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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YlGgVgdxx9o
11년 전 2006년도5월5일에 이 산을 처음 왔었다.
이 산의 매력은 용이 승천하는 모양의 적송 한그루에 있다.
그동안 등산을 하며 적송을 많이 보아 오면서 제일 멋진 소나무로
기억되는 것이 이 소나무이다.
오늘 그 소나무를 다시 보기위해 이 산을 찿았다.
그 당시의 이 지역 기억이 가물가물 한 터에
우리가 당시 등산 시작하던 곳까지 차를 갖고 들어간거 같은데
속리산 국립공원에 속해있어 멀치감치에서부터 차를 주차하고 가게 변해 있다.
주차장도 국립공원에서 하는게 아니고 개인들이 하는 곳이란다.
다른 국립공원 주차장들도 거의 다가 개인이 하는 것이지만.
이 산속에 주차비를 받는 것도 참 이상하다. 그 것도 계룡산 동학사쪽
항상 탐방객이 많은 곳이 4천원인데 이 산골 속엔 5천원이다.
어델 가나 주차비가 어떤 때는 아까운게 이것이다.
진디기 등을 예방하기위해 탐방안내소에는 소독분무기가 비치 되있다.
여지껏 이런 서비스는 본적이 없는데 이 곳에만 있는 건가?
동학사나 갑사쪽 어델 가도 못 보았다. 같은 국립공원인데도.
무릎 이하 쪽에만 뿌리고 출발했다.
화장실 있는 곳에 이런 멋진 바위가 하나 놓여있다.
자연석인가 아님 이렇게 다듬은 것인가?
돈 들여 이렇게 다듬은 걸 이런 곳에 놔둘리는 없겠지.
자연석 치고는 꽤 예술적이다. 바위를 보면 올라가 보고싶은
마음이 언제나 있는데 그냥 참자.
왜 화양동이라는 이름인가를 이야기 한다.
왜 송시열 선생은 중국을 뜻하는 단어를 사용했을까?
좋은 황양동이란 말이 있었는데도. 그렇지 않으면
황양목이 많아 화려한 뜻으로 화라 하면 더 좋왔을 것을.
이 곳에 송시열 유적지가 있고 그는 민족자존감이 큰 분이라
적혀있는데 이런 것이 과연 민족자존감인지 모르겠다.
화양동이란 이름의 유래 설명과 이 안내판에 써져있는 민족자존정신은
영 딴판이다. 누가 잘못된 내용일까? 사람들은 이런 내용을 비교해서
생각을 해보지는 않는지. 그 황양목은 어떤건지 보여주면 좋으련만.
계곡을 끼고 길이있다. 차도이다.
그 계곡 중간 중간에 이런 아름다운 암벽이 서 있는데
이러한 곳이 9개가 있어 화양구곡이란 이름이 있다.
그 하나가 아름다운 운영담이다. 잔잔한 계곡물 위에 비추는 암벽.
한폭의 아름다운 그림이다. 수채화이다.
이 설명과 풍경을보니 나도 먹물로 그리는 그림을 그리고 싶은 마음이다.
이 풍경을 그려보고 그 위에 글을 쓰고. 지나가는 구름뿐이랴, 바위그림이 비추는건
더 아름다운 풍경일진데.
탐방로 입구에서 이곳까지 1.43 키로메타의 거리이다.
기록을보니 28분 걸렸다. 사진도 찍고 구경도 하며 오니.
10 여분 걸린다고 했는데. 잠시 쉬어 주변을 감상 해 본다.
계곡을 지나는 다리 앞이다. 여기가 첨성대 라는 9경중의 한 곳이라하는데
뭐가 첨성대인지 안보인다.
11년전에 와 본 곳인데 전혀 기억이 없는 코스다.
철 계단도 다 있고. 흔적으로 보니 오래 된거 같은데.
멀리서 보니 고인돌 같이 보인다.
밑에 지석을 놓고 커다란 바위 하나를 얹어 놓은 모습이
꼭 고인돌 지석이다. 옛날 그 옛날 이곳에는 커다란 거인이 ?
상상을 해 본다. 이러한 돌들을 박아놓고 얹어 놓고 세워 놓은게.
누가 이런걸 해 놓았을까.
거대한 소나무에서 기를 좀 받고 가자.
어루만지며 그 훈기를 느껴본다.
소나무 그것도 적송들이 많이 퍼져있다.
도명산 정상에서 우측 능선 위로 올라와 잠시 산바람을 맞는다.
산에는 사람들이 많이 오지 않아 그런가 한적하다.
이제 도명산 정상으로 가는 길이다.
바위길이 있는 곳을 오를 때면 이렇게
안전 대가 설치 되 있어 편리하고
안전하게 오를 수 있다.
거대한 바위 두개가 맞대고 있다.
그 밑은 사람들이 통행하는 천국의 문같이 되있다.
