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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그리고 6펜스
작가 의도
서머셋 몸의 대표적인 작품인 달과 6펜스를 주제로 달이라는 정신적인 것과 6펜스라는 물질적인 내용으로 어느 현대인의 일상과 그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사건들을 주제로 하였다. 무겁지만 시간이라는 존재를 알려주는 달과 물질만능주의에서 꼭 필요한 6펜스를 우리가 발견하지 못하는 인생의 주제로 한 현대인이 발견함으로써 현대사회의 역설적인 삶을 그려내는 내용이다.
등장인물 설명
나(최영준) - (남/36세) 어느 대기업의 대리이었으나, 어느 날 우연치 안게 부장이라는 무거운 직책을 맡게 되지만, 왠지 모르게 맡겨진 직책이 너무나 가볍게 느껴져 삶의 회의를 느끼게 된다. 어느 날 술집에서 만난 카린(유진)과 만나게 되어 달과 6펜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카린(본명 최유진) - (여/35세) 일류 관광 가이드에서 일하는 관광가이드이다. 우연치 않게 술집에서 영준을 만나서 달과 6펜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김미해 - (여/36세) 영준의 아내이자 미연과는 같은 고등학교 동기생이다. 나(영준)와는 반이 달랐지만 미연의 소개로 결혼하게 되었다. 현재 고등학교 영어선생님을 하고 있다.
윤명호 - (남/29세) 영준과 같은 회사의 회사원이며 말단대리이다. 항상 영준의 불만을 들어주는 사람으로서 따듯한 인간성을 가져다준다.
김 대리 - (남/27세) 회사에서 항상 놀림거리의 대상이다. 나(영준)의 승진이 자신의 공이라고 떠벌리는 한심한 사람이다.
사장 - (남/49세) 나(영준)의 회사의 사장이다.
미스 리 - (여/27세) 회사에서는 약방의 감초 같은 역할이다.
택시 기사 - (남/38세) 유명한 택시기사이다.
최기준 - (남/25세) 나(영준)의 큰아들이다. 현재 외국 기업의 대리이다.
바텐더 - (남/29세) 이덴 홀의 바텐더이다.
어느 소녀 - (여/16세) 빗속에서 만난 소녀이다.
* 독백이 들어가는 부분은 말하는 자의 속마음이다.
(멀리서 잔잔히 들리는 듯한 괘종시계 소리) 댕! 댕! 댕!
나(영준의 독백, 언제나 매일 들었다는 듯) 자정을 알리는 소리. 저 너머 낡아빠진 괘종시계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는 듣기만 해도 거북하다. 언제부터였는지 시간을 알려주는 괘종시계의 처렁한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나의 내면적인 인간의 정체성이 처참히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댕! 댕! 댕!. 역시 괘종시계는 계속해서 거북한 소리만을 울려대고 있다. 그리고...
(장소전환 조용한 사무실에서 시끌벅적한 사무실로)
미스 리(깨우듯이) 최 과장님. 사장님이 부르시는데요.
나(영준의 독백) 잠깐 딴 생각에 젖어있었던 나는 옆에 미스 리가 부르는 소리에 깜짝 놀라서 의자에서 넘어질 뻔하였다. 그러기도 그럴 것이 난대 없이 사장의 호출이라서 그런지 더욱더 내심 초조함을 숨길수가 없었다.
나(미안하다는 눈치를 보이듯) 아, 고마워요 미스 리. 미스 리에게 사과를 하고 내가 간 곳은.
(조용한 사장실로 전환)
사장(나를 보면서) 최 과장, 오늘부터 자네를 인사부에서 기획부로 가주어야겠네. 뭐 좌천은 아니지만 자네만큼 멋들어지게 일하는 부장은 우리 회사에 없지 않는가? 뭐 봉급이야 몇 백정도 올려주겠지만 말이야.
나(영준의 독백, 의심하듯이) 사장의 솔깃한 제의. 사실 따지고 보단 작은 함정의 유혹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럴걸 따지지 않고 그저 어제나 오늘 그리고 비슷하게 일하는 나의 일상이 빗겨나가는 일탈의 삶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장(들어보라면서 말한다) 뭐, 최 부장의 성격이 기획부에서 얼마만큼의 성과를 발휘하는 하에 달려있겠지만 말야. 안 그런가? 미래의 사장님? 하하하.
