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탐구] 차량들이 둥둥 떠다닌 강남역 일대
집중호우 감당하지 못하는 강남 지역 과거 교훈에도 불구하고 피해 되풀이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강남은 물바다였다.
지난 8일 하늘이 열린 듯 쏟아진 빗물은 그 일대에서 가장 낮은 강남역 주변으로 몰려들었고 우수관과 하수도가
감당하지 못한 물은 땅 위로 차올랐다. 사람은 물론 승용차와 버스까지도 둥둥 떠다닐 지경이었다.
서울과 경기북부 등 수도권에 폭우가 내린 8일 오후 서울 강남구 일대 도로가 침수돼 차량이 잠겨 있다. (사진=뉴시스)
115년 만의 기록적 폭우라 미처 대비할 수 없었던 것일까. 하지만 예전 일들을 돌아보면 강남은 수해에 취약한 지역임을
알 수 있었을 것이고 그래서 미리 대비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을 텐데.
(2022. 08. 10) 지난 8일 강남역 일대에 쏟아진 집중호우로 뒤집힌 차량이 10일 오후에 강남역 인근 서초대로에 방치돼 있다. )
'비만 오면 고립되는 잠원동 일대'
위 소제목은 현재 이야기가 아니다. 1969년 여름 <경향신문>에 실린 기사의 제목이다.
아직 한남대교가 생기기 전, 당시 영등포구였던 잠원동에는 ‘사평나루’가 있었다. 한강 건너 한남동이나 서빙고로 나룻배를
운항했다. 사평나루는 인근 반포동과 잠원동, 그리고 당시는 성동구였던 신사동 등 강남 주민들이 서울로 갈 때 이용하는
교통의 요지였다. 기사는 당시 장마로 고립된 잠원동의 모습을 묘사한다. 마을 앞으로는 불어난 한강이 흐르고 옆과 뒤로도
불어난 하천으로 둘러싸인 잠원동. 영락없는 섬의 모습이다.
그래서 잠원동이 “근대화 속의 낙도(落島)”라거나 주민들이 “꼬박 고립된 섬 생활”을 한다고 설명한다.
기사는 뱃길이 끊겨 출근하지 못한 직장인이나 등교하지 못해 시험을 치르지 못하게 되었다는 학생의 말을 인용해 한강 이남 지역 서울 시민들의 불편한 생활상을 알린다. 만약 배를 타지 못한다면 “최소한 10여리 길을 걸어 동작동 끝 이수교까지 나가” 버스를 타야 한다고.
마지막으로 기사는 1969년 말에 제3한강교, 즉 한남대교가 완공되면 잠원동 등 강남 주민들의 고립된 섬 생활이 나아질 것으로 예상하며 마무리한다.
1970년대초 잠원동일대. 한남대교 완공 초기의 모습으로 강남이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전이다. 한남대교를 중심으로
오른쪽이 신사동, 왼쪽 강변이 잠원동, 사진 아래 지역이 반포동이다. 전체적으로 저지대다. (사진: 서울역사아카이브)
그런데 한남대교가 완공된 수년 후인 1973년 2월 <동아일보>에 ‘강남 연안이 강북보다 물에 약하다’라는 기사를 낸다.
1972년 8월 한강 일대에 내린 기록적 폭우로 큰 피해를 본 것에 대한 정부 대책을 검증하는 기사다.
정부는 수해 대책을 위해 한강 연안을 항공촬영해 지형을 분석했다. 이 분석결과에 따르면 한강의 탁류가 범람한 침수지역으로 잠원동 등 강남 지역을 지목한다. 그 외 배수가 안 돼 침수된 지역으로는 흑석동과 잠실·암사·풍납동 등이 있었다.
강남 지역이 한강에 면해 있어 범람하면 그 피해를 고스란히 받을 수밖에 없는 데다 배수시설까지 부족한 것을 알려준다.
정부는 항공사진으로 파악한 침수지역을 위해 수방 대책을 세울 것이라고 밝힌다.
그 대책으로 하천 주변 제방 쌓기와 배수시설 정비 등을 들었다. 그런데 이 대책은 실천으로 이어졌을까?
위 기사가 나간 4년 후인 1977년 7월 <동아일보>는 ‘문제점 강타당한 겉치레….
하수불비(下水不備)의 참변’이라는 기사를 낸다.
서울에 큰비가 내렸는데 “하수시설이 제대로 안 된 강남 지역의 피해가” 컸음을 밝히는 기사다.
“대부분 인명과 재산 피해는 빗물이 빠져나가지 못하고 주택가로 몰려드는 바람에” 발생했다고.
특히, “하수시설이 된 곳은 대부분 강북지역으로 강남 지역 등 신개발 지역 변두리 지역은 하수도 시설이 제대로 돼 있지
않다”며 그 지역으로 ‘영동’, 즉 강남 지역 등을 꼽는다. 강남 지역은 배수시설이 부실해 큰비만 오면 물난리가 난다는 지적.
기사는 강남 등 변두리 지역에 배수시설 확충 등 실질적 수해 대책이 필요하다며 마무리한다.
