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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좋은교회/20220619 주일오전예배/정광수목사님 | |
분류 | 주일오전예배 |
제목 | 강도 만난 이웃 |
성경 | 누가복음 10:25-37 |
정리 | 참좋은교회 청년부 |
성경말씀(누가복음 10:25-37)
25.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27.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29.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3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31.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32.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33.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34.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35.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36.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37.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녹취자료 |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영광스러운 예배 자리로 인도해주셨습니다. 우리는 기대감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야 합니다. 하나님은 예배 시간마다 성취될 언약을 우리에게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예배를 통해서 나의 복음의 믿음의 색깔이 어떤 것인지, 또 하나님이 나를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미션이 무엇인지 찾는 가장 축복된 예배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속담에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라고 말하죠. 왜 어머니가 강할까요? 엄마는 가정을 지키고 자녀를 양육해야 되기 때문에 엄마는 강해져요. 부부가 결혼해서 다섯 남매를 두고 행복하게 사는 가정이 있었어요. 그런데 남편이 뺑소니 사고로 무참하게 죽었어요. 아무런 대책도 없이 남편이 죽고 나니까 이 어머니가 아이들을 혼자서 키워야 되잖아요. 그전까지는 어머니의 관심이 뭔가 하면 남편이 얼마나 나를 사랑할까, 이번 생일에 무슨 선물을 갖다 줄까, 어디로 가족들이 놀러 갈까, 명품 옷을 어떤 것을 사 입을까... 사실 관심이 거기 있었어요. 그런데 남편 없이 자식 키우게 되니까 관심이 없어졌어요. 오로지 관심은 이 아이들을 내가 어떻게 먹이고 입힐 것인가? 그렇죠. 그게 엄마의 마음이거든요. 여러분들도 그 어머니의 그 사랑 속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감사를 드리는 겁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동일합니다. 전도와 선교, 교회를 향한 나의 미션을 깨닫지 못하면 그 사람이 기도의 목적도 모두 자기 유익만 구하게 됩니다. 관심 자체가 어떻게 하면 내가 잘 먹고 잘 살 것인가, 내가 건강하고 내 새끼 잘 크고 내가 행복할까 밖에 없기 때문이에요. 하나님 우리에게 뭐라고 말씀하셨나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와 같은 기도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99%의 신자가 이런 기도하면서 살아가고 있어요. 그래서 그 기도를 성경에서 틀린 기도라고 이야기합니다. ‘응답받지 못하는 기도’라고 말하는 겁니다. ‘육신의 기도‘라고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 이 시대에 나를 예수 믿게 만드셨고 성남에 참좋은 교회로 부르셔서 이 복음 듣게 하셨고 나에게 직분 주셔서 세우셨습니다. 왜 하나님이 나를 여기로 보내셨을까요? 나를 통해 이루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미션이 있어요. 하나님의 절대 계획 속에서 나를 부르신 그 미션을 우리가 찾아야하는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미션을 찾을 것인가? 그 첫 번째는 바로 내가 복음을 이해하고 체험하고 누리는 겁니다. 복음은 성삼위 하나님을 누리는 겁니다. 한마디로 복음 안에 모든 답이 다 들어있다는 사실을 체험하고 깨닫는 것입니다. 내가 누굽니까? 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성삼위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는 성전된 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아버지가 누구죠? 내 아버지는 바로 창조주입니다. 그분은 전능자이십니다. 만물을 통치하고 주관하시는 바로 그분이, 말씀으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바로 그분이 내 아버지가 되셨어요. 그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때 홍해가 갈라졌어요. 그분의 말씀 앞에서 요단강이 갈라지고 여리고를 무너뜨리고 하늘의 태양을 멈추신 바로 그분이 누군가요? 내 아버지세요. 이것은 보통 신분이 아닙니다. 바로 내가 그분을 아버지로 모시는 하나님 자녀가 되었다고 하는 겁니다. 예수님은 어디에 계신가요? 인간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신 그리스도가 지금 나와 함께하시잖아요! 우리는 누구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나요? 하나님 내가 만나는 길을 열어주신 바로 그분, 예수그리스도가 우리의 승리자가 되셨어요. 내 인생에 임하는 모든 저주, 재앙과 실패, 망할 운명을 그분이 십자가 상에서 다 해결하셨어요. 내 인생에 막힌 모든 문제는 내 것도 아니고, 다 끝난 문제라고요! 흑암이 결박되는 그 이름, 그 분이 나와 함께 하시는 거예요.