나(영준의 독백) 썩어빠진 미소, 낡아빠진 사고방식. 그것들이 인간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는 이 사장실에서 넘쳐 나고 있었다. 부장. 그저 인사부 과장에서 기획부의 과장인줄 알았는데 웬걸 좌천이라고 생각한 것이 부장이라는 새로운 선물을 낳고 말았다.
(어수선하고 시끄러운 고기 집 소리)
김 대리(처량한 신세타령을 하면서) 아, 오늘 새로 오신 우리 최 과장님, 아니 최 부장님을 위하여! 그리고 불쌍한 기획부를 위하여!
나(영준의 독백) 넘쳐 나는 술잔에서 한날 종이 쪽지를 발견하는 식의 작은 환영회. 무르익는 과실의 의미를 알려주듯 밭에서 고기가 익어간다. (고기가 타 들어가는 소리) 그리고 타들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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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영준의 독백, 쓴웃음을 지으면서) 벌써 취한 김 대리는 취중에도 정말 나에게 멋들어지게 말하고 있었다. 나 역시 그 말이 전부 들리지는 않았다. 미스 리(잔소리 타령으로) 으이구. 아무튼 김 대리는 취하면 완전히 백안시가 된다니까 하하하. (멀리서 들리는 듯한 미스 리의 웃음소리) 부장님 원래 김 대리가 그런 사람은 아닌데요, 술만 들어가면 저렇게 백안시 상태로 돌입해서 아예 취중모드로도 까지 번지는 사람이라서, 게다가 회사에서 가장 돌림을 많이 받거든요. 그래서 아마 술이 좀 약하거든요.
나(영준의 독백) 돌림. 소위 따라고 불리는 것인데, 욕을 바가지로 먹거나 잔소리를 많이 받는 사람들의 총칭이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은 이해를 해도 윗분들이 이해를 하지 않는다.
나(이해한다는 듯이) 뭐, 그렇다면 김 대리의 기분을 조금 알겠네. 아무튼 뭐 오늘은 내 승진인지 좌천인지 뭔지 하는 것 때문에 다들 귀중한 시간을 낭비했으니 나도 뭐 이 아까운 시간을 허비할 수 없지 않는가? 그래서 1차는 내가 내고 2차는 각자 돈 모아서 노래방이나 가는 게 어때?
나(영준의 독백) 다들 좋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 지갑 속의 찰랑이는 금속성의 물체들은 여유를 부리듯 짤랑거리고 있었다. 문득 이런 소리를 듣고 자니 고등학교 시절 잠시 여유가 생겨서 읽었던 외국문학 중에서 달과 6펜스의 한 구 절이 떠올랐다.
(책 구절을 읽는 사내 목소리)자다가 깨어, 유리창을 뚫고 들어온 서늘한 달빛을 온몸으로 맞을 때, 차고 기울어지기를 반복하는, 늘 죽어가고 그럼으로써 다시 태어나는 달을 떠올릴 때, 그것은 신비한 여신이고 영원불멸한 꿈일 것이다. 그런 달밤, 알 수 없는 무언가에 대한 그리움 가득한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쭉 뻗은 길을 달리게 될 수도 있겠다.
나(영준의 독백)나에게 진한 인상을 남겼던 찰스 스트릭랜드에게 강한 조의를 표했던 나는 지금까지 그가 그 뒤로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내심 궁금했지만 세월이 지나고 나서 그의 소식을 자세히 나마 알게되었다. 2차까지 간 우리는 결국 김 대리의 취기 때문에 자리를 피할 수밖에 없었다. 500만원. 첫 월급도 아니지만 사장이 주던 봉투에는 100만원 수표가 6장이나 들어있었다. 회식으로 100원 가까이 되는 돈을 쓰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무척이나 가벼웠다. 이런 마음으로는 택시기사에게 팁으로 10만원을 줘도 아깝지 않았다. 솔직히 아내에 대한 미안함도 있지만 아내는 그다지 돈에 대해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자신의 수입과 내 수입을 합쳐도 5식구가 살기에는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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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이번에 Y대에 입학한 둘째가 외국 기업에 좋은 자리로 스카웃이 되었기 때문에 우리 수입은 더 좋아졌다. 19살 때 외국에 유학을 보내줬더니 22살에 기업에 대리가 되었고 지금은 나보다 더 높은 사장이라는 벼슬자리에 올라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 와서 알게되었는데 내가 갑자기 부장이 된 이유가 아들 녀석이 우리 회사와 거래를 했는데 거래내용과 나와 아들녀석의 사이를 안 사장이 나에게 부장이라는 선물을 하사한 것이다.
