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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행자의 서원』 중 「주세분」-- 반야법문의 실천방법으로 큰스님께서는 보현행원을 일러주십니다
~~~선지식이 이 땅에 머무시올 때 이 땅에는 안목이 있는 것이며, 선지식이 이 땅을 떠났을 때 이 땅은 지혜의 눈을 잃으옵니다. 선지식이 아니 계시올 때 중생들은 무엇을 인하여 기나긴 미망의 밤을 헤어날 수 있사오리까.~~~
금주의 법어--남전화상의 평상심 법문과 반야바라밀
금주의 법사--불광법회 선덕 혜담스님
존경하고 사랑하는 불광법회 불광사 법등가족 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 또한 오늘 전국에서 유튜브를 통해 오늘의 불광법회를 함께 하시는 사부대중 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 각화사 아래 동네가 학이 지나가는 동네라 했는데 아침에 오다보니 벼가 누렇게 익어 있는 걸 보면서 제가 농부가 아니지만 기분이 좋았습니다. 풍요롭고 풍성한 이 좋은 계절 가을에 형제 여러분의 가정에 부처님의 자비 위신력이 항상 함께 해서 집안 모든 사람이 건강하고 하시는 모든 일 성취하기를 축원해 마지 않습니다.
오늘 드릴 말씀은 법회보에 나와 있는 것처럼 '남전 화상의 평상심 법문과 반야바라밀'입니다. 신찬스님과 그분의 은사이신 계현법사님에 대해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때는 마조스님과 백장스님 당시입니다. 계현법사—여기에서 법사라 함은 주로 경을 익혀서 법을 설하는 것으로 수행하는 스님인데 스님의 상좌인 신찬스님이 계를 받고도 경전 공부를 하지 않고 그냥 절을 나가서 몇 년 동안 종적이 묘연하다가 5~6년이 지나서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신찬스님을 불러서 혼을 내며 그동안 뭐 했느냐 하니 아무 일 없이 전국을 돌아다녔다고 하여 마음이 언짢았습니다. 결제가 되어 소임 정하는 방을 짜면서 신찬스님에게는 화두 겸 적두 그러니까 스님들 목욕하는 날 물을 데우고 목욕탕 청소하는 일을 하도록 했습니다.
어느날 계현법사가 목욕하고 머리 깎겠다고 물을 데우라 하여 목욕을 하는데 신찬스님은 은사스님의 등을 치면서 법당, 몸은 좋은데 영험이 없다고 조롱하듯이 말합니다. 계현법사가 언짢아서 째려보니 영험은 없는데 방광을 하네라고 놀립니다. 보통이 아니라 생각하며 목욕 마치고 방에서 경을 보는데 방에 파리가 들어와 밖으로 나가려고 창문만 두드리는 것을 보고 신찬스님은 뚫려진 곳으로 나가지 않고 봉창만 두드리는구나. 백 년 동안 종이를 뚫어도 언제 나갈 날이 있으랴고 말합니다. 계현법사가 들어보니 자기를 놀리는 말입니다. 스님은 지금 저 파리처럼 뚫려진 문으로 나가지 않고 백 년 동안 경을 그렇게 봐야 언제 벗어날 길이 있겠습니까? 하는 말입니다.
상좌를 앉혀놓고 그동안 뭐했느냐고 추궁하니 그때 신찬스님이 5년 동안 선방에서 수행하고 마조스님의 법상좌인 백장 회해 선사의 회상에서 정진하고 인가를 받았다고 이실직고합니다. 그 소리를 들은 계현법사는 기분이 좋아서 내 상좌 중에서 도통하고 견성한 스님이 있다며 당장 대종을 쳐서 대중을 모이게 하고 신찬스님에게 법상에 올라가서 법문을 하도록 하고 함께 듣습니다. 그 법문을 들으며 계현법사는 탄복을 하며 내가 무슨 복을 지어서 상좌한테 이런 심지법문을 듣는가 하고 말합니다. 이것은 스승이 상좌를 법상에 올리는 제도, 불문율입니다. 상좌가 스스로 법상에 오르겠다 하여 오르는 것이 아니고 스승이 상좌가 법상에 올라서 법을 설할 만하다고 나름대로 준비가 되었을 때 법상에 올립니다.
지금 생존해 있는 스님 가운데 광덕대선사의 법문을 가장 많이 들은 사람은 저라고 생각합니다. 1982년에 처음 불광사에 올라와 스님 법문을 듣는데 그때는 토요일, 일요일 두 번의 법회에서 한 시간 반 정도의 법문을 똑같이 2년 동안 들었기 때문에 어느 날 큰스님께서 몸이 불편하셔서 저에게 법문하라고 명하셔서 저는 이 보광당에서 법상에 올라가 법문을 했습니다. 그때 큰스님께서 하신 말씀이 너를 법상에 올려놓고 내가 가서 대중과 같이 법문을 들어야 하는데 몸이 아파 그 절차를 따르지 못하고 넘겨서 미안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계현법사가 제자인 신찬스님을 법상에 올려놓고 대중과 함께 앉아서 3배를 하고 법문을 듣는 것이 상좌를 인정해주는 겁니다.
