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참이란 그림이나 글자를 사용한 예언을 말한다. 이것이 예부터 풍수사상과 결부돼 왕조 교체기 또는 정권 교체기마다 단골로 등장해 민심을 사로잡고는 했다. 2002년 대선을 앞둔 요즘 술사들간에 이런저런 도참설이 나돌고 있다. 鄭씨가 왕이 될 것이라는 전통적 도참사상인 ‘정감록’부터 ‘임오년에는 문둥이相을 가진 사람이 대권을 잡게 될 것’이라는 ‘숙신비결’, ‘충청도 출신이 대권을 잡을 차례’라는 ‘오행상생론’ 등이 그것들이다. 이 가운데 과연 어느 도참설이 최종 승리하여 대권을 잡을 것인가? 또 하나의 흥미진진한 大選 감상법을 소개한다.
점(占)이란 ‘앞일을 예측하는 작업’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미래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내 인생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하는 궁금증은 인간의 영원한 관심사다. 식욕, 성욕, 수면욕 다음으로 인간의 강력한 욕구 중 하나가 앞일을 알고자 하는 미래욕(未來慾)이 아닌가 싶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 욕구는 쇠퇴하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점은 바로 그러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대안이기도 하다. 그래서 점쟁이는 각종 직업 가운데 가장 오래 된 직업이기도 하다. BC 3000년 전부터 있던 직업이 점쟁이라는 직업이다. 물론 그때는 점쟁이라고 하지 않고 제사장이라는 품위 있는 직함으로 불렸지만 말이다.
근래의 직업 가운데 가장 ‘점쟁이스러운’ 직업이 증권사 애널리스트다. 펀드매니저의 사촌격인 애널리스트(analyst)들은 미래의 주식시세를 알기 위해 끊임없이 자료를 분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널리스트의 주식시세 예측이 다 맞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 애널리스트의 예측을 믿고 주식을 샀다 신세 망친 사람이 주변에 부지기수다. 적중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애널리스트들은 여전히 월급을 받으면서 명줄을 이어간다.
상당히 선망하는 직업이기도 하다. 필자가 보기에는 5,000년의 역사를 지닌 정통 점쟁이의 계보를 잇는 사람들이 바로 애널리스트들이다. 미래를 예측한다는 측면에서 이들의 작업 내용이 점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콘텐츠는 그대로인데 포장지만 바뀌었을 뿐이다. 점이 맞으면 수십억원의 연봉도 가능하고 사회적 대접도 좋아 선망하는 직업이 됐을 뿐 작업 내용이 점쟁이의 점사(占辭)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애널리스트와 사주쟁이가 다른 점은 미국의 MBA 수료 여부다. 미국에서 MBA 자격증을 땄으면 애널리스트가 되고, 못땄으면 사주쟁이가 된다.
애널리스트에서 사주쟁이에 이르기까지 모든 점쟁이는 왜 도태되거나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존재하는 것인가. 도대체 점은 미신(迷信)임에도 불구하고 왜 인류사에서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고 존재하는 것일까. 이 문제에 대해 필자가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은 두가지다. 첫째, 점은 맞기 때문에 존재한다. 무릇 현실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는 그 존재 이유가 있다. 마찬가지로 점이 아직도 우리생활에서 유통되는 가장 큰 이유는 맞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왜 미신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인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맞지 않으면 미신이고 사기가 된다.
이를 일러 ‘혹중(或中) 혹부중(或不中)’이라고 표현한다. 점은 그 중간 어디엔가 있다. 그렇다고 완전히 중간은 아니다. 좀더 좁혀 말한다면 맞지 않을 확률보다 맞을 확률이 조금 더 높다. 기록을 살펴보면 동양의 성인 가운데 가장 합리적 사고에 충실했던 공자(孔子)도 점의 확률을 인정한 바 있다. 1972년 중국 후난(湖南)성 창사(長沙)시의 마왕퇴(馬王堆) 고분에서 출토된 ‘백서’(帛書)를 보면 공자와 제자인 자공의 문답이 기록되어 있다. 자공이 공자에게 묻는다.
“선생님도 점이라고 하는 것을 믿습니까?”(夫子亦信其筮乎)
“믿는다. 100번을 점치면 70번이 맞는다.”(吾百占而七十當)
상응의 원리 -道士는 미세한 조짐을 포착해야 한다
공자의 대답은 70% 확률이니 믿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다. 공자가 점서(占書)인 ‘주역’을 가죽끈이 세번이나 끊어지도록 탐독한 데도 알고 보면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70%는 고금의 점사(占事)에서 공통적인 확률이다. 사주를 봐도 대체적으로 70% 정도 맞는다고 한다. 즉, 10개 중 3개는 틀릴 수 있다는 말도 되고, 10개 중 3개는 알 수 없다는 말도 된다. ‘고스톱’의 황금률도 ‘운칠기삼’(運七技三)이다. 운이 70이고 기술이 30이라는 확률이다. 운은 운명적 요소를 지칭하고, 기술은 개인의 자유의지와 노력을 의미한다. 쉽게 말하면 운명 70, 노력 30의 비율이라는 의미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대목은 70%라는 확률이다. 어떻게 해서 7할이 맞을 수 있는가. 5할이 넘는다는 것은 우연으로만 돌릴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7할이라는 바탕에 깔린 원리는 무엇인가를 탐색해 보기로 한다. 필자는 그 원리를 3가지로 압축한다. 첫째는 상응(相應·Correspondence)의 원리며, 둘째는 반복(反復)의 원리고, 셋째는 귀신(鬼神)의 존재다. 상응의 원리란 시간(天文)·공간(地理)·존재(人事)라는 각기 다른 3차원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원리다. 그 좋은 예가 카오스(chaos) 이론이다.
현대물리학에서 말하는 카오스 이론이란 베이징(北京) 상공에 있던 한마리의 나비 날갯짓으로 인한 파장이 캘리포니아 상공에 가서는 폭풍우로 변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카오스 이론은 혼돈 현상의 이면에 특정의 질서(cosmos)가 작동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나비의 날개짓과 폭풍우는 전혀 무관한 차원 같아도 알고 보면 서로 관계가 있다는 주장이다. 언뜻 보기에는 혼돈 같지만 깊이 들어가 보면 상응 관계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현대물리학자들은 설파하고 있다.