(택시 안)
택시 기사(물어보듯이) 손님, 아까부터 좋으신 표정을 지으시던데 무슨 좋은 일 있으세요?
나(영준, 대답하고 싶은 듯이) 아뇨, 그저 그냥 달을 보고자 하니 왠지 모르게 회의가 들어서 말이죠. 그나저나 기사님, 기사님은 어느 때 가장 인생의 삶을 느끼시나요?
나(영준의 독백) 나도 모르게 철학적인 인용을 써가며 한 말이 기사에게 전달되었다.
택시 기사(다시 대답하는 식으로) 그래도 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직업에 충실하고, 또, 이거 팔불출이라고 불릴지는 모르지만 제 자식이 이번에 S대에 들어갔거든요 그것도 수석으로 말이죠
나(영준의 독백) 기사가 하는 말은 대략 이러했다. 어려서 가난을 등지고 살았던 자신의 부모를 절대로 고생시키지 않기 위해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운전면허를 따서 개인택시를 몰았는데, 우연치 않게 자신이 태운 손님 중에 현상금이 걸린 강도를 태웠다는 것이다. 세금을 때고 남은 현상금만 해도 2억이 넘었다. 알고 보니 그 녀석은 연쇄살인 및 거액의 세금횡령과 사기 그리고 은행을 털어서 자그마치 200억을 훔친 엄청난 강도였었다. 하지만 그는 2억을 모두 자신의 모교에 기증하였고, 사회에 커다란 센세이션을 일으켜서 그를 찾는 손님들로 그의 택시는 항상 만원이었다. 그 덕에 자신의 반려자를 만나 결혼도 하고 지금은 좋은 직장에 다니면서 남편의 일을 돕고있다고 했다. 아들녀석 역시 아버지의 성격을 물려받아서 초등학교 때부터 착하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했고, 혼자 독학으로 검정고시를 봐서 결국에는 S대를 수석으로 입학했다고.
택시 기사(회상하듯이) 뭐, 그리 자랑할 이야기는 아니지만 손님께서 왠지 우울하시고 기분이 좋아 보이시지 않으셔서 그냥 한 이야기인데 손님께서 이야기에 흥미를 가지셔서 저도 모르게 그만...
나(영준의 독백) 그가 부럽다. 속으로 나는 조용히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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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영준) 택시를 타고 집에 가면서 왠지 모를 깊은 생각에 계속 사로잡혔다. 달이 날 따라온다라는 말도 되지 않은. 어렸을 때, 들판에 누워 달을 보고자면 왠지 모를 두려움과 황홀함에 사로잡혀 생각지도 못한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긴 해도 언제 알게 된 건지 모르지만 달이 나를 따라오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자전하여 내가 생각하는 자유로운 현상, 아니, 미스테리한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을 어렴풋하게 하고 알아내었다. 바이올린 소리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섬세하고 내면적인 소리.
나(영준, 궁금하다는 듯) 무슨 곡이죠?
나(영준의 독백) 내가 물었다.
택시 기사(친절하게) 글루미 선데이라는 영화 보셨죠? 아들녀석이 듣기 좋다고 해서 가져다 줬는데, 웬걸 듣기가 좋더군요. 선생님은 어떠세요?
나(영준의 독백) 내가 선생으로 불리는 것은 조금 부담이 들었지만 내가 무언가를 전달해주는 듯한 강한 마력 같은 것이 나에게 전달되고 있었다. 창문가로 이슬이 맺힌다. 그 이슬이 점점 강해져서 굵은 하모니를 연주한다. 마치 오케스트라처럼...
