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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화씨 뿌릴 때
박 영 준
1
딱! 하고 뺨 때리는 소리가 나자 박장의(박동화를 존칭하는 대명사)
는 발치 구석으로 넘어졌다.
매에게 채인 꿩처럼 대굴대굴 구르면서도 어느새에 방치를 손에 쥐고 바들바들 떨며 정섭에게로 대들려고 했다.
“이 자식! 사람을 몰라보고 손을 함부루 대?”
하고 방치를 번쩍 들며 일어섰다.
“개새끼, 생기두 잘 했다구 덤비니? 어디 해보자.”
정섭이는 조금도 힘들지 않게 약골인 박장의를 다시 스쓰러뜨렸다.
“이놈아, 사람 치는 백장놈아.”
독오른 뱀처럼 색색거리는 박장의 뒤에 선 그의 처가 부지깽이를 들고 어르대었다.
“쌍놈아, 쌍놈아.”
그 집 어린애들도 소리쳐 울며 매맞는 자기 아버지를 둘러쌌다.
“이놈아, 할 말이 있거든 말루 하지, 이 개백장놈아.”
박장의를 뒤로 밀치며 흰 침을 한입 문 그의 처는 정섭이와 한바탕 해볼 듯이 달겨들었다.
정섭이는,
“듣기 싫여, 쌍년.”
하고 한 손으로 그 여자를 밀어 버리고는 다시 박장의의 어깨를 발로 내려찍었다.
“너이 같은 놈들은 이렇게 해꾸야 돼. 개 같은 놈들에젠 몽둥이찜이 제일이니라. 네 위엔 사람이 없는 것 같지, 이 죽일 놈아.”
우락부락한 눈, 팔팔해 보이는 몸씨에다 손에 닥치는 것은 무엇이나 깨뜨려 버리고야 말 듯이 덤비는 정섭이는 박장의를 죽여 버릴 듯 했다. 손이 가 달 때마다 푹푹 쓰러지고 쓰러질 때마다 웅응 하며 신음하는 박장의를 본 어린애들은 구석에 뭉키어 옷장에 얼굴을 대고 무서워 울기만 한다.
“조죽놈의 새끼, 날 쥑여라.”
이마가 터지고 코피가 터져 얼굴이 피투성이로 되었어도 박장의는 한사코 달겨들었다.
“이놈, 너 죽고 나 죽자, 쌍놈의 새끼.”
어느새 밖에 나갔던 박장의 처가 낫을 들고 들어와 정섭이를 찌르려 했다.
“이 앙칼한년 같으니.”
정섭이는 그 낫을 뺏어 문을 열고 뜰안으로 내어던졌다.
“너희들 같은 건 몇백 개라도 맞세라.”
정섭이의 말에 그 아낙네는 입술에 독을 올리고 그의 가슴패기를 뚫고 들어가며,
“너 사람 쟐 때리는 줄 알었다. 우리 집안 다 죽여라, 다 죽여.”
이때 박장의 집 바로 옆에서 사는 늙은이 하나가 왁작그레한 소리를 듣고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며 들어왔다.
“무슨 일들인가?”
하며 서 있는 정섭이와 박장의 처를 둘러보고는 양손으로 얼굴을 싸매고 한켠 모퉁이에 넘어졌는 박장의 곁으로 갔다.
“왜들 이랬나?”
쓰러져 있는 박장의와 화기등등한 정섭이를 번갈아보며 노인은 못 마땅한 것을 본 듯이 덤비었다.
“이놈아, 네가 박장의를 때렸구나. 도대체 무슨 일이 있기에 이렇게 인사불성이 되두룩. 에익, 고약한 놈 같으니―”
“글쎄나 말이지요. 이 백장놈이 아무 말도 없이 다짜고짜 매질부터 합니다그려. 말로는 무얼 못 해서.”
박장의 처는 정섭이를 이겨 줄 자기 편을 찾아낸 듯이 어린애처럼 덤비었다.
“그럼, 말로 하지. 어느 편으로 본대두 제 어른뻘이 되는 사람에게 손을 대다니―”
“이놈의 영감이 아직 혼을 나보지 못한 거로군. 가만있어.”
