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내용은 내가 일주일 전에 전주에갔다가 흐뭇했던 시간을 보낸 바 있어 소개 하는 것임. 즐독 하시도록......
全州紀行
술맛을 제대로 알진 못했었지만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가끔 술을 입에 대기 시작 했으니 애초부터 範生이는 아니었다.
高3때는 그 시절 막 解禁된 쌀막걸리를 제법 마셔댔다.
한 잔 걸친 다음 날이면 下宿집에서 끓여 준 콩나물국이 퍽이나 입맛에 맞았었나보다. 국물을 순식간에 비우고 한 그릇 더 찾으면 하숙집 아저씨의 웃음기 묻어나는 한 마디가 영 고개를 들기 힘들게 만든다.
“김군이 어찌 渴症이 심한 모양이구먼”.
그 뒤로 30년 쯤을 술과 벗하며 살아 왔으니 이제 지겨울 때도 되었건만 아시다시피 술과의 離別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하루 두 갑씩 피우던 담배를 한 방에 딱 끊어 버린 바 있는 나로서도 영 자신이 없는 일이다.
커서도 술을 마시지 않겠다는 큰아들 愚白이 녀석의 決心이 어떤 緣由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오직 미안하고 또 미안 할 따름이다.
따지고 보면 少時的에 아버지 심부름 할 때 한모금씩이야 다 맛 본 경험들은 누구나 갖고 있을 터이니 각자가 술에 관한 追憶들은 다양하고도 깊어 생각하기에 그윽한 바들이 있을 것이로다.
오랜만에 全州엘 갔다.
七旬의 중반을 훌쩍 넘기신 어머니의 생신이 일요일인데 愚白이에게 사정이 있어 토요일에 고속버스를 타고 혼자 내려 갔다.
졸다 자다 전주에 닿았는데 수 십년이 지나 낡다 못해 古色蒼然 하기 까지 한 고속버스터미널을 보니 여러가지 생각에 씁쓸하다 못해 화가 치밀었다. ( 18! 복창 터지는 全羅道, 그 중에서도 전라북도는 더 속 터져! -하여튼 참고 참고 또 참으시다 보니 어느덧, 불현듯 내가 바로 부처가 아닌가 싶어지더라. 관세음보살)
할 말도 있고 하여 公務員아닌 公務員( 정통부 장관도 아니면서 골프를 80대 초중반을 치면 공무원으로 분류하기 어렵다) 김영진君을 만났다. 골프연습장에서 만났는데 한 번 쳐보라더니 이것저것 코치를 해준다. 내가 한참 잘 맞을 때는(그래 봤자) 김군이 감히 나에게 說敎를 하지 못했었는데 人生이 無常하기만 하다. 하긴 桑田이 碧海가 되었다 한들 下手가 뭐라 할 것인가. 有口無言일 수 밖에…… 그리고 저는 핑계가 있어 도망 갔다.
소주 한 잔 하자고 양환창兄을 請 하였다.
바로 이 때문이다. 서두에 장황한 술 얘기가 있었음이.
지금부터 잘 들어두시라.
全州에는 막걸리골목이 있었다.
지금도 기억 하고 있는 이가 많겠지만 나 白打가 대학시절 무수히 들락거렸던 중앙로의 후문집 풍남집, 병무청앞 세종집, 도청 옆구리의 정들집, 용머리고개 정읍집 부안집등은 低廉한 價格으로 막걸리를 배 터지게 마실 수 있는 대표적인 그 시절의 막걸리집 이었다.
양은 주전자에 가득 담긴 막걸리값은 변변찮은 학생들의 주머닛돈으로도 감당 하기에 그리 어렵지 않았거니와 몽땅 공짜인 안주가 그 얼마나 感動스러웠던가! 아흐~~
나 白打를 포함한 헐렁한 酒黨들의 靑春과 사랑과 꿈은 그 골목 그 막걸리잔 속에서 끊임없이 피고 또 져갔다.
의미 모를 세월만을 남긴 채……
그리고 어느 때 부터인가 그 골목과 그 막걸리집들은 사라져 갔다.
그리하여 그 情趣도 다시는 맛 볼 수 없었다. 아주 오랜동안……
그런데,
全州에 가면 막걸리 골목이 있다.
20년쯤 잊고 살았던 그런 막거리집이 지금도 있다.
소주 한 잔 하기로 했는데 환창兄이 우선 막걸리부터 한 잔 하시잔다.