바위밑을 통과하면 그 기를 전부 받는다고 사람들은 믿는다.
그래서 그 밑을 통과하기를 즐겨한다.
이 곳은 이 곳이 유일한 통로이니 이리로 가야한다.
나이에 걸맞는 체력이 어떤건지는 몰라도,
보다 강건한 채력의 기를 듬뿍 받는다 생각하고
잠시 머물러서 있어 본다. 바위를 만져도 보고.
등산을 하면서 나는 언제나 관심이 있는게 적송들의 분재같은 모습이다.
미국에서는 산에서 전혀 볼수가 없었던 그 모습이 그리웠었다.
미국의 산에는 나무들이 쭈욱 쭈욱 뻗어 곧게 올라간 나무들이다.
그런것이 그나라 국민들의 기질이기도 한거같다.
우리는 너무도 유연성이 많다. 우리나라 소나무 적송이 그렇다.
산마루 능선길에서 주위 산들을 조망 해 본다.
아름다운 우리나라는 금수강산이다.
산이 많아서 좋은 점이 공기정화기능이 크겠지.
산에서 나는 산림자원 또한 많고.
아직도 그런 걸 개발하고 삶의 질과 연결시키는 사업이
더욱 더 많이 이루어 지면 좋겠다.
우리나라의 명산들은 그 기본 구성이 바위, 소나무 그리고 계곡 물이다.
이 3가지가 어울려 있는 곳을 우리는 명산이라 부른다.
지난번 미국횡단 여행 시 보고 느낀 것은
우리나라같이 이런 화강암 바위가 거의 없는거 같았다.
모래로 된 사암과 화산암 그리고 석회암들만 보았다.
우리나라 이 화강암 바위는 표면이 살아있는 바위임을 느낄수있는
특징이 있다. 맨손으로 만지면 까시같이 오톨토톨하다.
그래서 맨몸으로 미끌어저져 넘어지만 살갖이 다 까진다.
이런 것때문에 등산화가 미끄럽지않고 잘 달라 붙는다.
바위도 생명이 있음을 이걸 느끼면서 알 수가 있다.
도명산 정상에 올라오니 사방이 다 트여서 시원하다.
이 정상에 서서 속리산 쪽으로 보이는 봉우리들이
줄줄이 연결 도 있다. 그 중에 우리가 가 본 곳 묘봉도 보인다.
그 묘봉은 암봉이 많아 그걸 오르고 내려가고를 밧줄타고 해야하는
코스가 많은 걸로 기억 한다. 초 겨울 눈이 살 짝 내린 날 올라가서
내려올 때 길이 안보여 조심해서 찿아 내려온 곳이기도 하다.
표지석에 걸터 않자 핸폰을 자동으로 놓고 찍었다.
요즘은 핸드폰에 카메라 기능과 트랙기록 기능들이 다 있으니
갖고있는 카메라나 등산용 GPS도 안갖고 다니게 된다.
정상에 있는 바위들의 모양도 또한 걸작품들 같다.
정상에서 점심을 먹는 장ㅅ를 물색을 하느라 뒤편으로 가 보았다.
바위위로 올라가니 나무그늘에 아주 좋은 명당자리가 있었다.
그 곳에 짐을 내리고 그래도 정상 바위를 향해 포즈를 취해 본다.
물론 핸드폰 카메라를 바위 위에 걸쳐놓고 자동으로.
이 자리가 오늘의 명당자리. 점심도 먹고 앉아 쉬기도 하고.
앞 봉우리 아래 바위 길에서는 어데 산악부 아이들이 단체로 와서
훈련을 하는가 소리소리 지르며 한다. 군대에서 훈련하며 기압을 주는
그런 과정인가 했는데 다른 이들이 이야기가 학생들 산안반 훈련이라 한다.
이 도명산에 또 다른 유명한게 있다.
마애불상들이 새겨진 바위가 있다.
그것도 3개나 그려져 있고 그 크기도 대단히 큰 것이다.
이 바위에 한분이 조각되어져 있고.
다른 두분의 불상이 이 한 바위 위에 그려져 있다.
고려 초기 불상의 그린 것과 같다하니 그 시대의 것인가 보다.
산에 들어와 이렇게 그려 놓고 과연 무엇을 빌었을까?
부귀공명을 하였을까 나라의 안녕을 위한 것일까?
이 지역이 송시열 선생의 유적이 있는 곳으로 보아
그분들도 이런걸 이용한 복 발원을 했으리라.
문화재 정도로 등록 되있는 걸로 보아 고려시대 것이란 확증이 없나 보다.
나는 오늘의 이 곳 등산 목표가 이 소나무를 다시 보러 온 것이다,
이 소나무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용 한마리가 하늘로 승천 할 때 땅을 박차고 오르는
그런 모습을 연상케 하는 자태이다.
전에 등산 할 때 올라 오면서 보고 또 내려 가면서 본 기억인데
그렇다면 이 코스로 오르고 내려간거 같다.