정섭이는 영감을 때릴 듯이 아랫목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한 대 맞기나 한 것처럼 무서워 떨며 피하는 노인은 본 척도 않고 정섭이는 박장의의 목덜미를 잡아 쥐었다.
“이 자식, 배상금 낼 테냐 안 낼 테냐?”
“이놈아, 배상금이면 배상금이지 사람을 이렇게 대접하는 일이 있니? 좌우간 놔라, 놔.”
박장의는 정섭이의 태도를 보고 빌붙기 시작했다.
“그럼, 말루 해야지. 네가 박장의를 때리다니.”
하며 노인도 비슬비슬 그들 가까이로 가서 앉았다.
“글쎄 말루 하면 무얼 못 해서 자네가 이러는가?”
장의의 처도 우는 애에게 젖을 물리며 앉았다.
박장의는 분했다. 그러나 미친개처럼 덤비는 정섭이가 당장에 무서운 것을 어쩌랴. 자기 앞에서 큰소리 한마디 하는 사람을 여태껏 보지 못하고 살았으며 동네 사람들이 자기를 동네 어른처럼 여겨 주는 것을 자랑삼아 지내 왔다.
나이 아직 사십에 들락날락하는 그이었으나마 무식한 농부들과 함부로 사귀지 않음으로 자기의 존엄을 사려고 했기 때문에 그의 땅을 부치는 사람은 그를 무서워했고 아무 관계 없는 사람은 같이 만나는 것을 꺼리어 술자리도 같이 하지 않았다.
그는 그것을 자기의 인격 때문이라 생각해 왔고 응당 동네 사람들이 자기를 그렇게 대접해 주어야 할 것처럼 생각해 왔다. 그러나 오늘 정섭이란 놈에게 이런 창피한 꼴을 당하고 보니 자기 목덜미를 자기가 깨물어 죽고 싶으리만큼 분했다.
아무리 술장사를 하는 놈이기로 자기에게 손질을 하다니 평생 처음 당하는 일에 목과 가슴이 떨리었다. 그렇다고 무지한 놈과 다툰댔자 결국은 자기에게 창피가 더 올 것만은 사실이고 또 창피라는 것보다도 몸뚱이가 다칠 것 같은 겁이 났다.
“말로 해서 일이 되두룩 해야지. 이렇게 한다구 임자한테 이로울 게 있을 것 같은가?”
박장의는 이불솜을 뜯어 피 나는 얼굴을 닦으며 말했다.
“아무렇기로 글쎄 손두 사람을 보구 대는 거지, 정섭이, 그렇지 않나?”
영감은 적이 안심되는 듯이 담배 지갑을 꺼냈다.
“가만 있으라우. 이놈이 영감두 무어 얻어먹구 사는 게 있는 거루군.”
하고 정섭이는 박장의에게로 다시 향해 말을 했다.
“쓸데없는 소리는 집어치우구 그래 배상금을 당장에 낼 테야? 못 낼테야?”
정섭이가 내라는 배상금이란 이러한 것이다.
그 동리서 두어 마장쯤 떨어져 있는 외딴집인 정섭이네 집에 술을 먹으러 왔던 어떤 날 박장의가 무슨 말끝에 정섭이더러 자기의 동리로 와서 살라는 말을 했다.
얌전한 집이 하나 있는데 값도 자기가 산 값보다 반값으로 해주겠다고까지 했다. 그뿐 아니라 자기 동리로 와서 산다면 자기의 땅까지 정섭이가 부칠 만큼 떼어 준다고 했다.
어깨가 으쓱한 정섭이는 그 자리에서 승낙을 하고 싶었으나 자기가 쓰고 있는 집을 먼저 팔아야 그것을 살 수 있기 때문에 얼마 동안 참아 달라고 했다. 얼마가 지나지 않아 일곱 칸인 자기 집을 오십 원에 팔기로 하고, 그리고 열한 칸인 박장의네 집을 이십 원에 사기로 계약이 성립되었다.