상응의 원리에 의하면 만물은 거미줄과 같은 미세한 끈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한쪽을 잡아 흔들면 다른 한쪽까지 흔들린다는 설명이기도 하다. 풍수에서 말하는 동기감응(同氣感應)의 원리도 이와 같다. 땅속에 묻혀 있는 조상의 뼈라고 하는 매체를 통하여 조상의 백(魄)과 후손의 백이 서로 감응한다고 본다. 그 감응 현상은 꿈으로 나타난다. 대체로 묘를 쓰고 나서 10일 안에 직계가족들에게 선몽이 있게 마련이다. 명당 자리에 들어갔으면 망자(亡者)가 환한 표정으로 깨끗한 집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고, 물이 나오는 좋지 않은 자리에 들어갔으면 초췌한 표정이나 허름한 옷을 입고 나타나는 수가 있다.
아무런 꿈도 없으면 해도 없고 득도 없는 무해무득(無害無得)의 자리에 들어갔다고 판단한다. 상응의 원리에서 중요한 것은 징조를 알 수 있다는 점이다. 어떤 일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에 대한 단서가 징조라고 한다면, 징조를 파악함으로써 결과에 대한 사전 예측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베이징 상공에서의 나비 날갯짓은 점술가의 입장에서 볼 때 하나의 징조다. 이것을 보고 캘리포니아 상공에 얼마쯤 후에 비가 오리라는 것을 예측하는 것과 같다. 꿈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밤에 꾼 꿈을 가지고 낮에 전개될 일을 미리 짐작하는 경험을 일상에서 수없이 겪는다. 앞일을 미리 예시하는 선견몽(先見夢)은 전개되는 상황을 판단하는 징조이자 중요한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점술가는 다른 사람이 무심코 지나치는 미세한 조짐에 주목하고 이를 잡아채는 능력을 지녀야 한다. 마치 배가 난파당할 조짐을 보이면 그 배에 사는 쥐들이 미리 대피한다고 하듯, 점술가는 난파선의 쥐처럼 예민한 후각과 육감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10·26이 일어나던 해인 1979년 초여름 신문에 두꺼비가 뱀을 잡아먹는 사진이 보도된 적이 있었다. 보통사람 같으면 단순한 흥밋거리로 지나칠 수 있는 이 사진이 예민한 안테나를 가진 술사(術士)에게는 하나의 징조로 받아들여지는 수도 있다. 곧 인간세에서 하극상의 징조라고 해석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박정희는 정사(丁巳)생 뱀띠이고, 김재규의 관상은 두꺼비 상이다. 두꺼비가 뱀을 잡아먹는 신문의 사진을 보고 김재규가 박정희를 잡아먹는 사건과 연결시키는 것이 술사들의 상응 능력이기도 하고 상상력이기도 하다. 모든 일에는 반드시 조짐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문제는 그것을 읽어 내느냐 못 읽어 내느냐의 차이다. 필자에게 이 이야기를 해준 인물은 전주에 사는 동전(東?)거사다. 그는 전주의 풍류객이요, 선가(仙家)에 조예가 깊은 인물이다. 대학을 졸업한 뒤 취직은 제쳐두고 우리 산천에 대한 그리움을 벗삼아 전국을 방랑했다. 26세에 시작하여 32세까지 전국을 두 발로만 걸어다녔다. 그 방랑 과정에서 재야의 수많은 기인들과 사귈 수 있었고, 그 만남을 통해 관상과 주역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다.
필자는 그와 교류하면서 ‘주역’과 관상에 대한 많은 에피소드들을 듣게 되었는데, 그는 상응의 원리에 바탕한 점서가 바로 ‘주역’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곤 했다. ‘주역’에 등장하는 64괘는 괘(卦)를 뽑는 사람의 마음과 상응한다는 전제를 깔고 해석해야 한다. 그는 어느 음식점에서 처음 필자를 대면했는데, 필자의 인상을 한번 보고 64괘 중 50번째 괘인 ‘화풍정’(火風鼎)의 괘가 떠오른다는 이야기를 건넨 바 있다. 위에는 리(離)괘, 아래에는 손(巽)괘가 합치면 정(鼎)괘가 된다. 필자에게서 풍기는 전체적인 기운과 이미지가 화풍정괘로 연결되더라는 것이다.
물론 이 판단은 괘를 손으로 뽑아 나온 결과가 아니고 동전거사가 필자를 척 보았을 때 떠오른 순간적인 이미지였다. 괘라고 하는 상징과 조용헌이라는 사람이 처해 있는 전체적인 상황이 서로 상응하는 상태를 감지한 것이다. 화풍정괘의 형상을 보면 위에는 불이 너울너울 타고 있고, 밑에는 바람이 불고 있다. 즉, 화덕에 솥단지를 걸어놓고 부채로 바람을 부치는 형상으로 이질적인 여러 요소들을 솥단지에 몰아 넣고 푹 삶는 상황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이질적인 여러 가지 것들을 모아 솥단지에 삶는 중이라서 매우 바쁠 것이고, 푹 고아 약물을 우려내면 그 약물은 아마 쓸 만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화풍정괘는 당시 내가 처해 있던 상황을 객관적으로 그리고 집약적으로 표현한 괘로 이해하였다. 문제는 괘를 뽑는 사람의 상응 능력에 달려 있다. 즉, 현실과 괘를 연결시키는 능력이다. 그 사람이 처한 상황을 64가지 괘 중 과연 어느 괘에 배당할 것인가는 그 사람의 주관적 영역에 속한다. 64가지 괘를 달달 외우는 방법으로는 백날 ‘주역’을 공부해 봐야 헛일이다. 괘는 괘대로, 현실은 현실대로 따로 놀 뿐이다. ‘주역’은 자기가 처해 있는 상황을 괘로 환원시킬 수 있을 때에서야 비로소 의미 있는 경전으로 다가온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감각을 예민하게 다듬어야 한다. 어떤 선입견도 없이 인간과 사물을 바라보는 것이 감각을 다듬는 방법이다. 감각을 예민하게 다듬으면 어떤 사물을 대하는 순간 즉시 괘로 환산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방바닥에 누워 천장을 보면 천장에 ‘주역’의 64괘가 자동으로 그려지는 경지에 도달한다. 이 정도 경지에는 이르러야 어디 가서 ‘주역’을 공부했다고 명함을 내밀 수 있다고 하겠다. 바꾸어 말하면 주역은 책만 외운다고 도달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자연과 교감을 나눌 수 있을 정도의 예민한 감각의 확보가 관건이다. 제도권 학자이면서도 재야의 학문인 풍수에도 정통했던 고 (故) 배종호 교수는 생전 대학원 수업시간에 필자에게 이런 말을 하곤 했다.
