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홍진 논설위원
그러면 형법의 유기징역 상한은 왜 15년으로 정했을까. 연혁을 따져보니 징역 기간에 대한 조항은 1953년 제정 형법부터 들어 있었다. 제정 형법이 대부분 따랐던 1907년 일본 구(舊)형법에도 같은 조항이 있었다. 일본 구형법이 모델로 삼은 1871년 독일제국 형법에도 그 조항이 있었다. 독일 법학자들은 당시 독일 국민 평균 수명이 40~50세였던 점을 감안해 유기징역 상한을 15년으로 정했다고 한다. 20~30대 죄를 지은 사람이 징역 15년을 살면 감방에서 수명을 다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고려한 셈이다.
지금 우리 형법 유기징역 상한 조항이 138년 전 독일 형법과 102년 전 일본 구형법을 베낀 것이라니 어이가 없다. 1953년 형법 제정 때 국민 평균 수명이 47.5세였다. 그때만 해도 유기징역 상한 15년을 우리에게 적용해도 무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국민 수명이 78세를 훌쩍 넘어섰다. 50년 전 100년 전만 해도 '나이 40이면 불혹(不惑)'이라는 말이 통했을 테지만 요즘 40은 불혹이 아니라 '유혹(誘惑)'이라고 한다. 그만큼 수명 연장에 따라 시대가 변했다. 그런데도 아직도 옛날식 법을 따르고 있는 것은 말이 안 된다.
100년도 넘은 옛날 형법 조항을 이유도 모른 채 베낀 형법 조항이 또 있다. 형법 9조는 "14세가 되지 아니한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고 정하고 있다. 민법은 20세 미만을 미성년자로 보지만 형법은 14세 이상이 돼야 형사상으로 스스로 책임을 질 나이가 된다고 본다.
이 조항도 일본 구형법을 따라 1953년 제정 형법부터 들어 있었고 1871년 독일 형법에서 유래된 것이다. 독일 법학자들은 처음에는 형사 미성년 나이를 우리식 초등학교 졸업 나이인 11세로 정하려 했다고 한다. 독일에선 그때 아이를 대학에 보낼 것인지 직업학교에 보낼 것인지를 정했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11세 정도면 범죄 우려가 적다는 지적이 있어서 3세 올려 14세로 정했다고 한다. 그렇게 정한 14세 규정이 일본 구형법을 거쳐 우리 형법에 이어졌고 지금까지도 왜 14세인지도 모르고 쓰고 있는 것이다.
이 조항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계속돼 왔다. 요즘 12~13세는 몸집이 어른 못지않다. 14세 미만 소년 범죄는 날로 늘고 흉포화되고 있다. 2007년 범죄를 저질러 붙잡힌 10~13세 소년은 2602명이었으나 2008년에는 5547명이나 됐다. 소년원에 보내지거나 사회봉사를 시키는 촉법(觸法)소년은 12~13세였다가 작년부터 10~13세로 소년법이 바뀌었다. 소년법이 벌주는 소년은 10~19세이지만 형법이 벌주는 소년은 여전히 14~19세여서 혼선이 생긴다.
유기징역 상한과 형사 미성년은 범죄와 형벌에 대한 원론인 형법 총칙에 있는 조항들이다. 우리 형법은 제정 이후 8번의 개정을 통해 일본 형법보다 많은 형벌을 추가하고 법정형도 더 강화하며 발전해 왔다. 그렇지만 원론의 대부분 조항은 과거부터 진리처럼 받들며 고민 없이 그냥 그대로 써온 것이다.
법은 시대의 거울이라고 한다. 먼 옛날의 거울로 오늘을 비춰봐서는 안 된다. 법무부가 형사법 개정특별위원회를 두고 문제 조항들을 손보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외국 제도가 바른 것이라면 따라 쓸 수도 있지만 그것이 우리 현실에 맞는지 제대로 된 검토가 있어야 한다. 거기엔 철학과 사회학, 인구학 같은 종합적인 잣대도 동원해 시대를 제대로 반영하는 노력이 따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