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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륜산(頭輪山703m)
<대흥사에서 바라본 두륜산 전경>
도립공원 두륜산(頭輪山703m)은 그 이름이 능선으로 한 바퀴 빙 둘러 감싸 안은 것 같다 해서 두른 산을 한자표기로 음역한 것이 두륜산이다. 산줄기가 두 팔을 감싸듯하여 입구가 좁아 바람도 스며들 틈이 없고 두륜산 품안에 살던 새도 품을 떠나면 제 품속으로 찾아들지 못한다 할 만큼 출입구만 간신히 트였을 뿐이다.
해남 땅에서 가장 높은 정상 가련봉(佳蓮峰703m)을 중심으로 오른쪽은 노승봉(老僧峰685m,고계봉(高髻峰638m)으로 감싸고 왼쪽으로는 두륜봉(頭輪峰673m),도솔봉(兜率峰673m),연화봉(蓮花峰611m),혈망봉(頁望峰377m),향로봉(香爐峰469m))으로 감싸서 양 날개를 남서쪽으로 모아서 입구는 서쪽으로 터졌다. 정상 일대에 북서 계절풍이 서해상에서 곧장 온 산을 내리쳐 사람이 날아갈듯 한 심한 바람이 불어도, 구림리 두륜산 품속 속칭 장춘동(長春洞)계곡에 안기면 바람 한 점 없이 평온하고 따뜻하다. 그래서 장춘동 계곡은 봄이 길고 한편 단풍 절정기가 전국에서 가장 늦게까지 지속될 만큼 가을이 길다.
장춘동 계곡 깊숙이 대흥사가 있다. 사찰의 중심이 되는 대웅전은 도솔봉 곧 옛 이름 대둔산을 향하고 있다. 이 절의 옛 이름은 대둔사였다. 이 산에서 땅 끝 지맥이 달마산을 지나 해남반도 땅 끝 마을 갈두산에서 꼬리를 접는다. 정상에 서면 동서로 해안선이 산 아래까지 와서 닿는다. 영암 월출산과 장흥 천관산이 조망되고 맑은 날에는 무등산과 한라산도 보인다. 이른 봄 동백꽃을 비롯하여 향로봉아래 오도재(午道峙)부근의 왕벚나무(천연기념물 제173호)와 산 벚꽃 등 봄꽃이 다투어 피는 봄과, 내장산, 선운산과 더불어 호남의 3대 단풍명산인 두륜산은 단풍이 곱게 물드는 늦가을 11월18일 전후에 찾으면 좋다.
봄이 길다는 장춘동은 가을도 길드라
<장춘동 계곡의 단풍>
<해남의 명가 유선관>
두륜산 장춘동 계곡입구 대흥사주차장이다. 대흥사 집단시설지구 주차장에서 頭輪山 大芚寺(두륜산대흥사) 일주문 현판이 걸린 매표소를 약1,5km 들어간 새로 생긴 주차장이다. 11시40분 입산을 시작했다. 장춘동 계곡에 대흥사 진입도로가 나란히 있어 단풍 좋은 길로 들어가노라면 사람의 얼굴도 붉게 보이는 풍광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피안교를 건너기 직전 대문에 유선관(遊仙館)이란 간판이 걸린 길가 한옥이 유선관(遊仙館)이다. 주차장에서 대흥사로 들어가는 도로변 숲속에 있는 100여 년 전통을 자랑하는 전통 한옥 건물로 숙박과 음식을 겸하는 여관이다. 주말 관광 성수기 때는 수개월 전에 예약을 해야 할 정도로 이름난 집이다. 두륜산 관광을 위해 유선관에 머물다 가기도 하지만 유선관에 머물다 가기위해 두륜산 관광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한다. 내가 알기로 25년이 지나도록 변함없는 모습으로 규모를 키우지도 줄이지도 않았는데 이것도 또 하나 명가의 전통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피안교 주변의 풍경>
<두륜산 대흥사 일주문>
유선관 건물 앞을 지나면 바로 피안교(彼岸橋)다. 피안이란 불교에서 진리를 깨닫고 도달 할 수 있는 이상적인 경지를 말하는데 다른 말로 사바세계와 극락정토의 경계를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두륜산단풍의 백미가 이 주변에 있다. 이 다리를 건너면 입구매표소를 겸하고 있는 두륜산 대둔사 일주문보다 먼저 1975년에 건립된 두륜산대흥사 현판이 걸린 또 하나의 일주문이 나타나고 대흥사를 품고 있는 두륜산의 주요 봉우리가 한눈에 들어온다. 같은 산 같은 절인데도 두 개의 일주문의 현판 글씨 내용이 틀려 얼핏 혼란스럽다. 다시 반야교를 건너 일반적으로 천왕문이 있어야 할 자리에 두륜산대흥사라는 현판이 걸린 일주문 형태의 문에 들어서면 비로소 대흥사다.