택시 기사(즐거운 듯이)뭐, 듣다보면 좋아지겠지만 말이죠...어 이런...(좋지 않은 표정으로 말하듯)손님, 이거 너무 비가 와서 앞이 안보인데요, 이거 원, 잠시 휴게소에 들릴까요?(비가 슬슬 내리기 시작한다)
나(영준의 독백)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 휴게소였다.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우연치 않게 만나게 된 강한 스콜은 결국 휴게소에서의 짧고도 긴 안식을 가져다 주었다. 내 앞에서 쓴 냄새가 난다.(비 소리가 더 강하게 들린다) 기사의 커피 잔을 받아든 나는 창문 가 근처에서 서성거리며 음미하였다. 에스프레스 인줄 알았는데, 웬걸 진하게 탄 카푸치노였다. 얼마나 달달 볶았으면 내 위를 타들어 가는 듯한 진하고 쓰디쓴 맛이 내 위벽을 타들어 갔다. 비는 그칠 줄을 모르는 우는 아이처럼 계속해서 내리고 있었다.
택시기사(커피를 주면서) 비가 계속 내리다가는 이거 선생님의 일정에 지장이 생기지 않나 싶습니다만, 이거 너무 내리는군요.
나(영준의 독백) 그랬다. 나에게 원한이 존재한다는 듯이 힘차게 내리고 있었다. 나를 저주하듯이 말이다. 2시간 동안의 정적 속에서 언젠가 읽었던 소설 중에 자꾸 내 머릿속에서 맴도는 듯한 인상을 남기는 책이 어설프게 보여지고 이네 다른 생각으로 머리는 가득 차기 시작했다. (책 구절을 읽는 사내 목소리)필요이상의 간섭이 나에게는 충분한 인상을 심어주었고, 거리를 걷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우산이 아니라 관심이라는 것을 말이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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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어서 말을 거는 것처럼 나는 항상 조용하고 정적한 곳에서 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는 한다. 하지만 답하지 않는다. 답 자체가 나에게는 진실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비는 계속 내린다.
(장소는 나(영준)의 집 마루)
아내(미해, 걱정하는 말투로) 늦으셨네요. 세상에나 비를 얼마나 맞으셨으면 옷이 이렇게 되요?
나(영준의 독백)아내의 무서운 잔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집에 귀환하였다. 다행이 비는 2시간만에 멈추었지만 오는 길에 다시 그 스콜을 만나고 말았다. 조금 맞은 것을 아내는 대수롭지 않다는 둥 시큰둥하게 처다 보면서 내가 무슨 철부지 같은 어린애인줄 안다.
나(미안하다는 듯이) 미안해요, 오늘 승진 회식을 하고 오는 길에 오랜만에 늙은 신사를 만나서 이렇게 되었어.
나(영준의 독백) 나는 말이 될만한 변명을 아내에게 털어놓았다.
아내(미진, 뭔가 눈치챈 듯이) 보나 마다 우산을 챙겨갔다가 비를 맞고 있는 사람에게 주었겠죠, 안 그래요?
나(영준의 독백) 내의 말 한마디가 나에게는 항상 알리바이가 깨진 범인처럼 되게 하는 힘이 담겨져 있다. 작은 소녀가 빗속에서 춤을 추는 것을 본 나는 같이 춤을 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름다운 극장에서 춤을 추어야 하는 소녀가 왜 빗속에서 춤을 추냐고 물었더니,
어느 소녀(당연하다는 듯이) 그야, 비를 맞으면서 자연의 정화된 한 인간으로서 비를 맞으면서 자연의 이치를 알게 되는 거지요.
우산을 넘겨준 나는 그대로 그 소녀를 잊어버리고 집에 온 것이다. 하지만 이내 미소를 보이면서 아내는 나의 가볍게 젖은 묵직한 양복을 걸어주었다. 아내(미해 궁금하다는 듯) 당신, 요새 기분 좋은 일 있어요? 얼굴에 뭔가가 써있는 것 같은데,
나(영준의 독백) 아내의 날카로운 지적에 나는 어디에다가 얼굴을 두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긋이 비추었다. 장난기 있는 행동으로 나는 아내에게 봉투를 보이면서 쓴 미소를 조심스럽게 감추었다. 그 책을 읽고 나서 나에게 남는 것은 허망함과 무의식적인 삶의 절망감을 가져다 줄 거라고 믿었지만, 나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왜일까?
