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주 구천동 일사대 일원 ■
지정번호 명승 제55호
소 재 지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두길리 2109 외
지정면적 51,922㎡
지 정 일 2009년 9월 18일
예로부터 무주 구천동은 산 좋고 물 좋은 고장으로 잘 알려졌고, 북한의 삼수갑산과 함께 심산유곡의 대명사였다. 구천동 계곡은 무주와 무풍 사이를 흐르면서 금강의 지류인 남대천으로 흘러 들어가는 길이 30㎞의 하천을 따라 이루어진 계곡으로서, 설천면 소천리에 있는 신라와 백제의 경계 관문이었던 나제통문에서 시작하여 덕유산까지 구절양장의 굽이굽이를 형성하고 있다.
일사대는 무주군 설천면 두길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구천동에서도 3대 경승지의 하나로 꼽히는 명소이다. 또한 일사대는 수성대라고도 하는데 나제통문에서 6.1㎞ 지점, 학소대 상류 0.3㎞ 지점으로, 서벽정의 서쪽에 우뚝 솟은 기암이 배의 돛대 모양을 하고 있는 절승의 경관이다. 구천동 33경 중에서 제6경인 일사대는 굽어 흐르는 원당천의 침식작용에 의하여 발달된 하식애河蝕崖이며, 이 일대의 지질은 중생대 백악기의 화산활동으로 이루어진 석영안산암이 분포한다. 천 길 낭떠러지의 창암, 수성대가 천년송을 머리에 인채 일사대를 굽어보는 모습은 장관을 이루고 있다. 일사대 주변은 소나무와 활엽수가 어우러진 2차림 지역으로서, 청청한 소나무와 그 사이의 단풍색이 잘 어울리고, 특히 2단으로 된 수직 암벽인 일사대 위의 소나무 한 그루가 마치 어사화를 장식한 관모를 연상하게 한다.
구천동 33경은 설천면 두길리·심곡리·삼공리 일원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경관으로 나제통문을 제1경으로 하여 덕유산 상봉을 제33경으로 하는 절경들을 지칭하며, 9,000굽이를 헤아린다는 구불구불한 계곡에 학소대·추월담·수심대·수경대·인월담·청류동·구월담·금포탄·청류계·구천폭포 등이 포함된다. 갈천 임훈의 「등덕유산향적봉기」에 의하면 구천동은‘구천둔九川屯’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 까닭은 성불공자가 9천 명이나 살았다 하여 구천인의‘둔소屯所’라는 뜻이다.
일사대는 조선 말 고종 때의 학자 연재淵齊송병선宋秉璿(1836~1905)이 이곳의 아름다운 경치에 반해 은거하여‘서벽정棲碧亭’이라는 정자를 짓고 후진을 양성하며 소요하던 곳이다. 이 고장 선비들이 송병선을 동방에 하나밖에 없는 선비라는 뜻의‘동방일사東方一士’라 한데서 그 명칭이 유래되었으며, 푸른 바위의 깨끗하고 의젓함을 들어‘일사대一士臺’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송병선은 구천동 계곡에 구곡경관을 명명하여 무이구곡이라 하였는데, 일사대는 송병선이 경영한‘무이구곡武夷九曲’의 제4곡이다. 구천동의 무이구곡은 구천동 33경 중 제2경 은구암을 제1곡으로, 제4곡 와룡담을 제2곡으로, 제11경 파회를 제9곡으로 설정하였다. 일사대에는 진입부의 바위에 무이구곡을 나타내고 있는‘무이동武夷洞’이란 각자가 새겨져 있는데, 무이동이란 명칭은 송병선이 성리학에 기반을 두고있는 학자로서 주자의 무이구곡으로부터 이름을 가져와 이곳을 무이구곡이라 명명하고, 주자를 흠모하는 은일생활을 한 곳을 의미하는 것이다. 서벽정은 강학을 한 공간으로 주자가 경영한 제5곡 무이정사에 해당하는 정자이다. 서벽정은 송병선이 당시의 세태를 비판하고 은둔생활을 하던 거처로서, 영호남의 선비들과 시국을 논하며 후진을 양성하던 곳이다. 계류에 우뚝 솟은 바위에는‘인간사를 영원히 버리고 나의 도를 창주에 붙인다(永人間事吾道付滄洲)’라고 한 송병선의 7대조 우암 송시열의 글이 남아 있다.