<대흥사 전경>
대흥사(大興寺)다. 한눈에 명산대찰임을 느낀다. 다만 가람배치가 정돈되지 못한 느낌 또한 받는다. 처음 대둔사였을 적에 대웅전 등이 동향으로 건립되었는데 서산대사 입적이후로 다른 건물이 남향으로 지어지면서 이런 현상이 된 것이다. 대흥사는 진불암계곡과 만일암 계곡이 만나는 곳, 봄이 길어 속칭 장춘동(長春洞)계곡 그 중심에 있는 절이다. 전통사찰에 있어 대웅전은 그 절 중심에 위치한다. 대흥사 대웅전은 언덕아래 낮은 곳에 위치하여 절 가운데를 지나도 대웅전이 잘 보이지 않는다. 대웅전 방향은 동쪽으로 대둔산(大芚山; 지금의 도솔봉)을 바라보고 있다. 짐작컨대 현재 통신시설이 있는 대둔산 정상은 당시 군대가 주둔했던 것으로 보인다. 임진왜란 등 왜구들이 영산강(나주평야)과 금강(만경평야)을 거슬러 오르기 위해서, 해남 땅 끝 마을은 남해와 서해의 경계가 되고, 조수 간만의 차가 유난히 심하여 물결이 일면 파도소리가 울부짖던 곳,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鳴梁海戰)을 치루었던 울 돌(鳴梁)목을 돌아 이곳 해안을 지날 때, 그 선단을 감시하기 좋은 곳이기 때문이다. 대둔사라 이름 한 것도, 사찰의 중심 건물이 되는 대웅전의 방향을 대둔산 쪽으로 한 것도, 모두가 군사 전략적으로 호국사찰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그런 이유일 것으로 짐작된다.
<대흥사 전경>
전통사찰의 가람 배치는 대개 그 사찰의 중심부에 대웅전이 위치한다. 특이하게도 대흥사는 사찰 중심에 표충사가 있다. 일부 지도에는 흔히 대둔사와 표충사를 나란히 각기 다른 절(卍)로 표기하고 있다. 밀양 재약산 표충사(表忠寺) 경내에 사명대사의 사당인 표충사(表忠祠)가 있듯, 이곳 대흥사(大興寺) 경내에 서산대사의 사당인 표충사(表忠祠)가 있는 것이다. 이순신 장군의 사당이 있는 아산 현충사(顯忠祠)를 절 이름으로 알고 있는 오늘날 한글세대를 탓하기보다 문교정책이 문제다. 대둔사(大芚寺)는 대흥사(大興寺)의 옛 이름이고 표충사(表忠祠)옆에 서산대사의 호국정신을 기려 1978년 박정희 대통령의 특별지시로 건립된 서산대사 유물전시관이 건립되었다. 이후에 개축하여 이름을 바꾸어 현재의 성보박물관이 되었다. 성보박물관에는 대둔사 사적기와 서산대사 초상화와 그의 유품들이 보관되어 있다.
<서산대사의 사당 표충사 전경>
임진왜란 때 한양수복에 공을 세웠던 승병장 서산대사 휴정(西山大師 休靜1520~1604)이 관서지방 대표적인 명산 일명 서산(西山)이라고도 불렸던 묘향산(妙香山1909m) 보현사에서 승병활동을 하면서 오랜 기간을 보냈다. 그래서 그를 속칭 서산대사라 한다. 그의 제자 사명대사 (四溟大師 1544~1610) 에게 역할을 모두 맡기고 보현사 부속암자인 원적암에서 입적 했다. 임진왜란 때 대둔사에서 승병 활동을 하기도 했던 서산대사는 입적하기 전, 평소 제자들에게 의발(衣鉢)을 三災不入之處 (삼재불입지처)요 萬歲不毁之地(만세불훼지지)인 이곳, 두륜산 대둔사에 두라는 유언에 따라 이 절 표충사 성보박물관에 유품이 보존되어져 있다. 서산대사의 명성으로 인하여 대둔사는 중창불사를 거듭하여 크게 부흥되니 이름을 바꾸어 오늘날 대흥사가 되었다. 서산대사가 남긴 유명한 두 편의 선시
我 行跡(아 행적)
踏雪野中去 (답설야중거) 눈 내린 들판을 걸어갈 때는 不須胡亂行 (불수호란행) 그 발걸음을 어지럽게 하지마라 今日我行跡 (금일아행적) 오늘 걸어간 나의 발자국은 遂作後人程 (수작후인정) 반드시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느니라!
