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나라의 인문학자 숭실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이재홍 교수
얼마 전, 해외에서 포켓몬 고가 출시되자 언론은 온통 증강현실에 대한 보도로 들끓었다. 많은 매체가 관련 도움말을 위해 숭실대 이재홍 교수를 찾았다. 방송인터뷰나 신문 지면에서 그를 보며 의아한 것은 문예창작과 교수가 게임을 설명하고, 한국게임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는 것. 게임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과’의 세계인데…. 문예창작학과 교수와 게임의 교집합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궁금했다. ‘게임은 나의 사명감’이라 말하는 숭실대 이재홍 교수를 만났다.
취재 김지민 리포터 sally0602@naeil.com 사진 이현준
게임에 대한 나의 지식은 해마다 돌아오는 아이 생일과 크리스마스, 어린이날에 선물을 준비하며 함께 성장했다. 게임보이, 닌텐도 위는 물론 플레이스테이션 시리즈를 섭렵하며 나날이 정교해지는 게임의 세계가 놀라웠다. 얼마 전 속초에 다녀온 지인이 휴대폰 속의 포켓몬스터를 보여줬다. 이젠 화면 속의 게임이 세상 밖으로 나오는 세상이 됐나 보다. 숭실대 이재홍(57) 교수에게 화면 밖 세상으로 나온 게임에 관해 물었다.
상상의 세계에 불가능은 없다
사람은 누구나 상상의 세계를 기웃거립니다. 가상현실이나 증강현실도 상상이 현실화된 것이지요. 영화 <아이언 맨>에서 주인공 토니 스타크의 실험실 허공에 온갖 정보가 떠다니고, 허공에서 입체 도면을 제작하고 로봇을 만들던 장면을 기억하시나요? 처음 그 장면을 봤을 때는 과연 저런 세상이 있을까 싶었는데 불과 몇 년 만에 그런 세상이 현실이 됐어요.
가상현실(VR, Virtual Reality)은 고해상도의 3차원 이미지를 만든 뒤 그 영향을 볼 수 있는 특수한 고글을 끼면 마치 내가 그 세상에 존재하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안경을 쓰는 것만으로 놀이 공원의 롤러코스터를 타거나 스페인에 있는 가우디의 건축물들을 둘러 볼 수 있지요. 포켓몬 고로 관심을 끌고 있는 증강현실(AR, Augmented Reality)은 가상현실과는 조금 달라요. 카메라를 통해 보이는 현실에 가상의 포켓몬이 등장하는 것이 증강현실입니다. 가상과 현실을 동시에 체험할 수 있는 특징이 있어요. 가상현실과 증강현실 모두 ‘콘텐츠’가 가장 중요한 핵심이에요. 그것을 통해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느냐는 것이죠. 그런 측면에서는 현실과 가상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증강현실이 더 많은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포켓몬 고가 혁신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고요.
포켓몬 고 열풍의 원인, 증강현실기술 +α
‘피카츄 라이츄 파이리 꼬부기 버터플 야도란 피존투 또가스. 서로 생긴 모습은 달라도 우리는 모두 친구’로 시작하는 포켓몬 만화의 주제가를 기억하는 세대는 20~50대까지 폭이 넓어요. 포켓몬 고는 포켓몬 만화를 기억하는 많은 이들의 향수를 자극했어요. 지금의 10대들은 새롭게 진화한 포켓몬들을 만나고요. 가족이 함께 즐기는 게임으로 재탄생한 것이지요.
단순히 몬스터를 포획하는 것이 목표인 사람도 있겠지만 많은 사람이 포켓몬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어요. 쉽게 말하면 사람들이 ‘포켓몬 게임을 해야 하는 이유’가 이미 오랜 시간 만들어진 포켓몬의 이야기 안에 있는 거죠. 거의 무한한 포켓몬 캐릭터들도 당연히 큰 역할을 했고요.
게임의 순기능, 이야기에서 키울 수 있다
우리나라는 인터넷 게임의 선두 주자이지만 ‘스토리’의 중요성에 관한 인식은 아직 부족한 편이에요. 한 예로 ‘앵그리 버드’는 새를 발사해서 돼지를 잡는 단순한 게임이지만, 돼지를 잡는 이유가 분명합니다. 바로 돼지가 알을 훔쳐가기 때문에 ‘못된 돼지’를 혼내고 알을 지키는 목적이 있기에 적극적으로 게임에 참여하죠. 반면 애니팡은 같은 동물 세 마리가 붙으면 터지면서 점수가 쌓이지만 왜 세 마리를 붙여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어요. 그 차이가 앵그리버드는 세계적인 게임이 되고 애니팡은 국내용 게임이 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어머니들은 게임의 중독성이나 과다한 아이템 구매에 대한 염려가 많으시지요? 저도 중2 아들을 키우고 있어서 그 마음을 이해합니다. 아이들이 즐기는 많은 게임이 시작은 무료지만 게임 단계를 넘어서려면 아이템을 구입해야 하는 구조로 되어 있어요. 그러다 보니 어머니들이 걱정하는 일이 생기죠.
