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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야 남산아
 
 
 
카페 게시글
# 세계 여행 ​일본 기타규슈시(北九州市) 고쿠라성(小倉城) '간류도(巌流島) 결투' 조형물
浮雲 추천 0 조회 8 26.07.20 05:06 댓글 7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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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6.07.20 05:09

    첫댓글 고쿠라성 정원에 세워진 이 동상은 일본 역사상 가장 유명한 라이벌, 미야모토 무사시(宮本 武蔵, Miyamoto Musashi)와 사사키 코지로(佐々木 小次郎, Kojiro Sasaki)의 그 유명한 '간류도(巌流島) 결투' 장면이다.

  • 작성자 26.07.20 05:10

    1612년 ​당시 사사키 코지로는 고쿠라번의 검술 사범(지도가)으로 있으면서 '모노호시자오(빨랫줄)'라 불리는 아주 긴 장검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천재 검객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반면 미야모토 무사시는 유랑하며 실전을 쌓던 거친 실전파 검객이었다.

  • 작성자 26.07.20 05:11

    두 사람은 고쿠라 앞바다에 있는 작은 섬인 후나시마(현재의 간류도)에서 생사를 건 결투를 벌이게 된다. 여기에는 무사시의 그 유명한 '심리전'이 등장한다.

  • 작성자 26.07.20 05:12

    ​결투 당일 아침, 코지로는 약속 장소에 일찍 나와 무사시를 기다렸다. 하지만 무사시는 약속 시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고, 정오가 다 되어서야 유유히 배를 타고 섬에 도착했다. 코지로는 기다리는 동안 초조함과 분노로 평정심을 완전히 잃고 말았다.

  • 작성자 26.07.20 05:13

    ​배에서 내리는 무사시를 보고 화가 머리끝까지 난 코지로는 칼을 빼들고 칼집을 바다에 던져버렸다. 이를 본 무사시는 정곡을 찌르는 한마디를 던진다.
    ​"코지로, 네가 졌다. 승리할 생각이라면 칼집을 버릴 리가 없다." (싸움이 끝난 후 칼을 다시 거둘 생각이 없으니, 죽을 각오가 아니라 이미 평정심을 잃어 패배를 자초했다는 도발이었다.)

  • 작성자 26.07.20 05:15

    코지로의 장검이 가진 사거리를 간파한 무사시는 섬으로 오는 배 안에서 나룻배의 노를 깎아 만든 거대한 목검을 준비했다. 코지로의 진검보다 훨씬 긴 리치를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결투가 시작되자 코지로는 자신의 필살기인 '츠바메가에시(제비반전베기)'로 매섭게 공격해 무사시의 머리띠를 베었지만, 무사시는 그보다 한발 앞서 긴 목검으로 코지로의 머리를 내리쳤고, 결투는 무사시의 승리로 순식간에 끝이 났다.

  • 작성자 26.07.20 05:16

    왜 고쿠라성에 이 동상이 있을까?
    ​이 결투를 주선하고 승인한 사람이 바로 당시 고쿠라성의 성주였던 호소카와 가문이었다. 코지로는 호소카와 가문의 검술 사범이었고, 무사시의 아버지는 호소카와 가문을 섬기던 무사였기에 이 지역과 깊은 인연이 있다.
    ​동상을 자세히 보면 코지로는 긴 진검을 높이 치켜들고 있고, 무사시는 노를 깎아 만든 거대한 목검을 아래로 내리쬐며 도약하는 역동적인 모습이 그대로 재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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