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1996. 4. 23. 선고 95다55986 판결
[예탁금반환][공1996.6.1.(11),1575]
【판시사항】
금융실명제 이후 예금명의자가 아니고 예금통장도 소지하지 않은 예금행위자는 예금채권의 준점유자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준점유자에 대한 변제를 인정한 원심판결을 파기한 사례
【판결요지】
금융실명거래및비밀보장에관한긴급재정경제명령 제3조 제1항은 "금융기관은 거래자의 실지명의에 의한 금융거래를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금융기관에 예금을 하고자 하는 자는 원칙적으로 직접 주민등록증과 인감을 지참하고 금융기관에 나가 자기 이름으로 예금을 하여야 하나, 대리인이 본인의 주민등록증과 인감을 가지고 가서 본인의 이름으로 예금하는 것이 허용된다고 하더라도, 이 경우 금융기관으로서는 자기가 주민등록증을 통하여 실명확인을 한 예금명의자를 위 재정명령 제3조에서 규정한 거래자로 보아 그와 예금계약을 체결할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고 보아야 하므로, 예금명의자가 아니고 예금통장도 소지하지 않은 예금행위자에 불과한 자는 금융실명제가 시행된 후에는 극히 예외적인 특별한 사정이 인정되지 않는 한 예금채권을 준점유하는 자에 해당될 수가 없다는 이유로, 예금행위자에게 예금을 지급한 은행의 과실을 부인한 원심판결을 파기한 사례.
※ 참조
■ 민법 제470조(채권의 준점유자에 대한 변제)
채권의 준점유자에 대한 변제는 변제자가 선의이며 과실없는 때에 한하여 효력이 있다.
■ 민법 제702조(소비임치)
수치인이 계약에 의하여 임치물을 소비할 수 있는 경우에는 소비대차에 관한 규정을 준용한다. 그러나 반환시기의 약정이 없는 때에는 임치인은 언제든지 그 반환을 청구할 수 있다.
■ 금융실명거래및비밀보장에관한긴급재정경제명령 제3조(금융실명거래)
① 금융기관은 거래자의 실지명의(이하 "실명"이라 한다)에 의하여 금융거래를 하여야 한다.
② 금융기관은 이 명령 시행전에 금융거래계좌가 개설된 금융자산(이하 "기존금융자산"이라 한다)의 명의인에 대하여는 이 명령 시행후 최초의 금융거래가 있는 때에 그 명의가 실명인지의 여부를 확인하여야 한다.
③ 금융기관은 제2항의 규정에 의한 확인을 하지 아니하였거나 실명이 아닌 것으로 확인된 기존금융자산을 지급·상환·환급·환매등(이하 "지급등"이라 한다)을 하여서는 아니된다. 다만, 이 명령 시행전에 발행된 어음·수표의 결제에 따른 지급등 제2항의 규정에 의한 확인을 하지 아니한 것으로서 그 지급등이 불가피하다고 재무부장관이 인정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참조조문】
민법 제470조, 제702조, 금융실명거래및비밀보장에관한긴급재정경제명령 제3조 제1항
【참조판례】
대법원 1985. 12. 24. 선고 85다카880 판결(공1986, 315)
대법원 1992. 2. 14. 선고 91다9244 판결(공1992, 1011)
대법원 1995. 8. 22. 선고 94다59042 판결(공1995하, 3239)
【전 문】
【원고,상고인】 원고 (소송대리인 동서법무법인 담당변호사 박우동 외 1인)
【피고,피상고인】 시티은행(소송대리인법무법인충정담당변호사황주명외1인)
【원심판결】 서울고법 1995. 11. 16. 선고 95나12936 판결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하여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이유】
상고이유를 본다.
