는 것이 몇 곱절 더 고달픈 것이다. 나는 "천하만물에 대한 관찰은 사람을 관찰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고 사람에 대한 관찰은 情을 살펴보는 것보다 더 묘한 것이 없다." 라는 이옥의 말에는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정에 대한 관찰은 남녀의 정을 살펴보는 것보다 더 진실한 것이 없다. 라는 점에 대하여는 절반의 동의밖에 할 수 없을 듯하다. 남녀간의 정이란 것이 지극하기도 하지만 그 만큼 가식으로 포장하기 쉬운 것도 없다. 또한 남녀 간의 정만큼 사람을 미혹하게 하는 것 또한 없다. 이옥은 아래 글에서 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대개 사람의 정이란 혹 기뻐할 것이 아닌데도 거짓으로 기뻐하기도 하며, 혹 성낼 것이 아닌데도 거짓으로 성내기도 하며, 혹 슬퍼할 것이 아닌데도 거짓으로 슬퍼하기도 하며, 또 즐겁지도 사랑하지도 미워하지도 않고 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면서, 혹 거짓으로 즐거워하고 슬퍼하고 미워하기도 하고자 하는 것도 있다. 어느 것이 진실이고 어느 것이 거짓인지, 모두 그 정의 진실함을 살펴볼 수가 없다. 그런데 유독 남녀의 정에서만은 곧 인생의 본연적 일이고, 또한 천도의 자연적 이치인 것이다.
< 이옥전집2. 二難 中에서 >
그러나 다시 읽어보면 오히려 위에 언급한 정이야 말로 남녀 간에 다반사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과거에 황진이가 벽계수를 휘롱 하고, 임금을 둘러싼 궁중의 암투, 정사나 전쟁에 이용되는 미인계등의 예를 들면 모두 지극한 정과 지극한 간교함이 맞붙어 있다. 또한 현대의 남녀의 관계도 별반 다르지 않다. 막장 드라마 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남녀 간의 사귐에 담박함 이라던가 지극한 정이 사라진지 오래다. 이옥은 어찌 남녀의 정에서만 정이 인생의 본연적 일이고 천도의 자연적 이치라 할 것인가? 전등갓을 씻어 다락으로 올려놓고 전등을 오픈해서 쓰기로 했다. 갓을 씌우면 나방은 어떤 식으로 든 갓 안으로 들어가 죽음을 자초할 것이고, 나는 나방의 공동묘지를 천장에 달고 사는 격이니 유쾌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죽음조차 불사하고 밝은 것을 탐닉하는 나방의 모습에서 죽음에 이르는지 모르고 탐하는 인간의 끝없는 욕심을 생각하게 되고, 그로 인해 죽어가는 사람들을 연상하게 된다면 내 방에 매달려 있는 전등갓은 바로 인간의 공동묘지인 것이다. 죽고자 하는 놈을 살릴 수는 없겠으나 이후에라도 뉘우치고 살고자 하는 자에게는 활로를 주어야 한다. 거창하게 道나 仁을 이야기 하지 않더라도 인간에서 미물에 이르기까지 살아가는 일이 이와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댓글 역시 공부하시니 글이 일취월장입니다. 구렁이 담 타고 넘어가듯 매끄럽게 넘어가는 문장이며 그 속에 담긴 혜안이 멋지십니다.
옛날에는 책을 읽어도 간 혹 단상이라도 끄적였는데 어느 순간 쓴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살게 되니 게으름이 몸이 벤 것이겠죠. 뭐라도 써 놔야 남는다는 생각에 쓰고 있습니다만... 다시 습관을 만든다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청한님의 매일 글 하나씩 써야겠다는 말에 저는 그저 매주 하나라도 잘 써야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