人生(인생)
生也一片浮雲起 (생야일편부운기) 삶이란 한조각 구름이 일어남이요 死也一片浮雲滅 (사야일편부운멸) 죽음이란 한조각 구름이 사라짐이라 浮雲自體本無實 (부운자체본무실) 뜬구름이란 본디 실체가 없는 것 生死去來亦如然 (생사거래역여연) 나고 죽고 가고 옴은 이와 같도다!
<북 미륵암의 마애불상>
오늘 표충사와 성보박물관은 문이 잠겨있어 들르지 못하고 표충사 앞 도로를 따라 올랐다. 동백 숲이 우거진 곳에 이정표가 보이는 곳에서 우측 100여 미터 거리 두륜봉 기슭 언덕배기에 일지암이 있다. 하산 길에 들리기로 하고 직진한다. 가파른 길을 올라 노승봉 아래 대흥사 부속암자인 북 미륵암(北彌勒庵)이다. 이 암자는 신라말기 작품인 마애여래좌상(磨崖如來坐像; 국보 제 308호)이 있다. 얼핏 그냥 지나치기 쉬운데 건물 안에 있다. 자연석에 새긴 부처로 참배객을 위해 마애불에 붙여지은 건물로 오래된 건물은 아닐 것 같다.다시 진달래 숲길을 따라 오심재로 오른다.
<두륜산정상 가련봉에서 건너다 본 노승봉 능허대>
오심재다. 고계봉과 노승봉을 잇는 능선에 있어 두륜산에서 오소재, 오도재와 더불어 비슷한 이름을 가진 같은 항열(行列)의 삼형제 고갯길 중에 하나다. 주변은 억새와 진달래군락지로 넓은 공터가 있어 단체로 쉬어가기 좋은 곳이다. 이곳은 동(정상 가련봉),서 (고계봉), 남 (대흥사), 북(오소재)등 사방으로 통하는 분기점으로, 대개 등산객들은 접근성이 좋고 입장료(문화재관람료)가 없는 북쪽 오소재에서 입산하여 올라오면 거리1,5km에 30여분이면 오심재까지 오를 수 있어 오소재 입산을 선호한다.
<노승봉 능허대 오름길>
오심재에서 동쪽으로 오르면 노승봉(老僧峰685m) 능허대(崚墟臺)이다. 이름 그대로 험준하고 가파른 암벽을 타고 오르는 천하장사도 네 발로 기어오르지 않고 두발로 서서 걸어 오를 수는 없는 길이다. 이와 같이 능허란 사람이 살아가노라면 위태위태한 험난한 인생길을 뜻하기도 한다. 노승봉 등, 하 로에 각기 계단과 밧줄이 걸려있는데 초보자는 겁을 먹을 정도로 긴장하기도 한다. 오심재에서 노승봉, 가련봉을 거쳐 만일재에 내려서기까지 약1km 구간이 두륜산에서 가장 난코스다. 비바람이 불거나 눈길일 때는 경험자라도 각별이 주의해야 한다. 험하고 까다롭기 때문에 거리에 비하여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 그만큼 산타는 재미도 있다는 이야기도 된다.
힘들여 오른 능허대는 마당만한 넓은 암반으로 이루어져 수십 명이 앉아 놀기도 좋고 그래서 정상 가련봉 보다 오히려 등산객들은 머무는 시간이 길다. 아래로는 아찔할 정도로 바위절벽인데 속이 후련할 정도로 조망도 좋다. 이곳에 서면 장춘동 계곡이 내려다보이고 동쪽으로 강진만과 서쪽으로 서해가 산 아래까지 와서 닿아있다. 오늘날 철 계단과 밧줄을 매달아 놓아도 오르기 쉽지 않는데 옛날에는 매우 힘들었겠다.