내 힘으로는 안 되기 때문에 그분이 내 안에 들어오셔서 인생의 주인되시고 나의 갈 길을 인도하여 주시고 능력으로 역사하셔서 완전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나를 불러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영접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신분으로 불러주신 겁니다. 이 사실이 정말 누려지게 된다면 불신앙은 다 떠나가는 거예요. 내게 닥친 문제 때문에 염려, 근심, 걱정 하지 않아요. 이걸 못 깨달으니까 하나님께서 가끔 심각한 문제를 우리에게 던져주는 겁니다.
요셉이 어린 시절에 자라면서 야곱 아버지와 아브라함 할아버지를 통하여서 놀라운 복음의 비밀을 듣게 되요. 가나안 땅의 비밀을... 그리고 그 언약 잡았을 때 하나님 어떻게 응답하시는지 듣고 자랐어요. 그러나 요셉은 어린 시절에 어머니 치마폭에 싸여서 기도하지 않고 그냥 지냈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 어머니가 동생 낳다가 죽었죠. 그 후로 형들이 집단으로 괴롭혔어요. 요셉은 이 때 무엇을 생각했을까요?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통해 주셨던 그 응답의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게 되었어요. 만약에 요셉에게 어려움이 없었다면 기도 안 했겠죠. 그 어려움 때문에 요셉이 기도하게 되는 거예요. 하나님이 성도 여러분들에게 문제를 왜 주실까요? 하나님을 찾으라는 사인입니다. 이 과정을 거쳐서 하나님은 요셉에게 미션을 주시고 가문 복음화와 세계복음화의 미션을 잡게 되잖아요.
모세도 똑같았아요. 어린 시절에 어머니 요게벳을 통해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통한 그 가나안 땅의 놀라운 비밀을 모세가 듣고 자라게 되요. 그러나 이것이 마음에 담겨지지는 않았어요. 그러다가 사건을 저지르고 미디안 광야로 쫓겨나서 도망자 신분으로 있으면서 누굴 찾았을까요. 하나님을 찾는 거예요. 하나님을. 만약에 모세에게 문제를 안주었다면 모세가 하나님을 찾았을까요? 우리가 다 비슷해요. 하나님이 내 인생가운데 왜 시험과 문제를 주는 것인가요. 그래야 하나님이 찾을 것이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갈급하게 만드시고 시험과 문제를 주시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 응답 잡으라는 하나님의 사인인 겁니다.
비로서 뭘을 깨닫죠?. 그렇구나 내 아버지 하나님이 그분이 바로 창조자 전능자로구나. 예수가 정말 그리스도로구나. 이 사실을 정말 체험하게 되면 여러분에게 뭐가 없을까요. 불신앙이 없어지고 더 이상 염려 근심 걱정하지 않아요. 내가 기도할 때 보좌의 능력이 시공간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역사가 임하게 된다면 여러분이 뭐 할까요. 기도 제목 자체가 다 바꿔지는 거예요. 이 사람은 무슨 기도를 안 할까요. 뭘 먹을까 뭘 마실까 뭐 입을까 이런건 아예 기도 제목이 안 됩니다. 왜요? 내가 다 가졌는데. 그것이 목표가 되는 것이 아니란 말이에요.
그래서 이 사람은 빌립보서 4:13을 마음에 담게 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걸 할 수 있는 신분이 되었구나. 제가 헌금 기도할 때마다 마지막에 하는 기도가 있죠. 빌립보서 4:19 말씀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약속 속에 내가 있다는 사실이 정말 믿어진다면 더 이상 염려 근심할 필요가 없는거죠. 이것이 여러분들에게 첫 번째 단추입니다. 뭐 하라고요? 이 복음을 정말 체험하고 누리라고 이렇게 말씀을 합니다.
