當 日 軒 記
-李用休-
自人之不知有當日而世道非矣 昨日已過 明日未來 欲有所爲 只在當日 已過者 無術復之 未來者 雖三萬六千日相續而來 其日各有其日當爲者 實無餘力可及翌日也 獨怪夫閒者 經不載聖不言而有托以消日者 由此而宇宙間事 多有不得 盡其分者矣 且天不自閒而常運 人安得閒哉 然當日所爲者 亦不一 善者爲善 不善者爲不善 故日無吉凶孤旺 但在用之者耳 夫日積爲旬而月而時而歲成 人亦日修之 從可欲至大而化矣 今申君欲修者 其工夫惟在當日 來日則不言 噫 不修之日 乃與未生同 卽空日也 君須以眼前之昭昭者 不爲空日而爲當日也. 《𢾡𢿜集》
自人之不知有當日而世道非矣
사람들이 당일當日이 있음을 알지 못함부터 하여 세도世道가 그릇되었다.
昨日已過 明日未來 欲有所爲 只在當日
어제는 이미 지나갔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으니, 할 바가 있고자 한다면 오직 당일이 있을 뿐이다.
已過者 無術復之 未來者 雖三萬六千日相續而來
이미 지나간 날은 돌이킬 방법이 없고, 아직 오지 않은 날은 비록 3만 6천일이 연이어 오더라도,
其日各有其日當爲者 實無餘力可及翌日也
그날은 각각 그날에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으니, 실제로 다음날까지 미칠 수 있는 여력이 없다.
獨怪夫閒者 經不載聖不言 而有托以消日者
유독 이상하게도 저 ‘한閒’은 경서에도 실려 있지 않고, 성인도 말하지 않았는데, 그 핑계를 대고 하루를 허비하는 자가 있다.
由此而宇宙間事 多有不得盡其分者矣
이로 말미암아 세상 사이의 일에 그 본분을 다할 수 없는 자가 많이 있다.
且天不自閒而常運 人安得閒哉
또 하늘은 스스로 한가롭지 않아서 늘 운행하고 있거늘, 사람이 어찌 한가할 수 있겠는가.
然當日所爲者 亦不一 善者爲善 不善者爲不善
그러나 당일에 해야 할 일은 또한 하나같지 않아, 선한 사람은 선한 일을 하고, 선하지 않은 사람은 선하지 않은 일을 한다.
故日無吉凶孤旺 但在用之者耳
하루는 길흉(吉凶)과 고왕(孤旺)이 없고, 다만 하루를 쓰는 사람에게 달려 있을 뿐이다.
夫日積爲旬而月而時而歲成
무릇 하루가 쌓여 열흘이 되고 한 달이 되고 한 계절이 되고 한 해가 된다.
人亦日修之 從可欲 至大而化矣
사람 또한 날로 수양해 나가면, 선善을 따르고, 성聖에 이를 수 있다.
今申君欲修者 其工夫惟在當日 來日則不言
지금 신군이 수양하고자 한다면 그 공부는 오직 당일에 달려 있다. 내일은 말하지 말라.
噫 不修之日 乃與未生同 卽空日也
아, 수양하지 않는 날은 곧 아직 오지 않은 날과 같으니, 곧 헛된 날(공일空日)이다.
君須以眼前之昭昭者 不爲空日而爲當日也
그대는 모름지기 눈앞에 환하게 빛나는 하루를 공일로 만들지 말고 당일로 만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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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從可欲 至大而化矣(종가욕 지대이화의) 可欲之謂善 有諸己之謂信 充實之謂美 充實而有光輝之謂 大而化之之謂聖 聖而不可知之之謂神.《맹자》(하고자 할 만한 것을 선이라고 말하고, 자기에게 있는 것을 믿음이라고 말한다. 충실한 것을 아름다움이라고 말하고, 충실해서 빛남이 있는 것을 크다고 말하고, 커서 변화한 것을 성스러움이라고 말하고, 성스러워서 알 수 없는 것을 신령함이라고 말한다.)