강남은 항아리?
지난 8일 강남역 일대가 물바다가 된 이유 중 하나는 지형 특성에 있다. 강남역이 주변 지역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낮은 곳에 자리한 것. 만약 강남역 일대를 걸어서 돌아다녀 본다면 그 땅의 굴곡을 몸으로 깨달을 수 있다.
우선 강남역 사거리에서 테헤란로를 따라 역삼역으로 향해보자. 계속 오르막인 것을 알 수 있다.
강남역과 역삼역의 표고 차가 약 14m라고 한다. 만약 역삼역에서 물이 솟는다면 강남역으로 흘러내릴 게 분명하다.
(2022. 08. 10) 역삼역 쪽에서 바라본 강남역 방향. 내리막이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2. 08. 10) 강남역 인근 먹자골목에서 바라본 강남대로 방향. 내리막이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다음으로 강남역에서 신논현역 방향 오른쪽 블록에 있는 먹자골목에 가보자. 맛집이 몰려 있는 골목에 ‘언덕길’이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경사진 곳에 있다. 이 동네에 비가 내리면 강남대로로 빗물이 흘러내릴 수밖에 없다.
게다가 강남역은 강남대로 북쪽의 신사역과 남쪽의 양재역보다 낮다. 그래서 강남역 일대를 항아리 지형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물이 흘러 내려와 고이는 항아리.
물론 빗물을 처리하는 우수관과 하수관이 곳곳에 있다. 그런데 그 처리 용량을 넘겨서 비가 내린다면 어떻게 될까.
지난 8일처럼 우수관과 하수관이 넘쳐 물이 땅 위로 솟구칠 수밖에 없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 8일 시간당 최대 강수량은 강남구 116mm, 서초구 110mm였다고 한다. 그런데 강남 지역의 시간당
최대 강수 처리 용량은 85mm라고. 처리할 수 있는 최대 용량을 넘겨 비가 쏟아졌으니 배수 시스템이 감당하지 못할 수밖에 없었다.
강남역은 이번뿐만 아니라 2011년에도 물에 잠겼었고 지난 2020년에도 침수됐었다.
거의 50년 전인 70년대에 지적한 강남 지역의 배수시설 부족 문제가 2022년에도 여전히 나타나고 있는 것.
(2022. 08. 10 지난 8일 집중호우의 여파로 도로 곳곳이 뜯긴 강남대로.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2. 08. 10 지난 8일 집중호우의 여파로 도로 곳곳이 뜯긴 강남대로.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한편 서울시는 지난 2015년에 <강남역 일대 및 침수 취약 지역 종합배수 개선대책>을 내놓았다.
총예산 1조 4천억원 규모의 사업으로 강남역 등 주요 침수 취약 지역의 수방시설을 확충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난 8일의 집중호우에는 별 효과가 없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각종 문제점을 지적한다. 어떤 이는 예산 감액을, 다른 이는 변경된 계획을 들었다. 그리고,
서울시는 강남 지역 수해 대비를 위한 새로운 대책을 내놓았다. 아마도 머지않은 미래에 그 결과로 검증할 수 있을 것이다.
물난리 후 강남은
비구름대 정체전선이 남쪽으로 내려간 10일 오후 강남은 평소 모습처럼 보였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난 8일의 물난리 흔적이 아직 남아 있었다. 눈에 보이는 쓰레기는 다 치운 듯했지만 강남대로 곳곳에는 수압에 뜯긴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심지어 서초대로에는 지난 8일에 침수한 차들이 뒤집힌 채로 방치돼 있었다.
강남역 인근 서초동 빌딩가에서 모터 소리가 들렸다. 그곳에 소방대원들을 중심으로 한 구조본부가 있었다. 그들은 지난 8일 한 건물 지하주차장으로 쏟아진 급류에 휩쓸린 실종자를 찾고 있었다. 현장 관계자는 지하 6층 주차장까지 들어찬 물을 아직 다 퍼내지 못했다고 전했다. 11일 오전 현재 아직 실종자를 찾지 못했다.
(2022. 08. 10) 서초구 한 빌딩 앞에 설치된 구조본부. 이 건물 지하주차장이 물이 들어차 실종자가 발생했다.
(2022. 08. 10) 실종자가 발생한 서초구의 한 건물 지하주차장에서 배수작업을 벌이고 있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2. 08. 10) 실종자가 발생한 서초구의 한 건물 지하주차장에서 배수작업을 벌이고 있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충청도와 강원도로 간 비구름대 정체전선이 전국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한다. 만약 다시 서울에 집중호우가 내린다면
강남 지역은 아마도 준비된 만큼 빗물을 빨아들일 것이고 그 용량을 감당하지 못하면 다시 뿜어낼지도 모른다.
지난 며칠 언론들은 강남 지역의 물난리에 주목했다. 그 어떤 시절, 그 어떤 지역에 펼쳐진 수해보다 더 관심을 쏟은 듯하다. 서울이라서 그랬을까 아니면, 아무나 살지 못하는 강남이라서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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