이 때 여러분들이 눈이 열려져요. 우리 엄마 아빠가 교회는 다니지만은 우리 엄마 아빠가 이거 몰라가지고 그동안에 맨날 기도하는 것도 돈 달라 건강 달라 이것만 우리 엄마 아빠가 기도했구나... 이게 보여줘요. 이걸 몰라서 우리 부모가 그렇게 고생을 했고 이걸 몰라서 나의 집안이 나의 친구가 다른 성도들이 이게 눈에 보여지는거죠. 그러면 여러분 마음에 뭐가 생겨나게 되는 것인가 하면 아 이 복음을 저들에게도 전해줘야 되겠구나. 이것 몰라서 엉터리 같은 신앙생활 하고 있는 자들에게 내가 전해줘야 되겠구나. 바울이 이걸 깨달아요. 아, 우리 민족이 정말 이 복음 몰라가지고 분명히 하나님이 택한 백성이 맞는데 이 복음 놓치고 예수 십자가 못 박고 죽을 고생하고 있는 것이로구나..
바울이 어느 정도로 가슴에 사무치는 것인가 하면은 로마서 10장과 11장을 보면 바울이 무슨 고백을 하는 것인가 하면, 내가 하나님 앞에 버림받아서 내 이름이 하나님 생명책에서 제해지는 일이 있을지라도 내 동족이 내 민족이 예수만 믿을 수 있다고 그러면은 그것을 택하고 싶을 만큼의 가슴에 언약적 한이 솟아나는거죠. 이거 하나 몰라서 지금 망하고 있는 것이로구나. 이 한을 가졌던 바울의 마음을 고린도후서 11장을 보면 수없이 죽을 고비를 넘깁니다.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고 태장에 강도의 위험에 수없이 배고프고 너무 힘든 과정을 거쳤는데 바울이 고백합니다. 고린도후서 11:28을 보면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그 염려가 내 속에 가득차있다고 표현하죠. 이게 미션 깨달은 자들의 모습들입니다.
하나님은 이 미션 깨달은 자에게 하나님은 전무후무한 하나님의 역사로 그 사람과 함께하는 거예요. 여호수아가 이 미션을 깨달았을 때 하나님께서 그 미션 이루도록 뭐하셨죠? 요단을 갈라요. 미션 이루도록 여리고를 무너뜨려요. 미션 이루도록 하나님께서 태양까지 멈춰요. 하나님은 미션 가진 자와 함께하셔서 보좌의 능력으로 시공간을 초월하는 하나님 역사로 그와 함께 하셔서 이 일을 이루시겠다 지금 약속하고 있는 겁니다. 마태복음 28장 18절에서도 제자들에게 약속하셨죠. 이 미션을 이루도록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권세로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제가 복음 깨닫고 난 후에 제가 깨달아 진 것이 성도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이 바로 무엇인가? 복음을 깨닫고 자신의 미션을 잡은 자입니다. 미션을 깨달은 자입니다. 이 사람을 성경에서 뭐라고 표현을 합니까? “남은 자”라고 표현을 합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깨달은 그 사람을 역사의 주인공으로 만드셔서 그 사람을 통하여서 하나님은 시대를 바꾸어요. 이것을 깨달은 요셉과 모세를 통하여서 출애굽의 역사를 일으켜요. 이 비밀을 깨달은 사무엘과 다윗 통해서 출 블레셋의 역사를 일으켜요. 많은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 깨달은 그 사람 통해서 이를 이루시겠다고.. 하나님은 그 안에 모든 축복을 담아 놓으신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가장 큰 축복이 바로 무엇인가? 정말 복음 깨닫고 무엇 찾는 거죠? 내 미션을 찾은 자. 오늘 그 시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지금 예수님을 뭐한다고요? 시험합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고 기록되어 있느냐? 그때 율법교사가 자신 있게 대답을 합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라고 하셨나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데 네 말이 맞다. 그러니 네가 가서 그렇게 행해라.. 그랬더니 율법교사가 또 예수님 앞에 자기를 나타내기 위해서, “그러면 누가 이웃입니까?” 하는 질문이 나오죠. 그 질문 앞에서 오늘 그 강도 만난 자를 구원하는 사마리아인의 이야기가 오늘 본문 속에 등장을 합니다.
