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레와 이스라엘 왕국의 밀월
지금으로부터 3000년 전, 지금은 수교는 물론 국경조차 폐쇄되어 있는 이스라엘과 레바논을 보면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티레와 이스라엘은 밀접한 관계였다. 기원전 11세기 말 페니키아의 다른 도시보다 우위에 선 티레는 아비바알 왕이 이스라엘 왕 다윗과 우호관계를 맺으면서 육지 쪽의 위험을 없애고 적극적으로 바다로 진출한다.
두 나라의 우호관계는 아비바알의 아들 히람 1세(기원전 969-936)와 그 유명한 ‘지혜의 화신’ 솔로몬(기원전 965-926)시대에 와서 더 돈독해 진다. 사돈 관계이기도 한 두 왕은 정치, 경제, 기술면에서 활발한 교류를 하며 두 나라의 번영을 이끈다.
히람의 치세는 예외적으로 사료가 남아있는 시대이기도 한데, 바로 《구약성서》의 <열왕기>가 그 것이다. 부왕의 염원이었던 성전 건축에 나선 솔로몬에게 페니키아의 삼나무와 그들의 기술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고, 그것들을 공급받는 대신 대량의 밀과 양질의 올리브 기름을 대가로 보낸다.
두 나라는 이렇게 일종의 ‘경제협력’을 맺었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티레의 기술자들이 20년에 걸친 이 대공사에서 큰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역대기하> 3장 14절을 보면 성궤를 모시는 지정소의 장막조차 페니키아 제품일 가능성이 높다. 청색과 붉은 색, 자주색 실로 짰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자주색 실의 염료는 말 할 것도 없이 페니키아에서 왔을 것이기 때문이다. 당시 페니키아의 기술력이 이스라엘 보다 월등했다는 증거이자 유일신 야훼의 성전이 이교도들의 손에 의해 건설되었다는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성전은 잘 알려진 바대로 기원전 586년, 신바빌로니아의 네부카드네르에 의해 파괴되었다.
두 왕의 공동사업은 이 뿐만이 아니었다. 공동으로 선박을 건조하여 홍해를 통한 해외무역이 있었기 때문이다. 솔로몬은 지금의 에일라트 항구 부근에 있는 에시온 게벨을 그들에게 제공했는데, 이곳의 조선 사업에도 티레 인들의 기술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은 당연하다. 이 과정에서 시바 여왕과 황금 도시 오빌의 전설이 생겨났다. 오빌은 수단이나 소말리아 해안 또는 아프리카 동해안 어는 곳으로 추정된다고 하지만 일부에서는 인도로 보기도 한다. <열왕기 상>을 보면 금 420탈렌트를 오빌에서 실어왔다고 기록이 있는데, 13톤에 해당하는 막대한 양이다. 참고로 19세기 호주에서 골드러시가 터졌을 때 황금 사냥꾼들이 천막도시를 만들고 그 이름을 오빌이라 지은 바 있다. 이렇게 솔로몬은 지금까지 전설처럼 전해지는 거대한 부를 손에 넣었다.
《성서》의 영향력으로 인해 히람은 솔로몬의 ‘물주’이자 조력자 정도로 알려졌지만 이 합작으로 인해 그가 얻은 것도 많았다. 이스라엘은 한 번도 대제국이었던 적이 없었지만 적어도 솔로몬 시대만은 주변의 여러 소왕국들을 거느린‘작은 제국’이었다. 특히 헤르몬 산 남쪽의 마아가 왕국과 동서남북으로 교역로가 열려 있는 단의 지배는 페니키아 특히 티레의 무역에 큰 도움을 주었다. <역대기 하> 2장 12절을 보면 히람은 예루살렘 성전 기술자 후람-아비를 보내는데 그의 아버지는 티레 인이지만 어머니는 단 지파 출신이라는 기록이 나온다. 솔로몬이 제공하는 안정적인 교역로를 통해 티레 인들은 마음 놓고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 지방과 교역을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증명되고 있다. 물론 솔로몬의 본거지인 유다 지방을 통해 향신료와 귀중한 광석의 보고인 아라비아에도 접근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