“내가 한창 풍수 공부에 골몰할 때는 산에 가보면 풍수 책이 머리 속에 펼쳐지고, 풍수 책을 보면 거기에 해당하는 산의 모습이 영화필름처럼 떠올랐네!”
동전거사는 그 감각을 다듬는 훈련을 신선들이 많이 살았던 설악산에서 하였다고 술회한 바 있다. 설악산에서 선가(仙家)의 사부를 만났던 것이다. 그 사부의 훈련 방식은 절벽 기어오르기였다고 한다. 설악산의 험난한 바위절벽을 기어오르다 보면 집중력이 생긴다. 발을 헛딛거나 손을 잘못 잡으면 떨어져 죽는다. 죽지 않기 위해서라도 사력을 다해 바위를 움켜잡아야 한다. 잡생각은 일절 발생할 수 없다. 몇시간씩 바위를 붙잡고 있다 보면 바위와 익숙해진다.
바위를 손으로 잡고 발로 버티고 가슴에 안고 뺨으로 부비는 과정에서 바위와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바위를 피부처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절벽 기어오르기 훈련을 통해 집중력, 육체적인 근력, 담력, 자연과의 교감을 익힐 수 있었다. 바위절벽이 어느 정도 끝나자 몇시간씩 움직이지 않고 부동자세로 서 있거나 앉아 있는 연습이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1시간, 그 다음에는 2시간, 3시간, 4시간…. 이런 식으로 시간을 늘려가는 수련이었다. 적어도 6시간 정도는 부동자세를 유지할 수 있어야 고요함에 들어갈 수 있다고 동전거사는 주장한다.
고요할 줄 알아야 내면세계에 들어갈 수 있고, 내면세계에 침잠해야 외부세계의 미세한 출렁거림도 그대로 포착된다. 부동자세의 시간과 내면세계의 깊이는 비례한다는 것이 동전거사의 지론이다. 부동자세 훈련이 어느 정도 단계에 이르자 인적이 완전히 끊긴 숲속에 앉아 있어도 숲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소리들이 전부 귀에 들어오더라는 것이었다. 숲 속의 낙엽이 떨어지는 소리도 포착되었다. 심지어 낙엽이 나무에서 떨어지는 순간의 소리는 물론 땅에 떨어지기까지 바람에 흔들리면서 너울거리는 소리까지 감지될 정도였다고 한다. 이처럼 예민한 상태에서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이 풍기는 냄새에서부터 얼굴에서 풍기는 빛, 목소리의 컬러, 눈동자에서 나오는 빛의 강도와 크기 등이 세밀하게 체크되는 것이다.
내면의 고요한 세계에 침잠 하는 것을 가리켜 삼매(三昧)라고 부른다. 불교의 ‘휴휴암좌선문’(休休庵坐禪文)을 보면 고승들은 삼매의 극치를 ‘나가대정’(那伽大定)에 들었다고 표현한다. 나가(那伽)는 큰 뱀을 지칭하는 단어다. 큰 뱀은 또아리를 틀고 가만히 있으므로 깊은 고요함의 경지에 들어갈 수 있고, 그 고요함의 극치에서 큰 지혜가 솟아난다. 비범한 지혜는 내부에서 솟아나는 것이지, 밖에서 수입하는 것이 아니라는 관점이 깔려 있다. 그래서 고요함이 중요하다. 나가대정의 경지에 도달한 고승들은 여섯가지 신통력을 갖춘다고 경전에 나와 있다. 누진통(漏盡通)·신족통(神足通)·타심통(他心通)·숙명통(宿命通)·천안통(天眼通)·천이통(天耳通)이 바로 그것이다.
월남전 파병과 상월조사
누진통이란 정액이 나오지 않는 경지로, 성적 욕망에서 해방되었다는 징표다. 신족통이란 하룻밤에 수천리를 갈 수 있다는 축지법이다. 타심통은 상대방의 마음을 읽어 내는 능력이다. 숙명통은 전생을 알 수 있는 능력이고, 천안통은 천리 밖에 있는 사물도 볼 수 있는 능력이다. 천이통은 하늘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능력이다. 이 여섯가지 신통력 가운데 속세의 중생들이 관심을 갖는 가장 중요한 능력이 숙명통이다. 숙명통에 도달하면 흔히 삼생(三生)을 안다고 한다. 전생(前生)·현생(現生)·내생(來生)이 삼생이다. 과거·현재·미래를 알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직접 뵙지는 못했지만 한국 천태종의 개창조인 상월조사(上月祖師·1911~74)는 숙명통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고승이었다고 전해진다. 단양 소백산에서 수도하였으며 소백산 구인사는 바로 상월조사가 세운 절이기도 하다. 상월조사의 여러 가지 도력이 양백지간(兩白之間·소백산과 태백산의 중간)의 도사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박정희 대통령과의 일화다. 1960년대 후반 월남전에 한국군을 파병해야 하는 문제를 두고 박대통령이 고민할 때였다.