오늘 등산 하며 올라온 코스는 그래서 기억이 없었나 보다.
올라오면서 이 소나므가 있을 텐데 하며 잘 보고 올라왔는데
결국 그 쪽 코스에는 없었다는 이야기다.
먼제 사진을 찿아보니 딱 10년 전이다. 2007년 8월에 올라와서
사진을 찍을 걸로 나타난다. 그 때 보다는 약간 굵어졌구나.
이 바위들도 그 때 누구 그림같은 모습이라 하며 사진을 담은 기억이있다.
바위들이 금이가고 한게 꼭 누가 그림을 그린거 같았다.
소나무 껍질을 보면 종류가 많은거 같다.
같은 적송들인데도 껍질의 모습이 다영함을 본다.
이렇게 굵고 커다란 껍질이있는가 하면
이렇게 얇고 가느다란 껍질의 소나무도 있다는걸 보면
분명 종류가 다른 것일게다. 소나무라는걸 감상하려면
위의 것 처럼 껍질이 굵고 큰것이 더욱 멋지게 보인다.
내려오다가 계곡에 흐르는 물이 너무도 시원해 보여
발을 식히고 간다고 물가에 앉았다.
등산하다가 하산 길에 이렇게 물에 발을 담구면
피로가 살짝 풀리는거 같은 기분에 종종 이렇게 하곤 한다.
발을 담구니 송사리떼가 몰려온다.
꼭 닥터피시 같아보인다.
집사람이 먼저 담구니 그리 몰려있다가
내가 발을 담구니 나한테로 몰려오는걸로 보아
내가 더 냄새가 난 모양인가.
학소대로 하산하여 내려오니 다리 하나가 아주 멋진 곡선으로 놓여져 있다.
남원의 오작교 같은 분위기이다.
이 것이 학소대 바위이다.
계곡옆에 이렇게 서 있는 바위들이
이 곳의 구곡을 이루고 있다.
넓은 바위들이 있는 계곡이다.
더운 여름날 이곳에서는 많이들 야외놀이를
할수있는 좋은 곳이다.
이 곳에 와룡암이라고 적혀있다.
구곡 중의 한나인 곳이다.
용이 한마리 누워있다는 의미인데
그 바위는 멀리 이 쪽을 보면 그렇다 하는데
이 바위들을 연결 해서 보면 용이 주워있는 모습이라 한다.
바위 중앙을 따라 홈이 나 있는것이 용의 등뼈 같은 모습으로 보이나 보다.
이곳의 제일 높은 바위로 올라가본다.
계곡이 참 아름답다. 그래서 송시열 선생도 이곳에 머물며
산천을 벗삼고 공부를 하며 후학들을 가르치면서
옛 선조들을 경배하곤 했나보다.
이 곳이 우리가 등산을 시작하던 첨성대라는
화양구곡 중의 한 곳이다. 산쪽에 구성하고있는 바위들이
첨성대 같다하여 그런 이름이 주어졌나보다.
이 바위들이 물가에 비추면 아름다운 한폭의 그림이렸다.
이 곳은 능운대 -凌雲臺.
계곡 가에 있는게 아니고 계곡 길 가 산쪽에 있다.
바위가 구름을 뚫고 오른다고 능운대라 한다.
한문 뜻으로 보아 바위가 구름을 없신여길 정도로
바위의 위용이 높다는 의미이다.
구름을 뚫고 오를 위용의 바위는 이 바위인거 같다.
날카롭게 생기고 뾰족한것이.
금사담 金沙潭이다.
금빛모래가 깔린 연못이란 뜻이라 한다.
반석 위에 암서재와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
암서재는 은퇴한 송시열이 후학을 가르치던 곳이다.
이런 곳에서 공부를 하면 아마도 머라속에 쏙쏙 들어올거 같다.
졸리면 계곡물에 머리한번 감고, 더우면 목욕도 하고.
만동묘의 현관이다.
만동묘 사당.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와준 명나라의 신종과 의종을 기리는 위패가 보셔진 곳이다.
조선왕 숙종 1703 년에 세워진 곳인데 일제시에 일본이 이 곳을 철거하여 없어진 것을
후에 다시 세운 것이라 한다.
이 비석을 보면 하단에 문자들이 다 쪼아 없어져 있다.
뒷면과 옆면도 보면 거의 다 쪼아져 없어져있다.
일제가 이 비문의 내용들을 쪼아 지워놓고 뭍어버린걸
1983년 군에서 찿아내어 복원 해 놓은 것이다.
일본의 한국역사 지우기와 자기들에게 불리한 사료를
없애는 그런 문화 말살 정책에 분노감마져 든다.
나라가 힘이 있어야 됨을 새감 느낀다.
이 곳에 그 내용이 잘 설명이 되있다.
역사공부와 절경을 구경한 하루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