제가 가장 좋아하고 지금도 계속하고 있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rld of Warcraft)라는 게임이 있어요. 처음에는 만렙(한자 찰 만(滿)과 영어 레벨(Level)의 합성어로 레벨 시스템이 적용된 캐릭터나 아이템, 기술 등이 최대 레벨 구간에 달해 최대치로 성장한 것)에 이를 정도로 열심히 했어요. 많은 게임이 싸움에서 이겨 힘을 키워야 레벨을 키울 수 있는 반면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는 숲 속에서 약한 동물을 구하거나 퀘스트(게임 속에서 이용자가 수행해야 하는 임무나 특정 행동)만을 수행해도 점수가 올라가요. 미리 요금을 내고 사용하니 아이템 구매를 위해 따로 비용을 지불해야 할 필요가 없어요. ‘놀이’라는 게임의 목적에 충실한 거죠.
앞으로 만들어질 증강 현실 게임에 공익적 요소를 더하면 아이들이 게임을 통해 선행과 배려를 배우고 게임의 순기능을 강화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게임은 인문학의 집산지
제가 게임에 관심을 두고 특히 게임에서 스토리가 중요하다고 깨달은 것은 일본 유학 시절이었어요. 어릴 때부터 문학에 관심이 많았고 백일장에서 장원도 여러 차례 했지만, 집안 사정으로 취업이 잘되는 전자공학과에 진학했어요. 문학도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결국 문학을 공부하는 자리로 돌아왔죠. 국문학을 공부하다가 문학 속의 문화에 관심이 생겼고 일본 유학시절에는 일본의 문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을 접하면서 디지털미디어 시대가 다가오고 있음을 몸으로 느꼈어요. 오락의 개념이 더 크던 디지털미디어에 문화적인 요소들이 점점 필요해질 것이라는 생각에 디지털미디어에 문화를 정착시키는 본격적인 연구와 공부를 시작했어요.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디지털미디어 문화가 인문학의 가치를 인정할 만큼 성숙하지 않았거든요. 안타까웠죠. 우리나라에 처음 게임시나리오 학과를 만들고, 서강대에 게임교육원을 창설하기도 하고 참 열심히 노력했어요. 지금도 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인문학 공부와 인문학으로 무장한 스토리를 강조하죠. 게임은 기술도 중요하지만, 그 기술을 포장하는 것은 스토리거든요.
예를 들어 포켓몬의 몬스터 종류는 거의 무한합니다. 게다가 그 캐릭터들은 저마다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어요.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포켓몬의 몬스터들은 중국의 신화집인 산해경에 나오는 귀신이나 도깨비, 일본의 전통 도깨비들 등 다양한 문화원형에서 캐릭터를 가져왔어요. 거기에 사람의 상상을 더 한다면…. 이처럼 인문학적 바탕은 게임에서도 엄청난 잠재력을 발휘합니다.
게임 스토리텔러, 상상력만 풍부해도 충분할까?
하하하, 실망을 드려 미안하지만 ‘아니’라고 말씀드립니다. 모든 명작의 첫 명제는 보편성입니다. 언어도 문화도 다른 외국의 문화가 시대, 지역에 관계없이 명작이라고 인정받는 이유는 모든 이가 공감하는 보편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에요. 상상력만으로는 보편성을 만들 수 없어요. 그래서 ‘인문학적 독서’가 필요한 것이랍니다.
책 읽기를 싫어한다면 한 가지 팁을 드릴게요. 모든 이야기에는 인물 사건 배경이 있어요. 그리고 한 작품 속에서 모든 요소는 상호작용을 하죠. 이 ‘상호작용’에 관심을 두고 읽으면 책 읽는 것이 흥미로워진답니다. 여기에 자신만의 창의력과 상상력을 더해가며 새로운 이야기의 기본을 만들어가는 것이랍니다. 멍 때리는 시간도 나쁘지 않아요. 탄탄한 인문학적 배경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감성과 시각을 갖춘다면 좋은 작가가 될 수 있습니다.
이 교수는 가상현실 증강현실 사물인터넷 등 많은 기술의 발전으로 게임이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말한다. 앞으로는 게임의 영역이 더 넓어지고 삶을 이롭게 하는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고.
헤어지기 전 그의 꿈을 물었다.
“게임의 순기능을 키우는 것이 나의 사명이라면 글은 여전히 돌아가고 싶은 나의 고향이에요. 지금은 학생을 가르치고 게임이 건전한 문화로 정착하도록 해야 할 일이 많지만 언젠가는 멋진 판타지 소설을 쓰고 싶어요.
미즈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