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고민 끝에 망설이다 글을 적습니다. 저는 포스코 내 현장작업을 하던 사람입니다. 이렇게 고민 끝에 메일을 보내는 이유는 사람들이 말하는 게 전부 진실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입니다. 이달 4일 출근을 했는데 차 동승을 하던 사장님이 포스코 내 영구출입금지라는 통보로 더 이상 출입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리저리 알아본 바 정도경영실 직원으로부터 뇌물수수로 인한 영구 출입정지라는 통보를 받으셨습니다. 같이 주차장 차안에서 출입신청을 기다리던 중 우연히 직원 목소리가 들려 알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통보를 하는 직원의 딱딱한 음성을 들으면서 저라도 사실 그대로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정도경영실 직원이 말한 뇌물수수의 사유는 알지 못합니다. 사장님이 직접 돈을 줬다는 말도 주는 모습을 본 적 없으니까요. 다만 출입정지에 대해서 사장님께 정도경영실에서 조사를 받게 된 경위와 결과가 나온 거라는 말만 간단히 전해들을 수 있었습니다.
작년 신호등 공사를 시작하기 전부터 패트롤 차를 타고 포스코 퇴직자 세 사람이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사무실에 찾아왔습니다. 공사현장 작업을 하다 자재가 부족해서 사무실을 가면 에어컨을 켜놓고 책상에 신발을 신은 채 두 다리를 올리고 유튜브에서 흘러나오던 트로트 노래가 아직도 귓가에 선합니다. 내가 사무실에 들어가도 휙 쳐다보고는 책상위의 다리조차 내리지 않던 모습까지도 요. 그리고 우리 모두 퇴근시간 더위에 지쳐 물에 젖은 생쥐마냥 땀에 젖어 사무실에 가면 그들이 먹다 남긴 빈 음료수잔과 종이컵, 에어컨만 켜져 있었습니다. 한번은 해도 해도 너무한다싶어 신고라도 하고 싶다고 했더니 퇴직하고 연장근무 하시는 분들이라 마땅히 반기는 사람도 갈 곳도 없으시니 편하게 자리제공이라도 해준다는 마음으로 우리에게 이해하라고 하셨습니다. 나 역시 포스코 직원 가족이라 수긍하며 이해하려 했던 기억이 또렷합니다.
뇌물수수라 함은 어떠한 대가나 이득을 취하기 위해 주는 돈이나 금품을 말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본 세 사람은 사장님께 도움을 줄만한 위치의 사람도 아니었으며 그냥 일과를 시간 때우기로 오는 한량들처럼 보였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사장님은 오히려 미안해 하셨습니다. 사장님은 예전에 갈비뼈가 간을 찔러 죽음의 문턱까지 간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술을 마시거나 늦게까지 활동을 거의 하지 않으셨습니다. 낮에는 작업 현장으로 저녁에는 피곤해서 따뜻한 식사 한 끼 대접하지 못한다는 말씀은 가끔 하셨습니다. 항상 세 사람을 선배님이라고 깍듯하게 부르셨기에 예전 포스코 재직 시 잘 아는 선배들인가 하는 짐작만 할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랬던 분들과 금품수수라는 말에 실소를 금치 못했습니다.
솔직히 공사가 끝날 때까지 옆에서 지켜본 사람으로 의외입니다. 누구보다 사장님이 어떠한 마음으로 세 사람을 대했는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만약 사장님이 금품을 줬다면 편하게 가족들과 맛있는 식사라도 하라는 인사의 뜻이고 금품 준 사실을 끝까지 함구하셨다면 이유는 분명하고 명확합니다. 포스코 직원들은 포스코 직원이라는 사실만으로 자부심에 가득 차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포스코 맨이라는 호칭을 누구보다 긍지와 명예로 인식하는 직원에게 뇌물로 인한 불명예 퇴사란 치욕인거지요.
그렇기에 사장님은 포스코 직원 누구라도 불미스러운 일에 연류 되었다면 본인이 모든 걸 감수하고라도 그 사람들의 명예를 지켜주었을 거라는 사실입니다. 평소에도 본인이 모든 욕과 오물을 다 뒤집어쓰더라도 결국 사람은 곁에 남는다는 신념이었습니다, 우리가 아는 사장님은 능히 그러고도 남을 분이지요. 그럼요. 그러고도 남지요. 다만 사람들이 사장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는데 말이지요. 사람들은 사장님이 남을 먼저 배려하며 의리 있는 사람으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장님의 선량함을 오히려 멍청하다며 이용을 하는데 말입니다.
아이아빠에게 부탁했습니다. 사장님께 이러한 일이 생겨서 정도경영실에 그동안 보았던 상황을 말하고 싶다고 말이지요. 일단 보고 느낀 그대로 말이라도 해보라고 했습니다. 다만 기대는 절대 금물이라고 하더군요. 같은 회사지만 정도경영실 직원은 개인의 하소연에 귀 기울이는 법이 없기에 오히려 말하는 내가 더 상처만 받을 거라고 했습니다. 압니다. 30년 세월을 포스코 직원 가족으로 살아오면서 내가 무슨 말을 해도 포스코 직원은 어떠한 영향도 없을 거라는 점. 다만 어떠한 사유가 발생했을 때는 사장님처럼 힘없고 약한 사람 하나 통보도 없이 하루아침에 밥줄 끊어버리면 그만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날 당황해서 목소리까지 떨리던 사장님께 마치 신처럼 영구출입금지를 통보하던 직원의 억양을 잊을 수 없습니다.
