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수정 1 (枕漱亭) |
春陽面 牛峰里 우봉마을의 옆 산중턱에 있다. 단층의 팔작지붕 골기와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3칸이며 中齋室을 가지고 있다. 豊山人 八愚 洪景古가 세운 정자인데, 그가 許穆·尹善道의 門人으로서 활동했던 것으로 보아 17ct末의 건립으로 보여진다. 그후 亭子는 타인의 소유로 넘어갔다가 八愚公 歿後 181년이 지난 1879년에 후손들이 재구입하여 1885년에 重建한 것이다. 亭內에는 奇宇萬의 記文을 비롯하여 모두 36개에 달하는 많은 현판이 게액되어 있다. 亭은 현재 鰲山祠의 講堂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祠에는 枕漱亭詩集과 鰲山祠誌등의 유물이 보관되어 있다.
1) 枕漱亭記 金鰲之足 水石之區 舊有枕漱亭 八愚洪公作也 第念枕漱之義 爲枕石漱水而 自經孫子荊 反辭相謔 枕流漱石 爲後世名談 八愚公名亭之意 亦云爾 則枕漱爲可以反辭 而賢愚獨不可以反辭乎 然則 公旣賢矣 而反賢爲愚亦可 以枕漱而類推 登斯亭而知流之不可枕 石之不可漱 則亦知公之不愚 而洗耳○齒益見公 修治之實事矣 亭久而墟 六世孫鳳南居士與同爲八愚公耳來 幷謀而重修之 盖以地勢之稍變於前 舍幽而就高 或以此○焉 嗚呼 水石無變 則來者之枕我漱我或有不同 而無損於水石 豈推是也 亭賢祖之亭 則亭下之址 或幽或高 而無損於亭心 賢祖之心 則幷與是亭之有無 而無損於吾心 不可變者心也守吾不可變者 而任他不得不變者 事物之來 萬變於前 而不與之俱往 若亭下水石之枕我漱我 或有不同 而不變吾水石 則幾矣 洪氏後承 多有志於學 讀書之暇 願以此八愚量焉.
□ 해설 금오의 발치 수석의 구내에 침수정이 있었는데 팔우공(八愚公)이 지었다. 침수의 의의를 생각건대 돌을 베개삼고 물로 양치질 한 것을 손자형(孫子荊)이 지나간 후로부터 말을 반대로 서로 해학하며 물을 베개삼고 돌로 양치질한다고 한 것이 후세에 명담이 되었다. 팔우공이 정자 이름을 지은 뜻이 그렇다면 침수는 말을 반대로 한 것이 될 것이니 어질고 어리석음만은 말을 반대로 하지 못할 것인가 그런즉 공은 이미 어진이가 되었다. 어짐이 반하여 어리석음이 된다면 또한 침수로써 유추해 볼 것이다. 이 정자에 올라오면 물을 베개하지 못하고 돌로 양치질 못할 것을 알 것인즉 또한 공이 어리석지 않아 귀를 씻고 이를 닦는다는 것을 알 것이요 더욱 공의 수신과 치가의 실상을 보게 될 것이다. 정자가 오래되어 폐허되니 육세손 봉남거사(六世孫鳳南居士)가 팔우공 후손 되는 분들과 같이 모의하여 다시 정자를 지으니 지세가 전에 비하여 조금 변하여진 것은 집터가 깊숙하여 높은데로 옮겨 세운 것인데 혹시 이로 인하여 혐의 할 것인가 아∼ 수석이 변함이 없은즉 오는 사람들마다 베개베고 양치질하는 것이 동일하지는 않을지라도 수석에는 손해 될 것이 없을 것이다. 어찌 오직 이뿐이리요 어진 조상의 정자를 정자로 여기면 정자의 터가 혹 깊숙하고 혹은 높더라도 정자에는 손해 될 것이 없을 것이요 어진 조상의 마음을 내 마음으로 한다면 이 정자가 있건 없건 간에 내 마음엔 손해가 없을 것이다. 변해서 안될 것은 마음이다. 내가 변해서 안될 것을 지킬 것이요 제 멋대로 변할 수밖에 없는 것은 사물에서 오는 것이니 만 번이나 앞에서 변할지라도 함께 변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정자 밑의 수석에서 베개 베고 양치질하는 것이 동일치 않을지라도 내 수석이 변치 않을 것은 거의 확실하다. 홍씨(洪氏)의 후손들이 학문에 뜻을 둔자 많으니 글을 읽는 틈에도 원컨대 이 팔우로써 헤아릴 지어다. (幸州 奇宇萬 謹書)
2) 重建枕漱亭序 枕漱亭成矣 其地則新 而其名則舊 何也 我七世祖 八愚先生 講學于是亭 而名日枕漱亭 盖外托水石也 世與人遠 亭廢遂焉 而其址八於村里 不可因之故拓 其北而新之 三字舊額 煌煌分明矣 且水石稍勝於舊 此所以不可不因之也然爲後孫者 朝登夕上 弄風月賞 花竹逍遙 放浪而己焉 則非先生本意也 今旣愴廊其跡 而感慕其意也 今旣同力謀財而樂其重成也 以是心也 推是心也 何患乎一毫不及先生也哉 苟以先生之心爲心 讀書于是亭 講道于是亭 攷藝于是亭 翫理于是亭 凡一動一靜 一語默一行止 無有不相顧 而相勉于是亭 學問文章德義風節 彷彿乎先生之于是亭也 則爲先生後孫者 其將與損損之溪 滾滾之江 ○峻之巖 嵯峨之壁 相終始而無窮也 不亦有光於先生乎 詩日 周雖舊邦其命維新國固有之 家亦宜然也夫.
小亭重起出凡塵 亭廢亭成問幾春 地異名同存水石 子傳孫授保家身 浮雲下接江光近 亂時中今野色新 若識先生風節處 長松脩竹翠△因
□ 해설 침수정이 이루어졌다. 세어진 땅은 새로우나 그 이름은 옛적 그대로니 어찌된 일인고 내 칠세조 팔우선생(我七世祖八愚先生)이 이 정자에서 강학하면서 정자 이름을 침수정이라 하였는데 대개 수석에 의지한 것이다. 세대와 더불어 사람이 멀어지고 정자는 드디어 폐허되니 그 유허지에 마을이 들어와 그 자리에 지을 수 없어서 그 북쪽을 개척하여 새로 지었는데 세 글자의 옛날 액자만은 황황하게 분명하다. 또 수석이 옛것보다 조금 좋은 까닭에 여기에 짓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후손된자 아침저녁으로 올라가 풍월이나 희롱하고 꽃과 대나 구경하며 소요방황하고 만다는 것은 선생의 본의가 아니다. 이제 이미 그 자취를 슬퍼하고 그 뜻을 사모하였으며 이제 이미 힘을 모아 제물을 모으고 즐거히 다시 성조 하였으니 이 마음으로써 한 것이요 이 마음으로 미루어 갈 것이다. 어찌 일호라도 선생에게 미치지 못함을 근심하랴 진실로 선생의 마음으로 마음을 삼고 이 정자에서 글을 읽고 이 정자에서 도를 강하고 이 정자에서 재주를 살펴보고 이 정자에서 이치를 음미하여 한번 움직이고 한번 고요하며 한번 말하고 한번 묵묵하며 한번 가고 한번 그칠 때 서로 돌아보면서 이 정자에서 힘쓴다면 학문과 문장과 덕의와 풍절이 선생께서 이 정자에 계실때와 방불케 되리니 선생의 후손된자 장차 졸졸 흐르는 시내 꿈틀꿈틀 힘차게 흐르는 강 높고 험한 산의 바위산처럼 높이 솟은 벽과 더불어 서로 처음과 시작이 되어 무궁하리니 선생에게 빛이 있지 않겠는가 "시전에 이르길 주 나라가 비록 옛 나라이나 그 천명이 새롭도다"라고 하였는데 나라가 진실로 있다면 가정도 마땅히 그렇게 되어야 할 것이다.