<노승봉 능허대에서 건너다 본 두륜산 정상 가련봉>
<정상 가련봉에서 내려다 본 강진만>
13시40분 두륜산 정상 가련봉(佳蓮峰703m)이다. 정상표지 석에 이름을 한글로 써놓아 어감 상 언뜻 명기의 이름 같기도 하고 측은하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알고 보면 전혀 다른 뜻으로 막 피어나는 아름다운 연꽃을 의미한다. 그것은 두륜봉 정상에서 가련봉을 쳐다보았을 때 정답이 나온다. 정상에서 사방을 둘러본다. 동쪽으로 해남반도와 장흥반도 사이에 있는 강진만을 내려다본다. 맑은 날에는 탐라 제주도가 보일정도로 조망이 좋은 곳이나 해남반도 삼면이 바다여서 해양성기후 영향으로 흐린 날이 많다. 강진만은 옛적 탐진강하구 강진포구에서 제주로 장삿배들이나 새로 부임하는 제주 성주들이나, 유배지로 떠나는 사람들을 태운 목선이 이따금 오가던 뱃길이다. 강진만을 벗어나면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망망대해, 집어 삼킬 듯 달려드는 파도를 해치고 어렵사리 도착한 제주도에서 육지와 전혀 다른 풍경에 다시 한 번 놀랐을 게다. 더 가까이는 두륜봉에서 동쪽으로 분기하는 투구봉 능선이 멋지다.
<두륜봉과 아래 만일재>
이제 하산길이다. 정상에서 만일 재까지는 자칫 바위 틈사이로 발목이 빠지기 쉬운 날카로운 바위 너덜길이다. 적설기 미끄럼이나 겨울철 바람이 많이 불 때는 안전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하는 구간이다. 이런 험로를 내려서면 가련봉과 두륜봉을 연결하는 만일(挽日)재다. 만일 재는 장춘동 계곡에서 햇볕이 가장 잘 드는 곳으로 이름난 만일암 터가 있어 이 고개를 만일 재라 한다. 이 고개는 가련봉과 두륜봉 사이에 개미허리처럼 잘록하여 아침 해가 뜨면 장춘동 계곡으로 잡아당기듯 햇살이 가득 들어간다. 오심재에서 능허대와 가련봉를 거쳐 여기까지 가장 험한 구간이 끝나고 바람도 한결 약해져서 만일재에서 점심 겸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이 많다. 여기서 만일암 터(挽日庵址)를 경유 장춘동 계곡을 따라 대흥사로 직진할 것인지, 두륜봉을 경유할 것인지 방향을 결정한다.
<두륜봉의 명물 구름다리>
만일재를 지나 철계단을 타고 올라 두륜봉의 명물인 속칭 구름다리를 거쳐 두륜봉(頭輪峰673m)정상이다. 여기서 두륜산정상 가련봉을 감상하기 딱 좋은 곳, 마치 연꽃이 막 피어나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남쪽으로 능선을 타고 30분 거리에 통신시설물이 있는 도솔봉(옛 대둔산)이 한결 가까이 보이고, 거기서 땅 끝 지맥을 따라가면 그림 같은 달마산(達摩山)을 지나 해남 땅 끝 마을 옛적 해안 봉수로 기점 봉수대가 있는 갈두산(葛頭山) 전망대까지 갈수가 있다.
<두륜봉 아래 진불암>
두륜봉에서 가파른 너덜 길을 내려와 동백 숲이 우거진 두륜봉 아래 차도를 만나면 진불 암(眞佛庵)이다. 바로 계곡으로 내려가면 대흥사이고 진불암 서쪽 능선을 하나 넘으면 일지암이다. 진불암에서 일지암 가는 길은 서쪽 북미륵암 가는 길로 접어들어 대나무를 걸쳐놓고 출입금지 판이 붙은 숲속에 건물하나가 보이는 아랫길로 진입해야한다. 진불 암은 지리산, 팔공산, 재약산 등 전국에 같은 이름의 여러 개의 진불 암이 있다. 허 응당 보우스님이 남긴 “진불 암” 시는 어느 산에 있는 진불 암인지를 나는 잘 모른다. 다만, 제주에서 순교 했다 하는 사실과, 삼나무라는 내용이 있어 지금 내가 선 이곳 암자일거라고 유추해 본다. 어느 암자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분명한 것은 산속에 있는 암자일 것이고 시가 그려내고 있는 풍경이 평화롭기 그지없질 않는가? 내 여기 두륜산 대흥사 진불 암에 왔으니 허응당 보우 (虛應堂 普雨1515~1565)스님의 시 한편을 읊어 보고나 가자!
