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하는 아이는 날개가 없다
할아비와 할미는 똘남이 때문에 자주 입씨름을 벌인다. 높은 곳에 기어 올라가면 말릴 일이지 왜 그냥 두고 보고만 있느냐고 할미는 역정을 낸다.
허허,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 했으니 크게 위험하지만 않다면 떨어져 보는 것도 인생을 살아가는 학습의 과정 아니겠소.나는 헛웃음으로 얼버무리고 만다.
유대인 아버지는 아들을 높은 곳에 올려놓고 뛰어내리라 한단 다. 아버지가 손을 벌리고 받아 줄 테니 걱정 말고 뛰어내리라 한단다.
멈칫거리던 아들이 팔짝 뛰어 내리면 벌렸던 손을 재빨리 거 두어 버린단다. 바닥에 나뒹굴 어 서럽게 우는 아들에게 그런 단다.
“봐라! 아버지도 못 믿겠지? 이 세상에는 믿을 놈이 하나도 없단다. 아무도 믿지 마라, 잉.”
어린 시절 김동길 박사는 새로 이불보를 씌우는 어머니 곁에서 놀다가 대접에 담긴 물을 이불에 쏟아 부으려 했단다. 깜짝 놀라 물그릇을 빼앗은 어머니는 서럽게 우는 아이를 보고, 이 아이 기를 꺾으면 안 되겠다 싶어서 물 대접을 되돌려주며 마음껏 쏟아 부으라 했더란다.
그러나 할아비는 유대인 아버지처럼 강심장도 못 되고 김동길 박사의 어머니처럼 기백도 없는가 보다. 똘남이가 침대나 책상 위에서 추락하여 일 분 이 분씩 울음소리가 끊겨 꼴까닥 꼴까닥 경기를 일으키면 와락 겁이 나서 보듬고 어르며 안절부절 못 한다. 꼭 똘남이와 함께 따라 울었으면 좋을 기분이 된다.
스위치
아이들은 하수도 구멍이나 전기코드 구멍도 호기심 천국이지만 가장 신기해하는 것이 여러 가지 스위치다.
할아비가 시청하고 있는 줄 뻔히 알면서도 텔레비전 전원 스위치를 찰칵 눌러 끄고 시치미를 뗀다.
“야, 빨리 눌러. 텔레비전 켜!”
그러면 다시 전원 스위치를 눌러 켰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눌러 끄고 짓궂게 씩 웃으면서 할아비의 반응을 살핀다.
할아비 할미가 눕는 옥돌 침대는 절반씩 나뉘어 두 군데 스위치가 있는데 똘남이는 내가 눕는 쪽 침대에서 창밖을 내다보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주로 내 쪽 스위치를 많이 가지고 논다.
누르면 똑 소리가 나면서 온도 숫자가 빨갛게 켜지고, 또 누르면 딱 소리가 나면서 숫자가 사라진다. 신기하고 재밌다. 아무리 제 할미가 고장 난다고 잔소리해도 마이동풍으로 똑딱똑딱.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일 년 이 년이 지나자 기어코 고장이 나고 말았다.
전문가를 불러 스위치 몸통을 통째로 갈아 끼웠다. 수리비가 만만치 않았다. 할미가 툴툴거리자 내가 또 위로했다.
“너무 아까워하지 말아요. 그게 다 교육비라고 생각해요.”
선풍기, 녹음기, 오디오, 컴퓨터, 핸드폰, 전등, 냉장고, 세탁기.......
집안 살림살이에 스위치 달린 물건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모든 스위치는 똘남이의 장난감이었다.
어지럽히기
상자를 뒤집어서 크레파스를 방바닥에 잔뜩 어질러놓고 또 다른 놀이에 열중하면 할미는 똘남이를 불러 크레파스를 정리하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할미를 빤히 쳐다보던 녀석은 시치미를 딱 떼고 저 하던 놀이로 돌아간다. 아무리 어르고 달래어도 반응이 시큰둥하면 마침내 할미는 지쳐서 포기하고 만다. 나는 또 할미와 의견이 달라 속으로 툴툴거린다.