적은 정자 다시 일어나 속진에서 벗어나니 정자가 허물어졌다 또 성조된 것은 몇 번이나 되느뇨 땅은 달라도 이름이 같음은 수석(水石)이 있음이라 자손에게 전수하여 집과 몸을 보존하되 뜬 구름 내려오니 강 빛이 가까워지고 어지러운때 이지만 들빛은 새롭네 만일 선생의 풍절을 안다면 큰 소나무 긴 대처럼 푸르리라 서기 1887년 정회 4월하순 7대손 우흡 재배근술(七世孫 祐洽再拜 謹述)
3) 枕漱亭贊倂序 天地間 一種淸高奇偉之氣 流峙而爲名山好水 前△而爲逸人達士 以逸人達士 而愚名山好水 其趣尙之深 雖管鮑之契 猶不足以喩 其意是以愚之必登臨焉 登臨之不足 必○○焉 ○○之不足 必卽其地結其亭 若將終身焉 湖之陽有金鰲山 盖南方勝邱也 中古鄕先生八愚洪公 嘗莊修於此 先生夙抱經濟 竟不得於世而所以相得 惟此一區水石 至情在於無情 至味在於無味 枕焉 漱焉 優哉 遊哉 嗚乎 廢與不常 有無相禪 人與亭 不可得見 而惟有巖雲嶺月 溪鳥江猿 今人有懷古 不盡之意 歲乙酉春 六代孫鳳南處士應仲氏 謀與諸宗 就舊址之稍北 重建而一新之 其出於繼述肯構之至意者 又不直爲山水之愚而己也 況彼峨峨洋洋者 皆當日之精神氣像 而旣經旣營 又不無瞻想 陟降之所 則洪氏之永言孝思者 將與此山 相終始矣 余雖不敏 先爲金鰲山賀得賢主人 次爲枕漱亭 賀得賢子孫 繼爲洪氏賀孝子慈孫 將世世不○也 義林○蟻賤命也 朮其象類 則邱○爲高 行○爲大 其於名山好水 奚○斥○之望雲鵬哉 然今見此亭適成 或可因此而有曠 觀坦壤之日歟 鳳南與我 厚必不拒我 鳳南雖不拒山水之靈 其肯受此醜 差之軀哉 納汚藏疾 亦山水之量也 鳳南旣不拒山水 亦不拒則吾當乘輿而往 脫屢溪石上 停○花竹間悠 然上堂欣然 相握 瞻奇偉淸高之像 聽奇偉淸高之論 飄○烟霞之上 ○○形骸之表 不知何者是主 何者是客 人者是亭歟 亭者是人歟 去而不去者存分 而不分者在吾 亦無時而不此亭矣 更爲從遊小生 如義林者 賀贊日維鰲之下 洪氏○○ 超然遐擧 ○焉潛修 亭廢斯久 雲仍是圖 卽肯其構 思述厥謨 合族歡洽 聚友功○ 誦習有程 歌哭以時 濡染攸○ 從遊亦榮 嗚乎世世 無替厥聲.
□ 해설 하늘과 땅 사이에 한번 청고 하고 기이한 기운을 심으면 높은 산으로 흘러와 명산과 좋은 물이 되어 숨어사는 사람과 뛰어난 선비를 위하고 숨어서 사는 사람과 뛰어난 선비가 명산과 좋은 물을 만나면 그 취향의 깊음을 비록 관중(管仲)과 포숙(鮑叔) 같은 친구라도 오히려 그 뜻을 깨우치지 못할 것이다. 이러므로 만나려면 반드시 산에 오르고 물에 다달아야 한다. 산에 오르고 물에 다달아도 부족하거든 반드시 어정거리며 노닐어야 한다. 어정거리며 노닐어도 부족하면 반드시 그 땅에다 정자를 만들어 종신토록 살아야 한다. 호남의 남쪽에 금오산이 있는데 남쪽 지방에선 경치 좋은 산이다. 중고 시대에 고을 선생이었던 팔우공이 일찍 이곳에서 글을 읽었는데 선생이 경세 재민의 뜻을 품었으나 끝에 세상에 쓰여지지 못한 까닭에 서로 얻은 것은 오직 이 한 구역의 수석이다. 지극한 정은 무정한데 있고 지극한 맛은 무미한데서 있는 것이니 베개 베고 양치질하며 편안하고 한가롭게 지내게 되었다. 아∼ 폐허되거나 항상 그대로 있지 않는 것은 유무간에 서로 도운다. 사람과 정자는 볼수 없으나 오직 바위를 감도는 구름과 산봉우리에 뜬 달 물새와 강 원숭이만 있어 오늘날의 사람들이 회고하나 다하지 못한 뜻을 갖고 있다. 을유년(1885)봄에 6세손인 봉남처사 응중씨(鳳南處士應仲氏)가 모든 종인 들과 모의하여 옛터보다 조금 북쪽에 중건하여 한결 새로워지니 선조가 이룩한 일을 후손이 이어 간다는 지극한 뜻에서 나온 것이다. 또 산수를 만나서 직관적으로 된 것이 아니어든 하물며 저 의용이 엄숙하고도 넓고 큼이야 어떻겠는가 다 그때의 정신과 기상으로 이미 경영되고 또 오르고 내리던 곳을 물끄러미 상상해 보았은즉 길이 효도하는 생각을 말하는 것이 이 산과 더불어 처음과 끝을 함께 하리라 내가 비록 불민하나 먼저 금오산이 어진 주인 얻었음을 치하하고 다음에 침수정이 어진 자손 얻었음을 치하하고 이어서 홍씨의 효자와 어여뿐 손자들을 치하하노니 앞으로 대대로 시들지 않으리라 의림(義林)은 개미 같은 천한 목숨이라 그 상류를 구해 본즉 언덕이 커져서 높게 되고 길바닥에 괴인 물이 크게 되니 그 명산호수에 어찌 짜가리 새가 구름 속의 봉조를 바라본 것 같을 뿐이리요 그러나 이제 이 정자가 마침 새워진 것을 보니 혹 가히 이로 인하여 평탄한 땅을 오래 볼 날이 있을 것인가 봉남은 나와 두터운 사이라 필연코 나를 거절하지 않을 것이다. 봉남이 비록 산수의 신령스러움을 거절치 않더라도 이 추하고 부끄러운 몸을 즐겁게 받아 줄 것인가 더러움을 받아 드리고 병든 것을 감추는 것은 또한 산수의 도량이다. 봉남이 이미 산수를 거절치 않았으니 나도 거절치 않는다면 내 마땅히 수래를 타고 가서 계천의 돌 위에서 신을 벗어놓고 꽃과 대나무 사이에 지팡이를 멈쳐 두고 유연히 당에 올라 흔연하게 서로 악수하며 기이하고 청고한 논의를 들으면서 뽀얗게 피어오르는 봄 안개 위에서 형해의 표면을 어슷거리며 거닌다면 어떤 이가 주인이고 어떤 이가 객이며 사람이 정자인지 정자가 사람인지 알지 못할 것이다. 버리려해도 버리지 못할 것이 있고 나누려해도 나누지 못할 것이 있으니 나도 때로는 이 정자 아님이 없을 것이라 다시 종유하는 소생이 되었다. 의림 같은 사람이 치하하고 칭찬하노라
금오산 아래는 홍씨가 사는 곳이라 초연히 멀리 물러나 고개 숙이고 학문에 잠기도다 정자가 폐허된지 오래인데 먼 후손들이 중건했다 이미 이으고 이으니 그 유훈을 생각하여 이는 것이다 온 집안이 즐겁고 흡족하니 벗을 모아 격려하는데 공드리네 외우고 익힐 일이 있으니 때때로 노래 부르네 유연하고 굳센곳에 물드리니 따라서 노는것도 영광스럽네 아∼ 대대로 그 소리가 폐쇠되지 않으리라
(乙酉中秋鄕里後生 鄭義林 謹識)
4) 重修引 友人洪祐明德仲 屬余記枕漱亭 而日枕漱亭 明本生亡世祖八愚公藏修之所也 中廢爲他人有者百餘年 吾伯氏與諸族議還之 還且起亭去遺址北十許武 請記之在孝 不六且又○劣 其何以酬人之求 而汚人亭○乎 雖敾强之 非獨造不可書地乎 富春山載在綾州誌 ○景乎 泉石可槪於枕漱之額 而未之目焉將美八愚先生乎 今之亭非古之亭也 抑與子孫之重修乎 枕漱八愚公所名也 敢辭德仲日 八愚公 屢薦不起 而戒子孫 勿闡韜晦 其志也 恐恐然溢美 而近諛況況自居乎 余作而日 聞德仲之言 而可想八愚先生之風也 求文者如是 何朱文公之悔作行狀 國語史記 何待世而後出也 先生布衣 傳七八世子孫之戶 過半于百矣 有知重修之 爲宜而能服 臆先人之遺戒可書也 乃歌日 富春之泉石兮 載枕載漱 碩之考槃兮永矢不○ 重修斯亭兮 先生有後 其將蕃衍兮 泉流而石壽