미국에서는 파병하라고 압력을 넣고, 막상 파병하자니 나라의 젊은 청춘들을 명분 없는 전쟁터로 몰아넣는 것 같고. 잘못 결정하면 천추의 죄인이 될 수 있었다. 박대통령은 이 문제를 놓고 상당히 번민했다고 한다. 누구에게 상의해야 하나? 최고권력자는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해야만 한다. 박대통령은 많은 도사와 고승들에게 이 문제에 대해 자문을 구하였다. 당시 통도사 극락암에는 선승으로 알려진 경봉 스님이 계셨다. 박대통령은 극락암으로 찾아가 경봉 스님에게 어떻게 해야 되느냐고 물었다. 경봉 스님은 이 이야기를 한참 듣고 나서 주장자로 세번 방바닥을 꽝꽝 치는 것으로 법문을 마쳤다. 과연 선승다운 격외(格外)의 답변이었다.
격외의 도리를 이해할 수 없었던 박대통령은 여러 고승들을 방문하다 마지막으로 천태종의 상월조사를 찾았다. 그때만 해도 천태종의 세가 미미하던 때였다. 박대통령을 만나 이야기를 들은 상월조사는 파병하라고 조언했다. 파병하고 나면 그 뒤에 이렇게 저렇게 상황이 전개될 것이라고 박대통령에게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었다고 한다. 요는 ‘현재 상황에서 파병을 안할 수 없다. 파병한 뒤에는 그 여파로 나라의 발전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설명을 들은 박대통령은 속이 시원했고, 그날부터 두 다리 뻗고 잠을 이룰 수 있었음은 물론이다. 박대통령은 그 예언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헬기를 보내 청와대로 두번이나 상월조사를 초청해 식사를 대접하였다. 국사 대접을 했던 것이다. 미약했던 천태종의 종세가 비약적으로 확장하기 시작한 것은 아마 박대통령과의 만남 이후부터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한국에 인물이 없는 것 같아도 재야에는 숨어 있는 고수들이 웅크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복의 원리 - 규칙적인 반복은 예측을 가능케 한다
점이 70%는 맞는다는 주장의 근거 가운데 하나는 반복의 원리다. 밤과 낮을 보자. 끊임없이 규칙적으로 반복한다. 유사 이래 밤에서 낮으로, 낮에서 밤으로 반복되는 현상이 한번이라도 어긋난 적이 있던가. 밤에서 낮으로 전환되지 않은 경우는 없다. 그러므로 예측할 수 있다. 한번 밤이 오면 다음에는 반드시 낮이 온다는 사실을. 오르막 길이 있으면 내리막 길이 있음을. 규칙적인 자연현상은 예측이 가능하다. 밤낮 다음으로는 사계절 또한 규칙적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은 계속 돌아간다. 봄에서 여름을 거치지 않고 가을로 곧바로 건너뛴 사례는 유사 이래 발견된 적이 없다. 지금이 5월이라면 두달쯤 후에는 반드시 여름이 온다는 사실을 예언할 수 있다. 그 예언은 적중할 것이다.
음양오행이 여기에서 나왔다. 밤과 낮 그리고 사계절의 순환이다. 늦여름에서 초가을 사이, 그러니까 사계절의 가장 중간지점에 토(土)를 배치하였다. 봄은 목(木)이고, 여름은 화(火)이고, 중간은 토, 가을은 금(金), 겨울은 수(水)를 상징한다. 음양오행이란 자연의 규칙적인 반복 현상을 관찰한 결과이고, 이를 이론화함으로써 다가올 일을 예측하는 쪽으로 이용되었다.
자연현상 가운데 사계절 다음으로 반복되는 현상은 12개월이다. 1년은 열두달이다. 1년 동안에는 보름달을 열두번 목격할 수 있다. 보름달이 열한번이거나 열세번인 경우는 관상대가 생긴 이래 관측된 적이 없다. 12라는 반복. 여기에서 자(子), 축(丑), 인(寅), 묘(卯), 진(辰), 사(巳), 오(午), 미(未), 신(申), 유(酉), 술(戌), 해(亥)라고 하는 12지(支)가 발생하였다. 1년만 12달이 아니라 하루 가운데에도 12시간을 배당하였다. 자시, 축시, 인시, 묘시 등이 그렇다. 이를테면 12진법이다. 12지라는 사이클에 동물을 배당한 시기는 서기 2세기경인 왕충(王充)의 ‘논형’(論衡)에서 처음 발견된다. 자는 쥐를 상징하고, 축은 소를 상징하고, 인은 범을, 묘는 토끼를, 진은 용을, 사는 뱀을, 오는 말을, 미는 양을, 신은 원숭이를, 유는 닭을, 술은 개를, 해는 돼지를 상징한다.
12지에 동물을 배당했다는 것은 숫자에 인격성을 부여했음을 뜻한다. 이때부터 숫자는 인격을 가지게 되고, 의미를 지니고, 인간의 구체적인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12지와 운명의 관계를 잘 설명해 주는 예가 ‘당사주’(唐四柱)라고 불리는 운명감정법이다. 당나라때 유행한 사주라고 해서 당사주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는 완벽한 12진법을 사용한다. 자는 귀하다는 의미의 천귀(天貴)에 해당한다. 축은 고생한다는 의미의 천액(天厄), 인은 권력을 잡는다는 천권(天權), 묘는 참을성이 부족한 천파(天破), 진은 꾀가 많은 천간(天奸), 사는 글을 좋아하는 천문(天文), 오는 복이 많다는 천복(天福), 미는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천역(天驛), 신은 외롭다는 천고(天孤), 유는 과격함을 상징하는 천인(天刃), 술은 사교성을 의미하는 천예(天藝), 해는 건강함을 의미하는 천수(天壽)에 배대시켰다.
이를 보는 법은 이렇다. 예를 들어 1960년 음력 5월5일 인시에 태어난 사람이면 태어난 해는 쥐띠인 자에 해당한다. 자는 천귀다. 태어난 해는 귀하다. 다음에는 5월을 보자. 태어난 해인 자에서부터 짚으면 5월에는 천간이 걸린다. 따라서 꾀가 많은 달에 태어났다고 본다. 태어난 날짜인 5일을 천간에서부터 짚어가기 시작하면 신 즉, 천고에 걸린다. 날은 외로운 날에 태어났다. 인시는 천고에서부터 짚어가기 시작한다. 술에서 걸린다.