오늘의 내용 자체는 신앙생활의 근본을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각자 나름대로의 신앙관을 갖고 있어요. 복음관을 다 갖고 있는 것이에요. 노란 안경을 쓰고 세상을 보면 노랗게 보여요. 파란 안경을 쓰고 보면 세상이 파랗게 보이죠. 두 사람이 싸워요. “야, 왜 너는 노란데 파랗다고 그러냐.” “파란데 너는 왜 노랗다고 그러냐.” 둘다 뭐했죠? 틀렸어요. 뭘 쓰고 있기 때문에? 틀린 안경 쓰고서.. 안경을 벗고서 실체를 봐야하는데, 틀린 안경을 쓰고서 지금 맞다고 주장을 하고 있는 거에요. 지금 율법교사는 무슨 안경을 썼나요? 율법이라는 안경을 쓰고 지금 예수님을 시험하는 거에요. 자기 옳다고 생각하는 거에요. 자기 눈으로 보니까 예수님이 틀렸어.. 자기가 노란 안경을 썻다는 사실을 모르는 거란 말입니다. 대다수의 신자들이 무엇을 하여 용서를 얻으리이까?.. 무슨 색깔이죠? 내 의로 무엇을 행하여서 구원을 받는다는 이 생각의 안경을 쓰고 있는 거죠. 세계 교회가 무슨 안경을 쓰고 지금 신앙생활 하고 있는 것인가? 지금 이 안경을 쓰고 있어요.
예수님이 제자들이 질문하셨죠. 세상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더러는 세례요한, 더러는 엘리야, 예레미야 선지자 중 하나라고 대답들을 하죠. 그게 그들이 쓰고 있는 안경의 색깔이야, 신앙생활의 칼라에요. 뭐를 구원 받는다고요? 율법을 지켜 행해서 구원받는다고.. 착한 일 해야 구원을 받는다고, 신비한 책임을 해야 구원을 받는다고.. 교회 열심히 충성, 봉사해야 구원받고 복받는다고.. 이게 그들이 쓰고 있는 안경들이에요. 그냥 틀린 구원관들이에요. 인간의 어떤 의로운 행위로도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고 사단 문제 해결할 길 자체가 없어요.
자, 유대인들의 문제가 무엇인가요?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 민족의 하나님, 우리 유대인만의 하나님이세요. 이방인들은 전혀 구원의 대상이 아니에요. 지금 이들이 쓰고 있는 안경이 지금 이 안경을 쓰고 있는 거예요. 그냥 완전히 틀린 안경이죠. 그리고 스스로 생각하기를 우리는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이미 구원받은, 이들이 지금 뭘 놓치고 있는 것인가 하면? 원죄의 개념 자체가 없어요. 왜 멸망 받는 것인지 그 이유 자체를 모르겠는 것이거든요. 그 결과로 이들이 빠진 그 율법주의로서는 뭐가 필요 없는 것인가? 그리스도가 필요 없는 거예요. 그리스도가 어떤 그리스도만 필요하죠? 다윗의 왕권을 갖고서 로마 압제에서 구원받는 그리스도만이 필요한 것이지 인간의 근본문제, 창세기 3장 문제를 해결 할 그리스도가 필요 없는 거예요. 이게 유대인들이 쓰고 있는 틀린 안경이예요. 틀린 안경이요. 다른 색깔의 안경들을 지금 쓰고 있는 것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뭐가 필요 없죠? 그리스도가 필요 없는 것이거든요. 이들은 뭐가 없는 것인가? 어차피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태어나 이미 구원받았어요. 그래서 구원의 감격 자체, 하나님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는 이 감격, 이것 자체도 없는 것이거든요. 이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뭐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율법을 철저히, 율법 내용을 지켜 행하고, 선을 베풀고, 이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표현을 합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 말씀에서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했는데 그 사랑 자체를 이들이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무슨 안경을 썼으니까? 율법의 안경을 써서 이게 안 보여지는 거죠.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았나요? 내 율법의 행위로 행함으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예요. 나는 완전히 망할 신분인데, 하나님은 지난주 무슨 메시지가 나왔죠? 창세전에 날 구원받게 하나님이 날 작정하셨어요. 나를 건져 구원하여 주시기 위하여서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고 그분이 내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셔서 내 모든 구원을 이루셨고, 우리는 아무 조건 없이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이 구원의 선물을 내가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예요. 내 쪽에는 아무 근거가 없어요. 이 구원받음에 대한 진정한 감사와 감격들이 유대인들에게 없는 거예요. 왜? 내가 이미 구원받았는데! 그리스도가 필요 없는데? 정말 이 은혜를 깨닫게 되어지면은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신 것인지요.’ 나 같은 죄인이 구원 받음에 대한 이 감격들이 우리 속에 나와야 되는데 이게 없어요.