□ 해설 나의 벗인 홍우명 덕중(洪佑明 德仲)이 나에게 침수정 기를 부탁하면서 말하길 침수정은 우명의 본생 7세조 팔우공(七世祖 八愚公)께서 조용히 숨어서 글을 읽던 곳인데 중간에 폐허되어 타인의 소유가 된지 백여년이 되었던 것을 나의 백씨께서 제족과 다시 찾을 것을 의논하여 다시 찾고 유허지에서 북쪽으로 10보쯤 되는 언덕에 정자를 지었다고 하면서 기문을 청하기에 재효(在孝)는 재주가 없고 천박하여 졸연한데 어떻게 남의 요구에 순응하겠으며 남의 정자를 더럽히겠는가 비록 억지로 하려해도 홀로 짓지 않으면 가히 쓰지 못할 것인가 부춘산은 능주 읍지에 실려 있는데 산수의 경치가 구경할 만 하니 가히 침수의 액호는 대강 알았으나 눈으로 보지는 못했으니 어떻게 팔우선생을 미화하겠는가 오늘의 정자는 옛날의 정자가 아니니 아니 자손이 중수한 것이 아닌가 침수는 팔우공이 이름을 지은 것이니 감히 사양하겠는가 덕중이 말하길 팔우공은 여러 번 추천되었으나 일어나지 않았고 자손을 경계하길 숨어사는 것을 밝히지 말라고 하였는데 그분의 뜻이라고 한다. 공연히 미화함이 넘처 아첨에 가까울 것을 두려워하여 굳세게 살아간 것인가 내가 글을 짓던 날에 덕중의 말을 듣고 팔우선생의 풍치를 상상하였다. 글을 구하는 자가 이 같은데 어찌 주문공(朱文公 곧 朱子)은 행자 지은 것을 후회했을까 국어사기는 왜 세대를 기다린 후에 나타날까 선생이 포의로 7∼8세대를 전해오는 동안 자손의 호수는 50여호가 되어 중수하는 것이 당연함을 알아서 능히 중수했을 것이다. 선인이 남긴 훈계중 가히 글로 쓸만한 것들을 억측해 보고 이제 노래를 부르련다.
부춘산의 자연 경치여 침(枕)도 싣고 수(漱)도 실었네 훌륭한 사람이 숨어 살며 즐김이여 영원히 팔지 않을 것을 맹세했다. 이 정자를 중수함이여 선생은 후손이 있도다 장차 번성하고 불어날 것이여 샘물은 흘러도 돌은 오래 있으리라 서기 1888년 무자 9월중순 봉성 정재효 근서(鳳城 鄭在孝)
5) 枕漱亭重建記 枕漱亭我六代祖八愚堂府君講修之所也 府君諱景古 字仰汝 早遊眉○孤山兩先生之門 學問文章 德義風節 爲南服儒林之冠冕 剌使守令 交章薦剡者 前後續續 而固守東岡 不就公車 嘗愛金鰲山 水之勝面流 背麓築一小亭 取古人枕 流漱石之義 以名之 其高尙之志 盖己素完 而白雲流水 光風霽月 無非平淡淡 坦蕩蕩地 究天人性命之蘊 體身心誠敬之妙 渙然怡然 逍遙以終 嗚乎 道不見用於時 學不見傳於人 而身後未幾世 子孫零替 亭隨以廢 爲他人占據 而無恙者 惟一片三字額耳 其潛光隱德 將與先天浮雲 任其消散耶 府君歿後一百八十一年 己卯 贖還遺址於人 越七年乙酉 門議齊同謀所以重建者 遺址逼於里落 就稍北爽塏處 而新之 視於前幽閒不及 而軒豁過之 綾陽百里 烟雲竹樹 溪山風日 無不畢來獻狀焉 雖然 府君之所嘗經始者 豈取眺望之勝 燕聞之樂哉 亶爲講道養德之所而作也 然則今日之肯構 亦豈徒然講修於斯 游養於斯繼府君之志 傳府君之道 則一區亭子 尤足增光 不可以肯構一節 謂吾事己了也 況人與地符 境與情稱 方是有亭不然與無亭同 願吾門後生 勉爲此亭 主人世世不○也噫 古之名園 如輞川平泉 何限而熙往 穰來鮮有能保其終者 此不可不重爲後生懼也 古人日 園○興廢 洛陽盛衰之候 余謂此亭興廢 亦洪氏盛衰之候 願吾門勉之.
□ 해설 침수정(枕漱亭)은 내 6대조 팔우당부군(八愚堂府君)께서 강학하던 곳이다. 부군의 휘는 경고(景古)요 자는 앙여(仰汝)인데 일찍 허미수(許眉○) 윤고산(尹孤山) 두선생의 문하에서 학문과 문장과 덕의와 풍절을 익혀 남쪽에서 외복하는 유림이 우두머리가 되었다. 자사(刺使)나 수령(守令)이 교대 해가며 전후로 추천하였으나 굳이 고향을 지키고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일찍 금오산수의 절승을 사랑하고 앞에는 물이 흐르고 뒤에는 산록이 있는 곳에 적은 정자를 짓고 옛사람이 흐르는 물을 베개삼고 돌로 양치질한다는 뜻을 취하여 이름을 지으니 곧 그 고상한 뜻은 대개 기왕에 이루어진 본연이다. 흰 구름과 흐르는 물 빛나는 바람과 맑게 개인 달은 평평하고 맑고 밝으며 너그럽고 넓고 반반하다. 인성과 천명의 온도함을 연구하고 몸과 마음의 정성과 공경의 묘리를 체 받아 얼음이 녹아서 풀리는 듯 기쁨이 넘치는 듯 소요하다가 일생을 마쳤다. 아∼ 도(道)는 그때 쓰여지지 못하고 학문은 사람에게 전해지지 못하고 죽은 뒤 몇 세대가 되지 않아 자손이 몰락해지고 정자도 따라서 폐허되어 다른 사람이 점유하게 되었고 탈 없이 보존된 것은 오직 한때기 세 글자의 액자뿐이다. 그 빛을 감추고 덕을 숨기며 살아온 것이 뜬구름과 함께 녹아서 흩어진 것이 아니냐 부군께서 돌아 가신지 181년만인 기묘(1879)년에 유허지를 남에게서 돌려 받고 7년을 넘긴 을유년(1885)에 문중의 의논이 재발되어 정자를 중건키로 모의하고 유허지가 마을에서 너무 가까워 조금 북쪽 시원스러운 곳으로 나아가 새롭게 지으니 그 전의 그윽하고 한가한 것에는 못 미친 것처럼 보이나 툭 트여진 것은 오히려 과한 편이다. 능주 백리에 구름 같은 대나무와 나무며 계산의 풍월이 다 헌상하여 왔다. 비록 그러나 부군께서 일찍 집을 짓기 시작한 것은 어찌 바라보기 좋은 경치나 한가한 즐거움만 취했겠는가 진실로 도를 강하고 덕을 기르는 곳으로 삼으려고 지은 것이다. 그런즉 오늘날의 업을 이음도 어찌 또한 한갓 여기에서 글을 읽고 여기에서 노닐며 수양만 할 것이냐 부군의 뜻을 이으고 부군의 도를 전하면 한 구역의 정자가 더욱 빛을 더 하리라 가히 이었다는 한마디로 우리 일이 끝났다고 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에 사람과 땅이 부합하고 지경과 인정이 같으면 바야흐로 정자가 있다 할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정자가 없는 것이나 같을 것이다. 원컨대 우리 문중의 후생들이 이 정자를 위하여 힘을 쓴다면 주인은 대대로 결핍되지 않으리라 아∼ 옛날 유명한 동산을 강천과 평천(○川 平泉)같은 것인데 왜 한계를 하고 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다가 그 끝까지 보존한자 적으니 이는 후생이 두렵다고 한 것을 중하게 여기지 않음이라. 옛 사람이 일으길 식물원이나 동물원이 흥하고 폐하는 것은 낙양이 성하고 쇠잔하는 증후라 하였으니 나도 이 정자의 흥하고 폐하는 것은 또한 홍씨가 성하고 쇠잔하는 증후라고 이르노니 원컨대 우리 문중은 힘 쓸지어다.
