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교회의 목회와 실제(15)
헌상이란 무엇인가?③ : 어떻게 드려야 하는가?
우리가 헌상함에 있어서 많은 성도들이 고민한다. 그것은 헌상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곧 얼마를 헌상해야 하는가? 하는 고민이다. 그래서 늘 헌상에 대한 부담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 대한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말하는 원리를 좇아 헌상하면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가 성경에서 말하는 헌상의 원리를 모르는 것이다. 우리가 헌상의 원리를 바로 알 때 기쁨과 즐거움으로 헌상하게 될 것이다. 구약에서는 어떤 점에서 헌상의 원리를 구체적으로 제시해 주셨다. 예를 들면, 첫열매를 어떻게 드려라든지, 십일조를 어떻게 드려라든지 하는 것이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그 방향에 순종해서 드리면 되었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헌상에 대해서 구체적인 방법이나 기준을 제시해 주고 있지 않다. 다만 헌상의 정신과 원리를 제시해 주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어떤 점에서 헌상이 더 어렵다. 그러나 우리가 오늘 강의를 통해서 신약에서 우리에게 제시해 주시는 헌상의 근본정신과 원리를 바로 배움으로 기쁨과 즐거움으로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올바른 헌상을 드릴 수 있기를 바란다.
1. 신약의 헌상에 대한 교훈
신약 시대에는 어떤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여 우리에게 그에 따라서 헌상해야 한다고 하지는 않는다. 신약 시대에는 헌상과 관련한 정신을 좀더 강조하고 있다. 그 정신을 나타내는 가장 기본적인 가르침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첫째로,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다. 고린도후서 9:7절에 보면 “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 했다. 그리고 ‘각 사람이 수입을 얻은 대로 하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6:2절에 보면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고 했다. 사도행전 11:29절에도 보면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라고 했다. 이와 같은 말씀들이 신약에서 성도들이 얼마나 헌상해야 하느냐를 가장 잘 규정하고 있는 말씀들이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각자가 정해서 헌상할 때 유념해야 할 세 가지 말씀을 덧붙여 주고 있다. “인색함으로 하지 말라”(고후 9:7), “억지로 하지 말라”(고후 9:7), “하나님은 즐겨내는 자를 사랑 하신다”(고후 9:7). 각자가 알아서 정한대로 헌상한다고 할 때 부패한 인간성이 구속받은 성도의 마음에도 영향을 미치면 어떤 결과가 드러나게 되는지를 바울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바울은 이런 부패한 인간성의 작용을 염두에 두고 인색함으로 하거나, 체면치레로 하거나, 다른 이유 때문에 억지로 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억지로 하지 않는 방법의 하나로 미리 준비하여 드릴 것을 제안한다. 고린도후서 9:5절에 보면 “그러므로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가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하게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고 했다. 성도들이 각자의 힘과 원하는 바에 따라서 미리 준비하여 헌상하도록 하는 것이다. 바울은 ‘각 사람의 양심에 따라’ 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주께서 그런 식으로 하되 참으로 즐겨내는 것을 원하신다는 것을 바울은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자발적 행동의 자유’를 강조한다.52) 이것이 신약 시대의 헌상의 도리에 대한 큰 원칙이다. 즉, 헌상에는 그 어떤 강제도 있어서는 안 되고, 원칙상 각자의 능력과 원함에 따라 해야 한다는 것이다.53)
둘째로, 마태복음 6:21절에 보면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고 했다. 마음이 보물이 있는 곳에 있다고 하셨다. 이것은 진리다. 이 말씀은 헌상의 원칙을 우리에게 제시해 주는 중요한 말씀이다. 이 말씀은 우리의 마음을 기울여서 우리의 마음이 다 가게끔 헌상해야 할 것을 시사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말씀의 보다 근본적인 뜻은 우리의 마음이 하늘에 있어서 하늘에 속한 것을 중심으로 살아야 할 것을 시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우리가 헌상할 때 마음을 기울여서 그만큼 헌상해야 할 것을 시사한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온 마음을 다 기울여서 하는 헌상의 대표적인 예로 주께서는 과부가 헌상한 두렙돈을 들어 설명하시고 있다. 누가복음 21:1-4절을 보면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헌금함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또 어떤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고 했다. 이 교훈은 부자들이 연보궤에 헌금 넣는 것과 과부의 두렙돈 넣는 장면의 비교로부터 시작되고 있다. 