유대인들에게는 왜 진정한 감사가 안 나오는 것인가? 구원받은 자가 누리는 축복이 얼마나 큰 것이 이걸 모르는 거예요. 그리스도를 모르니까 이것을 못 누리잖아요. 우리는 어떤 신분인가요? 예수 영접하는 그 순간 바로 그것의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이 가지신 모든 좋은것을 누릴 수 있는 신분을 바꿔진 것이예요. 나는 망할 수 없는, 이 축복을 누릴 수밖에 없는, 이 구원의 확신을 내가 갖고, 내가 기도할 때마다 응답받으며 나의 갈 길을 바로 그분이 인도하시며, 어떤 잘못이 있어도 망할 수 없는 신분이요. 어떤 잘못이 있어도 완전히 승리할 수 밖에 없는, 여러분들이 왜 하나님에 대한 감사가 많이 안 나오죠? 그냥 교회 다녀서 그래요. 누구든지 정말 진짜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인 것을 깨닫고 응답받게 되어지면 감사가 저절로 흘러넘치게 되는 것이예요. 성경이 말한 최고의 계명이 바로 무엇인가? 바로 창세기 3장 아래 멸망당해 죽어 가는 자들을, 이들을 건져 구원하는 것이 이것이 하나님의 최고의 관심입니다. 사단에게 사기당해서 빼앗겼던 이 마귀 나라, 사단의 나라를 뭐로 바꾸라고요? 하나님의 나라로 바꾼 일들에 쓰임받는 것, 그래서 오늘 예수님께서 네 이웃이 누구냐고 말씀하시죠? 유대인들은 이방인을 내 이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바로 사단에 속고 죄를 범하고 망할 운명 속에 빠진 강도 만난 자를 네 이웃이라고는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마지막 절을 보면은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도 가서 모두 이와 같이 하라 하셨죠. 오늘 우리는 내가 지금까지 쓰고 있던 잘못된 안경을 벗어야 돼요. 지금까지 우리 왜 고생했죠? 틀린 안경을 쓰고 틀리게 신앙생활을 했어요. 하나님의 최고의 관심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이것을 못 깨닫는 안경 쓰고 있었단 말이거든요. 그래서 우린 뭐 하는 것인가? 예수는 그리스도, 진짜 이 응답 다 놓치고 지금 살고 있잖아요.
2. ....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간다는 말 자체는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성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이야기하는 겁니다. 영적으로. 거기서 어디로 내려가지요? 여리고로, 세상으로 내려가는 것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여리고는 해발 마이너스 200미터 입니다.예루살렘은 거의 한 1000미터 되는 높이거든요. 그 높은 곳에서 지금 밑으로 내려가고 있는 그걸 설명하고 있어요. 상징적으로 무엇을 표현하고 있는 것인가 하면은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사실 자체는 하나님을 떠나서 세상 가운데 빠진, 다른 말로 하면 창세기 3장에 빠진 인간의 모습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에요. 거기서 내려가다 누구를 만났죠? 강도 만났어요. 이걸 두고 성경에서 우리에게 뭐라고 표현합니까? 네 운명 자체가 망할 운명에 빠졌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강도 만난 그 영적 상태를 지금 설명하고 있는 것이예요. 우리는 사단에 속고 죄를 범하고 하나님을 떠나서 완전히 멸망 상태에 빠져서 신분 자체가 망한 신분입니다. 강도 만난 신분이 되었습니다. 내가 선택해서 강도 만났나요? 강도 만났는데 어떡할 거예요? 내 인생 가운데 영적이 문제가 찾아오고 정신문제 찾아오고 육신문제 찾아오면서 가정이 파괴되고. 이 문제 왜 찾아오는 것인가요? 내가 선택한 것인가요? 나에게 재앙이 왜 닥치는 것인가요?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이 사람이 강도 만나고 싶어서 만났나요? 전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어디에 빠졌다는 이야기입니까? 망할 운명 속에 빠진 것입니다.