(六世孫 埰周謹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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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수정 2 (枕漱亭) |
6) 重建枕漱亭小序 亭之重建也 爲先生後孫者 咸力而承奎 實左右之臨沒 白于大人日 亭未了矣小子恨之 願函完之 後四年春 其從父自德陽至 人舊而亭新 惟有一呱呱男存爾嗚呼 承奎惡乎歸哉 其惟先生乎承奎之死如先生之亭之墟矣 承奎之留一血子不亦似乎 先生之亭之重新也哉 然則先生之學 將以是亭而傳之無窮 吾以是祝之.
□ 해설 정자를 중건한 것은 선생의 후손들이 힘을 다 한 것인데 승규(承奎)가 실로 좌지우지한 것이다. 죽음이 다다름에 그 부친에게 아뢰길 정자가 끝이 나지 않았으니 소자를 한이라 하면서 잘 포용하여 완성하길 원한다고 하였다. 그런 후 4년 되는 봄에 그 종부(從父)가 덕양에서 왔는데 사람은 옛 사람이 되었지만 정자는 새롭고 오직 갓난 사내 하나만 있구나 아∼ 승규는 어디로 갔느냐 선생을 생각했느냐 승규의 죽음은 선생의 정자가 폐허 된것이나 같다. 승규가 혈통 이을 자식 하나를 둔 것은 또한 선생의 정자를 다시 지은 것 같지 않느냐 그런즉 선생의 학문은 이 정자로써 무궁토록 전해지리니 나는 이것으로 축하한다.
7) 枕漱亭重建序 孫楚所云 枕流漱石者 眞得幽居趣味也 況志於道 篤於學 而兼得泉石之美者乎 鳳城産一洪公 自號八愚翁 在孝顯朝間 爲遺賢 早遊許文正 尹孤山門奬許 ○重 力學篤孝 以五代祖 一松公心學篇爲修身靑氈 晩築一小亭於城之南金鰲之下牛谷洞中 誅○棘 培花竹 淸流映帶於東西 盤石鋪列於左右 常枕其流漱其石 而扁日 枕漱 余以直指命八鳳城 聞八愚公之賢俄矣 六世孫埰周 馨周 索余乎證心山房 請敍其亭 余惟斯亭古矣 公之遊釣 公之講討 皆在乎 凱則後人之慕公者 不得不寓於亭矣 流本不息 旣枕而聽之 則不但科進盈盈 亦喜塵染盡聾石能不語 旣漱而距之 則不但牙頰潔潔 亦喜雌黃不入 又嘗聞 賢人得枕泉作兩 道人煮白石爲飯 兩可以澤民 飯可以饒饑 其美奚特枕漱於泉石間己哉 若洪君必紹其美 而護其亭者 公諱景古 有自記道亭之詳.
□ 해설 손초(孫楚)가 말한 흐르는 물을 베개삼고 돌로 양치질한다고 한 것은 참으로 고요히 사는 취미를 얻었음이어늘 하물며 도(道)에 뜻하고 학문에 독실하면서 겸하여 자연 경관의 아름다움을 얻었음이야 어떠리 봉성 출신인 홍공이 스스로 별호를 팔우옹이라 하였는데 효종(孝宗)과 현종조(顯宗) 사이에 있었던 분으로 숨은 현인이었다. 일찍 허문정(許文正:미수선생)과 윤고산(尹孤山)의 문하에서 공부하면서 긴요하고 중한 사람으로 장려되어 학문에 전력을 다하고 효행에 독실하였다. 5대조인 일송공(一松公)의 심학편(心學編)을 수신의 유훈으로 삼고 만년에 정자를 성의 남쪽 금오산 밑 우곡동에 짓고 산대추 나무나 가시나무등을 베어 내고 꽃과 대나무를 심으니 맑은 물은 동서로 띠를 돌려 비쳐있고 반석들은 좌우로 펼쳐 있다. 항상 그 물을 베개삼고 그 돌로 양치질하며 현판을 침수라 하였다. 내가 직지사(直指使)로 봉성에 들어와 팔우공의 어진 행의를 들었는데 6세손 채주(埰周)와 형주(馨周)가 증심산방으로 나를 찾아와 정자의 서문을 청하니 내가 이 정자를 생각한 것은 오래 되었다. 공이 낚시질하고 논 것이며 공이 강하고 토론한 것은 모두 평온하고 즐거움에 얻었은즉 후인들의 공을 사모하는 자는 이 정자에 우거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흐르는 물은 본래 쉬지 않는 것이니 베개 베고 들어보면 다만 웅덩이가 찬 뒤에 흘러가는 것만 아니라 또한 티끌에 물들어 다 귀먹는 것이 기쁘고 돌은 말을 못하나 이미 양치질하고 걸터앉으니 다만 어금니와 뺨이 깨끗해지는 것만 아니라 또한 자황(雌黃)이 들어오지 않으니 기쁘다. 또 일찍 듣기를 현인은 베개 베는 샘(枕泉)을 얻으면 비를 만들고 도인은 흰 돌을 삶으면 밥이 된다 하였는데 비는 백성을 윤택하게 하고 밥은 배고픈 자를 배부르게 하니 그 아름다움이 어찌 샘과 돌 사이에서 베개 베고 양치질 할 따름이리요 홍군 같은 사람은 반드시 그 아름다움을 이어서 그 정자를 보존 할 것이다. 공의 휘는 경고(景古)인데 자기가 정자에 대한 자상한 것을 기록한 것이 있다.
8) 書枕漱亭記後 亭在鰲山之麓陰 江之滸溯 昔枕漱公之肥遯也 枕處千○蒼壁之○絶 漱此百里長江之演○ 則想見當時之淵深乎 畜德○○乎 氣貌矣 雖在百世之下 過此者仰而見此高山 俯而臨此長江 則英靈芬馥 尙不泯於山靑水綠之中 自不勝其興懷 而必誦范公之贊嚴 子曰 先生之風 山高水長 亭稍前爲墟 公之後承鳳南公 因舊址營築 可見繼述先德之孝思 請余有述者 承渙其名.