술은 천예다. 사교성과 감수성, 그리고 예술성이 있는 시에 태어났다. 당사주의 틀에서 이 사람 운명 전체를 보면 태어난 날인 5일만 좋지 않다. 나머지는 다 좋다. 이만하면 전체적으로 좋은 명조라고 판단한다. 오로지 12지만 가지고 생년, 월, 일, 시를 판정하는 당사주 시스템은 간단한 방법이다. 십이지에 십간까지 모두 동원해 보는 육십갑자 시스템의 사주명리학에 비해 그렇다는 말이다. 당사주가 구구단이라면 사주명리학은 인수분해에 비유할 수 있다. 구구단은 인수분해에 비해 정확도와 세밀도는 떨어지지만 쉽다는 장점이 있다. 쉽다는 장점이 대중에게 크게 어필했다.
한자문화권에서 12지는 이처럼 요람에서 무덤까지 일생을 따라다니는 상징이기도 하였다. 태어날 때는 용띠냐 말띠냐에서부터 시작하여 죽고 나면 무덤 둘레에는 12지로 만든 석상을 둘러씌웠으니 말이다. 김유신 장군 묘 둘레를 장식한 호석(護石)들은 12지를 형상화한 것이다. 12지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12지의 유래와 상징을 가장 설득력 있게 정리한 저서가 나가다 히사시(永田久)의 ‘역(曆)과 점(占)의 과학’(東文選, 심우성 역)이라는 책이다. 거기에 보면 다음과 같다.
●子(쥐):갓난아기가 양손을 움직이는 모양. 자(홖:새끼치다)라는 한자와 같은 뜻이며, 초목의 종자가 점점 자라 싹트기 시작하는 상태를 나타낸다. 네즈미잔(鼠算:쥐가 번식하듯 급속도로 불어남을 비유)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쥐는 번식력이 강한 동물이므로 자에 쥐를 배당한 것이다.
●丑(소):본래 뉴(紐)와 같은 의미이며 끈으로 묶는다는 말인데, 초목의 싹이 꽃망울 속에서 단단하게 맺힌 채 충분히 자라지 않은 모습을 나타낸다. 중국에서 우(牛)와 뉴(紐)가 발음상 비슷하기 때문에 소가 축에 적용되었다고 생각된다.
●寅(호랑이):공경하고 경의를 표시하는 상태를 나타내는 말로, 초목이 땅속에서 쭉 성장하여 시기를 기다리는 상태다. 고대 중국인이 공경하며 두려워했던 동물은 백수의 제왕인 호랑이(중국에는 사자가 없었다)였으므로, 호랑이에 인을 배당했다.
●卯(토끼):문짝이 좌우로 열린 형태를 나타내며, 초목이 지면을 밀어젖히고 지상으로 나온 상태를 나타낸다. 글자 형태가 양측으로 열린 토끼의 귀와 비슷하다는 발상에서 묘에 토끼가 결부되었다.
●辰(용):커다란 조개를 손으로 벌리는 형태로 ‘흔들다’와 같은 뜻. 초목이 활력있게 자라는 상태를 나타낸다. 진(辰)이라는 것은 중국에서 큰 별, 안타레스를 가리키는 말이다.이 별은 전갈자리에 있고, 이 전갈의 모양을 하늘에 있는 용으로 생각해 배당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안타레스는 은나라 시대에는 5월을 정하는 척도가 된 가장 중요한 별이었기 때문에, 그것이 하늘에 있는 용의 심장을 나타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巳(뱀):뱀의 모양으로 꾸불꾸불한 모습을 나타낸다. 옛날 글자체에서는 이(已)는 사(巳)였고, 사(巳)에는 ‘멈추다’라는 의미가 있다. 초목의 활동이 극에 달하여 멈춘 상태를 가리킨다. 덧붙여 사(巳)는 이(已:그만두다. 이미. 뿐의 의미)나 기(己:자기 자신, 오행설에서는 토에 속함)와 너무 비슷해 혼동하기 쉽다.
●午(말):나무 목(木)변에 오(午)라고 쓰면 저(杵:절굿공이)의 모양이 되는데, 오는 저의 원래 글자이다. 관통하다 또는 되접어 반대편으로 꺾는다는 의미가 있다. 초목이 왕성한 상태에서 쇠퇴하기 시작하여 되접어 꺾이는 시점을 나타낸다. 오는 호(互)와 같은 음으로, 무리를 부르며 무리지어 생활하는 말에 배당했다.
●未(양):오음(吳音)에서는 미로 읽혔으며, 나뭇가지의 잎이 무성함을 의미하고 초목이 성숙한 상태를 나타낸다. 미의 중국음이 ‘웨이’이므로 양이 우는 소리와 비슷하다는 점에서 미를 양에 적용했다.
●申(원숭이):사람이 올바르게 자란 형태. 번개를 나타내는 모양이기도 하며, 초목이 충분하게 자란 상태를 나타낸다. 원숭이가 번개처럼 손을 뻗치는 행위를 하기 때문에 원숭이가 신에 배당되었다.
●酉(닭):술을 넣는 항아리 모양으로 ‘짜다’는 의미가 있으며, 초목의 숙성한 열매를 항아리에 넣어 쥐어짜는 시절을 나타낸다. 유와 닭이 어떤 이유로 연결되었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생활에서 가장 밀착된 동물로 닭을 배당했을 것이다.
●戌(개):창과 도끼 모양이므로 나무가 벌채되고 초목이 죽어가는 상태를 나타낸다. 농경이 일단락된 시기에 사냥에 개를 사용하기 때문이었으리라고 생각된다.
