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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성부원군 박종우 묘(연천 향토유적 4호) written by 한국의 능원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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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성부원군 묘역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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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의 제48차 능원묘 답사에서 사전에 출입 허가를 받아서 들어간 민통선 안에 위치한 운성부원군 묘를 찾았습니다만, 처음에 들머리를 찾지 못해서 잠시 헤메다가 결국 찾았습니다만, 묘역까지 가는 길은 갈대가 우거진 논 밭을 가로 질러 한참을 가야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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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역 입구를 지나친 덕분에 1.21무장공비들이 침투하는 모습을 재현해 놓은 곳을 볼 수 있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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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좌측 사진의 표지판을 이정표 삼아서 들어가야 합니다. 검문소를 지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좌측에 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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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성부원군 박종우((朴從愚, ?∼1464)는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운봉(雲峰). 찬성 신(信)의 아들이다. 1419년(세종1) 태종의 서녀(庶女) 정혜옹주(貞惠翁主)에게 장가가서 운성군(雲城君)에 봉해지고, 이듬해 자헌대부에 승진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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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참을 걸어 들어가면 갈림길이 나오고 우측으로 들어가면 전방 저 멀리에 묘역이 어렴풋이 보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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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군 사격장 입구까지 승용차가 들어 갈 수 있습니다. 철책문을 열고 들어 가면 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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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3년 사은사로 명나라에 다녀오고, 1426년에는 황주선위사로 나갔다가 그 해에 사은 겸 진하사로 다시 명나라에 갔다. 1428년에 선위사로 황주와 평양에 나갔으며, 1423년에도 선위사로서 황주와 함길도에 나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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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역까지 가는 길도 어렵지만 묘역으로 오르는 길도 뚜렷이 없어서 대충 수풀을 헤치고 올라가야 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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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6년 호조판서로서 선공감제조를 겸직하였으며, 이듬해 의금부제조와 전제 상정소제조를 겸직하였다. 1444년에 판호조사에 승진하였으나 부친상으로 사직하였고 1445년 왕명으로 기복되어 판호조사.함길도도절제사에 임명되었다. 1447년 이조판서를 거쳐 좌찬성에 임명되고, 1449년 함길도도체찰사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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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역으로 오르면 3기의 봉분이 있으며, 맨 위쪽이 운성부원군 묘역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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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맨 아래의 봉분은 묘비가 없으며, 가운데 봉분은 정혜옹주의 사망 후, 박종우의 부인이 된 결성장씨(結城張氏) 묘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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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3년(단종1)수양대군이 단종의 보좌세력인 황보 인. 김종서 등 원로대신을 살해, 제거하는 데에 가담.협력하여 정난공신 1등에 책록되고 운성부원군에 봉해졌다. 1454년 평안도도체찰사가 되어 군읍의 연혁을 심정, 사군혁파를 건의하였다. 집이 대대로 부유하여 윤사로. 윤사균. 정인지와 더불어 재물을 저축한 것이 서로 동등하였으므로 사부라 일컬어졌다. 시호는 성렬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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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역 상단에 위치한 운성부원군 박종우와 정혜옹주의 합장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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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역은 반정리의 민통선 내 주한미군 사격장에 위치하고 있으며, 정혜옹주와의 합장묘이다. 북동향한 나지막한 구릉에 2기의 묘가 위아래로 나란히 있는데, 아래의 묘는 결성장씨(結城張氏)의 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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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면과 측면에서 바라 본 봉분 모습. 장명등이 묘비 앞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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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분은 원형으로 규모는 직경 780㎝·높이 200㎝이다. 묘 앞에는 660cm의 간격을 두고 2단의 계체석을 갖추고 있다. 석물은 봉분 전면에 상석 2기, 장명등, 묘표가 있고 좌·우측에 문인석이 2기씩 총 4기가 있다. 상석은 너비 157㎝·폭 113㎝·두께 22cm이다. 상석전면에는 앞뒤로 사각화창을 둔 화사석과 사모지붕의 옥개석 위에 보주를 조각한 장명등이 있는데높이는 168㎝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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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역내 석물 모습. 한국전쟁 당시에 흩어졌던 석물들을 재배치 하면서 장명등의 위치가 바뀐 것으로 추측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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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앞에는 4각 복련대좌를 한 간략한 형태의 묘표와 좌우로 대칭을 이루며 묘역을 수호하고 있는 문·무인석 4기가 있다. 높이는 좌측 앞편 187㎝·뒷편 176㎝, 우측 앞편 170㎝·뒷편 174㎝이다. 묘표는 1466년(세조 12) 3월에 건립된 것으로 비좌와 비신을 갖추고 있는데 비좌는 전면이 일부 파손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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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우로 한 쌍씩 서 있는 문인석 모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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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전쟁의 격전지였음을 보여주듯이 석물들에는 총탄 자국이... 좌측 능선에는 후손의 묘역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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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신은 상부의 양 귀를 말각하였으며 전·후 양면에 비문 및 수직의 결이 있고 검게 산화되어 있다. 전면에는 종2열로 「輸忠衛社協贊靖難功臣綏祿大夫雲城府院君 貞惠翁主合墓」, 後面(후면)에는 「成化四年三月立 于御侮將軍繼孫立石」의 비문이 있다. 규모는 비좌 높이 12cm·너비 81cm·두께 50cm, 비신 높이 144cm·너비 48cm·두께 15cm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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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성부원군 묘역 뒤에서 내려다 본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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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대 태종대왕(太宗大王) [1367 ~ 1422]
정비 원경왕후 민씨(元敬王后 閔氏) [1365 ~ 1420] 적1남 아들 [생몰년 미상]
서1남 경녕군(敬寧君) [1395 ~ 1458] (효빈 김씨) 옹주(翁主) [1400 ~ 1402] (숙의 최씨 소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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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성부원군 묘역 위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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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표 ↑ 부근(민통선 안쪽)에 운성부원군 묘역이 있습니다. 소재지 : 경기 연천군 장남면 반정리 산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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