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해야 할 가까운 곳도 많은데 하필이면 그 먼 소록도까지 가느냐고 가끔 누군가 물어본다. '누구나 가까운 곳으로만 가려 하고, 멀다고 해서 외면한다면 거긴 가끔씩이라도 누가 관심을 가져주고 들여다 봐 줄까요?'하고 대답하지만, 내게는 또 다른 대답이 있다. '그곳은 내 고향입니다. 먼 곳에서도 봉사하러 가는데 어떻게 내가 가지 않을 수 있겠어요?'
11월 1일부터 3일까지 소록도에 난방비와 천정 수리비를 전해드리고 전체 주민 효도잔치를 열어 드리고 돌아왔었다. 천정 수리비를 200만원 전해드렸는데, 기술자들을 부르자니 또 그만큼의 인건비가 나갈 것 같다고 한다. 인건비를 절약하기 위해 맥가이버한님과 대한민국님을 비롯해서 강나루목사님과 백순정님이 21일 날을 잡아 소록도에 내려가기로 했고, 나눔님이 인솔자로, 큰샘물님이 봉사자들 식사를 위해 정자씨와 혜진이까지 데리고 가기로 했다고 한다. 지난번에도 며칠동안 집을 비워 남편과 아이들에게 고맙고 미안했는데, 또 가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도 가고 싶어요, 하나님' 단지 이 말뿐인 기도였다. '가고 싶어' 남편에게도 단지 이렇게만 말하고 말았다. 잘 다녀오라는 말이 남편에게서 의외로 쉽게 나왔다. 21일 주일예배를 드리고 출발했다. 아침부터 갑자기 작은아이가 열이 심하다. 해열제를 먹여도 금방 떨어지지 않아서 애만 태우다가 교회 사모님께 맡겨두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떼었다. '저는 하나님의 일을 위해 가겠습니다. 아이를 위한 제 몫은 하나님께 맡기겠습니다' 어제 밤늦게까지 먹은 음식이 체한 것 같다. 사모님과 집사님이 손과 발을 따주셨다고 한다. 먼저 출발한 공사팀은 마지막 배로 소록도로 들어가서 이것저것 공사할 준비를 하고, 우리는 늦은 시간에 녹동에 도착했다. 나눔님과 큰샘물님은 따로 주무시게 하고, 정자씨와 혜진이를 데리고 친정 집으로 갔다.
22일 아침, 봉사조가 소록도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막내 동생이 입원해 있는 병원에 잠시 들렀다가 소록도로 들어갔다. 나눔님께 도착보고를 하고 공사중인 예배당으로 갔더니, 천정에 낡은 합판을 교체하고 2층 중간에 창고처럼 쓰던 공간을 지저분하지 않게 막는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다른 분들은 다들 아는 분들이었고, 톱질을 하고 계시는 평범한 목수처럼 보이는 분이 강나루 목사님이셨다. 며칠 전에 다리를 다쳐서 절뚝거리면서 일을 하고 계셨다. 선배 목수이신 예수님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분이라 그런지 많이 닮아 보이셨다. 재료 구입을 위해 급하게 강대시 장로님과 함께 녹동에 다녀와야 할 일이 생겼다. 선착장에 나왔는데 낯익은 사람이 배에서 나오고 있다. 온다는 말도 없었던 사람, 반가운 얼굴 무화과님이다. 녹동에 다녀오니, 예배당 집기들은 모두 밖에 나와 있고, 바닥에는 비닐과 포장으로 덮여있고, 낡은 합판으로 되어 있는 천정에 페인트칠이 한창이다. 맥가이버한님과 무화과님이 입은 몸뻬바지가 일품이다. 소록도 동성교회의 이용하 집사님이 합류했다. 60평 성전 천정에 90센티 간격으로 두꺼운 졸대들이 붙어있다. 한칸한칸 롤러를 이용해 페인트를 칠하고 사이사이 콤프레샤로 페인트를 뿌리는 작업이 저녁 먹고도 계속 되었다. 저녁은 녹동에서 사 온 굴을 구워서 밥과 함께 먹었다. 다섯 명 일하는데 커피가 두 주전자 나가고, 빵과 음료수가 간식으로 준비되었고, 자정이 되어서 라면을 끓여 드렸다. 한 시간쯤 눈을 붙였을까? 새벽 두시부터는 성도들이 기도하러 올라오시는데 교육관으로 안내되어 예배를 드리고, 다섯시 새벽예배가 끝나면서 천정 페인트 작업도 끝이 났다.