이로부터 시작되는 예수님의 교훈은 두 가지 교훈을 하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 하나님 앞에서는 헌금의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다는 것이다. 예수님 당시 주께서 보시기에도 부자들이 많이 헌금했고, 가난한 이들은 적게 헌금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그 누구든지 진정으로 헌금하는 한 누가 많이 하고 적게 하는 그런 것은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부자가 진정으로 헌상한다면 그는 자신이 많이 헌상하는 것이라는 의식을 도무지 가질 수 없을 것이다. 그가 상대적으로 많이 헌상한다고 해도 자신이 늘 부족하게 바치고 있다고 느낄 것이며, 하나님께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다 드려도 부족하다고 느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는 헌금의 많고 적음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는 일이 없으신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헌금의 많고 적음으로 사람을 취하시지도 않으신다. 따라서 헌금의 양이 많고 적음이 하나님께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2. 하나님께서는 마음을 다하여 드리는 헌금을 기뻐하신다. 과부의 두렙돈에 대해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우리 주님의 평가는 이런 것이었음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눅 21:4). 그러므로 주님의 시각에서는 “이 가난한 과부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눅 21:3)라고 판단하실 수 있으셨다. 이것은 우리가 가진 바 생활비 전부를 헌상해야 한다든지, 그런 절대적인 의미에서 누구보다 많이 헌상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말씀은 주께서 다른 곳에서 가르치신 마음을 다하여, 마음이 기울어질 정도로 하는 것의 의미를 주께서 의미 있게 보신다는 것을 보충하는 표현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신약 시대에는 헌상에 대한 어떤 구체적인 지침을 주지 않았어도 이렇게 헌상하는 정신을 규제하는 말씀들에 근거해서 우리가 각기 정한대로 하되 인식하게 하지 말고 마음을 기울여서 전부를 넣는 심정으로 헌상하며, 결코 억지로 하지 말고 기쁘고 감사 하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 이것이 즐겨 헌상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헌상을 기뻐 받으신다.
2. 헌상한 돈과 헌상된 삶의 문제
다시 강조하지만, 헌상한 돈만이 주께 드려진 것이 아니다. 우리의 모든 재산, 건강,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 이 모든 것이 다 주님의 것이다. 따라서 헌상한 사람은 나머지 돈을 사용할 때에도 그것이 주님의 것임을 인정하면서, 주님께로부터 그 재물의 사용을 담당하는 청지기로서의 역할을 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든지 우리의 삶의 목적이, 사는 방향이 주님의 뜻을 수행하는 것이어야 하고, 그런 자답게 재물을 사용해서 건강도 유지하고, 식물도 먹으며, 공부도 하고, 취미활동도 하며,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살아야만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우리가 번 것으로 우리가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날마다 우리의 쓸 것을 내려 주셔서 우리가 먹고 입고 살아간다는 의식이 있어야 한다. 바로 이런 의식이 헌상에서 표현되는 것이며, 헌상한 것이 자신과 자신에게 속한 모든 것이라는 것이 반드시 나타나야 하는 것이다.
또한 자신의 삶과 사명 수행을 하고서 여유가 있는 재물이 있으면 주변에 의미있게 사용할 수 있는 곳을 찾아서 청지기로서 의미 있게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데 사용하는 일을 잘 감당해야 한다. 특히 구제하는 일에 신경 써서 우리가 풍족하게 받아 누리는데 우리 주변에 굶주려 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누리는 것을 오직 우리만 받아 누려서는 안 된다. 오히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의 많은 이웃들과 함께 나누며, 함께 받아 누리는 일을 실천해 가야 한다. 이것이 진정 헌상한 사람다운 삶을 사는 방식이다. 이럴 때 헌상의 진정한 의미가 살아나며, 긍휼에 풍성하여 부요한 하나님의 나라를 선양하는 빛과 소금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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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여기서 말하는 자발성은 헌상된 재물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예루살렘이 권세를 가지고 거둘 수 있는 일종의 의무적인 세금과 비슷한 것으로 보는 견해를 강하게 반박하는 것이다.
53) 그러므로 무슨 목적을 위해 얼마식하라는 식으로 방향을 주고 강요하는 것은 헌상의 근본 원칙에 배치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것은 지양되어야 한다.
*강의자 : 손재호 교수
*본글은 2024년 8월 16-17일에 부천개혁성경신학교 2024년 봄학기 집중강의 겸 부천개혁교회 제직교육을 '개혁교회의 목회와 실제'란 주제로 실시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