마치 본인이 누구라도 하루아침에 생명줄을 끊을 수 있는 위대한 신처럼 들리는 말투였지요. 그 생명줄에는 사장님 한사람 밥줄만 끊긴 것이 아니라 저를 비롯하여 목수들 일용직등 많은 사람들이 연결되어 있는데 말입니다. 자신에게 부여된 지위로 진정 위대한 신의 역할이라면 강한 자에게 강하고 갑,을,병,정에서 가장 낮은 업체에 속한 사람일수록 더 힘이 되어줄텐데 말이지요. 그래서 말했습니다. 회사 퇴근하면 정도경영실 직원 역시 포스코 직장인으로 한가정의 가장이자 사람이니까 하고픈 말이라도 할 수 있게 메일주소라도 알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우스운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리석은 사장님은 영구출입금지라는 말을 듣자마자 가장 먼저 한 말이 같이 일하시는 사람들 어떡하나 하는 걱정뿐이었습니다. 오히려 사장님이 죽게 되었다고 말하는 우리에게 서울에서 사장님만 믿고 광영 프라자 모텔에 방을 잡고 겨울 일감을 찾아 객지 생활하는 목수 일행들과 다함께 같이 잘 살자고 16만원 일당임에도 불구하고 20만원 지급하는 일용직들이었으며 그리고 월급타면 구순 친정어머니께 매달 생활비를 드리며 기뻐하던 저에 대한 염려뿐이었습니다.
내가 지켜본 사장님은 7년 노동현장을 다녔지만 한 번의 욕설도 사용한 적 없으며 화를 내거나 큰 소리로 함부로 지시조차 않는 선한 분이고 바깥 현장에서는 외국인 노동자들 떼인 일당도 받아주시고 외국인뿐만 아니라 아픈 동네 어르신 병원비도 내어주는 것은 물론 독거어르신 집수리도 마다하지 않는 좋은 분입니다. 3년 전 포스코 퇴직하고 암으로 돌아가신 선배 부인도 힘들게 사신다는 소식을 듣고 현장에 신호수로 일하게 해주며 일당 20만원씩 드리는 사려 깊은 분이라서 사장님 소식을 듣고 아는 모든 분들은 정도경영실을 함께 찾아가보자는 말까지 내게 전해주었습니다.
1월 3일 새해 첫 출근 날. 사장님은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본인이 더 열심히 뛸 테니 올해는 다 같이 잘살아보자고 덕담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관리자는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함부로 무시하면 안 된다며 작업자는 일도 돈도 벌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고마운 분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0년 전 동업을 하면서 사장님께는 어음부도를 내고 광주에 5층 건물을 취득한 동업자를 포스코에서 우연히 감리로 다시 만났을 때도 오히려 악수를 청하시는 분이었습니다. 지난 일은 다 잊고 열심히 다시 시작하자고 하시더군요. 포스코 직원이라고 믿었던 동료와 후배에게 땅 사기를 당해도 자신의 부덕의 소치라고 말하는 분이었습니다. 객지 생활과 건설 현장이 험지라는 걸 알기에 누구보다 작업자를 존중하고 배려했던 분으로 같이 일했던 우리들은 사장님을 생불이라고 불렀습니다. 살아있는 부처. 하도 참고 인내해서 죽으면 온몸이 사리로 덮여 있을 거라고 말하며 웃고는 했었습니다. 그래서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저를 비롯하여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우리들의 삶의 이정표까지 바꿔주신 고마운 분입니다.
나는 사장님에게 일당을 받았던 일개 직원일 뿐입니다. 다만 한 가지. 행여 뇌물수수가 맞는다는 가정 하에 사장님이 여전히 포스코 재직자였다면 아무런 통보도 없이 하루아침에 영구출입금지가 되었을까? 하는 의구심과 함께 사장님이 사람을 해하거나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한 것도 아닌데 너무 가혹한 처사는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변하지 않습니다. 어리석게도 사장님도 변하지 않을 겁니다. 남을 위해서라면 자신에게 지금보다 더 큰 피해가 올지라도 하얀 거짓말을 끝까지 하실 분이라는 것은 사장님을 아는 사람은 누구나 압니다. 매번 믿던 사람에게 뒤통수를 맞으면서도 사람이 사람을 믿어야한다는 자신의 바보 같은 신념처럼 말입니다.
한 번만 재고해 주십시오. 사장님과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의 생계가 걸린 일이라 이렇게 글을 적지만 한편으로는 착한 사람은 매번 이렇게 힘들게 사는구나 하는 마음에 사장님의 처지가 안쓰러워 글을 적어 봅니다. 물론 이 글이 하소연처럼 들린다는 것 압니다. 하지만 지난 시간 사장님 곁에서 직접 보고 들으며 느낀 거짓 없는 진실입니다. 그리고 사장님이 좋은 분이라고해서 불법을 저지른 전제라면 면죄부가 될 수 없다는 것도 압니다. 그럴지라도 한번만 더 현명한 판단과 선처를 부탁드립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