□ 해설 정자가 오산의 기슭 음강의 물가에 있는데 옛날 침수공(枕漱公)이 숨어살던 곳이다. 침(枕) 은 천길이나 되는 창벽의 낭떨어지의 끝에 있고 수(漱)는 백리나 되는 긴 강의 물줄기에 있으니 당시에 덕을 쌓은 것은 깊은 못 같고 기상은 우뚝 솟은 산처럼 높았다는 것을 상상해 볼 수 있다. 비록 백대의 아래에 있을지라도 이곳을 지나는 사람은 이 높은 산을 우러러 보고 이 긴 강에 엎드려 다다르면 영령의 향기가 청산녹수 속에서도 꺼지지 않으리니 스스로 그 흥한 회포를 이기지 못하고 반드시 범공(范公)이 엄자(嚴子)를 칭찬한 "선생의 풍치는 산처럼 높고 물같이 길다"라고 한말을 외울 것이다. 정자가 얼마전엔 폐허가 되었는데 공의 후손인 봉남공이 옛터에다 정자를 다시 지으니 가히 선조의 덕을 이어가는 효성을 보임이라 나에게 기록해 주길 청한 사람은 승환(承渙)인데 그 사람의 이름이다.
9) 枕漱亭重建上樑文 兒郞偉 維桑梓敬止七傳世胎謨 我泉石居然百餘祀舊址 芬馥未沫 楣額重新惟我枕漱先生 以○邁姿 値文明運 自來簪綏圭組 人襲淵源門庭 一松公心學篇平生受用不盡 眉泉翁記言集常日講磨有餘 據德依仁克紹傳家之型範 博文約禮允爲後學之典○ 中歲占于月山雖得攸宇之地 晩年移于牛峽爭傳卯槃之阿噫 己丑士禍徑世未伸共讚楊上舍之瀝血 己亥禮訟同室爭辨○懲宋大老之雪○追迹倍增萬夫勇心 讀疏可激千載風節 由士論之黑白 推國步之蒼黃 旣呑噓○自發慷慨 追申屠之絶迹結樹屋於蔽○之間 慕子美之卜居構草堂於花溪之上鰲山泉脈來九曲之未源 龍頭灘聲鳴八節之程韻 躬○莘野行伊尹之經綸 游釣桐江依子陵之臭味 枕流而漱石亶爲性靈之陶甄 ○烟而餐霞莫非德義之○釀方無恙於敦詩勸禮 果有誰於八室升堂 志事性行一辭稱而可攷 文章學問丁攸兩僅餘 仰三字而手澤尙新 想七分兩儀形猶在 盖盛蹟非筆古可旣 而高標契扁楣俱傳 廳石岩岩猶可堪語 派溪滾滾如斯者流 ○哉 ○宇累徑於星霜 瓦○頻○於風雨 感天時之多改 歎地靈之難諶 久爲咨嗟其勢不己 都是零替餘恨質追周一姓而同口不謀 越二稔而肯構克力 古其雖由籬稍近 別業無妨夾塏新占中世流澤如見昔時 片區名庄留待今日 竹苞而松茂輪奐之制復明 鳥革而○飛經始之功盡善 川雲嶺月更輸今夜精神 山鳥江猿空依去歲感慨 歌哭於斯而羹墻可接 名言在玆而警咳如聽 依良辰而來歸惑爲遊人樂也 携知己而講討是亦先生賜乎 助△脩樑 宜爲善頌 抛樑東 富春江上淸風 生斯長斯老斯 庶幾不換三公 抛樑西 飛鳳玄島共栖 異人所樂向在 一生琴書品題 抛樑南 亭下水色如藍 食松飮泉自足 嘯也歌也夢甘 抛樑北 誰匪人間憂國 當日封章叫闔 不翅士林矜式 抛樑上 節彼高山景仰 不堪霜露餘依 夢裡偃蹇氣像 抛樑下 調高自是和寡 侯攸頻煩徑過 幾送門外車馬 伏願上樑之後 楹桶不朽 花樹長春 責孝課忠追遺謨於式穀 廉頑立懦樹風○於來玆.
□ 해설 어영차 고향이 공경스러워 7대차 전하니 대대로 자손에게 남긴 계책이요 내 산수의 경치는 그런대로 백여년을 지낸 옛터로다. 향내가 물거품이 아니어서 처마의 액자 다시 새롭네 우리 침수선생(枕漱先生)은 뛰어난 자품으로 문명의 운을 만났도다. 스스로 벼슬하는 세족에서 태어나고 사람은 연원의 문정을 이어 받았다. 일송공(一松公)의 심학편(心學篇)을 평생 수용해도 다하지 못하고 미천옹(眉泉翁:허미수선생)의 기언집(記言集)을 날마다 강마 해도 남음이 있네. 덕에 의지하고 인에 의지하여 능히 전가의 모범을 이으고 학문을 넓히고 예의를 지켜 진실로 후학의 법전이 되었다. 중년에 월산을 점지하여 비록 거처할 땅을 얻었으나 만년에 우협으로 이사하여 은거하며 즐기는 곳으로 전하였네. 기축사화(己丑士禍)는 대가 지나도록 신원 되지 못했으나 양상사(楊進士)의 흘린피는 다 찬양한다. 기해예송(己亥禮訟)은 같은 집에서 시비를 분별했지만 송대로(宋大老:우암선생)의 설원에는 깊이 징계했네. 자취를 따름은 만인의 용맹을 배로 증가시키고 상소문을 읽으니 천년의 풍절에 감격했네. 선비들의 논쟁은 흑백 논으로 인한 것이요 나라 운명이 허둥지둥 당황한 탓으로 미루어짐이라 이미 흐느끼는 울음을 삼키고 스스로 의분에 복받쳐 슬피 탄식하네. 신도(申屠)의 자취를 따라 숲으로 가려진 사이에다 나무 집을 짓고 자미(杜子美)의 살던 것을 사모하여 초당을 화계 뒤에 얽었다. 오산의 샘물 맥은 구곡의 발원지에서 오고 용두의 여울소리는 팔절의 격식 있는 운치에서 울린다. 몸소 신야(莘野)에서 밭 갈며 이윤(伊尹)의 경륜을 행하고 동강(同江)에서 낚시를 하면서 자릉(嚴子陵)의 취미를 쫒았네. 흐르는 물을 베개삼고 돌로 양치질함은 진실로 천성과 심령을 도야함이 되고 연기를 술로 즐기고 안개로 안주하면 덕의가 조화 안 되는 것이 없네. 바야흐로 시에 힘쓰고 예의를 권장하는데는 탈이 없으나 과연 심오한 경지에 도달한자 누가 있으랴 지향하는 생각 성질 행실은 한 말로도 상고할 수 있고 문장과 학문은 걷우어져 겨우 남았네 세 글자를 우러러 보니 손때가 새롭고 칠분(七分)으로 상상해보니 의용이 있는 듯 하네, 대개 무성했던 자취는 글씨가 오래되지 않아 대강 알 수 있고 그 높은 표계는 처마 끝의 현판과 함께 전하리라. 돌이 쌓이고 쌓여 험하니 감당하는 말 같고 갈려진 시냇물이 새차니 이 같은 흐름이다. 아∼ 처마는 여러 해를 빨리 지내고 기와지붕은 자주 풍우에 시달렸네 천시의 많은 변화를 감탄하고 지령의 믿기 어려움을 한탄하네. 오래되니 그 형세 부득이함을 슬퍼하고 모두 말라 떨어지니 여한이 남는다. 두루 한 일가지만 한 마음으로 도모하지 못하고 2년을 넘겨 선조의 업을 이으는데 힘을 다했네 옛터에다 비록 지었지만 촌락과는 조금 가깝고 별장으로 무방하여 상쾌한 곳에 새로 지었다. 중세의 유택은 옛날에 본 것 같고 조그마한 구역의 유명한 별장 오늘을 기다려 머물렀는가, 대는 다북히 나오고 솔은 무성하니 웅장하고 빛나는 제도가 다시 밝아지고 새는 날고 집은 아름답고 훌륭하니 집을 짓는 공력은 최선을 다했다. 