1. 원심은, 소외 1은 1993. 10. 28. 원고의 주민등록증과 인감도장을 소지하고 피고은행 여의도지점에 와서 원고 이름으로 보통예금구좌를 개설함과 동시에 같은 날 금 10,000,000원권 자기앞수표 8매를 위 구좌에 예금하였고{이하 갑(갑)구좌라 한다}, 1994. 2. 2. 원고의 주민등록증과 인감을 가지고 피고 은행 여의도지점에 와서 원고 이름으로 장기가계금전신탁 구좌 2개를 개설함과 동시에 자기 처인 소외 2가 발행인으로 되어 있는 액면 금 200,000,000원의 약속어음 1매를 위 2개의 구좌에 각 금 100,000,000원씩 나누어 예금한 후 {이하 을(을), 병(병) 구좌라 한다}, 위 갑(갑), 을(을), 병(병) 구좌에 입금된 예금(이하 이 사건 예금이라 한다)의 출연자(출연자)인 원고에게 즉시 이 사건 예금통장과 인감을 교부한 사실, 그런데 위 소외 1은 갑(갑)구좌의 예금을 한 바로 다음날인 1993. 10. 29. 위 여의도지점의 직원인 소외 3에게 전화로 예금통장 없이 위 갑(갑)구좌의 예금을 모두 인출하겠다는 것을 알리고 위 소외 2에게 원고의 인감이 날인된 백지 예금청구서를 주어 위 소외 2로 하여금 예금을 인출하게 하였는데, 위 소외 3은 위 소외 2로부터 백지 예금청구서를 받아 필요한 사항을 직접 기재한 다음 위 소외 2에게 금 80,000,000원의 예금을 예금통장 없이 지불한 사실, 위 소외 1은 위 을(을), 병(병) 구좌의 예금에 대하여도 그 예금 다음날인 1994. 2. 3. 위와 꼭 같은 절차를 밟아 예금 200,000,000원을 위 소외 2를 시켜 모두 인출한 사실 등을 인정한 후, 금융기관에 대한 기명식예금에 있어서는 그 명의 여하를 묻지 아니하고, 또 금융기관이 누구를 예금주로 믿었는가에 관계없이, 예금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자로서 자기의 출연에 의하여 자기의 예금으로 한다는 의사를 가지고 스스로 또는 사자, 대리인을 통하여 예금계약을 한 자를 예금주로 봄이 상당하다고 할 것이므로( 당원 1987. 10. 28. 선고 87다카946 판결, 1992. 1. 21. 선고 91다23073 판결, 1992. 6. 23. 선고 91다14987 판결, 1995. 8. 22. 선고 94다59042 판결 등 참조), 이 사건 예금의 예금주도 예금한 돈의 출연자이자 예금통장과 인감의 보관자인 원고라고 보아야 할 것이지만, 피고 은행의 직원인 위 소외 3이 위 소외 1의 처인 위 소외 2에게 한 예금의 지급은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은 이유로 민법 제470조에서 규정한 채권의 준점유자에 대한 변제로서 유효하다 할 것이므로, 원고의 이 사건 예금채권은 피고 은행의 위 변제로 소멸하였다고 판단하여 원고의 이 사건 예금반환청구를 기각하는 판결을 하였다.
2. 원심이 위 소외 3의 예금지급을 채권의 준점유자에 대한 변제로서 유효하다고 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즉, 원고는 이 사건 예금을 하기 약 3년 전인 1991. 6.경부터 4차례에 걸쳐 합계 금 1,000,000,000원을 소외 1에게 교부하면서 이를 피고 은행에 예금하여 관리하여 줄 것을 부탁하였고, 이에 위 소외 1은 피고은행 여의도지점에 위 소외 1 이름으로 같은 해 6. 11. 금 150,000,000원을, 같은 해 7. 10. 금 250,000,000원을, 1993. 1. 28. 금 300,000,000원을 각 예금하는 한편 위 1993. 1. 28.