터가 달린 집이 아니어서 마음에 들지 않았고 몇 해 동안 영 한번 덮지 못한 집이라 첫눈에 탐탁지 않았으나 어쨌든 이십 원이면 싼 집이었다. 그래서 영문 모를 계약, 즉 그 집에서는 닭을 치지 않는다는 계약을 하면서까지 그 집을 사기로 했다. 박장의의 말은 착실한 사람만 있어 닭을 치지 않고 그 부근 땅의 곡식을 해하지 않으며(판다는 집은 동네서 조금 새튼 텃밭들이 있는 곳에 있다) 터알을 돌보아주는 이가 있다면 그 집은 거저 주어도 아깝지 않다는 것이었다. 실상인즉 현재 사람이 들고 있는 집을 사논 것도 그 이유가 거기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섭이가 지붕 영을 엮어 지붕에 덮었을 때 문제는 일어났다.
매매계약이 성립되고 지봉 영을 덮을 때까지(영을 덮는 날까지 찬수는 그 집에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은 일부러 외출했었는지는 모르나) 아무 말도 없던 찬수가 정섭이를 찾아와,
“너무 생각해 주어 고맙네.”
하고 웃었다.
“무엇 말인가?”
“아니 짚이 없는 것을 알고 우리 지붕까지 엮어 주어 고맙단 말일세.”
정섭이는 흥청대는 찬수의 태도로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다. 자기가 박장의에게 돈 이십 원을 주고 그 집을 샀다고 하니 찬수는,
“집 쓰고 있는 사람이 그 집 주인이지 박장의가 무슨 상관이야.”
하며 영 덮어 준 것을 그냥 감사했다.
정섭이가 조금 답답했던지 얼굴빛을 붉히고 정색을 해서,
“잔소리 말구 며칠 안으루 집을 내주기나 하게.”
하고 찬수의 능구렁이 같은 태도를 공박했다.
“이 새끼가 둥상둥상하니 굿만큼 여기는 게지. 집문서는 누구에게 있는데 집은 박장의에게 샀단 말인가? 내 상판이 어때 그런 집 한 채 쓰고 살 팔자가 못 되는 것 같으니?”
누글누글하던 성미가 어디 갔는지 찬수는 팔목을 치켜올리며 대들었다.
실상은 그 집을 찬수가 현금을 주지는 못했을망정 집문서를 받고 샀던 것이다. 먼저 집주인이 찬수에게 매일같이 집값을 치르라고 채근을 했으나 논밭 다 팔아먹고 집까지 없어 남의 집 사랑채로 돌아다니던 찬수니만큼 집값을 치를 도리가 없었다. 그저 얼마만 기다리라는 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찬수의 뱃속에는 그래도 무엇을 생각하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팔팔한 젊은 놈이 요렇게 궁하게만 살라는 법은 없으리라는 것이 다만 그의 희망이었다. 때가 와서 무엇을 하게만 되면 어떤 놈이나 부럽지 않게 돈을 몰 수 있을 게며, 또 그 기회란 언제라도 오고야 말 것이라는 것을 믿어 왔다.
그렇다고 집주인까지 그의 배짱을 믿고 기다리려고는 하지 않았다. 그래서 주인은 때마침 박장의가 그 집을 팔라는 말에 현재 찬수가 집에 들어 있다 할지라도 돈 한푼 받지 못한 그 집의 권리가 자기에게 있다는 것을 믿고 박장의에게 팔기로 하고 집터까지 칠십 원에 넘기었다.
찬수는 이런 일들을 다 잘 알고 있었다.
박장의는 자기에게는 쓸 소용도 없는 집이나 터앝 때문에 샀다고 하지만 찬수만은 그 집 사는 참뜻을 꿰뚫어 알았다. 그 집을 정섭이에게 팔았다는 것까지도 찬수는 알았다. 집을 살 사람이 쉽지 않기도 한 것이지만 하필 쌈 잘하는 정섭이에게 더구나 집값을 밑지어 가면서까지 판다는 속마음을 그는 잘 알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내가 이 동네를 쉽사리 떠날 줄 아느냐 하는 뱃심으로 일이 되어 나가는 것만 보고 있었다.
‘이놈을 한번 힘껏 망신을 시켜 놓구야.’
하는 생각으로 때만을 기다리던 그였다.
