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래를 활짝 펴고
김정호
칠월 칠석 무렵이다. 초승달이 예쁘게 하늘에 떠 있다. 대구문화재단 주최 ‘인생나눔교실’ 멘토링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다. 아양교를 건너는데 상현달인 초승달이 하늘에 곱게 떠 있다. 가을 밤하늘이 청명하다.
올해는 중학생들이다. 중학생 5명이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집중하고 있다. 대구시 효목동 신나는 효목지역아동센터에 있는 박병관, 안준녕, 유승민, 한은총, 황영민 등 5명의 멘토와 ‘인생나눔교실’ 10주간 멘토링 활동을 하게 되었다. 지난해에는 대구시 수성구 범물노인복지관에서 활동을 했는데, 올해는 지역아동센터를 배정 받았다.
앞으로 이 5명과 같이 청소년 진로 상담, 청소년 고민 사항, 문학의 이해 등으로 같이 대화를 나누고, 재기차기, 비사치기, 공기놀이 등 전통놀이를 계획하였다.
첫 번째 시간 청소년 진로 상담 시간이다. 인터넷, IT 기술을 잘 배워 정보보호사 되고 싶다는 병관이. 착실한 공무원이 되고 싶다는 준녕이,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승민이, 그리고 교회 목사가 되겠다는 은총이 모두 알찬 희망과 포부를 안고 살아가는 우리나라 청소년들이다.
그런데 영민이는 특이한 장래 희망 사항을 말한다. 그는 행복한 기정을 꾸려서 잘 살고 싶단다. 순간 번개를 맞은 듯 머리가 띵해진다. 하고 많은 장래 희망 중에 하필이면 행복한 가정을 꾸려 잘 살고 싶다는 순박한 장래 희망 사항을 말할까.
영민이는 중학교 1학년 학생이다. 중학생 치고는 키가 매우 작다. 얼핏 보면 초등학교 4~5학년 같이 보인다. 학교에서도 키가 제일 작다고 한다. 그래서 인지 영민이는 모든 일에 자신감이 부족하고 수업 시간에도 선생님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한다.
지역아동센터에 오는 아이들은 대다수가 가정형편이 썩 좋지 않은 편이다. 부모 중 한쪽만 있는 편부모 가정, 조손祖孫 가정, 또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정상적인 가정에 살고 있는 아이들은 학원이다, 교습소다 하고 다닐 방과 후 시간에 지역아동센터이 모여 이런저런 수업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편이다.
영민이에게 시선이 자주 간다. 질문도 다른 아이들보다 많이 하지만, 마지못해 무성의하게 대답한다. 가능하면 멘토 선생님과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고 돌아앉거나 엎드려 수업을 받고 있다. 혹시나 싶어 수업 내용을 질문해보면 곧잘 대답하는 것을 봐서는 수업에 관심이 없는 것도 아니다. 수업 시간에 출석도 착실하게 한다.
벌써 한 달이 지났다. 다섯 번째 시간, 야외수업으로 전통 놀이 시간이다. 다 같이 줄넘기를 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렇게 소침해 하던 영민이가 펄펄 난다. 2학년, 3학년 학생들보다 제일 잘한다. 1단 뛰기는 기본이고, 2단 뛰기도 수월하게 한다. 뒤이어 3단 뛰기를 해보겠단다. 3단 뛰기는 줄넘기를 한번 돌릴 때 세 번 뜀뛰기를 하는 것이다. 처음 몇 번을 실패를 하더니 드디어 3단 뛰기에 성공한다. 유심히 지켜보고 있던 친구들은 모두 박수로 축하해준다. 나 역시 영민에게 다가가서 꼭 안아주면서 축하를 해준다.
뒤이어 멘티 학생 5명이 달리기를 하겠단다. 웬일인가. 여기에서도 영민이가 1등이다. 키도 작고 1학년 학생이 2학년, 3학년 형님들을 모두 이기고 1등을 한 것이다. 우연일까 싶어 다시 달리기를 시켜본다. 역시 1등이다. 나도 모르게 영민이에게 다가가서 가만히 영민을 끌어안고 축하해 준다. 영민이는 쑥스러워하며 품 안에서 빠져나가려고 한다. 아차! 이거구나 싶었다. 이 아이는 지독한 사랑 결핍증에 빠져있는 것이다. 영민이의 가정 형편은 알지 못한다. 혹시나 싶어도 본인에게 물어보지도 못한다.
이제 14살 중학교 1학년이다. 아이들은 키가 늦게 크는 경우도 있다. 신체적 장애만 없다면 중,고등학교를 거치면서 갑자기 키가 크는 경우도 보았다. 영민이를 유심히 살펴본다. 야외 수업에서는 펄펄 날던 이 아이가 교실에서 수업할 때면 기가 죽는다.
영민이가 커서 무엇을 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단지 기죽지 않고 착실하게 잘 자라주기만을 기대할 뿐이다. 수업을 마치고 돌아가는 음력 8월 초순에서 중순으로 넘어가는 때다. 오늘도 동녘 하늘에 반달이 곱게 떠 있다. 저 달도 때가 되면 보름달이 된다. 비록 10주간의 짧은 만남이겠지만, 신나는 효목지역아동센터 중학생 아이들도 쑥쑥 자라나서 저 달이 보름달이 되듯이 스스로 꿈꾸고 있는 희망들이 꼭 이루어지기를 간절한 소망을 담아 마음속으로 달님에게 빌어본다.
“영민아! 그리고 얘들아! 부디 기죽지 말고 쑥쑥 자라서 나래를 활짝 펴고 너희들이 꿈꾸는 아름다운 세상 활짝 열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선생님은 달님에게 빌어본단다. 안녕.”
첫댓글 선생님 훌륭한 일을 하고 계시군요. 아이들이 나래 활짝펴기를 기원하는 선생님께서도 나래 널리 펴십시오. 교육수필 감동입니다. ^*^
아가다 선생님 감사하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