眞佛庵 (진불암)
庵在雲重處 (암재운중처) 겹겹 쌓인 구름 속에 암자 있는데 從來不設扉 (종래불설비) 본래부터 사립문은 닫지 않았네 臺杉含晩翠 (대삼함만취) 축대 위 삼나무 늦 푸름을 머금고 庭菊帶斜暉 (정국대사휘) 뜨락의 국화송이 빗긴 해 띠를 두르고 木落經霜果 (목락경상과) 서리 맞은 나무열매 떨어지는데 僧縫過夏衣 (승봉과하의) 스님은 여름지낸 옷을 꿰매네! 高閑吾本意 (고한오본의) 고상하고 한가로움은 나의 본뜻이기에 吟賞自忘歸 (음상자망귀) 돌아 갈길 잊은 채 입 다물고 자찬을 하네!
<초의선사가 40년간 머물던 일지암>
두륜산 대흥사 일지암(一枝菴)이다. 두륜봉 아래 동백 숲이 우거진 이곳, 다승이라 불리는 초의(草衣1786~1866)선사가 40년 간 머물렀다는 암자다. 그는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1762~1836), 동갑나기 추사김정희(秋史 金正喜1786~1856)등과 교우했던 사람으로 겉모양은 승려였으나 스물다섯 연상의 다산으로부터 주역을 배울 만큼 행동은 선비였다고 한다. 한국의 다경(茶經)이라 일컫는 동다송(東茶頌)을 1837년에 저술하고 다선일미(茶禪一味)를 예찬했다. 그는 서산대사와 함께 두륜산의 양대 인물로 꼽힌다. 지금 여기 사는 사람에게 초의선사는 어디 갔느냐고 물어보아도 대답할 사람은 없겠지만, 절집 사람은 아무도 보이질 않고 해우소에서 나오는 등산객 한사람을 보았을 뿐이다. 그의 두 편의 시를 요사채 마루에서 두 다리 접고 앉아 쉬며 잠시나마 한가하게 사는 맛을 느껴본다.
歸鄕(귀향)
遠別鄕關四十秋 (원별향관사십추) 멀리 고향 떠나 어언 40년 歸來不覺雪盈頭 (귀래불각설영두) 돌아와서야 머리에 흰 눈 쌓인 줄 알았네 新基草沒家安在 (신기초몰가안재) 마을은 풀에 묻혀 집 있는 곳 사라지고 古墓苔荒履蹟愁 (고묘태황이적수) 옛 무덤엔 이끼 덮여 발자취만 서글퍼라 心死恨從何處起 (심사한종하처기) 마음 비웠는데 한은 어디서 일어나는고 血乾漏亦不能流 (혈건루역불능류) 피는 마르고 눈물조차 흐르지 못 한다네 孤丈更欲隨雲去 (고장갱욕수운거) 외로운 나 구름 흐르는 대로 또 가려 할제 已矣人生愧首邱 (이의인생괴수구) 아서라, 고향에 뼈를 묻는 여우보기 부끄럽구나!
閑居 (한거)
語稀無俗韻 (어희무속운) 말수가 적으니 허튼소리 없겠고 地僻靜鳴珂 (지벽정명가) 사는 곳이 치우쳐서 방울소리도 없다네 己矣靑春老 (기의청춘노) 그만두세! 청춘은 금방 늙고 悠哉好事過 (유재호사과) 은연중에 좋은 일도 멀리 지나가는 법 晴欄垂柳細 (청란수유세) 맑은 날 난간에는 수양버들 늘어지고 晩徑落花多 (만경낙화다) 저물녘 지름길에 낙화가 수북하여라 漸得安閑趣 (점득안한취) 점차 한가로운 정취에 평온 얻으니 開顔對薛羅 (개안대설라) 쑥대머리 얽힌 것 만나도 얼굴이 활짝 피누나!