지난주에 제가 무슨 이야기를 했죠? 팔자 무슨 팔자처럼? 나귀 팔자라고 표현했어요. 영화로 나왔던 내용입니다. 실화를 영화로 했던 부분들인데 인도 뭄바이 인도 최대 도시입니다.. 인구 이천만이 넘는 도시인데 그 도시 악한 놈이 시골집을 다니다가 아이를 잡아옵니다. 유괴해가지고. 데려가서 며칠 동안 밥 안 먹이고 매질을 하면서 완전히 막 진을 뺍니다. 겁을 잔뜩 먹여놓고. 그래놓고 뭐 하는 거죠? 도망가면 죽는다고 겁주고서. 그리고 앵벌이 알죠? 서남아 지역을 가면 대도시들마다 이 교통체증이 많기 때문에 그때마다 아이들의 여러 수십이 갖다 붙어서 문 두드리면서 구걸하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이걸 시키는 겁니다. 아이를. 이게 정말 힘들거든요. 차 사이에 다니면서. 이 아이가 돈을 적게 벌어 온다? 그러면 밥 안 줍니다. 매를 두들겨 패면서. 그러고는 이 아이를 어느 날 뭐 하는 것인가? 눈에다가 초산을 부어요. 염산을 부으면 안 되니까. 약한 산인 초산을 부어가지고 눈동자만 태워요. 그러면 소경이 되겠죠. 그럼 이놈은 뭐 할까요? 도망 못 가고. 그리고 뭐 하죠? 구걸을 더 잘 해옵니다. 불쌍하게 여겨지니까. 나는 그 영화를 보면서 제 마음에 뭐가 오는 것인가? 이게 마귀 새끼가 하는 거로구나. 사단이 철저하게 우리 인간을 이렇게 망치는 거예요. 이게 하나님 떠난 인간의 모습이란 말이에요. 지금 이 땅에 문제는 없나 한번 보세요. 오늘날 최첨단의 문화 문명이 문제를 해결합니까? 의술이 해결합니까? 영적문제 해결 못 해요. 정신문제 해결 못해요. 도처에 청소년들이 마약과 음란에 빠지고 완전히 무너져가는 시대 속에 저는 이 시대를 뭐로 보는 것인가? 아 이게 강도 만난 시대구나. 강도 만났구나.
자, 이 강도 만난 자를 세 사람이 그 지나가는데 한 사람은 제사장입니다. 보고서 못 본 척하고 제세장이 지나가요. 그다음에 누가 또 지나가죠? 레위인이 지나가요. 예수님이 이 이야기를 왜 했을까요? 여기에 제사장과 레위인은 누구를 상징하는 것인가? 유대인을 상징하는 거예요. 오늘날 누구를 상징할까요? 목사 장로를 의미하는 거예요. 중직자를 의미하는 거예요. 어디에 관심이 없죠? 죽어 가는데 관심이 없어. 왜 저 사람 살리다가 나도 혹시 강도 당할지 모르겠구나. 빨리 도망가야 되겠지... 뭐가 없죠? 지금 버리고 두고 가면 죽는데... 그 생명에 대한 안타까움 자체가 없는 것입니다. 최고의 계명이 무엇이라고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했습니다. 그럼 뭐 해야 하죠? 왜 이 말씀을 지금 율법교사에게 한 줄 압니까? 네 이웃이 누구냐? 누가 참 이웃이 되겠냐? 강도 만난 자를 두고 가는 그 사람이 정말 이웃이 맞냐? 우리에게 질문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서 누가 등장하죠. 사마리아인이 등장을 합니다. 사마리아인은 어떤 인물인가요? 바로 유대인들에게 멸시 천대 당하고 사람대접도 받지 못하는 자입니다. 그런데 그가 그를 불쌍히 여겨서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로 상처를 응급 처치하고 나귀에 실어서 주막에 가서 하룻밤 같이 지내고 그리고는 두 데나리온을 주면서 내가 떠나고 난 후에도 이 환자를 잘 보살펴 달라고 부탁을 하고 떠나는 그 장면을 오늘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아무 조건 없이 그를 살리는 겁니다. 단 하나 이 사람을 내가 살리지 않으면 이 사람 죽겠구나. 그 영혼을 향하는 그 절박한 마음이 이 사람으로 하여금 그 사람을 살리게 만든 것입니다. 이게 누구 마음일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에요.