뜬금없이 무슨 막걸리인가 궁금해 하니 주욱 얘기를 해준다.
환창형은 어떤 친구와 함께 끝까지 옛날식 막걸리집을 追跡해서 다녔는데 종내는 한집 정도가 남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간신히 命脈을 유지하던 것이 얼마 전부터 復古바람이 불어 시내 두어 곳에 아예 막걸리타운이 생겼다 한다.
半信半疑하며 택시를 타고 막걸리타운이라는 데에 도착해보니 잊고 살았던 그 옛날의 막걸리냄새가 情겹게 코끝을 감아들어 온다.
단골손님인 환창형이 酒母와 다정한 대화를 나누더니 주문을 한다.
오모가리에 그득한 아욱찌개(?)와 함께 열가지쯤 되는 안주가 나오더니 막걸리병 3개를 딸아 붓고 얼음봉지까지 넣은 제법 커다란 양은주전자가 나온다.
흐뭇하여 입맛을 다시는데 환창형이 한마디 한다.
“이 한 주전자가 만원이다. 안주는 다 꽁짜고 안주는 떨어지면 또 주고 계속 마시면 병어회랑 온갖 것이 다 나온다.”
잠시 후에 박운형군 이문환군이 도착 하였고 故鄕親舊 권혁신군이 합류하여 5명이서 마셨다.
환창형 얘기대로 과연이었다. 술주전자가 새로 나올 때마다 새로운 안주가 계속 나오는데 아마 스무 가지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나는 아욱이 듬뿍 든 아욱국이 너무 맛이 좋아 계속 追加를 要請 했는데 酒母는 군말 한 번도 없이 계속 퍼준다.
5명이서 배가 불러 더 이상 마실 수 없어서 1차를 파하기로 하여 計算을 請하니 4만원 이란다.
이럴 때 나는 感動한다.
과감하게 배춧잎 한장을 쓰윽 뽑아 아욱국을 限도없이 퍼줬던 그 마음에 謝禮하였다.
그 뒤로 2차 3차를 巡禮하였으나 별다른 의미가 없으므로 그 얘기는 略하기로 한다.
觀光資源이란게 뭐 별거던가?
이런 막걸리 타운도 훌륭한 관광자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대덕에 사는 사람을 한번 데리고 갔더니 그 사람이 자기가 근무하는 대덕의 연구실 직원들의 會食行事를 전주 그 막걸리 집으로 몰고 와 치렀다는 逸話가 있었다는 환창형의 얘기다.
정읍 柳현감도 한번 잘 생각해 볼 일이다.
全州에 가게되면 꼭 한번 들러봐도 절대로 後悔하지 않을 것임을 保障하며내가 갔던 곳을 親切히 갈켜 드리겠다.
삼천동 도서관에서 수영장쪽으로 가다가 오른편으로 나있는 막걸리집 많은 골목의 <옛날막걸리집인가 예전막걸리집인가>하는 집이네.
친구들의 健勝을 祈願하며……
白打 김태철 씀.
첫댓글 전주에 가믄 꼬옥 한번 들러봐야겠네..나도 고1때 완산동 골목에서 안주20가지 나오는 막걸리 먹어봤는디 환생하였구먼..
나도 전주 하면 생각나는데.. 그 언제였나? 비빔밥에 반찬 28가지인가? 와! 증말 잊을수 없는 그 인정과 그 전주의 고향 맛!! 한번 가 보고 싶다. 한 송이 빨알간 장미꽃을 생각하면서...ㅎㅎ
지난 3월달에 영환이 병길,현님,오목,혁신이랑 막걸리에 배터젔다...양은 주전자 하나에 만원 하더만 왠 안주가 많은지 아이구 및겟드라...영환이에 더덕 깍던 솜씨가 일품이였는데..오늘 같은날 전주로 막걸리 묵으로 가고 싶다..다들 떠나고 없는 이 시간이라 그런지 쓸쓸 하구먼
응~그래 왔으면 연락하지~같이먹게,,친구들아~!전주에 와라~막걸리 비빔밥 매운탕 콩나물국밥 다쏘겠다~ㅋ
난 지난주에 가서 오모가리(쏘가리)탕 집에 갔었는데 우거지가 끝내주더라구 .......
음식하면 전주 아닌가? 전주도 어쩌다 한 번 가면 너무 변해서 길도 못 찾겠더라. 난 호떡집,튀김집, 칼국수 집만 생각나는구만.역시 난 범생인게 확실하네.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