<두륜산정상 가련봉에서 내려다 본 대흥사 전경>
일지암에서 찻길을 따라 미끄러지듯 내려와 다시 대흥사다. 서산대사로 인하여 유명해진 절이다. 그런데 표충사와 성보박물관은 아직도 닫혀 있다. 해남 두륜산의 동북방 강진 탐진강(耽津江) 하구에는 탐라(耽羅) 제주로 유배 갈 적에 이용하던 나루터가 있다. 그곳 다산선생이 18년 간 머물던 유배지 만덕산(萬德山408,6m) 다산초당 옆에 백련사(白蓮寺)가 있다. 다승 초의선사와 교우했던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1762~1836)선생은 그를 만나기 위해 두륜산을 몇 번이나 찾아왔던고! 인근에 이만큼 이름난 절이 없음을 그는 그래서 잘 알았겠다. 두륜사는 두륜산에 있는 절 곧 대흥사를 지칭한다. 다산의 탐진촌요 <제10수>에 있는 시 한편을 생각하면서 대흥사를 나왔다.
耽津村謠(탐진촌요)
蓮寺樓前水一規 (연사누전수일규) 백련사 누대 앞에 둥그렇게 비친 물결 春潮如雪上門榍 (춘조여설상문설) 봄이면 눈 같은 조수 문지방까지 오른다네 名藍總隸頭輪寺 (명람총예두륜사) 유명한 절 다해 봐야 두륜사가 으뜸이라 爲有西山御製碑 (위유서산어제비) 서산대사 공적기린 어제비가 있으니까!
<유선관 주변의 단풍>
대흥사를 나서 길을 따라 주차장으로 향한다. 두륜산 단풍은 내장산, 선운산과 더불어 호남의 3대 단풍명산으로 이름 난 걷기 좋은 장춘동계곡 숲길이다. 하지만 두륜산 단풍은 11월18일경이 단풍 절정기라서 아직은 조금 이른 편이다. 금년은 강수량은 부족했지만 다른 산은 대체로 태풍 피해가 없어 단풍이 좋았는데, 때 늦게 지난11월10일 필리핀을 강타한 초강력 태풍 하이 옌(중국 명: 海燕· Haiyan)의 영향으로 절정기에 이른 단풍잎이 다 떨어질까 염려했었다. 그러나 오늘 와서 보니 두륜산은 단풍이 아직 덜 들어 절정기에 이르는 다음 주까지는 볼만하겠다. 오늘 산행종료 20분전, 15시40분 주차장이다.
오늘 행로는 대흥사주차장~유선관~일주문~대흥사~북미륵암~오심재~노승봉능허대~정상가련봉~만일재~두륜봉~진불암~일지암~대흥사~유선관~주차장, 거리 9,5km, 정확히 4시간이다.
2013년 11월12일 화요일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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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두륜산의 행로9.5km여도 여간 험한 구간이죠 4시간이면
산행이 단련된 분의 걸음입니다. 맛깔스럽게 글을 써주신
산이좋아 님 재밋게 잘 감상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두륜산은 산이 낮지만 주 능선은 암능 길로 비교적 험하지요.
그래서 노승봉 등 하로에서 앞 사람들이 쩔쩔매는 바람에 4시간 걸렸지요.
빠른 사람은 3시간30분 거리입니다.
대흥사에서 바라만 보고,
정상에 올라가지 못했던 아쉬움이 있습니다.
풍경 좋습니다.
대흥사에서 오르지 못하시고 바라만 보셨다니,
저도 괜시리 아쉬움이 밀려드네요.
산행거리가 짧아 오를만 합니다.
봄, 가을에 기회를 마련 하시죠?
산이좋아님!!! 얼마나 산이 좋으셨으면 이름도 산이좋아로 하시고 ......
사진이 실제 같고 곁들여진 漢詩가 더욱 좋고
다녀오시고 이렇게 올려진 자료와 산행기는
가시려는 분들게는 길잡이가 되고 못간분들께도 좋은 감상이 됩니다.
저희도 나중에 자연인으로 돌아오면
둘이 산행을 가며 건강관리하며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저희도 산행을 좋아하고 랑군님은 업무로 산을 자주 갑니다.
항상 안전에 유의하세요.잘 보고갑니다.
금제님은 지금도 자연인이 아니십니까?
저는 산행경력 30년 가까이 됩니다만,
운전을 하는만큼 위험할 때가 있습니다.
지금도 늘 초보처럼, 처음처럼 산행을 하지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