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구나 '쓸모가 있고자 하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한 쓸모 있는 일의 결과에 영향을 받기 시작할 때,
서서히 누군가가 우리의 가치를 측정하기 위하여
점수를 열거해 놓은 커다란 점수판에 목을 달게 됩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나를 소개하는 말도 길어집니다.
그것은 대학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 까지
'쓸모 있었던'모든 것을 열거할 책임이 있다고 느끼는 것처럼
소개가 한 페이지를 넘어가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초등학교 졸업도 이력에 넣는 것을 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삶 속에는 성공하면 성공할수록
불안도 더 커가는 거의 악마적인 사슬이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합니다.
이 어두운 힘이 대부분의 위대한 예술가들을
마지막에 자기 파멸의 길로 내몰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사회를
'너희는 무조건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집단 최면을 걸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가요?
쓸모 없는 사람은 살 자격도 없는 것처럼 -
그러나 쓸모 좀 없으면 어떤가.
어떤 쓸모있는 일을 많이 해서 유명한 목사님은
자신의 이력서에 꼭 이렇게 쓴다고 합니다.
'아무일 안하고 바쁘게 잘 산다' -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무슨 이력이 이러냐면서
자신들이 목사님의 '쓸모 있었던 일'을
주렁주렁 달아놓는다는 것이지요.
저는 그동안 '쓸모 있는 일'을 별로 하고 살지 못했습니다.
제게 가장 쓸모 있었던 일은 이쁜 아내와 결혼하여
이쁜 두 딸을 낳아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의 책 <청소부친구가 더 좋은 이유>의 저자 소개는
<000에서 신학을 공부하였고 '들꽃피는교회'를 꿈꾸는 전도사.
두 딸 최좋은, 최밝은과 아내 이인숙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입니다.
이번에 펴내는 책에는 아예 다 지우고
<이쁜 두 딸 최좋은, 밝은과 더 이쁜 아내 이인숙과 함께
행복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