“집문서 가진 나를 내쫓구 네가 이 집에서 편히 살 듯하니?”
찬수는 정섭의 눈치를 보며 나중엔 달래기까지 했다.
“난 모른다. 돈 주구 산 집이니까…….”
술장사나 해먹고 사는 정섭이라 누구의 손아귀에 만문히 들려고 하지 않았다.
“이 새끼, 무에 어때?”
하고 댓바람에 찬수는 정섭이를 머리로 받아넘기었다. 정섭이도 쌈깨나 하는 솜씨나 먼저 날쌔게 대드는, 힘으로 치면 정섭의 배나 될 찬수에게 견딜 리 없었다.
그래서 애매하게 자기 돈을 가지고 남의 틈에서 매만 맞은 정섭이는 분했다. 코치 눈치 다 보며 사람을 개 때리듯 해보기는 했으나 아직 그렇게 맞아 본 적은 없었다. 집도 귀찮았다.
쌈닭 같은 정섭이에게는 무엇보다도 화풀이가 제일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힘센 그러나 아무것도 없는 찬수를 화풀이의 대상으로 삼을 수는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먼저 박장의를 두들기고 그 다음에는 매매계약을 이행치 못했을 뿐 아니라 공연히 영까지 엮어 씌운 손해를 배상해 내라는 것이었다.
박장의는 그 집이 자기에게 권리가 있으니 어떻게든지 정섭이의 손에 넣게 들어가게 해준다고 하며 배상금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았다. 그러나 집도 금도 싫다는 정섭이의 고집에는 박장의도 어쩔 수가 없었다.
배상금을 현금으로 떼인 박장의는 정섭이가 그래도 툴툴하며 나간
뒤 소리를 쳐가며 울었다.
“이놈의 동리를 떠나가자. 아, 개만두 못한 놈들하구 함께 살다니.”
그는 원통하게 울었다. 이에서 더 큰 모욕이 어디 있으며 이보다 더 큰 설움이 어디 있으랴?
“내일로라도 다 팔어 가지고 떠나자.”
박장의는 토끼같이 떨었다.
2
“좌우간 그자가 부잡한 작자야.”
“측먹길 구렝이보다도 더한 잔데.”
“아니 그놈이 영웅이야. 누가 뭬라건 무슨 일이 있건 제 맘대루 하구야 마니까. 이번에 박장의를 그런 봉변을 시키구두 조금두 까딱하지 않구 제 집처럼 그 집을 쓰고 살던데. 비위는 좋아.”
동네 앞 연들에서 조파하던 사람들이 겨누리참에 밥을 먹고 나서 개천가 포플러나무 아래에 모여 이야기통을 터트렸다.
이번에 박장의가 똥쌌지. 암만 찬수가 미워도 맞기는 정섭이한테 맞은 걸 장윈들 어떻게 하나.
“그래두 가만두지 않을걸. 박장의야 제 할 말이 있구 또 돈 있것다, 제아무리 비위가 측측하다기로니 찬수가 어디 견딜 수 있나. 어떻게든지 해보고야 말걸.”
“박장의는 챤수를 우리 동리서 내쫓구야 살겠다구 한다든데, 나 거 원 그렇게 미워할 것두 없는 것 같두구만.”
“거야 그럴 수밖에 있나. 박장의 성미에 찬수가 눈안에 들질 않거든. 지난 겨울 장안댁 잔치 때 동네 사람들이 신두 아니 하구 떡칠 사람조차 없어 사람을 사댈랴구까지 한 것두 모두 찬수의 충동이라구 생각한다는데. 박장의두 좀 부채―땅뙈기나 좀 있다구 동네 사람을 사람으루 여기지 않으니 누가 좋아한담.”
“그렇지 않구 어느 놈이 밸 빠졌다구 그런 놈한톄 굽실굽실한담.”
“아니야, 너희들이 모르는 소리지. 박장의가 얼마나 똑똑하기에 그러니. 누구에게 경우 몰리는 즛을 조금이라두 하나 보아라.”
“세상에 경우로만 살어나갈 수 있나.”
“저기 찬수가 오네.”
열댓 살 먹은 어린애가 걔천가를 따라 걸어오는 찬수를 가리켰다.
