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화엄교학의 역사
화엄교학의 역사는 멀리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로부터 시작한다. 역사적 사실의 인물은 아니지만 화엄경은 주로 이두분의 보살이 설법의 주인이 되어 이루어졌기 때문에 예로부터 그렇게 일컬어 온다.
불멸(佛滅) 5백년 경부터 불타의 근본사상으로 돌아가려는 대승불교운동에 의하여 수많은 대승경전들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6백년 경에 이르러 용수보살은 대부사의론(大不思議論) 10만 게송을 지어 화엄경을 해석하여 유포하였다. 이것이 화엄경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효시다.
대승불교운동에 크게 이바지한 마명(馬嗚)보살까지 포함하여 위의 네 분을 선앙적인 입장에서 화엄종조로 추앙하고 있다.
화엄경이 중국에 전래되어 많은 연구가 있게 되면서 화엄종이 성립하였다. 중국 화엄종의 제 1조로는 화엄경의 법계관문(法界觀門)을 찬술한 두순(柱順557~640)스님이다. 18세에 승진(增珍)스님에게 출가하였고 수행이 깊어서 여러 가지의 선묘하고 기이한 일들이 많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제자들에게는 “화엄경을 독송하는 것으로 업을 삼아라. 이 경전에 의하여 보현행을 닦도록 하라”고 권하였다는 내용이 〈화염경전기>에 기술하고 있다.
제2조는 지상사의 지엄(智嚴602~668)스님이다. 12세에 두순의 제자가 되어 화엄교학의 기초를 확립하였다. {화염경수현기(獲玄記)} {화엄경 공목장(孔目章)} <화엄경 오십요문 답(五十要問答)> 등을 저술하였으며 신라의 의상(義湖)스님과 당나라의 현수(賢首)스님과 같은 훌륭한 제자들을 배출하였다.
중국의 제 3조는 법장(法藏643~712)스님이다. 지엄의자로서{탐현기(探玄記)} {문의강목(文義網目)} {지귀(旨歸)}등 화엄경에 관한 많은 저술을 통하여 화엄교학의 체계를 크게 완성한 분이다.
법장스님의 법을 사사한 제자는 아니지만 제 4조는 청량(淸凉)스님이며, 제5조는 규봉 (圭峰)스님이다. 두 분은 화엄경에 대한 여러 가지의 저술을 통하여 화엄학이 영원히 지속하게 하는 데 크게 힘썼다. 특히 청량스님의 화엄경 소초(疏妙)는 그 해석이 세밀하고 정교하여 지금까지 불교 교육기관에서 교재로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화엄교학을 크게 일으킨 사람은 신라 불교를대표하는원효(元曉)스님(617~686)과 의상(義湖)스님(625~720)이다. 승랑(增期)스님, 연기(緣起)스님, 자장(孫藏)스님 등이 화엄경과의 관계에 대한 기록들이 있기는 하나 극히 미미할 뿐이다.
그러나 원효스님은 당나라로 유학을 가던 도중에서 해골 속의 물을 마시고는 크게 깨달은바가 있어 되돌아 온 후, 화엄경의 소(流)를 지어 화엄경을 해석하였다. 그 소의 광명 각품과 서문은 현존하고 있으며, 그 견해의 뛰어남은 누구의 추종도 불허하는 바다. 특히 화염경을 중심으로 하여 부처님의 일대시교를 교상판석한 내용은 매우 훌륭하여 당시 중국 에서도 많이 참고한 기록이 있다.
의상스님은 당나라에 들어가서 지엄스님의 문하에서 현수스님과 함께 화엄학을 사사하였다. 문무왕 10년(670)에 귀국하고 16년에 태백산 영주 부석사를 창건하여 화엄학을 전파 하는 기틀을 삼았다. 그 후 전국 곳곳에 화엄십찰(十刺)을 세우고 화엄경을 펴는데 진력하였다. 의상스님이 직접 세운 사찰도 있고 제자들이 그 뜻을 받들어 후대에 세운 사찰도 있다. 화엄사, 해인사, 범어사, 갑사 등 전국에 그 전통을 유지해 오고 있는 사찰이 아직도 다수가 있다.
의상스님에 대하여 특기할 만한 것은 일승법계도(一乘法界圖)와 법성게(法性喝)이다. 스승인 지엄스님으로부터 극찬을 받았으며, 법성게의 짧고도 오묘한 내용은 화엄의 대경을 유감없이 표현한 것으로 너무나 유명하다. 용수보살의 약찬게와 아울러 화엄경의 이치를 해석하는 수많은 저술 가운데 가장 뛰어난 글임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나라 반만년의 역사에서 세계에 내놓을 만한 가장 자랑스러웠던 때가 있었다. 신라시대다. 원효스님은 천성산(千聖山) 화엄벌에서 화엄경으로 일천 명의 성인을 배출하고, 의상스님은 전국의 방방곡곡에 화엄사찰을 세워 화엄사상을 가르쳐 삶의 원리와 가치를 찾게 하였고, 또 화엄사상에 의하여 모든 문화를 이룩하였던 것이다.
신라의 심상(審神)스님은 당나라의 현수스님 문하에서 화염을 전수받은 뒤 효성왕 4년(740)에 일본에 화엄경을 전하였다. 일본 화엄종의 제1조가 되어 오늘날 일본의 화엄학을 있게 하였다.
그 외에 신라와 고려 그리고 조선에 이르기까지 유장한 화엄교학의 역사가 있다. 그 빛나는 화엄학의 역사를 다 거 할 수가 없음을 아쉽게 여긴다. 우리나라 불교의 역사는 화엄학의 역사라 해도 크게 지나친 표현은 아니리라.
첫댓글 감사 합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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