자로 양도성예금증서 액면 합계 금 370,000,000원을 매입하기도 하였는데, 위 각 예금 때마다 그 예금통장과 인감을 즉시 원고에게 교부하였고, 위 예금의 만기가 도래하면 원고로부터 예금통장과 도장을 교부받아 예금을 인출하여 그 중 원금에 해당되는 금액을 새로운 구좌를 개설하여 재예금하고 그 새로운 예금에 대한 통장과 인감을 다시 원고에게 반환하여 온 사실, 위 소외 1은 위 예금들을 담보로 하여 소외 2 명의로 1993. 7. 8. 금 135,000,000원을 한도로 하는 회전대출통장을, 같은 해 9. 17. 금 360,000,000원을 한도로 하는 회전대출통장을 각 개설하여 금원을 대출받아 사용하였으나 이를 원고에게는 비밀로 하였던 사실, 그런데 위 소외 1은 금융실명거래및비밀보장에관한긴급재정명령(이하 금융실명제라 한다)이 시행된 후인 같은 해 10. 28. 원고의 주민등록증과 인감도장을 소지하고 피고 은행 여의도지점에 와서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갑(갑), 을(을), 병(병) 구좌의 이 사건 예금을 한 사실, 이 사건 예금은 모두 원고가 출연한 자금으로 이루어졌지만 위 금 80,000,000원의 자기앞수표는 위 소외 1의 농협중앙회 동대문지점에서 인출된 것이고 위 금 200,000,000원의 약속어음은 위 소외 2가 발행인으로 되어 있었던 사실, 피고 은행은 예금실적이 많은 중요 고객에 대하여는 전담직원을 지정하여 그로 하여금 고객과의 모든 거래를 전담하게 하는 영업방식을 시행하고 있었는데, 위 소외 1에 대하여는 위 소외 3을 전담직원으로 배정하여 위 소외 1이 피고 은행 여의도지점과 1991. 6. 11. 처음 거래를 시작할 때부터 위 소외 1과의 모든 거래를 전담시켜 왔던 사실, 위 소외 1은 피고 은행과 처음 거래를 시작할 때부터 이 사건 예금을 할 때까지 자신이 실질적인 예금주로 행동하였고, 이 사건 예금 당시에도 원고의 이름으로 예금하는 이유를 묻는 위 소외 3에게 예금주가 원고임을 밝히지 아니한 채 사정에 의하여 원고의 이름으로 예금한다고만 하였으며, 구좌개설신청서에도 원고의 주소나 아파트 동, 호수 및 전화번호를 기재하지 아니하였고, 원고는 한 번도 은행에 나타나지 않았던 사실, 금융실명제 시행 후에도 차명예금이 얼마든지 가능할 뿐만 아니라 금융기관은 고액예금자를 특별고객으로 취급하여 그 예금자 본인이 금융기관에 직접 찾아가지 않고 전화 등으로 예금의 인출을 요청한 후 대리인으로 하여금 예금청구서만을 지참하고 예금을 청구하게 하더라도 그 예금청구서에 날인된 인영의 진위를 확인한 후 예금을 인출하여 주는 등의 방법으로 거래의 편의를 제공하여온 관행이 있는 사실 등을 각 인정한 후, 위와 같은 사정 아래에서는 피고 은행으로서는 위 소외 1이 원고의 이름을 빌어 이 사건 예금을 한 것으로 믿을 수밖에 없었다고 할 것이고, 한편 위 소외 3은 그 동안 위 소외 1로부터 전화로 미리 출금요청을 받고 나중에 은행에 나온 위 소외 2로부터 위 소외 1의 인감이 날인된 예금청구서만을 제시받으면 언제든지 위 소외 1 명의의 예금을 위 소외 2에게 지급하여 왔으므로, 이 사건 예금의 진정한 예금주를 위 소외 1이라고 믿고 있던 위 소외 3이 종전에 해오던 관례대로 위 소외 1로부터 미리 전화로 출금요청을 받고 위 소외 2로부터 원고의 인감이 날인된 예금청구서를 제시받아 그 인영의 진위를 확인한 후 위 소외 2에게 이 사건 예금을 지급하였다면, 비록 위 소외 2가 예금통장을 가져오지 않았고, 또 예금 바로 다음날 그 전액을 출금하였다고 하더라도, 위 소외 3에게 위 예금지급과 관련하여 어떤 과실이 있다고 볼 수 없으므로, 위 변제는 채권의 준점유자에 대한 변제로서 유효하다는 것이다.
3. 그러나,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수긍하기 어렵다.