냇가에 낀 구름과 산 위에 뜬 달은 다시 오늘밤의 정신을 받아들이고 산새와 강 원숭이는 부질없이 지난 세월의 감개에 젖어 있네 이곳에서 노래도 부르고 울기도 하니 추모하는 정이 접해지고 명언이 이에 있으니 기침소릴 듣는 것 같네, 좋은 때를 맞아 돌아오니 노니는 사람에게 즐거움이 될까 의심스럽고 벗들을 이끌고 강하고 토론하니 이것도 또한 선생이 준 것인가, 힘을 모아 상량을 올렸으니 좋은 노래나 불러보세 상량을 동쪽으로 밀어보니 부춘강 위의 맑은 바람이네 여기에서 낳고 여기에서 자라고 여기에서 늙었으니 삼공(三公:즉 三政丞)과 바꾸지 않으련다 상량을 서쪽으로 밀어보니 나르는 봉과 제비가 함께 깃드린다 비범한 사람이 즐겨하는 곳을 향해 있으니 일생동안 읽은 글을 품제 받겠네 상량을 남쪽으로 밀어보자 정자아래 물빛은 쪽물 빛 같구나 솔을 먹고 샘물 마시니 스스로 넉넉하고 휫파람 불며 노래 부르니 꿈도 달다 상량을 북쪽으로 밀어보니 인간되어 어찌 나라를 근심치 않으리요 당일 상소하면서 문짝을 두둘며 울부짖음은 선비를 공경하는 것이 아닐세 상량을 위로 밀어보니 높으신 저 스승을 우러러 사모하네 서리와 이슬이 남아 있음을 이기지 못하니 꿈속에서도 드높은 기상이로다 상량을 아래로 밀어보세 곡조가 높으니 이로부터 화답이 적고 원님이 자주 지나가니 몇 번이나 문밖에서 거마를 환송했는가 엎드려 바라노니 상량한 뒤에 기둥나무는 썩지 않고 일가들 오래 번성하여 효로 책하고 충을 일과로하여 자식 잘 가리키라는 유훈을 추모하고 완고함을 밝게하고 나약함을 서게하여 풍성을 내세에 심으소서
10) 小亭山下逈無塵 綠竹靑槐閱幾春 永失寤歌仍遯世 自專心學以修身 枕宜庭石時惟憩 漱有溪流日又新 爲賀賢孫志堂構 辛勤改築舊規因
적은 정자 산밑에 있어 통쾌하니 티끌이 없고 푸른 대 푸른 괴목 몇 봄이나 보냈는가 오래도록 오가(寤歌)를 잃은 것은 세상에서 숨은 때문이요 스스로 심학(心學編)을 전공하여 수신했네 마땅한 뜰 돌로 베개 하니 때때로 쉴 수 있고 양치질할 물이 있어 날마다 새롭다 현손이 가업 이어가는 뜻을 치하하고 어렵게 개축하니 옛 규모로세
11) 謹次 臨亭問蹟蹟遐塵 如在一團和氣春 溪月登欄千載面 圖書滿壁百年身 ○雲老臾精神淡 庭草自家意思新 知邊先生攸枕漱 寓心水石號爲因
정자에 와서 행적을 물으니 행적은 티끌속에 멀어졌지만 한 무리가 화기에 찬 봄에 있는 것 같네 산골짜기에 뜬 달이 난간에 오르니 천년이나 낯익고 도서가 벽에 가득하니 백년 몸이다 구름을 바라보는 늙은이 정신이 맑고 뜰풀에선 자가의 의사가 새롭구나 선생은 침수할 줄 알고 마음을 수석에 붙여 호를 했다.
12) 小亭重建絶浮塵 山水中間關幾春 從古相傳吳楚界 至今不見許巢身 雲烟十里蔥蔥○ 花樹一村面面新 茂矣如松芭似竹 是家福祿○無因
조그마한 정자 중건 하여 속세를 끊었구나 산수 중간에서 몇 해 봄을 지냈는고 옛부터 오초(吳楚)의 경계 전해오며 지금은 허유(許由)와 소부(巢父)를 보지 못하겠네 십리에 뻗친 아지랑이 총총이 말려있고 꽃나무로 쌓인 마을은 낯낯이 새롭구나 무성한 것은 솔 같고 파초는 대나무 같은데 이 집의 복록 어찌 이 같지 않으리
13) 枕漱亭高絶點塵 溪山依舊百年春 登臨自足傳千世 嘯詠何曾濟一身 淸江不盡村容富 芳艸無邊野色新 秋風遠寄重修頌 早晩吾遊定有因
침수정이 높아 세속 풍진을 끊었는데 시내와 산은 옛 처럼 백년 봄이라 누정에 올라와 보니 자연히 천년을 전해 갈듯한데 휫파람 불며 읊다가 어찌 일찍 그만 두었는고 맑은 강이 끝이 없어 마을 풍경 풍요롭고 방초는 갓이 없으니 들 빛이 새롭구나 추풍에 멀리 중수한 칭송을 보내고 조만 간에 날짜 정하여 놀러 가리라
14) 溪山遙○息○塵 嘉木幽花次第春 林鳥相隨應識面 江魚渾忘不知身 愚時枕漱平生樂 經歲丹靑古制新 却羨淸和安養福 閑人前果有其因
시내와 산이 멀리 펼쳐 속세를 끊었는데 아름다운 나무 그윽한 꽃은 차례대로 봄일세 숲새들이 서로 따르니 응당 낯익은 탓이요 강 물고기에 정신 팔려 자신도 잊었네 때때로 침수정에 정을 붙이는 것이 평생의 낙이요 지난해 끝낸 단청은 옛것보다 새롭네 청화하게 편안히 기르는 복은 부럽기만 한데 한가한 그 사람 전세에 필연코 그 원인이 있었으리
15) 敬次 幽亭蕭灑出風塵 選勝溪山點富春 淸境亦能賁養氣 閒居非是要安身 ○書栗里當年樂 花石平泉歷世新 我欲登堂題有好 再過觴詠○無因
그윽한 정자 고요하여 세속풍진에서 벗어나 경치 좋은 계산을 부춘에다 자리 잡았네 깨끗한 지경은 기운을 기르기에 가능하고 한가롭게 사는것은 몸 편하기만을 요할 뿐이 아니리라 율리(栗里)에서 글 읽은 것은 그때의 낙이요 화석평천(花石平泉)은 해가 지날수록 새롭네 내가 당에 올라가 좋은 시를 짖고싶어 두 번 가서 술을 마시며 읊은 것은 어찌 인과가 없었을까
16) 謹次 楚山高○絶○塵 枕漱閑安度幾春 滿地江湖粧點意 浮雲富貴不關身 警秋玄鶴芳隣近 眠野鳥牛活畵新 未到斯亭名己好 東南賓主喜相因
초산의 높은 족적을 시끄러운 속진을 끊고 침수정에서 한가롭게 몇 해나 보냈는가 땅에 가득한 강호에서 단장한 뜻은 뜬 구름 같은 부귀는 내게 관여될바 아니어서다 가을 알리는 늙은 학은 이웃까지 향기롭고 들에서 자우는 검은 소는 살아있는 그림일세 이 정자에 오기전에 명성만 좋아했는데 동남의 손님과 주인 서로를 기뻐하네
17) 名亭水石浮無塵 結構重成乙酉春 垂裕家庭繩厥志 養閒林壑晦於身 窓間夜靜泉聲澈 ○外山來霽色新 居在隣鄕敦舊誼 ○書相約有相因
명성 있는 정자의 수석은 티끌 한 점 없고 맺고 얽어 중수한 것은 을유년 봄이요 연면히 이어온 가훈으로 그 뜻을 이으고 한가로운 산골짜기에 몸을 감추리 창가의 고요한 밤 샘물소리 맑고 처마 끝에 와 닫는 산 개인 빛이 새롭네 이웃마을에 살고 있어 우정이 두텁고 글 읽자고 기약한 것은 서로의 인연이 있었다
