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모임 4W
2023-11-26 No. 2023-48
카카오톡을 이용해서라도 꼭 구역 식구들과 말씀을 나누고,
기도제목을 나누고, 서로 축복하며 기도하십시오!
▣ 환영합니다! (Welcome)
1. 구역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합시다.
2. 지난 한 주간 동안 세겹줄 모임을 했는지 “꼭” 확인하십시오.
3. 지난 한 주간 동안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감사할 만한 일이 있습니까?
4. 지난 한 주간 동안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했던 일이 있습니까?
5. 가장 기억에 남는 당신의 소원은 무엇입니까?
▣ 찬양합니다! (Worship)
· 찬송가 287장 “예수 앞에 나오면”
· 찬송가 288장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 찬송가 289장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거룩하고 정결한 삶을 살고자 결단하는 찬양을 부르셔도 좋습니다.
▣ 말씀을 사모합니다! (Word)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
(빌립보서 2:15-18)
우리는 관점의 차이에 관해 잘 알고 있습니다. 가장 확실한 예는 아무래도 정치적 성향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각각 다른 뉴스 출처로 소식들을 접하면서 성별, 세대별, 직군별 갈등이 전혀 해소되지 못하고 갈수록 심화되는 것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신앙생활을 보는 관점 역시 엄청난 차이를 가져옵니다. 최근 우리 교회에는 자꾸 자기중심적 신앙생활을 극복할 것을 반복해서 말씀하시는 듯한데, 오늘의 성경에서도 역시 비슷한 도전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습니다.
1. 우리의 그리스도인 됨은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급격한 세속화 시대에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드러내는 데 적잖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주어진 선교적 사명이 더 움츠러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우리 스스로 “나나 잘 믿자”는 마음으로 신앙생활하게 됩니다. 이런 우리의 생각은 적어도 오늘의 성경을 보면 완전히 잘못된 생각입니다.
바울은 12-14절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자원하는 마음으로 항상 말씀에 복종하여 경건한 삶을 살되,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게 하라고 합니다. 오늘의 성경은 그렇게 하는 이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는 빌립보 교인들이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이 자랑할 수 있는 성도가 되고, 그로써 서로 기뻐하자는 것입니다.
15절에서 바울은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라고 합니다. 바울은 이 절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라고 규정합니다. 여기에서 ‘어그러지다’라는 말은 본래 ‘마르다’라는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잔뜩 말라 비틀어진 나무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거스르다’는 말은 ‘왜곡하다’ ‘오도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이 두 가지 특징은 우리 시대에도 고스란히 적용됩니다. 포스트모던 시대를 지나면서 절대적인 기준을 부정하고 나니, 무엇이든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돼버렸고, 모든 일에 사람들은 아전인수격으로 자기 주장만 합니다. 그런 과정에서 명백한 사실마저도 구부러지고 뒤틀어지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세상 가운데 사는 우리에게 기대되는 것은 “흠이 없고 순전하여...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그들 가운데 빛들”이 되는 것입니다. ‘흠이 없고 순전하다’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복종하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도달하게 되는 삶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적극적으로 복종하는 삶을 살게 되면 자연스럽게 세상 사람들과는 구별될 수밖에 없는데, 그 구별이 우리를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이자 세상 가운데서는 ‘빛들’과도 같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성경은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의 삶의 특징을 ‘믿음’ ‘소망’ ‘사랑’으로 제시하고 있는데(고린도전서 13장), 이 세 가지 특징이 잘 드러난 사람은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마치 캄캄한 밤 바다의 등대처럼 ‘빛’이 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즉, 우리가 아무리 “나나 잘 믿자”는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한다 해도, 우리가 정말 ‘잘 믿으면’ 우리는 자체가 발광체가 되어 빛을 발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세상에서도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아예 드러내놓고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요? 어차피 세상이 우리를 그리스도인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다면, 흠이 없고 순전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도록 더욱 확실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고 사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요? 그런 빛다운 삶을 통해서 우리 삶의 기준인 “생명의 말씀을 밝혀”(16절) 더 많은 사람들이 말씀에 이끌릴 수 있도록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1) 당신은 주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임을 밝히는 데 주저하지 않습니까?
2) 당신의 삶이 어느 정도가 되면 하나님께서 당신을 ‘흠이 없고 순전한 하나님의 자녀’라고 인정하실까요?
2. 말씀에 입각한 그리스도인의 수고는 반드시 그 보상을 받습니다.