▸李用休(이용휴. 1708~1782) 조선 후기 문인. 본관 여주驪州. 자 경명景命, 호 혜환재惠寰齋. 실학파의 중심인물인 성호星湖 이익李瀷의 조카로 가학家學을 바탕으로 문학 활동에 참여한 성호학파의 대표적 문인. 저서에 《탄만집𢾡𢿜集》, 《혜환시초惠寰詩抄》. 《혜환잡저惠寰雜著》 등이 있다.
18세기 연암 박지원과 쌍벽을 이룬 문단의 거목(巨木) 惠寰 李用休(혜환 이용휴:1708~1782)는 좀 생소한 인물이지만 그의 가계를 보면 이해가 빠르다. 그의 본관은 여주(驪州)이며 당색은 남인(南人)으로 장희빈 사건에 연루된 백부 李潛(이잠)이 장살(杖殺)되면서 집안이 하루아침에 몰락했다. 玉洞 李漵(옥동 이서)가 숙부, 막내 숙부는 실학자 星湖 李瀷(성호 이익)이다. 『擇里志택리지』를 쓴 李重煥(이중환)이 조카이며, 조선의 천재 李家煥(이가환)은 아들이다. 그가 제자 신 군(申 君)을 위해 남긴 ‘당일헌기(當日軒記)’는 하루의 의미를 설파한 명문으로 꼽는다.
사람이 오늘이 있다는 것을 모르면서 세상의 도리를 그르치게 되었다. 어제는 이미 지나갔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으니 하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오늘에 있을 뿐이다. 지난 과거는 다시 돌이킬 방법이 없고 미래는 3만6천일이 계속 이어져 오더라도 그날에는 각기 그날에 마땅히 해야 할 것이 있으니 진실로 다음 날로 미룰 만한 여력이 없다.
自人之不知有當日而世道非矣 昨日已過 明日未來 欲有所爲 只在當日 已過者 無術復之 未來者 雖三萬六千日相續而來 其日各有其日當爲者 實無餘力可及翌日也
제자 申 君은 총명했으나 배움에 힘 쏟기보다는 친구들과 놀기를 좋아했다. 혜환은 그의 장래가 안타까워 다음의 가르침을 전했다.
“하루가 쌓여 열흘이 되고, 다시 한 달이 되며, 일년이 되네~지금 신 군은 수양하고자 하는 자로 그 공부가 오직 오늘에 달려 있을 뿐 내일을 말하지 않는다~자네는 모름지기 눈앞에 환하게 빛나는 이날을 헛된 날로 만들지 말고 오늘로 만들게”
積爲旬而月而時而歲成~今申君欲修者 其工夫惟在當日 來日則不言~君須以眼前之昭昭者 不爲空日而爲當日也
혜환은 오늘의 의미에 대해 깊은 통찰을 보여주었다. 인간이 제어할 수 있는 힘은 오직 현재와 오늘 뿐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한편의 문장을 통해 생생함을 더했다. 결국 우리는 오늘을 살뿐이다. 오늘 불행하면서 내일의 행복을 말할 수 없으니 행복을 유예하지 않아야 한다. 내일의 근심 걱정이 오늘의 행복을 갉아먹어서는 안된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천하에 가르칠 수 없는 나쁜 말로 날을 없애는 ‘소일(消日)’을 꼽았다(天下有二字惡言之不可訓者 卽消日是也)
공지영의 소설 『즐거운 나의 집』에는 “마귀의 달력에는 어제와 내일만 있고, 하느님의 달력에는 오늘만 있다”라고 했다. 곧 하느님의 달력은 살아있는 현재 오늘이니 여기에 충실하라는 뜻이다. 어제는 죽어 버린 오늘이고, 내일은 오지 않은 오늘이다. 故 법정 스님은 하루를 더 촘촘하게 살 것을 요구했다. “이 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 이런 순간들이 쌓여 한 생애를 이룬다.”
배우 김혜자씨가 제 55회 백상예술대상 수상 소감이 화제다. 식장 내 인사를 넘어 일상에 지친 현대인에게 위안과 용기를 선사했다. 온 국민이 기립 박수했다. 인생의 깊이와 연기의 관록이 묻어난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