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굴서 앉은 채 얼어 죽을 뻔했던 선사 / 혜월 스님
혜월(慧月)스님은 경허선사의 수제자 가운데 한분이었다.
스님은 1861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났는데 속성은 신(申)씨였다.
11살 때 예산 정혜사에서 득도하였고 1884년 천장암에서
경허선사로부터 보조국사 지눌의 수심결을 배우면서부터
글공부를 시작, 처절한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경허선사로부터
인가를 받아 “그대는 남방에 인연이 있으니 남쪽으로 내려가라”는
스승의 분부에 따라 선산의 도리사, 팔공산의 파계사, 울산의 마타암,
통도사의 극락암, 천성산 내원사, 부산 선암사에서 선풍을 크게
드날리고 1937년 부산 금정산 안양암에서 세수 77. 법랍 66세로 입적했다.
까막눈의 일자무식으로 출가
혜월스님은 어려서 글공부를 해본 일이 없는 까막눈이었다.
경허선사를 천장암에서 모시고 있던 혜월은 어느 날 경허선사께
글공부를 가르쳐달라고 간청했다.
“뒤늦게 글공부는 무슨 글공부를 하겠다고 그러는가?”
“글 공부 하는데 이르고 뒤늦고 가 어디 따로 있겠습니까?
배우면 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어디 한번 배워 보게나.”
혜월은 그날부터 경허선사로부터 수심결을 배우며 마음 닦는
법과 한문, 두 가지를 한꺼번에 익히게 되었다.
그후 혜월은 불교의 진리가 글자 속에 있지 아니함을 깨닫고
바위 밑에 뚫린 토굴 속에 들어가 오직 화두참구에 매달렸다.
때는 엄동설한, 바위굴 속의 돌바닥위에 정좌하고 며칠 동안
화두만 들고 있었으니 온몸이 얼음처럼 얼어갔지만 혜월은
몸이 얼어 굳어 가는 것도 잊은 채 참선삼매에 빠져 있었다.
혜월이 바위 밑 토굴에 들어 간지 7일째 되던 날, 경허선사와
만공이 토굴 속으로 들아가 보니 혜월의 몸은 이미 얼어서 굳어있었다.
“이것 보게 만공, 혜월의 몸이 얼어 앉은채로 굳어버렸어.”
“스님, 날씨가 너무 추워 얼어 죽었나 봅니다.”
“아니야. 눈빛이 아직 살아 있으니 죽지는 않았어.
어서 가서 따뜻한 물이나 갖고 오게나.”
만공이 천장암으로 급히 내려가 더운물을 가져다가 가까스로
혜월을 구했다.
혜월은 짚신 삼는 솜씨가 뛰어나서 남이 한 켤레 삼을 동안에
세 켤레를 너끈히 삼아내는 탁월한 솜씨를 보여주곤 했다.
그리고 틈만 나면 짚신을 삼아서 나뭇가지에 걸어놓고 아무나
필요한 사람이 신도록 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알았다.
아직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 채 토굴 속에서 참선삼매에 빠져있던
어느 날, 스승 경허선사가 짚단을 토굴 안으로 던져 넣으며
한마디 하셨다.
“내일은 먼 길을 떠나야겠으니 짚신이나 한 켤레 삼아 주게나.”
혜월은 스승의 분부를 받자 곧바로 짚신을 삼기 시작했다.
그리고 짚신을 다 삼은 후 마지막 손질을 하느라고 나무망치로
짚신을 탁탁 두드렸다.
그 순간, 나무망치 소리에 천하의 문이 활짝 열렸다.
드디어 깨달음의 한순간이 혜월에게 찾아온 것이었다.
혜월은 감격과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경허선사께 달려갔다.
“그대는 대체 참선은 무엇하러 하는가?”
“못에는 물고기가 뛰고 있습니다.”
“허면 자네는 지금 어디에 있는고?”
“산꼭대기에 바람이 지나 갑니다.”
짚신 삼다 한 소식 얻어
경허선사는 그 자리에서 혜월이 한 소식 얻었음을 인가하시고
전법 게송을 내린 뒤
“그대는 남쪽에 인연이 있으니 이 길로 남쪽으로 내려가라”고 일렀다.
그리고 제자가 마지막으로 삼아준 짚신을 신고 천장암을 떠났고,
혜월 또한 그 길로 남쪽으로 향했다.
이것이 스승과 제자의 마지막 이별이 될 줄이야 혜월이
어찌 상상이나 했으랴.
혜월스님이 양산의 내원사에 계실 때의 일이었다.
어느 여름날 스님이 출타하려고 산길을 내려가고 있었는데
계곡 냇물에서 한무리의 아이들이 물고기를 신나게 잡고 있었다.
스님이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아이들이 들고 있는 바구니 안에는
이미 잡아놓은 물고기들이 몇 마리 펄떡거리고 있었다.
“이 물고기들 모두 너희들이 잡은 것이냐?”
“예 스님. 우리들이 잡았심니더.”
“그 그럼 말이다. 이 물고기 모두다 나한테 팔아라.”
“예? 아니 물고기를 팔라니요?”
“내가 값을 후하게 쳐줄 것이니, 이 물고기들 다 나한테 팔란 말이다.”
“값을 후하게 쳐주신다구요?”
“그래 그래. 그 돈으로 너희들은 사탕이나 사먹으면
그게 더 좋지 않겠느냐?”
헤월스님은 기어이 아이들을 달래 후한 값을 쳐주고 바구니에
담겨있던 물고기를 모두 다 샀다.
그런데 물고기 바구니를 건네 받은 혜월스님은 그 자리에서
물고기들을 냇물에 풀어주었다.
바구니에 갇혀있던 물고기들은 그야말로 이제야 살았다는 듯이
흐르는 물결을 따라 뿔뿔이 흩어져 떠내려갔다.
아이들이 다시 소리를 지르며 물고기를 잡으러 쫓아 내려가더니
여기 저기서 “잡았다. 잡았다.”하며 소리를 질렀다.
“그 물고기 나에게 팔아라”
결국 혜월스님이 돈을 주고 사서 냇물에 풀어주었던 물고기들은
대부분 다시 잡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혜월스님은 이번에도 또 후한 값을 쳐주고 그 물고기들을 모두
다 사서 또 다시 냇물에 풀어 주었다.
그러나 물고기는 또 금방 아이들 손에 붙잡히는 신세가 되었다.
혜월스님은 이번에도 또 돈을 주고 물고기를 사서 냇물에 풀어주었다.
세상에 참 별 이상스러운 스님도 다 있다는 듯,
아이들이 스님을 이상스런 눈빛으로 쳐다보며 물었다.
“스님, 왜 물고기를 돈 주고 사서 자꾸 냇물에 풀어 주시는 겁니까?”
“왜는 인석들아, 물고기들이 불쌍해서 그런다.”
“불쌍해서요?”
“그래. 헌데 이번에는 또 안 잡을거냐?”
아이들은 그제서야 멋쩍은 듯, 고개를 가로 저으며 시무룩하게 말했다.
“이자 그만 잡을랍니더.”
그리고 아이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고기 잡던 도구들을 챙겨
산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었다.
혜월스님은 그제 서야 흡족한 웃음을 지으며 아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일자무식으로 출가득도 했던 스님, 혜월스님은 바로 그런 스님이셨다.
법보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