●亥(돼지):뼈대 모양으로 ‘닫는다’는 의미가 있는데, 초목이 생명을 마감하고 땅속으로 되돌아가는 상태다. 해는 갓 태어난 돼지새끼를 의미하는 시(豕)와 글자 형태가 비슷하다는 점에서 해에서 시로, 그리고 돼지로 연결된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사주명리학은 반복의 원리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주목하고 싶다. 반복의 원리는 밤과 낮, 그리고 사계절, 그 다음에 1년 12달의 주기에서 유래한 12지다. 여기에 한가지 덧붙인다면 10간이다. 갑(甲), 을(乙), 병(丙), 정(丁), 무(戊), 기(己), 경(庚), 신(辛), 임(壬), 계(癸)를 십간(十干)이라고 부른다. 왜 단위가 하필 10인가에 대해서는 정설이 없다. 이유를 정확하게 모른다. 필자가 추측하기로는 오행성과 관련이 있지 않나 싶다. 태양계 행성 중에서 인간의 육안으로 관찰되는 별은 5개다. 수성·금성·화성·목성·토성이 그것이다. 천왕성·혜왕성·명왕성은 육안으로 보이는 별이 아니다. 육안으로 관찰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지구상에 영향을 많이 미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양의 고대 점성술에서도 가장 중시된 별은 해와 달 그리고 이 오행성이었다. 음양오행설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런 맥락에서 천간(天干)의 10이라는 숫자를 생각하면 2(음양)×5(오행성) 해서 10이 나왔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매일 하늘에 떠오르는 달과 해가 절대적으로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독립변수이고 오행성은 그 다음에 영향을 미치는 종속변수로 생각한다면, 독립변수와 종속변수의 결합은 2×5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사주명리학 이론의 1차적 기반은 10간 12지에 있고, 그 다음에 이 10간 12지를 음양오행으로 인수분해한 것에서 모든 해석이 도출된다. 예를 들어 갑은 음양으로는 양에 해당하고, 오행으로는 목에 해당한다. 따라서 갑은 양목(陽木)으로 본다. 양목은 단단하고 커다란 나무로 간주한다. 갑목이 많은 사주는 고집이 세고 지조가 강하다. 여자가 갑목이 많으면 일편단심 민들레의 성격이라서 남편이 죽어 과부가 되어도 재혼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뻣뻣한 나무라서 애교는 적다고 간주한다.
자연현상의 반복되는 주기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사주는 ‘가장 이성적인 점’이라고 정의내릴 수 있다. 점은 점인데 이성적인 점이다. 이성적인 ‘레토릭’을 사용하는 이유는 자연현상의 반복되는 규칙성에 바탕해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반복되는 규칙성을 잘 보여주는 자료가 바로 ‘만세력’(萬歲曆)이라고 하는 달력이다. 만세력은 음양오행을 씨줄로, 십간 십이지를 날줄로 하여 구성된 달력이기도 하다.
한자문화권에서 음양오행, 십간 십이지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것이 풍수도참(風水圖讖)설이다. 도참이란 그림이나 글자를 사용한 예언을 말한다. 이것이 풍수사상과 결부돼 왕조 교체기 또는 정권 교체기마다 단골로 등장하여 민심을 사로잡았다. 텔레비전이나 신문도 없고 여론조사 기관도 없던 고대사회에서는 풍수도참설이 강력한 여론주도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요즘이야 매스컴에 그 역할을 양보하고 말았지만 그 불씨가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다. 풍수도참은 술사들의 세계에서 여전히 그 은밀한 기능을 작동하고 있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우리나라의 풍수도참 사례에 대한 역사적 개괄부터 시작해 보자.
조선시대의 해방신학 ‘정감록’
‘삼국사기’ 의자왕 20년 조를 보면 ‘백제동월륜(百濟同月輪) 신라여월신(新羅如月新)’이라는 도참(圖讖)이 등장한다. ‘백제는 둥그런 보름달이고, 신라는 초승달과 같다’는 뜻이다. 보름달은 꽉 찼으니 이제부터 기운다는 뜻이고, 신라는 초승달이니 지금부터 점차 차오른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백제는 망하고 신라는 떠오른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참구(讖句)이기도 하다. 공식 역사서인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을 정도의 참구이니만큼 당시 사람들에게 이는 단순한 유언비어가 아닌 비중 있는 신탁(神託)으로 여겨지지 않았나 싶다.
신라가 망할 때쯤 등장한 참구는 ‘계림황엽(鷄林黃葉) 곡령청송(鵠嶺靑松)’이라는 구절이다. ‘계림은 누런 잎이요, 곡령은 푸른 솔이다’. 계림은 신라를 가리키는 표현이고 곡령은 개성을 지칭하는 구절이다. 신라는 망하고 고려는 흥한다는 의미다. 이 참구는 나말여초의 전환기를 살다 간 최치원의 작품이라고 전한다. 그런가 하면 고려 초기의 대학자 최승로가 성종에게 올린 보고서에서도 이와 비슷한 참구가 발견된다. ‘금계자멸(金鷄自滅) 병록재흥(丙鹿再興)’이 그것이다.
금계는 김씨의 계림이고, 병록은 려(麗)자의 파자(破字)로써 고려를 지칭한다. 신라는 망하고 고려는 흥기한다는 말이다. 고려 중기에는 ‘십팔자득국’(十八子得國)이라는 참구가 유행했다. 십팔자(十八子)는 이씨(李氏) 성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씨 성을 가진 사람이 나라를 얻는다’는 뜻이 된다. 고려 인종때 난을 일으킨 이자겸(李資謙:?~1126)도 이 참구를 믿고 거사했다고 전한다. ‘십팔자득국’(十八子得國)은 ‘목자득국’(木子得國)으로 변용되기도 하였는데, 이 참구는 고려 중기 이후 말기까지 계속해서 식자층 사이에 회자되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왕(王)씨 왕조인 고려에서는 이씨가 정권을 잡는다는 목자득국의 도참에 대응하기 위해 ‘벌리사’(伐李使)라는 직책의 공무원을 별도로 선발하기도 하였다. 벌리사는 오얏나무(李)를 톱으로 자르는 임무를 수행하는 직책이었다. 남산에 오얏나무를 심어 놓고 벌리사를 시켜 매년 오얏나무를 톱으로 자른 것이다. 이씨가 득세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주술적이고 상징적인 의례였다. 벌리사까지 두면서 오얏나무를 뿌리뽑는 데 심혈을 기울였지만 고려 왕조는 이씨 왕조의 등장을 막지 못하였다. 이성계의 성공은 목자득국의 허무맹랑한 도참이 마침내 현실화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음양오행과 풍수가 관련된 도참을 보면 고려 인종때 묘청의 평양천도 거사가 있다. 개경은 지기(地氣)가 쇠했으니 서경인 평양으로 도읍을 옮겨야 나라가 발전할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그 근거는 평양이 지닌 수덕(水德)이었다. 평양은 수덕이 좋아 동방 목에 해당하는 우리나라에 좋은 작용을 하는 길지라는 논리였다. 수생목(水生木)의 오행논리다. 고려 숙종 때의 술사였던 김위제(金謂?)도 남경인 한양으로의 천도를 주장하였다. 한양은 오덕구(五德丘)가 갖추어진 길지라는 것이었다.