제가 1985년에 성남을 왔는데 그때 성남 와서 제가 보니까 정말 성남이 살기 싫더라고요. 신문과 뉴스에 사건 사고 터진다? 그러면 전부 성남이고... 서울에 파출부 가고 무슨 근로 가져가는 사람 전부 성남에서 다 나가고. 버스를 타면 성남 가는 버스에는 전부 추레한 사람들만 타고 가고... 정말 맘에 안 들더라고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 하나님 왜 하필 나를 이렇게 성남에 보내서 나를 목회하게 만드셨습니까? 하나님 앞에 질문했는데 하나님이 뭐라고 대답하시는 건가 하면 야 저 강남에 사는 사람들은 잘 먹고 잘 살다가 지옥 가지만은 성남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 같은 인생을 살다가 지옥 가지 않냐? 그 영혼이 불쌍하지 않냐? 그 말씀 앞에서 제가 항복했습니다. 하나님 내가 성남에서 이 불쌍한 사람들에게 복음 전한 일들을 내가 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제게 마음에 담게 하신 메시지가 바로 뭔가? 하나님 영광 보좌를 버리시고 강도 만난 인생을 건져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 분이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냐... 그 마음을 제 마음속에 두셨어요.
고귀한 척 하면서 자기는 제사장이요, 레위인으로 백성들 앞에서 뭔가 폼 잡고 그저 거룩한 것처럼 살아왔던 그들. 그들은 강도 만난 자를 버리고 갔죠? 그러나 누가 그를 건져 구원했나요? 너희들이 멸시하는 그 사마리아인이 그 사람을 건져 구원하지 않았느냐.. 주님이 오늘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너희들이 입으로는 이웃 사랑, 영혼 사랑? 너희들이 바로 그 제사장과 레위인과 같은 위선자들이다.. 오늘 우리를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정죄를 합니다. 생명 건져 구원하는 일들에 관심이 없는 오늘 나를 향한 메시지로 주님이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오늘 우리 현장에는 어떤 자들이 살고 있나요? 바로 강도 만난 이웃들이 우리 주변에 깔려 있는데.. 그들이 이 복음 하나 없어서 다 죽어가고 있는 것인데, 지금 피를 흘리며 다 죽어가고 있는 것인데.. 너희들이 정말 이들에게 관심이 있냐고 우리들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제목이 무엇인가요? 강도 만난 자의 이웃입니다. 여러분,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정말 맞습니까?
3. 주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주님이 마지막에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마지막 결론입니다. 너도 가서 이와 같이 하라.. 남은 자라는 메시지를 그동안에 많이 했습니다. 누가 남은 자인 것인가요? 두가지를 깨달은 자가 남은 자입니다. 아, 복음 안에 모든 답이 다 들어있구나.. 그리고 두 번째,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왜 나를 참좋은 교회에 보내신 것이며, 나를 왜 이 현장 속에 살게 만든 것인가? 나의 미션을 깨달은 바로 그 사람이 남은 자입니다. 하나님이 이 사람에게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시는 겁니다. 이 복음을 깨닫고 미션을 깨닫게 되면 자연스럽게 그 사람은 24시 기도하게 되어요. 왜요? 내 힘으로는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엘리야가 참신논쟁을 벌리며 3년 6개월 동안 가물은 땅에 비를 내리게 만들며 놀라운 일을 행하였던 그 엘리야를 보면서 엘리사가 후계자로 부름을 받죠. 엘리사는 깨닫습니다. 내가 이 민족을 살려야 하고, 7천제자를 세워야 되는데 하나님 내 힘으로는 안됩니다. 그래서 무엇을 기도하죠? 갑절의 영감을 내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주여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여 주옵소서.