“정말 찬수로군. 심심한 거지. 들로 돌아댕길 땐…….”
“참 별치야. 먹을 건 없을 텐데 생판 놀구만 있으니까…….”
이때 찬수는 웃통을 벗어젖힌 채 싱글싱글 웃으며 그들 가까이로 왔다.
“수고들 하누만.”
“자넨 팔자가 좋구만그래.”
“흐홍 홍…….”
찬수는 그저 웃기만 했다.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다가 일꾼 가운데 한 사람이 담배 쌈지를 꺼내며 대통에 담배 싣는 것을 본 찬수가,
“한 대 얻어먹세.”
하고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먹게, 그런데 그 뒤 박장의가 아무 말도 없던가?”
“그까짓놈 아무러건 별수 있나…….”
찬수는 신문지에다 담배를 말아 물고는,
“금년도 풍년이나 들어야 되겠는데…….”
하고 동녘쪽을 향해 걸었다.
찬수가 집에 들어오니 마누라는 어린애에게 젖을 물린 채 낮잠을 자고 있었다. 얼굴에 새까맣게 붙은 파리새끼들을 날리지도 않고 자기 남편이 들어오는 것도 모르며 씩씩 잠자는 아내는 무슨 일을 하다가 너무 곤해서 쓰러진 채인 것 같기도 했다.
찬수는 아내야 잠을 자건 무엇을 하건 오불관언이라는 듯이 아랫목을 보지도 않고 담벽 못에 걸린 바이올린을 내리었다. 신문지도 모자랐는지 천장에는 서까래 사이의 흙이 금시 부수수 떨어짙 것처럼 집어특특하게 거슬러올랐다.
펴러둥둥한 사기요강이 아랫목에 놓여 있고 밥알로 매질을 했는지 꺼멓게 번지르르하고 군데군데 구멍이 뚫어진 삿때기도 윗목에는 깔리지 못해서 몽당이 콩가루처럼 뭉쳐 있었다.
그 속에서도 어디서 얼마나 주고 사왔는지 줄도 넷밖에 없는 바이올린을 목에 대고 ‘이 풍진 세상’의 곡을 눈을 감고 깊은 명상이나 하는 듯이 켜는 찬수는 그러한 집에서 잠을 자는 그리고 치마도 못 입은 여편네의 남편 같지는 않았다.
삑삑 나는 과히 듣기도 좋지 않은 양금 소리에 남편이 들어온 것을 알았는지 그의 마누라는 어린애를 떼놓고 담벽을 향해 돌아누웠다.
찬수는 다시 ‘아리랑’ 곡을 켰다. 조금 홍이 나는지 고갯짓을 해보며 곡조가 맞게 켜지도 못하는 솜씨에 손가락을 떨어 보려고도 했다.
다음에는 ‘양산도’를 켜는 모양이다.
어째 마음대로 되지 않는지 조금 있다가는 ‘사케와나미다카’를 켜 보기도 했다. 그 역 되지 않는지 방에 굴러다니는 헝겊조각으로 바이올린올 닦아서는 모가지에 결린 노끈을 들고 담벽에 가만히 걸었다
(바이올린 삭구는 없다).
조금 앉아서 무엇을 생각하던 찬수는 조끼 주머니를 죄다 뒤지었다.
찾으려는 것이 없는지 삭구를 들고 빈대나 잡으려는 것처럼 손가락을 들고 군데군데 따라다녔다.
담배꽁초는 얻지도 못하고 콧구멍을 쑤신 듯한 손가락을 바지에다 썩썩 비비고는,
“담배두 끊어야지.”
하고 일어나서는,
“어딜 가볼까?”
하고 밖으로 나가려 했다.
“여보! 애나 좀 보소.”
잠만 자고 있는 줄 알았던 마누라가 일어나 머리를 고쳐 틀며 말했다.
“잠자는데 뭘 보라구 그래.”
찬수는 좀 불평이 있는 듯했으나 그냥 주저앉았다. 그의 처가 밖으로 나가서 각쟁이를 쥐고 지게를 멘 뒤 산으로 가는 것을 찬수는 보지 않은 척하고 삿바닥 위에 누웠다.