서울의 백악산 모양이 둥그스름해서 토덕에 속하고, 북쪽의 감악(적성)이 구불구불하여 수덕에 속하고, 남쪽에 관악(과천)이 뾰족하여 화덕에 속하고, 동쪽에 남행산(양주)이 있으니 그 모양이 곧아 목덕에 속하고, 서쪽에 북악(부평)이 있으니 네모진 모습이라서 금덕에 속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렇게 놓고 보면 이성계의 한양천도에도 고려 중기부터 논의되어 왔던 술사들의 풍수도참설이 영향을 미쳤던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조선조에 들어 이번에는 정씨가 왕이 된다는 ‘정감록’이 유행하였다. ‘정감록’의 저자는 누구인지 밝혀져 있지 않다. 그러나 출현한 시기가 대략 임진왜란 전후라는 점, 저자가 풍수도참에 해박한 전문가일 것이라는 점, 아마도 성씨가 정씨일 것이라는 점, 새로운 왕조를 세울 정도의 스케일과 야심을 가진 인물이었을 것이라는 점을 종합적으로 감안하면 짚이는 인물이 하나 있다. 기축옥사의 주인공 정여립(鄭汝立:?~1589)이다. ‘천하는 공물’(公物)이라는 ‘예기’(禮記)의 대동사상(大同思想)에 바탕하여 혁명을 꿈꾸었던 인물이 정여립이다.
정여립은 조선 초기 이성계의 장자방 역할을 담당했던 정도전에서 비롯된 정씨 대권설을 보완하고 가다듬어 완결판인 ‘정감록’을 저술하였던 것으로 필자는 추측한다. ‘정감록’은 각종 비결류의 챔피언이었다고나 할까. 조선시대 내내 불온서적으로 취급되었다. 왕실에서는 ‘정감록’이 발견되는 즉시 그 소장자를 쿠데타 혐의로 처벌하고 책자를 불태웠다. 하지만 체제에서 소외된 마지널 지식층들에게는 해방신학이자 구원의 복음서였다. 조선시대의 해방신학이었던 ‘정감록’은 지금까지도 계룡산파와 태백산파, 지리산파를 비롯한 전국의 술사들에게 은밀하게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21세기에 들어섰다고 해서 그 불씨가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다.
정씨가 왕이 된다고 하는 ‘정감록’의 정도령 설은 2002년 대선 주자들에게까지 그 맥이 연결되고 있다. 공식 대선 주자는 아니지만 울산의 정몽준(鄭夢準)씨는 국내의 술사들 사이에 정도령의 환생이 아닌가 하는 기대를 모으고 있다. 술사들의 분석에 의하면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이 굳이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대선에 출마했던 것도 사실은 정도령 신화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정도령의 후광은 아버지에 이어 아들 정몽준씨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다.
올초 대선 주자와 관련된 각종 점괘에서 정씨 성을 가진 사람이 등장할 것이라는 이야기는 바로 정몽준씨를 지칭한 것이다. 문제는 월드컵인데, 한국이 16강에만 들면 정도령 도참설은 현실적인 위력을 발휘할 것으로 사료된다. 월드컵 16강은 600년 역사를 지닌 풍수도참설과 21세기의 현실이 마침내 조우해 장엄한 드라마를 연출하는 기폭제로 작용하기에 충분하다.
풍수도참과 大選 주자들
집권 여당의 대선 주자인 노무현(盧武鉉)씨와 관련된 풍수도참설도 있다. 민주당 광주경선에서 노무현씨가 승리한 이후 그를 주목하는 술사들 사이에 떠돌기 시작한 도참설이다. 그 도참설의 비결적 근거(秘訣的 根據)는 ‘숙신비결’(肅愼秘訣)이라는 비결집이다. 이 비결집에는 ‘임오년(壬午年)에는 문둥이 관상을 지닌 사람이 왕이 된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2002년인 올해는 임오년이다. 올해 대통령은 문둥이 관상을 지닌 사람이 되는데, 대선 주자들 가운데 문둥이 관상을 지닌 사람은 다름아닌 노무현이라는 것이다. 문둥이 관상이란 울퉁불퉁하게 서민적으로 생긴 얼굴을 의미한다.
그러한 관상을 지녔던 역사적인 인물로는 원효대사·임꺽정·대원군을 예로 든다. 이들의 얼굴이 모두 문둥이 관상 비슷했다고 한다. 서민적 풍모를 지녔던 것이고, 대중과 호흡을 같이했던 인물들이기도 하다. 이들의 또 하나 공통점은 육십갑자로 임오년에 이름을 얻거나 득세했다는 점이다. 인명사전을 찾아 육십갑자와 환산해 보니 원효·임꺽정·대원군은 인생의 후반 절정기에 임오년을 통과하였음이 드러났다.
왜 임오년이라는 해에 문둥이 관상인가. 오행으로 따지면 임은 수이고 오는 화다. 수는 음이고 화는 양을 상징하는데, 임오년은 음이 위에 있고 양이 아래에 있는 형국이다. 그동안 억눌렸던 음이 드디어 위로 올라온 형상이다. 64괘로 보면 ‘수화기제’(水火旣濟)에 해당하는 괘로도 풀 수 있다. 밑바닥이 위가 되고 위가 밑바닥으로 변하는 상서로운 상황을 상징하기도 한다. 문둥이 관상이 왕이 된다는 것을 이러한 맥락에서 해석한다. 선천시대에는 이러한 변화가 반란이고 하극상으로 나타났겠지만, 21세기 후천개벽 시대에는 민이 주인이 되는 민주의 시대가 오는 것으로 나타난다는 것이 ‘숙신비결’을 신봉하는 술사들의 해석이다.