제가 지금 깨달아진 것이, 24시 기도하라? 기도가 안됩니다. 언제 24시 기도가 되어지는 것인가? 정말 복음 깨닫고 미션을 깨닫게 되면은 24시 기도를 하라가 아니고 할 수 밖에 없게 되요. 왜요? 그분의 힘을 얻어야 되니까.. 초대교회에 120명의 성도가 마가다락방에서 기도를 합니다. 그 기도의 배경을 보셔야 되요. 이들이 무엇을 깨달았죠?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면서 아, 예수가 그리스도가 정말 맞구나.. 결론이 났어요. 그리고는 무엇을 주셨죠? 미션을 주셨어요. 40일 동안 하나님 나라의 일을 주었는데, 제자들 마음에 뭐가 오죠? 내 힘으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어가잖아요. 그래서 이들이 뭐하는 겁니까? 주님, 내 힘으로는 안됩니다. 내가 주의 성령으로 충만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여러분, 진짜 기도는 언제 나오는 것인가? 정말 복음 누리고 미션을 깨달았을 때에 여러분들이 정말 하나님 앞에 기도하게 되고,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모든 것 허락하시는 것이에요. 그 사람은 영적인 힘을 정말 주시는 것이에요. 왜요? 미션을 감당해야 되니까.. 그 사람에게 지혜도 주시고, 건강함도 주시고, 경제력도 주시고, 사람을 붙여서 미션을 감당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이에요.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이것 달라, 저것 달라 사실은 할 것 없이, 정말 내가 뭐하면은? 정말 복음 깨닫고, 미션을 깨닫고 하나님, 이 미션을 감당해야 합니다 하고 서게 되졌을 때에 하나님은 모든 문을 다 여시는 것이에요. 그동안에 우리가 왜 기도응답이 제대로 없이 그저 불신자들하고 아웅다웅하고 살아왔나요? 나를 그렇게 살도록 불러주신 것이 아닌데, 내가 지금 무엇을 놓쳤다고 이야기를 하는 겁니까? 정말 복음 놓치고 미션을 놓친거란 말이에요.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들에게 이 메시지를 왜 주신 것인지 오늘 그 말씀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주위에는 뭐가 깔려 있죠? 강도 만난 자들이, 지금 건져 구원하지 아니하면은 목숨이 달려있는 수많은 영혼들이 방황하고 있는데, 우리 모습은 누구 닮았죠? 제사장과 레위인의 모습이 오늘 나의 모습이라고 지적하지 않나요? 오늘 우리가 결단해야 합니다. 주님, 너희도 이와 같이 하라고 명하신, 누가 강동 만난 자의 이웃이 될 것인지, 오늘 이것을 내 마음에 담고서 이제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오늘 예배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주님.
최고의 축복이 무엇인가요? 정말 복음 체험하고 누리고 미션을 깨달아서 하나님 앞에 방향을 맞추는 삶을 살아야 될 것인데, 지금까지 우리는 틀린 안경을 쓰고서 틀린 가치관에 메여서 제대로 기도응답조차 받지 못하고 불신자들에게 오히려 조롱을 당하면서 살아왔던 우리 삶이 아니었나.. 이 한 시간에 우리가 깨닫고 주님 앞에 서기를 원합니다. 주님 오늘, 강도 만난 이웃을 우리에게 말씀 하시면서 바로 오늘 내 모습이 제사장처럼, 레위인처럼 신앙생활하고 있는 모습이 아니냐.. 네 주변에는 수많은 영혼들이 강도를 만나서 죽어 가는데 그들을 살려야 되지 않겠냐고 오늘 우리들에게 말씀을 합니다. 주님, 이제 회개하는 마음으로 주님 앞에 엎드립니다. 하나님, 너도 이와 같이 하라는 말씀이 내게 주신 말씀임을 우리가 생각하고, 정말 강도 만난 자들의 참된 이웃이 될 수 있는 신양생활이 되도록 하나님이 이 일을 감당하는 자들에게 모든 문을 여셔서 그 인생으로 하여금 최고로 만드시고 역사의 주인공이 되도록 만드시겠다고 저희들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바로 이것을 시작할 수 있는, 도전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까지 저희들의 마음과 생각을 붙잡아 주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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