지게를 진 그의 처의 뒷모양이 어딘가 어색해 보이기는 했으나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빛은 과히 볼 수 없었다.
그도 한두 번이 불평이요 때로 할 때 부끄럽기도 한 게지 벼락이 내린댔자 남편이 일할 생각을 아니 하는 판에 자기나마 지게를지지 않으면 끼니라도 끓일 수 없음에 지게를 질 때마다 불평을 가진댔자 아무 소용이 없을 뿐더러 자기에게 조금이라도 이로움이 없음을 그의 처는 잘 알기 때문이었다.
먹을 것이 없어 굶게 되는 날에도 시어머니와 자기가 어떻게 변통이라도 해보려는 걱정을 하면 했지 남편은 말대꾸도 아니 하는 편이었다. 그렇다고 남편을 나무람하면 당장엔 들은 척도 아니 하다가 며칠 있다가는 잡담 제지하고 주먹바람을 내놓는다.
“사내자식이 아무 생각도 없는 줄 아느냐?”
하는 단 한마디 말에 더 대답할 수도 없었다. 쿨클하고 애탄 경우도 많았으련만 그렇게 지내 온 버롯이 이제는 그게 한 의무같이 되어 버렸다.
어머니는 아침만 되면 보따리를 짊어지고 장돌뱅이로 나가고 며느리는 무슨 짓을 하다가라도 해가 지기 전에 한 끼나 두 끼쯤 땔나무를 해 와야 하는 것이―
그러나 찬수의 아내도 찬수를 닮아 가는지 나무하는 일 이외에는 자기의 할 일은 없다는 듯이 언제나 놀고 있다. 자기부터 일을 아니 하니 여편네만 나무람할 수도 없고 또 마누라가 일을 하려고 한댔자 할 일도 없으니 결국은 그렇게 되고 마는 것이 마땅할지도 모를 일이다.
찬수는 지게가 걸어가는 듯한 아내의 뒷모양이 눈에 보이나 동네 집 아이가 풀 뜯으러 가는 것을 보는 이상으로 평범하게 아무런 자극도 받지 않는 모양이었다.
벽에 걸린 바이올린을 쥐었다가 어린애 얼굴을 보고는 그냥 놓아버리고 부엌으로 나갔다. 담배 피우고 싶은 안달증에서 무엇이나 입에 넣고 씹어 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 것이었다.
부뚜막 위에 덮어 논 바가지까지 하나 빼놓지 않고 뒤지었다. 솥 속에나 무에 있나 하고 뚜껑을 열었을 때 뭉치었던 파리가 벌떼처럼 웅 하고 까맣게 날았다.
그래도 그 속에 된장 그릇이 있지 않은가? 찬수는 둘째 손가락을 푹 넣고 한 입이나 되리만큼 떠서 입에 넣었다. 그리고는 냉수를 한 바가지 떠서 한참 마시었다. 챤수는 해가 질 때까지 집에서 나가지 않았다. 놀러 나갔던 여남은 살 난 딸이 들어와 갓난애를 업고 보채지 않고 노나 그러나 그는 더운 방 안에서 나가지 않았다.
해가 질 녘에 그의 어머니와 아내가 거의 같이 들어왔으나 마중 나가 이제 오느냐고 인사도 아니 한 채 방바닥 위에 넘어지어 있었다.
“요새는 이 놀음두 힘들다.”
어머니는 좁쌀 한 되와 마른 새우 한 되를 며느리에게 내주며 방으로 들어왔다. 종일 돌아다니어 곤한지 어머니도 아랫목으로 와서 누웠다.
“벌써 조밭은 거반 다 했더군.”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부엌에서 마누라가 중얼거리었다. 들에 나가 씨 뿌리는 것을 보고 남들이 부러워 혼자 하는 소린지,
“우리 밭엔 벌써 조씨가 나왔더라.”
박장의에게 팔아먹고 이제는 남의 밭이 되었으나 아직도 ‘우리 밭’이란 말을 붙이고 전보다도 더 애착심을 가진 듯 어머니가 말을 했다.
“그런데 찬수야, 너 어떡하간? 우리가 나가지 않으면 집을 허물어 팽개치겠 대더구나.”