그렇게 토요일, 일요일 법문을 빠짐없이 2년 동안 들었어도 반야바라밀이 무엇인지 몰라서 할 수 없이 은사스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38세라는 나이에 반야바라밀을 공부하기 위해서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일본에 가서 2년 반 동안 오직 반야바라밀에 대한 나름대로의 연구를 하고 자료를 찾으며 석사과정을 마치고 큰스님이 많이 불편하다는 말을 듣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저에게 사숙인 무진장 큰스님께서 광덕큰스님의 부탁으로 보광당에서 법문을 하게 되었을 때 한 번도 큰스님 생존시에는 이 법상에 앉지 않고 사회석에서 법문을 했습니다. 그 이유는 사형스님이 법문하는 법상에 앉을 수 없다며 사회석에서 몇 년을 법문했습니다. 그 뒤에 지정화상이 법주가 되어서 저도 법상에서 자르고 무진장스님도 잘랐습니다. 제 생각에는 무진장스님 생애에 가장 큰 수모를 받았겠다는 생각입니다. 어떤 스님도 본인이 원하지 않는데 법문을 그만 두시라는 말은 없었을 것이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우리 형제들 가운데 제 상좌인 본공수좌에 대해 불광법회에서 법문하게 해야 된다는 말이 참 많습니다. 시식을 하러 한 번 와서 불미스런 일로 저도 형제 여러분도 헷갈릴 겁니다. 만약에 형제 여러분 가운데 본공수좌가 불광 법상에서 법문하면 좋겠다는 분이 있다면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어떤 사형님은 사석에서 혜담스님의 반야바라밀은 이론이지 실제가 아니라고 말한다는 걸 들었지만 저는 스님 가운데 반야바라밀을 잘 이해한다고 자부합니다. 본공스님이 법문하기 위해서는 일단 반야바라밀 법문을 듣고 책을 봐야 합니다. 지금 현재 법상에서 반야바라밀 법문을 하는 것은 보광당의 제가 하는 법문밖에 없습니다. 지홍사태 이후 지난 5년 동안 가장 가슴 아픈 일은 주지를 맡은 스님들이 불광법회를 이해 못하니까 아무 스님이나 이름 있는 스님을 모셔와 법문을 듣는 겁니다. 그런데 그 스님은 반야바라밀에 대해 전혀 모릅니다. 거기에 자리를 함께 하는 신도들도 반야바라밀 법문인지 일반 법문인지 구별을 못합니다. 소임을 맡은 스님들 생각 자체가 반야바라밀 사상이 어떤 것이고 다른 법문과 차이점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이런 우를 범하고 이것이 가장 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물론 불광법회와 불광사가 마찰을 빚는 것도 불행입니다만 더 큰 불행은 소임자 스님들이 불광법회를 모르고 무조건 유명한 스님 모셔놓고 법문하면 그것이 불광법회인 것처럼 호도를 하고 있습니다. 아마 소임자 스님들은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를 겁니다. 무슨 반야법문이 따로 있느냐 할지 모르지만 그건 아닙니다. 큰스님께서 지금 대각회 이사장으로 있는 보광스님이 동국대 교수할 때 불러서 법문해달라고 처음으로 부탁하여서 보광스님이 법문하러 왔을 때 앉혀놓고 말씀했습니다. 스님의 전공인 정토사상을 이야기하되 반드시 반야바라밀 사상에 입각해서 하라며 조건을 줬습니다. 아마 보광스님은 깜짝 놀라고 상당히 당황했을 겁니다. 그래서 항상 외부인사를 초청할 때는 그렇게 마하반야바라밀에 입각해서 법문하라는 단서를 붙였습니다. 그래서 본공스님이 보광당에서 법문을 하려면 적어도 한 3년은 제가 반야법문하는 이 시간에 참석해서 법문을 듣고 제 나름대로 이 정도면 법문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 때 제가 법상에 올립니다. 이건 은사가 정하는 것이지 신도들이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착각하면 안 됩니다. 본공스님을 아끼는 분들은 보광당에 와서 반야바라밀 법문을 들으라고 권해보시길 바랍니다.