“좀 가만 놔두면 안 돼? 저 나이 아니면 언제 마음껏 어질러 보겠어? 저 나이 아니면 언제 할아비 할미한테 반말 해보겠어? 저 때 아니면 언제 카메라 캠코더 박살내보겠냐고?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크면 다 밥도 잘 먹고, 정리정돈도 잘하고, 높임말도 깍듯이 쓸 테니까. 아이들 키우면 좀 낙천적일 필요가 있어요.”
뛰고 고함지르기
저희 방에서 거실까지, 다시 거실에서 저희 방까지 똘남이가 고함을 지르며 뛰어다니면 할미는 눈살을 찌푸린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 중에서도 저런 아이가 있어요. 다른 아이들한테 얼마나 피해를 주는지 몰라요. 저 애도 크면 그럴까 싶어서 큰일인데. 똘남아! 뛰지 말고 걸어 다녀라, 잉. 고함도 지르지 말고.” 그 말끝에 뭐라고 대꾸해주고 싶지만 입씨름으로 번질까봐 나는 가만히 속으로만 툴툴거린다.
‘너무 걱정 마라니까. 기차 칸이나 공중목욕탕에서 떠들고 뛰고 개판치는 아이들은 호되게 잡아야겠지만 저 나이 아니면 언제 마음껏 떠들고 뛰어보겠어요. 저게 다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는 징표이니까 고맙게 생각해야지. 교실에서 떠들고 뛰어다니는 아이는 어려서 고함지르고 뛰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더 그러는지도 몰라요.’
똘남이가 초등학교 다니면서까지 뛰고 고함지를지는 커 봐야 알 일이다. 그러나 경험에 비추어보건대 점잖고 내성적인 조 씨 가문에서 그럴 확률은 별로 크지 않다.
좁고 침침한
우리 집 옥상에는 가장자리에 자그마한 석유탱크가 두 개 있다. 하나는 일층으로 가는 통이고 하나는 이층 보일러로 가는 통이다. 옥상 사방을 둘러막은 시멘트담장과 그 석유통 사이는 아이 한 명이 겨우 비집고 지나다닐까 말까 한 좁은 공간이 있는데 똘남이는 심심하면 꼭 넓은 데 다 놔두고 석유통과 담장 사이로 비비고 들어가 그늘지고 으슥한 곳에 옹색하게 쪼그려 앉아서 놀기를 좋아한다. 그 귀퉁이에는 빗물 빠지는 구멍이 있다. 똘남이는 주위에 널브러진 콘크리트 부스러기나 돌조각을 긁어보아 그 구멍에 밀어 넣는다. 한번 빠지면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지는 게 꽤 재미있는가 보았다.
할아비 어렸을 적에는 집 뒤란에서 많이 놀았다. 거기는 앞마당에 비하여 조금 비좁고 음침하고 눅눅하고 그늘지고 호젓했다. 소년은 그 조용하고 침침하고 한갓진 분위기가 마음에 쏙 들었다. 단독주택이라지만 이층이라 뒤란도 없고, 한사코 옥상 석유통 뒤쪽 음침한 그늘로 비집고 들어가 놀 수밖에 없는 똘남이가 할아비는 무척 가엾다.
수업료
똘남이가 싸인 펜으로 제 팔뚝에 그림을 그리거나 방바닥에 낙서를 하면 할미한테 꾸중 듣는 사람은 할아비다.
“참 당신 이상허요 잉, 좀 못 허게 말리면 안 돼요?”
녹음테이프 길게 잡아 늘여 헝클어뜨리는 것은 기본이요 카메라까지 망가뜨렸다. 디지털 카메라가 얼마나 신기하겠는가. 제가 찍어보겠다고 졸라대서 몇 번 주었더니 제법 할아비 모습을 그럴 듯하게 찍었다. 그러다가 기어코 방바닥에 찍어댔던가 던졌던가 해서 렌즈가 고장 나고 말았다. 수리하는 데 꽤 거액이 들었다.
“맡길 것이 따로 있제, 쯧쯧쯧.”