“어뜬 놈이?”
찬수는 누운 채 뒹굴었다.
“오늘 장에서 박장의를 만났댔는데 이제는 별수가 없을 것 같더라. 뭐 소유증명두 내구 괜히 말을 안 들으면 주재소에 말을 한대나 부더라.”
어머니는 난 모르겠다는 듯이 찬수를 보지도 않았다.
찬수는 가슴이 뜨끔했다. 만약 그런 수속을 했다면 돈 한푼 못 낸 자기는 자기가 쓰고 있는 집에나마 조금의 권리도 행세할 수가 없어지는 것이었다.
“그놈이 고와서 그러기야 하겠니마는 그래두 밭뙈기나 부치며 배짱을 맞춰 주면 이런 꼴은 안 당하지.”
“쓸데없는 소린 그만두어요. 굶어 죽을까 봐 걱정이오.”
찬수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어떠한 일이 있든 박장의와 타협한다는 소리엔 대질색을 하는 그이었다. 한동네서 살기는 하나마 찬수가 제 땅을 팔던 그날말고는 박장의와 한자리에 앉아 본 적이 없었다.
자기 집에서도 농사를 하면서 제 집 딸은 남의 밭에 가지 못하게 하는 박장의―동네 일등 부자로 자처하면서 남의 집 아들 채떡구리(서당에서 책을 다 배웠다고 음식을 차리는 것)에는 참석해도, 제 생일에 술 한 병도 받아 오지 않는 박장의, 젯날에 술병이나 받아 온대도 앞뒷사람 이외는 더 청하지도 않는 박장의였다. 특별히 이러한 박장의가 찬수에게만 미울 리 없으나 애바리 같은 박장의가 찬수의 눈에는 가시와 같은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사랑에 조건이 없다면 미운 데도 그렇다고나 할는지.
“쓸데없는 소리 한다구 그러기만 하면 어떡하니? 얼마 안 있으면 김맬 텐데 물감장수두 할 수 없구(물감장수란 물감과 바늘 실 같은 부인네들이 쓸 물건을 지고 다니며 파는 장수를 말한다), 농사는 짓는 것두 없구 집까지 헐리게 되면 어떡하니?”
그래도 어머니는 걱정이 되어 마음이 놓이지 않는 모양이다.
“조금만 가만 있으소그려. 저 어떻게 하지 않으렌께.”
부엌에서 종알대는 소리가 들리었다.
“난 모르겠다.”
어머니는 며느리의 말에 동의를 했음인지 말도 하기 싫다는 뜻인지 이렇게 말하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찬수는 그래도 아무 말을 아니 했다. 원체 입이 무거울 뿐 아니라 이러한 공기 속에서 입을 여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라는 것을 잘 아는 까닭이었다.
컴컴한 방에 밥그릇이 들어올 때까지 그들은 누운 채 천장을 향해 누워 있었다.
“이 엠나이, 밥그릇이나 받어라!”
며느리는 밥그릇을 문턱에 올려놓고 죄 없는 자기 맏딸을 금시 때릴 듯이 노려보며 덤비었다.
어머니와 찬수는 부시시 일어났다.
“어두워 먹겠니?”
어머니는 이때까지 닫았던 문을 열었다.
“걱정들 말어요.”
소반도 없이 방바닥 위에 놓인 밥그릇에 가까이 앉으며 찬수가 갑자기 말했다.
*
어느덧 피었던 복숭아꽃이 소금물에 젖은 듯이 힘없이 떨어지고 산의 풀은 송아지가 뜯어 먹기 좋으리만큼 파랗게 자라났다.
박장의네 뜰안과 동리에 군데군데 높이 솟은 배나무에는 푸른 바다 위에 흰눈이 점점이 내린 듯 흰꽃이 푸른 잎 사이에 탐스럽게 피었다.
동리 안에서 볼 수 있는 꽃 가운데는 배꽃이 마지막이다. 따라 부종(씨 뿌리는 농사)도 목화만 내놓고는 전부 필한 때다. 배나무꽃 필 때는 목화를 심어야 한다는데 벌써 꽃이 확 피었으니 지금 하는 목화밭은 필연 늦은 것일 게다.