어느 날 남전스님은 조주스님에게 어떤 것이 도입니까? 하는 질문을 받고는 평상심이 도라고 대답합니다. 평상심이 도라는 이 법문은 원래 마조스님부터 시작했는데 이 말은 우리가 평상시에 쓰는 이 마음이 도지 달리 도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마조스님 이래로 중국 선불교의 전통이 됩니다. 이 뜻이 굉장히 깊어서 많은 스님들이 평상심시도에 대해서 해설을 합니다. 그 가운데 무문관 19칙에서 무문스님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봄에는 백화가 만발하고 가을에는 달빛이 아름답다.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고 겨울에는 하얀 눈이 내린다. 만약에 이런 속에 마음이 한가하여 걸리는 일 없으면 이때가 가장 좋은 시절이라는 말입니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에 대해 기쁜 생각을 못하고 온갖 망상과 번뇌를 일으킵니다. 호시절이란 도를 이뤄서 견성성불한 상태를 말합니다.
저는 고2때 불교를 만나고 1년 뒤에 바로 결심하고 출가를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 어린 나이에 출가할 뜻을 세운 저 자신이 참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고 제가 출가해서 수행자로 살지 않았다면 지금 이렇게 어지러운 세상에서 혼란되게 번민하며 살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이것은 전생에 많은 복을 지어서 승복을 입고 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동안은 거의 한 번도 특정한 스님에게 전생에 빚을 진 모양이라는 생각을 안 했는데 5년 전부터는 지홍스님에게 전생에 빚을 진 모양이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작년부터는 본공수좌에게 전생 빚이 많은 모양이라는 생각도 많이 합니다. 절친인 도반이 본공수좌를 데려와서 수행자를 하나 기르겠다는 생각에 큰스님 앞에서 불교학생회 다녔다고 해서 흔쾌히 승낙했는데 제 뜻에 어긋나고 있습니다. 전생의 업보를 잘 해결하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가진 무언가를 다른 사람에게 나누고 베푸는 겁니다. 그전에는 내가 얻어먹기만 했는데 요즘은 가능하면 베풀기 위해 카드로 계산하게 합니다. 지금 세계적으로 지진이 일어난 모로코와 홍수가 난 리비아를 돕는 것도 좋은 일이겠죠.
“남전화상의 평상심 법문은 반야바라밀에서 바라본 실상세계를 노래하고 있다. 감각과 현상 저 너머의 세계를 말하고 있다. 이 도리를 신찬스님은 공문 즉 열려있는 문이라 말한다.” 마하반야바라밀은 공문, 열려있는 문입니다. 파리 눈에는 열려있는 문이 보이지 않고 그저 눈앞의 봉창문만 두드리고 있는 겁니다. 사교입선이라고 경을 본 뒤에는 선방으로 가라는 겁니다. 경전을 통하지 않고 선방에 가면 백 번 해도 망치는 겁니다. 먼저 경을 보고 경에 대해 의심이 생길 때 선방에 가서 공부해야지 무작정 앉아서 이뭐꼬 하면 안 됩니다. 어제 모처럼 지환사형님이 전화를 해서 언제 불광사 오실 거냐고 물어보니 산철 용맹정진에 들어가서 올 생각이 없다고 했습니다. 계속 하시는 말씀이 불광법회 불광사가 절망적이라고 하면서 내가 노력하면 불광법회 불광사를 정상화 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뜻을 모으면 정상화가 가능하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안 된다고 말해서 참 대책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는 감각과 현상에 매몰되어 있습니다.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것이 전부라 생각합니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에 눈이 떠져야 됩니다. 그것이 반야바라밀이고 공문, 뚫린 문입니다. 우리는 마하반야바라밀을 염송하면서도 어쩌면 깊은 내면에서는 감각과 현상에 빠져있는지도 모릅니다. 분명한 것은 감각과 현상 저 너머를 봤을 때 새로운 삶이 열려옵니다. 그야말로 봄에 꽃이 피고 가을에 달빛이 아름다운 그 광경을 아무 사심 없이 있는 그대로 보고 마음에 걸림이 없어지는 그때에 우리에게 가장 좋은 호시절이 오는 겁니다. 우리 모두 호시절을 알기 위해서 마하반야바라밀을 염송할 때 우리 불광사 불광법회도 정상화가 되고 한국불교를 새롭게 바꿔 가는 기틀을 마련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쪼록 형제 여러분의 분발과 건투를 빌면서 여기에서 마치겠습니다. 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
<불광인의 선서>
우리는 횃불이다. 스스로 타오르며 역사를 밝힌다.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 용맹정진하여 바라밀 국토 성취한다.
<법등오서> 우리는 불광법등입니다. 전법으로 최상의 보은을 삼겠습니다.
보현행원으로 보리 이루리!!! 나무 마하반야바라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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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바라밀님
참으로 빨리 법회일지를 편집하여 올리셨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
바라밀 보살님,
법회가 시작돼도 자리에 안 계셔서 걱정했는데 한참을 찾다 보니
녹취가 잘 되는 곳으로 자리를 이동하셨는지 반대편에 계시더군요.
그 자리에서는 녹음이 잘 되셨을까요?
법회 일지 작성하시느라고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