23일, 일이 많아서일까? 늦은 시간까지 잠도 못 자고 일찍들 일어나셨다. 아침 식사 후 벽면 페인트 작업이 계속된다. 대구의 어느 교회에서 많은 분들이 동성교회를 방문해서 예배를 드리고 도시락을 준비해 와 성도들과 함께 식사를 하셨다. 마당에서 드려지는 예배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잠시 일이 중단되었다. 남자 분들은 중앙공원과 생체시험실, 감금실, 수술실, 식량창고, 화장터 등을 돌아보며 소록도를 알게되는 시간을 가졌고, 큰샘물님과 나와 혜진이는 교회 앞에 있는 귤을 몇 박스 땄다. 제주감귤보다는 약간 신맛이 들었지만, 바닷바람 맞고 자란 귤이라 향이 기가 막히다. 막간을 이용해 언니와 나는 교회 입구에 서있는 커다란 호랑가시나무(빨간 열매가 달린 트리 나무)에 몇 시간 동안 트리를 꾸몄는데 어디서 잘못되었는지 불이 들어오지 않아, 더 이상의 트리 작업을 아쉽게 중단했다. 대구 분들이 돌아가시자, 벽면에 흰 페인트칠을 하고, 벽과 천정이 이어진 부분에 몰딩 작업, 벽면의 아래 부분에는 판넬을 붙이는 작업이 진행되고, 몰딩으로 마무리하는 작업이 새벽까지 계속 된다. 빵과 과일, 커피로 간식을 하고, 강덕수 목사님이 주신 돈으로 녹동에서 푸짐하게 회를 떠 왔다. 나눔님은 어제 도착하자마자 고장난 강대시 장로님의 컴퓨터를 손보기 시작해서 꼬박 이틀만에 완벽하게 고쳐놓으셨다.
24일, 새벽예배를 드린 후에 나눔님이 느닷없이 일을 또 벌이셨다. 동성교회 성도들에게 저녁 식사를 대접하자는 것이다. 예배당에서는 마무리 정밀 작업을 해야하는 관계로 한 쪽에서 낡은 전기를 교체하고 손보는 공사가 시작된다. 강덕수 목사님이 수요예배를 위해 먼저 소록도를 나가시고, 남은 인원으로 공사가 계속 된다. 언니와 나는 갑자기 비상이 걸렸다. 동성교회 집사님이 가져오신 호박으로 해산물을 사다가 칼국수를 끓이자고 하신다. 그런데 반찬이 김치 한 가지? 너무 빈약하지 않나 싶은 마음에 얘기했다가 반찬 몇 가지 더 준비해서 아예 밥을 해드리자는 결론에 이르렀고, 50인분 정도의 식단이 짜여졌다. 아침 식사를 간단하게 하고, 언니와 이용하 집사님과 함께 녹동에 나가 장을 봐다가 낮 시간에 수요예배를 드리고, 네시에 시작되는 저녁 식사시간까지 LA갈비찜, 잡채, 과일샐러드, 김치, 꼬막, 떡, 미역국... 등 아홉 가지 반찬을 정자씨와 혜진이 손까지 거들어서 만들었다. 소록도에 봉사 온 고등학교 학생들이 함께 식사를 하고 설거지를 거들었다. 천정에서 1미터 이상 내려온 형광등을 모두 걷어내고, 새로 나온 절전형 형광등으로 교체하는 작업을 했다. 천정의 구멍을 메우는 마지막 작업을 끝내고, 청소까지 열두시가 넘어 끝이 났다. 내일 아침에는 철수해야 하는데... 다들 피곤했던지 새벽예배도 못 드리고 아침까지 잠이 들었다.
25일, 트리를 꾸미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다. 무화과님은 아직도 몸뻬를 벗지 못한 채 까만 페인트로 외벽과 대문 기둥의 글씨를 선명하게 칠하고 있다. 몇 사람이 붙어서 흰 빨래 줄에 은하수 줄을 색깔별로 감아 예배당 지붕의 십자가에서 약 5미터 정도 떨어진 아치형 문까지 7줄로 트리 장식을 했다. 예배당 지붕에 올라가신 맥가이버한님에게 용마루 깨진 것이 눈에 띄었다. 그 곳으로 비가 샜나보다. 슬레트와 못과 망치를 줄에 묶어 지붕위로 올려보내 깨진 용마루를 교체하고 나서야 모든 일이 끝났다. 남은 은하수 줄은 이집사님이 알아서 트리를 꾸미라고 맡겨 드렸다. 예배당 안을 들어가 보니 생각보다 더욱 아름답다. 낡은 합판으로 만들어진 천정이 하얗게 칠이 되어 있고, 벽과의 이음부분에는 체리색의 몰딩이 대어져 있다. 하얀 벽 밑에 파란 칠이 되어 있던 부분에는 체리색 판넬로 장식되어 있어 훨씬 아늑하고 고급스러운 성전이 되었다. 5일 동안 몇 분들의 손길이 배인 구석구석마다 자신의 몸을 태워 빛을 밝히는 촛불처럼 예수님의 사랑이 깃들어 있다.
아쉬워 눈물을 감추지 못하는 장로님, 집사님들, 동생리를 다 나오도록 군데군데서 손을 흔들어 배웅하시는 어르신들... 신정 때 다시 뵐 것을 약속하며, 그 때까지 건강을 기원 드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