■ 무주 구천동 파회·수심대 일원 ■
지정번호 명승 제56호
소 재 지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심곡리 산13-2 외
지정면적 53,280㎡
지 정 일 2009월 9월 18일
무주 구천동 파회巴回는 무주군 설천면 심곡리에 위치해 있으며 덕유산 국립공원 내에 입지하고 있다. 파회는 나제통문에서 10.9㎞에 위치하고 있는 구천동 3대 명소의 하나이며, 고요히 잠긴 소沼에서 급류가 암석에 부딪히는가 하면 다시 소를 이루어 굽이굽이 흐르는 계류의 경관은 선경과 같이 아름다운 절경을 이루고 있다.
수심대는 파회에서 0.4㎞구간이 연계된 명소로서 구천동의 제12경이며, 신라 때 일지대사가 이곳에서 흐르는 맑은 물에 비치는 그림자를 보고 도를 깨우친 곳이라 하여 수심대라 했다고 한다. 수심대는 독특한 기암절벽에 소나무의 푸르름이 잘 어우러져 예로부터 금강산을 연상케 하는 기묘한 절벽이라 해서 일명‘금강봉’이라고도 했다. 파회와 수심대의 동안에는 수직암벽과 소나무가 대부분 차지하는 혼효림이 잘 발달해 있고 반대편의 서안에는 느티나무, 갈참나무 등의 활엽수림이 대부분 차지하고 간혹 아그배나무·고욤나무·물푸레나무 등이 섞여 자라고 있다.
파회와 수심대는 원당천의 곡류 지역에서 하각작용에 의한 하식대가 우세한 곳이다. 중생대 백악기의 석영안산암지대에 발달하였으며, 석영안산암은 거칠봉 같이 험난한 산을 형성하고 곳곳에 절각돌출된 암체는 구천동의 절경을 이루고 있다. 파회부근에서는 연회색 내지 암회색의 암색을 나타내는 변성암류의 암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포함된 각력은 주로 운모편암과 편마암류이다. 주성분 광물은 석영·사장석·흑운모로 구성되어있다. 파회는 암벽을 끼고 도는 곡류천으로 파회의 하류인 무주 남대천은 대체로 광활하고 단순한 유로를 보이나 나제통문부터는 계곡이 갑자기 좁고 깊어져 천입곡류천穿入曲流川의 양상으로 바뀌어 파회에 이른다.
구천동의 제11경인 파회는 연재淵齊송병선宋秉璿(1836~1905)이 이름 지은 명소로서, 구천동의 무이구곡중에서 제9곡에 해당하며‘파회巴回’라고 쓴 각자가 있다. 파회는 고요한 소에 잠겼던 맑은 물이 급류를 타고 쏟아지며 부서져 물보라를 일으키다가 기암에 부딪치며 제자리를 맴돌다 기암사이로 흘러들어가는 곳으로 문화적 의미와 경관적 가치가 뛰어난 곳이다. 파회는 옥 같이 맑은물이 돌아 나가는 곳이라고 하여‘수회水回’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파회에는 천송암과 파회정이 있었다고 전하며, 계류 가에는 고립되어 있는 큰 바위가 있다. 바위 위에는 늙은 소나무가 한 그루 서 있는데 크지는 않지만 고령목이라고 한다. 이 나무의 이름은 천년송이며, 이 바위 이름은 천송암이다. 이 소나무는 신라시대 일지대사가 이곳을 탐승하고 소나무 가지 하나를 꺾어 꽂은 것이 지금까지 살아 있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 수심대는 잘 생긴 기암괴석이 절벽을 이루며, 병풍처럼 세워져 마치 금강산과 같다고 하여 일명‘소금강’이라고 하며, 기묘한 절벽이 중첩하여‘금강봉’이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