찬수가 살고 있던 집을 혈어 버린 뒤 며칠 되는 날 박장의는 목화밭 하는 데 씨를 뿌리러 나갔다.
아직 해보지 않은 일이었다.
뒝치(가는 새끼로 만든 그릇)를 메고 허리를 꾸부리고 씨를 뿌리는 일도 과히 쉽지는 않은지 한참 가다가는 꾸부러진 구리쇠를 바로잡듯이 허리를 펴고는 우뚝 서곤 하였다.
“아무래도 이놈의 동네를 떠나야겠어.”
박장의가 한숨을 쉬며 돌아보니 밭 가는 사람을 내놓고는 전부 집안 사람들뿐이었다.
“이놈들 보자!”
박장의는 뒝치를 툭 치고 종자를 한편으로 모으며 다시 앞으로 나갔다. 파랗게 질린 듯한 그 얼굴엔 독기가 가득 차 있었다. 아마 동네 사람들 가운데서 자기네 일을 해주는 사람이 이렇게도 없기 때문이겠지.
전에는 품을 내지 못해서 일을 못 하지는 않았건만 이번에는 갈아논 땅이 마를까 봐 남의 일 못하겠네, 물에 품긴 종자가 싹이 나서 남의 일을 못 하겠네, 할 뿐더러 박장의네 땅을 부치는 사람들은 박장의네 밭에 손질을 해야겠기 때문에 딴 일을 조금도 할 수 없다는 등 별별 말을 다 해가며 박장의네 목화밭을 해주지 않았다.
“죽일 놈들.”
하고 목구멍 이 막히도록 욕을 하는 수밖에 딴 도리가 없는 게 기막혔다.
그렇다고 목화밭을 그냥 내버려둘 수도 없고(박장의는 땅을 남에게도 주나 자작도 한다) 점점 감이 나빠 가는 밭을 하루하루 물려 갈 수도 없었다.
전 같으면 자기 땅을 부치는 사람들에게만은 반강제로라도 일을 시킬 수 있었으나 찬수를 내쫓은 뒤라 동네 사람들이 도적놈이 들어왔다 나간 것처럼 이상하게도 마음이 들뜬 것 같고 박장의 역시 밤에 귀신 나온다는 길을 혼자 걷는 듯한 불안한 마음에서 이러기도 저러기도 싫어했다.
며칠 전까지도 손수 일하던 솜씨라 밭으로 나가기는 하면서도 동네 사람들을 고약한 놈이라고 욕하는 것만을 잊지 않는 것이 그의 복수라고나 할까.
한참 동안 씨를 뿌리던 박장의는 ‘그놈이’ 하는 입소리와 함께 발을 멈추기도 했다. 찬수가 어디 가서 굶어 죽고야 말 광경이 눈앞에 나타나는 모양이었다. 그러다가는 밭고랑의 흙뭉텅이를 발길로 차고는 다시 걸어가기도 했다.
그럴 때는 호랑이 눈처럼 눈을 뻔쩍뻔쩍하며 늑대같이 어슬렁어슬렁 가까이 기어오는 찬수가 눈앞에 보이는 것인지,
“빨리들 하렴!”
이따금씩 자기가 몰리는 박장의는 그래도 안자귀 뒷자귀 씨 뿌린 것을 발로 묻는 일 하는 여편네와 딸을 재촉했다.
종일 그는 그렇게 자기 여편네와 딸만을 못살게 굴었다.
찬수가 살던 집터에 메밀 싹이 파릇파릇 날 때에도 집이 헐리기 전날 어디로 떠나간 챤수의 소식을 아는 이는 없었다.
다만 배나무꽃 피던 때가 지나고 씨 뿌린 목화밭에 종자가 손가락 기장만큼씩 자라났을 때 동네의 웃어른 이야깃거리가 하나 새로 생겨났을 뿐이었다.
“요새 박장의는 무에 무서운지 저녁때만 되면 대문 후간문 할 것 없이 창문 안고리까지 채우고야 있대더라.”
하는 말이었다.
(『목화씨 뿌릴 때』, 신세대사,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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