아내(다시는 그러지 말라는 듯이) 이제는 우산을 2개정도 가지고 다니세요. 네? 그래야 아리따운 소녀에게도 우산을 씌워주고, 당신도 우산을 쓰고 그 소녀의 춤을 불수 있을 거 아니에요?
-5-
(장소는 어느 조용한 카페 안)
나(영준의 독백)
오늘따라 창밖에는 비가 수북히 내린다.
벌써부터 작은 합창곡이 울려 퍼지면
그 세 봄이 왔다는 소식에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창문너머로 보이는 세상 속에서 나 자신에게
전혀 보이지 않았던 무기력함과 나약함 그리고
오만한 작은 인간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첫 대면에서부터 끝 대면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과의 이별과 만남이 나에게는
작은 행복과 미소가 되었으며
헤어짐에 있어 작은 슬픔이 되었다.
아직도 창밖에는 비가 내린다.
나의 진혼곡을 울려주듯이 비가 내린다.
우울한 기분을 좀 더 환하게 내려주는 비가
내 인생에서의 전환점을 맞게 해준다.
반환점에서 보여 지는 나의 작은 꿈이
저 창밖에는 작은 슬픔으로 보인다.
행여 작아질 가봐 창문너머로 가까이
당기고는 싶지만 행여 무너질까
걱정하여 내심 두려움을 표현하였다.
저 멀리 보이는 수평선사이위로
나의 미래와 긍지가 보일 때
나의 모든 것이 끝났구나 하고 생각할 때가 많다.
저 구만리 넓은 세상을 훨훨 날수 있는
새가 되어 세상에서의 참다운 인생을 발견하고싶다.
새가 되어 날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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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영준의 독백) 카페에서 시를 생각한 후, 서머셋 몸의 작품 '달과 6펜스'. 달에 대한 존재, 6펜스라는 작은 동전의 허무감이 치솟는 갈망하고 허덕이는 정신적, 아니 영혼이 타 들어가는 듯한 아픔에 시달리게 했다. 그래서 더욱더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영 이상했다. 시에 대해서 알지 못했던 내가 시를 생각해 내다니 말이다.
(문을 열면서 안방으로 들어간다)아내(미해, 알고 있냐는 듯)당신 그것보다 아세요? 당신이 집에 들어오기 몇 시간 전에 미국에 큰아들녀석한테 전화가 왔는데, 글세 당신이 근무하는 회사와 큰 거래를 성공적으로 이루었다면서 당신한테 안부 전해달라고 하던데 당신 전화 해봐야 하지 않아요?
나(영준의 독백)그랬다. 녀석의 노력으로 나는 부장자리를 얻은 셈이다. 아들녀석이 우리 사장과 이야기 중에 내 이야기를 꺼냈는지, 결국에는 나한테 이런 자리를 준 것이다. 아들의 선물치고는 매우 큰 것 이였으므로 아들의 대한 신뢰감을 들 수 있었다. 원래부터 뭔가에 빠지면 그것에 몰두해서 밥조차 잊어가며 몰두하던 녀석이라서 그런지, 유학에 가서 큰일을 벌리더니, 결국에는 외국 대기업에 당당하게 입사하였다. 왠지 모를 두려움이 나에게 엄습해왔다. 하지만 이내, 단 한 통의 전화로 그 두려움이라는 녀석은 사리 지고 말았다.
(전화하면서 하는 목소리로) 큰아들(기준) 아버지, 접니다 큰아들 기준이요. 자세한 소식은 어머님께 들었으리라 믿고 간단하게 말씀드립니다. 한달 뒤에 회사 일로 귀국하니까요, 부모님과 오랜만에 외식이라도 하는 게 낳을 듯 해서 안부 겸 전화 드렸습니다. 그럼 귀국하고 뵙겠습니다.
나(영준의 독백) 다행이다. 나의 머리에서는 그렇게 입력되고 있었다. 오랜만의 아들녀석의 안부전화를 다행으로 여긴 나 자신에 대해서 매우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왜 그랬을까? 행여나 나에게 있어서 잘못된 이정표가 주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아니면, 주어진 시간 속에서 나에게 존재하는 이정표의 대한 어그러짐의 조짐이 보였기에 두려움이 느껴진 것인가?