한나라당의 대선 후보인 이회창씨를 지지하는 술사들 사이에 유통되는 풍수도참설은 이렇다. 요점은 오행상생론(五行相生論)이다. 수생목(水生木), 목생화(木生火), 화생토(火生土), 토생금(土生金), 금생수(金生水)의 상생(相生) 사이클이 오행상생론이다. 수의 성질을 지닌 왕조 다음에는 목의 성질을 지닌 왕조가 등장하고, 목의 왕조 다음에는 화의 왕조가 등장하고, 화 다음에는 토, 토 다음에는 금이라는 순서를 밟는다는 것이다.
오행상생의 순서에 의한 왕조 교체설은 오랜 역사를 가진 풍수도참설로, 기원전 2세기 중국에서 활동한 사상가인 동중서(董仲舒·BC179~104)에 의해 주장되었다. 이 설은 광범위한 영향을 미쳐왔는데, 우리나라 족보에서 항렬을 지을 때 사용하는 오행 순서도 바로 이 상생론에 기초하고 있다. 예를 들어 쇠금(金) 변이 들어간 진(鎭)자 항렬 다음에는 금생수의 상생법칙을 따라 물수 변이 들어간 영(泳)자를 항렬로 삼을 수 있고, 영자 다음 항렬은 수생목의 법칙을 따라 나무목 변이 들어간 글자인 식(植)자를 쓰는 경우가 그것이다.
이러한 오행상생론에 의할 것 같으면 이승만 대통령은 북방 수에 해당한다. 북쪽 사람이었으니까. 수생목. 수 다음에는 목이다. 목(木)은 동방이고 한반도에서는 경상도에 해당한다. 그래서 이승만 다음에는 경상도에서 정권을 잡았다. 오래 잡은 이유는 경상도를 지나는 태백산맥의 등줄기가 길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목생화. 목 다음에는 화다. 화(火)는 남방이고 전라도가 이에 해당한다. 김대중 대통령은 남방 화의 기운을 받아 대통령이 되었다.
그래서 김대중 대통령 재임시기에 전국에 산불을 비롯한 각종 화재가 유달리 많았다고 본다. 화생토. 화 다음에는 토다. 토는 중앙인데 충청도가 해당한다. 충청도는 영남과 호남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는 지정학적 이점이 있다. 균형감각은 토가 지닌 미덕이다. 이회창씨의 정치적 연고는 현재 충청도다. 따라서 충청도 사람인 이회창이 정권을 잡으면 토가 지닌 균형감각을 발휘해 영호남 중간에서 균형을 잡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정몽준의 ‘정감록’, 노무현의 ‘숙신비결’, 이회창의 ‘오행상생론’. 이 가운데 과연 어느 도참설이 최종 승리하여 대권을 잡을 것인가. 참고로 70년에는 ‘금극목’(金克木) 도참설이 승리한 바 있다. 한국은 그 위치가 동쪽의 목에 해당하는 나라이므로 청와대에 김씨 성을 가진 사람이 들어가면 안된다는 내용이 금극목 도참이다. 금은 목을 때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대중이 정권을 잡으면 금극목이 되므로 절대 안되고, 박씨인 박정희가 정권을 잡아야 한다는 도참을 술사들을 통해 일반에 유포시키기도 했다.
만약 3공화국 시대에 필자가 이같은 풍수도참설을 지면에 소개했다면 남산 지하실에 초대받아 상당한 고초를 겪어야만 했을 것이다. 조선시대였다면 역적모의 혐의로 당장 체포되었을 것이다. 지금은 언론자유의 시대라서 자유를 만끽하는 셈이다. 일제 때에도 비결파들은 요주의 인물로 간주되어 일본 경찰의 특별 단속 대상이었다. 비결파들이 공통적으로 반일(反日)적 성향을 가지고 있었던 탓이다. 일제는 전국의 비결집들을 수집하여 소각하곤 하였다. 필자가 소장하고 있는 ‘조선비결전집’(朝鮮秘訣全集)은 조선총독부 경찰국에서 전국 수십종의 비결집을 수집해 필사한 것이다. 물론 대외비로 취급되던 비밀문건이었다.
이를 보면서 느낀 소감은 점은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 비결은 음양오행과 육십갑자라는 반복적 원리에 바탕한 풍수도참이기 때문이다. 그 비결들이 2002년 대선 주자들을 바라보는 술사들의 판단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으니 말이다. 이러한 풍수도참의 유행을 꼭 부정적 시각에서만 바라볼 필요는 없다. 재미로 보는 것이지 누가 얼마나 믿겠는가. 최종 결정은 여론조사에서 결판난다. 사람이 하늘이고, 민심이 천심이다. 그러므로 하늘의 뜻은 민심의 동향에 달렸다. 민심의 동향은 점이나 풍수도참 비결집이 아닌 여론조사가 담당한다.
여론조사 작업이야말로 하늘의 뜻을 전달하는 새천년의 신탁업(神託業)이라는 생각이 든다. 점의 원리를 탐구하다 보니 반복의 원리에 주목하게 되었고, 반복의 원리를 추적하다 보니 음양오행과 십간 십이지를 검토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풍수도참까지 내려와 대선 주자들까지 훑어 보게 되었다. 대통령 선출은 국민적 축제이고, 축제의 본질은 국민의 스트레스를 해소해 주는 거대한 엔터테인먼트이기도 하다. 각본 없는 엔터테인먼트로 대선을 감상할 필요도 있다. 월드컵보다 더 흥미로운 2002년 대선을 감상할 풍수도참을 대입하면 한층 즐거움이 배가될 것이다. 그 즐거움이 이 글을 쓰는 목적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