18) 仙亭繁馬不生塵 形役茫然四十春 碧水倒涵層壁影 白雲細繞老松身 林含道氣家家靜 山帶秋光面面新 二百年來今夕話 ○愁明月駐無因 <壬辰中秋 棠岳 尹觀夏 稿>
신선 정자엔 말을 매어도 티끌이 나지 않고 이래 저래 어언 40년을 보냈네 푸른물엔 층벽의 그림자 거꾸러져 드리어지고 흰구름은 늙은 소나무를 둘러싸고 있네 숲이 도(道) 기운을 먹음이니 집집마다 고요하고 산을 두른 가을빛 낯낯이 새롭구나 이백년 지나온 일 오늘밤 이야기 하고픈데 밝은 달이 머물러 있지 않을가 걱정되네
19) 一○登臨淨六塵 非徒秋好最宜春 蕭凉泉石能留客 謹飭衣冠摠登身 韻在淸風只依舊 像如纖月漸生新 ○○別業莽蒼地 愧我南爲尙未因 <夏山 曺秉會>
정자에 올라와 보니 육진이 깨끗하구나 가을만 좋은게 아니라 봄이 가장 아름답네 시원스런 산수의 경치는 능히 손님들을 머물게하고 근엄하게 꾸민 의관은 체모를 돋보이게 하네 운자는 청풍에 있으니 예대로 한것이요 형상을 솟아 오르는 달빛처럼 새로워만 지누나 은거하는 곳의 별장은 창창하고 내가 임금님 위하려는 마음 아직 이루지 못한것이 부끄럽네
20) 枕漱孤亭幾○塵 靑籬三互再逢春 救賢疏上諸紳首 望闕坦前盡憾身 江畔沙明殘雪白 原頭草祿晩風新 登欄回憶先生蹟 流水高山世世因 <七代孫 祐鏞>
침수의 외로운 정자 몇 번이나 티끌에 시달렸는고 세겹으로 두른 푸른 울타리 다시 봄을 만났네 어진이 구하려 상소한이는 벼슬아치의 우두머리요 대궐 앞 담장 바라보며 마음 근심 다했네 강가 맑은 모래는 잔설이 흰 듯하고 언덕 위의 초록풀빛 늦바람에 새롭네 난간에 올라 선생의 업적을 회상하니 흐르는 물 높은 산처럼 대대로 그러했네
21) 隔水爲亭不梁塵 幾年營構到今春 黃牛峽裏棲高○ 白鷺洲邊老此身 風景四時朝異暮 邱墟百祀舊還新 主翁枕漱幽閒趣 溪石之間號以因
물을 막아 정자를 지으니 티끌에 물들지 않고 몇 해나 집 지으려 경영하여 올 봄에 이르렀는가 황두협 속에는 지체 높은 분이 살았고 백로주 가에선 이 몸이 늙었네 풍경은 사철마다 아침 저녁으로 다르고 폐허된지 백년만에 옛처럼 도로 새롭구나 침수정 주인 유한한 취미로 시내와 돌 사이를 정자 액호로 했네
22) 精築小亭絶俗塵 主翁和氣一團春 湖山有約開眉目 天地無思養志身 願雨得泉遐想古 ○杯題律更添新 南下百年瞻仰事 强將愚魯好攀因
정성드려 지은 정자 속진을 끓으니 주인장의 화기는 한덩이 봄일세 호산에 기약을 두니 미목이 뜨이고 천지간에 생각없이 뜻을 길러왔네 빗물이 샘되길 원하여 옛일을 회상 해보고 술잘들며 시를 쓰니 새로움이 더하네 남으로 내려온 백년사를 우러러 보니 구태여 우매한 것 좋아 했을 뿐일세
23) 謹次 八愚舊址淨無塵 肯構名亭度幾春 ○巖僊樂頻游夢 呑吐江聲完酒身 齊岑嘉木村容古 漢渚明星夜像新 先○風岩知不遠 登臨此日感懷因
팔우공의 옛터 티 없이 깨끗한데 명성 있는 정자 이어 온지 몇 해나 지났는가 높은 바위에서 들리는 신선 풍악 꿈속에서 자주 놀고 삼켰다고 토하는 강물소리 아주 취한 듯 하네 가지런한 봉우리 아름다운 나무 옛 마을 그대로이고 은하수 가의 밝은 별 밤 풍경을 새롭게 하네 선산의 풍암의 가까워 올라와 굽어보는 이날 감회가 깊구려
24) 雲林自古遠城塵 一幅牛山萬樹春 範圍泉石先生宅 管領烟霞處士身 滄桑浩○年維舊 奕葉家聲日又新 望闕壇前流去水 朝宗東海有源因
운림 속은 옛부터 속진을 멀리했고 우산에 가득한 나무는 한 폭의 봄일세 산수의 절경주변은 선생의 댁이요 아지랑이 깔린 곳 처사의 흔적이라 산전벽해 아득하여 옛 해가 되었고 싹 돋는 가문명성 나날이 새롭네 대궐을 바라보는 단 앞엔 물이 흘러가고 동해가 조종이 된 것은 원인 있네
25) 溪亭瀟灑出風塵 洪氏藏修二百春 蒼然古色桑梓里 澹泊生涯泉石身 構堂肯處嗣承好 師友公時趨向新 海上三花生不目 靈源愁殺說無因
시내 위에 있는 정자 깨끗하여 속세를 벗어났고 홍씨가 공부하던 집 이백 년이 되었네 고색이 창연한 고향에서 담백했던 한 평생 산수간에 묻힌 몸이네 집을 지은 것은 고히 이어가는 것이요 스승과 벗이 회동할 때 취향이 새로워지네 해상의 세 꽃은 보지 못했고 마음이 비탄한걸 말해서 무엇하리
26) 鰲山一脈逈超塵 重建斯亭乙酉春 興廢人間還若夢 逍遙林下樂終身 別區水石襟懷冷 滿壑圖書世業新 杖○先生那箇地 乃知當日號爲因
금오산 한 맥이 풍진에서 벗어나 이 정자를 을유년 봄에 중건했네 인간의 흥하고 폐하는 것은 돌아보면 꿈 같으니 산수간에 소요하면서 종신토록 즐기련다 특별한 구역의 수석은 마음속을 시원케 하고 지하실에 가득한 도서는 가업을 새롭게 하네 선생이 쉬어 가신 곳 그 땅이니 이제야 그 당시 정자 액호로 명명한 이유를 알았네
27) 枕漱高亭不俗塵 蒼松脩竹四時春 孤山門下往來蹟 眉老筵前揖讓身 △峰簇簇雲中出 芳草○○簾外新 先生杖○地猶在 後學羹墻自有因
침수의 높은 정자 속진에서 벗어나고 푸른솔 긴대는 사시철 봄이네 윤고산 선생의 문하에 래왕한 흔적 있고 허미수 선생의 자리 앞에서 읍양한 몸이네 뽀족한 봉우리 쌓여 구름속으로 나오고 꽃다운 풀 파릇파릇 주렴박이 새롭네 선생이 쉬시던 땅이 아직 있는 듯 하니 후학들이 높이 사모하는 것은 그 이유가 있다
28) 謹次 牛峽小亭特出塵 愚翁家裡復回春 淸溪鳴枕醒客耳 白石○牙快靖身 一局江山交聚美 百年臺樹再修新 主人能繼先公志 舊號扁楣不替因
우협의 조그마한 정자 특별히 속진에서 벗어나니 우옹의 집안에 다시 봄이 왔네 시내 물소리 베개를 울리니 손님의 잠귀를 깨우고 흰 돌로 어금니를 닦으니 몸이 상쾌하고 편안하네 한국면의 강산은 아름답게 짜여져 있고 주인은 능히 선조의 뜻을 이어 옛날의 호와 처마의 액자는 바꾸지 않았네
29) 小亭山下逈無塵 綠竹靑槐關幾春 永失寤歌仍遯世 自專心學以修身 枕宜庭石時惟憩 漱有溪流日又新 爲賀賢孫志堂構 辛勤改築舊規因
침수정 차운의 첫머리에 기록됨