이 사건 예금지급이 채권의 준점유자에 대한 변제로서 유효하기 위하여는, 먼저 위 소외 1이나 소외 2가 진실한 채권자라고 믿게 할 만한 외관을 갖추고 있어야만 할 것인데, 원심이 인정한 위 사실관계만으로는 위 소외 1 등이 그러한 외관을 갖추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위 소외 1이 피고 은행 여의도지점과 거래하여 왔던 종전의 예금은 그 명의자가 위 소외 1 자신으로 되어 있으므로, 위 소외 3이 예금명의자인 위 소외 1로부터 전화로 인출통보를 받고 종전에 해오던 대로 위 소외 2에게 예금통장 없이 인감이 날인된 예금청구서만으로 예금을 지급하였을 경우에도 그 예금지급이 채권의 준점유자에 대한 변제로서 유효하다고 볼 여지가 있으나, 이 사건 예금은 위 소외 1이 원고의 이름으로 새로 개설한 예금으로서 종전 예금과는 전혀 별개의 예금이고, 기록에 의하면 위 소외 1은 원고의 주민등록증과 인감도장 및 자신의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피고 은행 여의도지점에 가서 원고 명의의 이 사건 예금구좌를 개설하였는데, 당시 위 소외 3은 위 주민등록증을 복사한 후 그 복사된 원고의 주민등록증 아래에는 실명확인필이라고 기재하고, 위 소외 1의 주민등록증 아래에는 대리인 또는 피위임인이라고 기재한 사실과 위 주민등록증에 원고의 주소가 상세히 기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으므로, 위 소외 1이 종전부터 피고 은행 여의도지점의 전담직원인 위 소외 3과 고액의 예금거래를 자기 명의로 계속하여 왔고 이 사건 예금 중 금 200,000,000원은 위 소외 2 발행의 약속어음을 입금함으로써 이루어졌으며 예금명의자인 원고의 인감이 날인된 예금청구서를 소지하고 있었다는 정도의 사정만 가지고, 예금통장도 소지하지 않았고 예금명의자도 아니며 예금을 한 바로 그 다음날 예금 전액을 인출하려 한 위 소외 1을 이 사건 예금의 예금주로서의 외관을 갖추었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며, 예금거래약정서에 예금주의 전화번호가 기재되지 않았다거나 예금주가 은행에 나와 직접 예금을 하지 않았다는 사정을 가지고 금융기관으로 하여금 예금주를 예금행위자로 오인하는 데 예금주가 협력, 가담하였다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더욱이 금융실명거래및비밀보장에관한긴급재정경제명령 제3조 제1항은 "금융기관은 거래자의 실지명의에 의한 금융거래를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금융기관에 예금을 하고자 하는 자는 원칙적으로 직접 주민등록증과 인감을 지참하고 금융기관에 나가 자기 이름으로 예금을 하여야 할 것이나, 대리인이 본인의 주민등록증과 인감을 가지고 가서 본인의 이름으로 예금하는 것이 허용된다고 하더라도, 이 경우 금융기관으로서는 자기가 주민등록증을 통하여 실명확인을 한 예금명의자를 위 재정명령 제3조에서 규정한 거래자로 보아 그와 예금계약을 체결할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므로, 예금명의자가 아니고 예금통장도 소지하지 않은 예금행위자에 불과한 자는 금융실명제가 시행된 후에는 극히 예외적인 특별한 사정이 인정되지 않는 한 예금채권을 준점유하는 자에 해당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심은 피고 은행 소정의 예금인출 절차에 관한 약관이나 면책약관의 내용 등에 관하여조차 심리하지 아니한 채 위와 같은 사정만을 들어 위 소외 1이나 그의 처인 위 소외 2를 이 사건의 예금채권의 준점유자에 해당되는 것으로 보고, 그 예금지급을 하여준 피고 은행에게도 아무런 과실이 없다고 판단하고 말았으니, 원심판결에는 채권의 준점유자에 대한 변제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고, 위와 같은 위법은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고 할 것이므로, 이 점을 지적하는 논지는 이유가 있다.
그러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정귀호(재판장) 김석수 이돈희 이임수(주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