할미는 또 혀를 찬다. 할아비가 맺고 끊는 맛이 부족하고 좀 물러빠져서 탈이다. 망가진 카메라가 아까워서 입맛이 쓰기는 할아비도 마찬가지이지만 그것도 죄다 아이들 자라는데 들어가는 사교육비라고 마음을 고쳐먹는다.
비둘기파와 매파
할아비는 비둘기파이고 할미는 매파다. 할아비도 원래는 아이들을 좀 엄격하게 교육시키자는 쪽이어서,
“나중에 자식들에게 효도 받으려면 심부름도 시키고 일도 시키고 조금 혹독하게 다뤄야 한다. 자식들 응석이나 받아주다가는 평생 동안 자식들 노예가 되고 자식들에게 질질 끌려 다니게 마련이니 명심해라.”
똘남이 어미 아비한테는 그렇게 말했지만 어물어물하는 사이에 응석받이를 해주고 말았다. 부모와 떨어져 사는 똘남이가 안쓰러웠고 걸핏하면 울음보를 터뜨리는 녀석이 너무 가엾기 때문이었다.
나도 모르게 마음이 약해진 것이 탈이었다. 녀석을 엄격하게 대하지 못하고 이런저런 요구를 들어주는 쪽으로 기울고 말았다.
할미는 할아비가 못마땅하기 짝이 없다. 현직 초등학교 교사인 할미는 남의 자식이나 이녁 자식이나 좀 엄격하게 키우려는 쪽이다.
울음보를 터뜨리는 똘남이를 구석지로 끌고 가서, 또 울래 안 울래, 여러 번 심하게 조지기도 했다. 그러나 똘남이는 할미 머리꼭대기에서 놀았다.
“좋게 말할 때 그만 울어라 잉, 또 울면 재미없다 잉, 혼난다 잉.”
기세 좋게 닦달하면 울음소리가 가늘어지다가, 그치는가 싶으면 새 울음보를 터뜨려서 할미 약을 올린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잔소리를 해대고 엄포를 놓아도 듣는 둥 마는 둥 결국은 저 하고 싶은 대로 하고야 만다.
그런다고 번번이 윽박지를 수도 없고 두들겨 팰 수도 없어서 그야말로 진퇴양난인지라 할미의 툴툴거림은 그칠 날이 없다.
<계속>
첫댓글 ㅠㅠ 울 친구들이 그랬어요. 요즘은 만원 내고 손주 자랑하라고 한데요. 그런데 이렇게 글로 쓰니 좋으네요. 본 받아야징, 샘도 해피뉴이얼^^*
종일 책 읽다 떡국 줏어 먹다 추운 데(김장임샘 한옥)서 일하는 내 친구(이사장 박사장)들에게 전화를 할까 텔레비젼을 볼까 심심하니 카페 이름이나 바꿔보잘까 아내 약 달여주다 나도 요새 신이 좀 허해서 안 되겠다 한첩 달이고 또 뭐냐 치와와 강아지 한나 들여다보다 운동을 해야 겠다고 거실에서 폴짝거리다 카페에 들었더니 곰방 다녀간 듯 그린의 방석이 아직도 따듯하넹?^^ 더도 덜도 말고 지난해 만큼만 올해도?! 고맙고 행복해요 그린~~
선생님 요즘 오른쪽 눈아래 꺼플이 아침에 일어나면 떨리고 어깨도 안올라 가고 손이 가끔 저리고 새벽 2시쯤 잠이 깨면 새벽까지 해매요 저도 이래저래 허 하나봐요. 저 처방좀 해서 택배로 보내주시면 안될까요? 온라인으로 보낼께요
겨울에 寒邪로 인해 어깨와 목덜미가 굳어 경락의 소통과 기의 승강이 원할하지 못한 원인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진액부족인 이유 등 다른 원인도 있으니 종합검진을 합시다. 저와 통화해요. 방금 휴대폰 전화를 했더니 그린의 전화번호가 바뀌었다고 하는데, 편한 시각에 우리집으로 전화주세요. (062-374-7691 /019-616-76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