30) 憶昔登亭一滌塵 如今荏苒九駐春 枕來有思人閒雨 漱罷無疵巖穴身 顔巷曲肱何所樂 湯盤去垢又剽新 自憐弊○難重理 遙寄和章留業因
옛날을 생각하며 정자에 올라 풍진을 씻고 지금껏 시간을 끌며 구년을 머물렀네 베개 베고 생각하니 人間에 비가 내리는 듯 양치질을 끝내고 보니 바위틈 신세이네 안자님 루항에서 팔을 베개한 것은 무슨 락이며 탕님금 소반에서 때를 버린 것은 표독하게 새롭고저 함이네 떨어진 집신 다시 쓸수 없으니 가련하구나 멀리서 붙여온 답장은 머물러 업을 닦으라는 것
31) 謹次 亭○重成不染塵 暖花嘉○洞中春 鹿樵入夢雲三面 鷗渚尋孟雪一身 大野范范天際遠 群山簇簇畵中新 坐來毛骨依然換 此日仙駿○可因
정자가 중건되니 티끌에 물들지 않고 따스한 꽃 아름다운 정자 마을속의 봄일세 사슴이 꿈에 보이더니 삼면이 구름바다요 물가의 갈매기 제몸 깨끗하길 더욱 맹세하네 큰 들은 범범하여 하늘 끝이 멀고 군산이 많이 모이니 화폭이 새롭네 살아오는 모골이 의연히 빛나니 이날 신선의 준마가 배회함인가
32) 高閣重成廻絶塵 中間條忽百餘春 誰知此日逍遙地 曾是先生隱遯身 四面江山依舊在 一區松竹至今新 前村花樹交相映 萬紫千紅摠有因
누각을 높이 지어 세상 티끌 끊었구나 그 사이에서 어언 백여년이 되었네 누가 오늘 소요할지를 알았는가 일찍부터 선생은 은둔해 왔네 사면의 강산은 옛 모습 그대로 있는데 한 터전의 송죽은 지금에야 새롭네 마을 앞 꽃과 나무 어울러져 서로 비추이니 만자 천홍이 다 원인이 있으리
33) 敬次 亭名枕漱巳前塵 幾歲經營創是春 樂以智仁高尙志 老於耕讀太平身 野川西日魚游活 簾幕東風○賀新 多謝君家淸福厚 庭梧園竹世居因
정자 이름을 침수라 한 것은 예전 일인데 몇 해나 경영하여 이봄에 지었는가 지와 인으로 락을 삼은 것은 고상한 뜻이요 밭 갈고 글 읽으며 늙어가니 태평한 몸일세 들 냇에는 해질 무렵 고기떼가 뛰놀고 주렴 장막에 동풍이 부니 제비도 새것을 축하하네 후하게 사례하는 그대의 집안 청복이 두텁고 뜰에 있는 오동나무 후원의 대나무는 대대로 살아온 탓이네
34) 靈境淸無一點塵 四時和氣滿亭春 風輕柳岸徐吹面 月近荷塘澹照身 論道講書年旣積 臨流漱石日維新 幽居願守箕○業 重構山阿舊制因
신령스런 경내가 깨끗해 티끌 한 점 없고 사시철 화창한 기운 정자에 가득하네 가벼운 바람 버들가에 서서히 불어오고 연못 가까이 뜬 달은 담담하게 비추네 도를 강하고 글을 읽은 지 오래인데 흐르는 물이 수석에 다다르니 날로 더욱 새롭네 고요히 사는 것은 가업을 지키고자 함이요 산언덕에 중건한 것은 옛 모습일세
35) 敬次 賢孫肯構感前塵 歲在靑鷄之暮春 金鰲山古會撑背 玄鶴涕傳己幻身 瀕上掛瓢風不○ 零陵記石面呈新 於斯休憚○攀努 後學羹墻庶可因
어진 손자 가업을 이으니 전진이 감격스럽고 그 해는 을유년 늦 봄이었네 금오산이 오래부터 등을 버티었고 늙은 학은 울면서 더 없는 몸에 전하네 물가 위에 걸어둔 표주박 바람에도 깨지지 않고 영능에 기록한 돌 낯에 새로운 사실 나타나네 거의 올라온 노력 꺼리지 말게 후학이 추모하니 거의 이루리
36) 先生亭樹絶○塵 重建以前幾度春 傳子傳孫一百世 疑仙疑佛億千身 野花江月今如古 澗竹巖松晩更新 最是君家淸淑氣 湖南雲物此中因
선생의 정자 속진을 끊었는데 중건 이전에 몇 년이나 지났는가 아들에게 전하고 손자에게 전하여 백년이 되었고 신선인 듯 부처님인 듯 억천년 살아갈 몸이네 들꽃 강달은 이제나 예나 같고 산골 물가의 대 바위틈의 솔은 늦도록 푸르네 그대 가문의 청숙한 기운이 가장 으뜸이요 호남의 경물은 이 가운데 있네
37) 人愚亭子遠○塵 經識斯翁臥富春 明月溪邊鼓漱齒 白雲山下枕流身 遐情粧點松筠美 高○留傳水石新 蕃衍後昆修別業 黃牛峙裏世居因
사람이 정자를 만나니 시끄러운 속진이 멀어지고 경륜과 식견 높은 하내비 부춘에 누어있네 밝은 달 시냇가에 북 치며 양치질하고 흰 구름 산아래서 흐르는 물 베개 하네 세정을 멀리하고 송균을 아름답게 가꾸니 존귀한 족적을 수석에 전하여 새롭게 하네 번성하는 후손들 별장을 속수하고 황우치 속에서 대대로 살아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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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학정(玄鶴亭) |
春陽面 龍頭里 산중턱에 있으며 단층의 팔작지붕 골기와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2칸에 中齋室이 있다. 최근에 중창한 것으로 보이며 亭內에 현판은 없다. 處士 鄭謹이 세운 것으로, 閔鼎重의 詩가 邑誌에, 華隱의 詩가 和順誌叢에 수록되어 있다.
1) 歌罷滄浪步石頭 鷺眠沮岸夕煙收 誰知華表千年鶴 更返江南百尺樓 月下淸簫題子晋 園中牢睡夢莊周 重修舊舍逍遙志 爭似當時谷口侯
노래가 창랑에 그치니 돌 머리를 거닐고 해오리 자우는 물가에 저녁 노을 걷치네 누가 표 앞의 문안에 천년학이 있을 줄 아리 강남의 백년루에 다시 돌려보내네 달 아래에서 맑은 소리로 시를 읊으며 자진을 쓰고 동산속에서 자울며 장주를 꿈꾸네 옛 정자를 중수한 것은 소요 할 뜻인데 어찌하여 당시엔 곡구 원님이던고
2) 玄鶴亭志感 落天一鶴壓荒塵 付在烟霞淑氣新 餘精石立岩岩像 千載名亭有主人
하늘에서 떨어진 한 학 거친 티끌 싫어서 그윽한 안개속에 붙혀 있으니 숙기는 새롭네 여정으로 돌을 세우니 쌓여진 바위 상이요 천년을 전할 명성 있는 정자에 주인이 있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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