바울은 이처럼 성도에게 흠이 없고 순전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세상에 빛을 발함으로써 생명의 말씀을 밝힐 것을 주문한 다음, 사역자로서의 자신의 소망을 피력합니다.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이 있게 하려 함이라”(16절). 누구나 다 자신의 수고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기대합니다. 바울이 예수님께 부름 받아 그분의 말씀을 전파하는 전도자요 선교사로서의 사역에 최선을 다하면서도 아무런 보상도 기대하지 않았을까요? 사역자가 기대하는 보상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주시기로 보장한 것으로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영원히 주와 함께 있는 것이고, 둘째는 사람들이 줄 수 있는 것으로 사람들이 스스로 흠 없고 순전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사역자가 주 앞에 섰을 때 자신의 사역의 수고의 열매들인 성도들을 주 앞에 자랑할 수 있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바울 또한 이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사역의 보상으로써 금전이나 명예나 성도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 등등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사역의 대상인 성도가 자신이 가르치는 말씀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을 대가로 기대했습니다. 이런 기대는 지극히 소박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사역자로서는 이런 기대보다 더 큰 것을 기대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기도 합니다. 왜냐 하면, 바울 스스로도 인정했던 것처럼 사역자 자신이 먼저는 죄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어, 영원한 변화된 신분으로 살 수 있게 됐고, 그렇기에 지금까지 한 일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표대를 향해 전쟁에 임하는 군인처럼, 경기에 임하는 선수처럼 집중해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도 당연한 일을 하면서 그에 대한 어떤 보상을 기대하지는 않습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이니 할 따름이지요! 사역자도 전도를 하든, 선교를 하든, 말씀을 가르치든, 봉사를 하든, 구제를 하든, 무엇을 하든 그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의무를 감당하면서 무슨 보상을 기대한단 말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수고가 헛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또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바울도 아주 소박한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인데, 성도들로 인해 주 앞에서 자랑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역자의 수고는 반드시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가 가르치는 것이 ‘구원의 능력’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정말 씨앗 같습니다. 씨앗을 보면, 너무나도 사소해 보입니다. 훅 불면 날아가버려 찾기도 힘들 정도로 가볍고 작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일단 땅에 심어지고, 물을 촉촉히 먹고 나면, 무서울 정도로 빠르고도 끈질기게 수분과 양분을 빨아들여 스스로를 변화시킵니다. 뿌리들이 내리기 시작하고, 줄기가 솟고, 잎사귀가 나며, 열매를 맺습니다. 그것은 씨앗 안에 하나님께서 담아두신 생명의 법칙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마음이라는 밭에 일단 뿌려지기만 하면, 이 말씀의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키워내고 잎사귀를 내고 열매를 맺게 하여, 한 사람이 예수님을 구주로 시인하고 또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여 그분의 말씀에 따라 살면서 완전히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됩니다. 그 사례들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아닙니까? 우리가 말씀을 온전히 전하기만 한다면, 말씀 그 자체가 가진 능력으로써 반드시 한 사람을 구원하고 변화시킬 것입니다. 말씀에 입각한 그리스도인의 수고는 반드시 그 보상을 받게 돼 있습니다.
3) 당신이 그리스도인으로 성장/성숙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분은 누구입니까?
4)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믿고 일단 당신이 말씀의 씨앗을 뿌려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3. 그리스도인 됨은 더불어 기쁨을 누리게 합니다.
바울은 성도들에게 권면한 다음 빌립보서의 중요한 주제 중의 하나인 ‘기쁨’을 강조합니다.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17-18절). 바울의 가르침을 받은 빌립보 교인들이 “믿음의 제물과 섬김,” 즉 믿음으로 행하는 여러 가지 헌신과 섬김을 다하고, 그 위에 자신의 모든 삶을 – 생명까지 포함하여 – 전제(포도주 등을 부어 드림으로써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로 드릴지라도 자신은 기뻐할 것이라고 합니다. 주님이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바울 역시도 자신의 생명까지도 성도를 위하여 희생하는 것을 기쁘게 할 수 있겠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자신만 기쁜 것이 아니라 빌립보 교인들 역시 함께 기뻐하라고 합니다.
우리를 위해 수고하던 사역자가 우리 때문에 죽는데 기뻐할 수 있을까요? 바울은 기뻐하라고 합니다. 바울이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바로 성도가 사역자에게 주 앞에 내놓을 수 있는 자랑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다운 삶으로써 생명의 말씀을 밝히는 성도들이 있다면 어떤 사역자가 그분들을 위하여 더욱 힘써 일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성도를 위해 최선을 다하다 하나님께서 부르신다면 그것은 사역자에게 그보다 더 영광스러운 소천이 있을 수 있을까요? 그런 면에서 성도 역시 사역자와 함께 기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기쁨은 결코 세상이 줄 수 있는 기쁨일 수가 없습니다. 오직 같은 성령을 마음에 모심으로써 서로 연합한 성도만이 느낄 수 있는 기쁨이요,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주실 수 있는 기쁨입니다. 이 기쁨 때문에 우리는 오늘도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 살면서도 흠 없고 순전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생명의 말씀을 밝히는 삶을 또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5) 당신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동안 힘들어도 기쁨을 경험하신 적 있습니까?
▣ 함께 사역해요! (Work)
1. 실천과제:
당신이 자주 교류하는 사람들 가운데 예수님을 아직 모르는 사람들과 교제하면서, 당신이 어떻게 흠 없고 순전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생각해보십시오. 그리고 실천하면서 그분들 역시 예수님을 믿을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씀의 씨앗을 떨어뜨려 보십시오.
2. 기도제목 나눔
· 구역 가족과 각 가정의 기도제목을 나누고 함께 기도합니다.
· 반복되는 기도제목이라도 무시하지 마시고, 함께 기도합니다.
· 세겹줄 모임별로 서로를 위해 기도한다.
3. 교회를 위한 기도 (주보 2면의 기도제목으로 함께 기도해요.)
4. 선교사/선교기관을 위한 기도 (담당 선교사/기관은 주보 3면 참조)
5. 전도대상자들을 위한 기도
· 전도하기 위해 접촉하고 있는 사람이나 혹은 전도하고 싶은 사람들의 이름을 목록으로 만들어 구역에서 함께 나누고 기도합니다.
· 한 주간 동안 전도대상자들을 만나고 전도를 시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