아내(미해, 알고있냐는 듯에 말투로) 당신, 이번에 고등학교 동창회 한다는 것은 알고있죠? 당신 출장 후에 계속 얼굴을 안 비추었잖아요? 그래서 이번에는 꼭 왔으면 해요. 뭐, 회사 일로 바쁘다면 어쩔 수 없지요. 바쁘면 당신 이번에도 역시...
나(알겠다는 듯이) 아니야. 시간 내서 꼭 갈게. 동창회에서 내가 가장 유명인사로서 불리는데, 이번에 친구들 얼굴도 보고 학교도 한번 봐야지. 선생님도 뵙고...옛날 도서관에도 가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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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는 조용하게 들려오는 바이올린의 소리가 들리는 바 이덴 홀)
바텐더(부드러운 억양) 어서 오십시오 손님,
나(영준의 독백) 이번에도 역시. 자꾸만 내 머릿속에서 어떤 책의 존재가 허물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하얀 탈지면처럼 이내 사라지는 존재를 들었을 때, 어디선가 나긋하게 들려오는 목소리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
바텐더(나긋하게 말하듯) 바텐더의 의미를 알고 계십니까?
나(영준의 독백) 그가 말했다. 해답 없는 듯한 질문에 나는 어쩔 도리를 못하고 그저 멍하게 바텐더를 바라보았다.
나(궁금하다는 듯이) 의미?
바텐더(대답하듯이) 바는 쉴 나무, 그리고 부드러움의 텐더, 합쳐서 부드러운 나무그늘이란 뜻입니다. 이 나무가 바, 이것만으론 평범한 술상일 뿐입니다. 하지만 거기에 바텐더가 있음으로 바에 텐더, 부드러움이 생겨나지요.
나(이제야 알겠다는 듯이) 그것이 바텐더인가? 신의 글라스를 만들어 낸다는 당신에게 무언가를 얻은 듯 하네.
바텐더(죄송스럽다는 듯이) 아닙니다. 당신의 칵테일은 무엇으로 하시겠습니까?
나(영준의 독백) 신의 글라스라 불리 우는 이 사내의 말처럼 오랜만에 부드럽게 술잔을 기울일 수 있었다.
카린(눈치를 보면서) 저기요, 혹시 혼자이세요? 외로이 혼자 마시는 술잔이라면 함께 마시는 것이 오히려 고독에 좋다고들 하죠?
나(궁금해하면서) 글세요, 혼자 우연치 안게 마시다가 왠지 모를 여성에게 마음을 빼앗겨서 마치, 사이랜의 목소리를 들은 사람들이 사이랜의 밥이 되는 것처럼, 고르곤의 얼굴을 보면 돌로 변해서 이 세상과의 이별을 하게 되는 아픔처럼, 고독이 나에게 가장 무서운 감정이겠죠?
카린(조금은 어색하게) 카린이라고 해요. 뭐, 외국이름이라고 불리지만 저의 필명이죠. 본명은 유진. 하지만 카린이라고 불러주세요. 저에게는 카린이라는 이름이 더 어울리거든요. 바로 이 칵테일에
나(영준의 독백) 글라스 호퍼. 비중이 다른 재료들을 섞기지 않게 쌓아올리는 방법으로 만들어지는 푸스카페 스타일인 글라스 호퍼. 형형색색의 칵테일이 나를 부르는 듯 하였다.
나(바텐더에게 말하듯) 여기 칵테일에 견줄만한 칵테일 하나 부탁하네. 자네라면 나의 칵테일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바텐더(알겠다는 듯이) 예. 그럼 마티니를.
나(영준의 독백) 바 이덴 홀에서의 전주곡을 시작으로 나에게 새로운 만남이라는 동기가 부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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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린(영준이 가지고 있는 책을 보면서) 그 책은 어디선가 많이 본 책 같은데요, 제목이...
나(답하듯이) 달과 6펜스. 서머셋 몸의 대표적인 작품이죠. 소싯적에 읽었던 책인데 지금까지 선명하게 남아있더군요.
나(영준의 독백) 그랬다. 내 주머니에서 짤랑거리는 금속성 소리가 주머니 속에서 적막한 공기 중으로 튀어나온다면? 그것이 몇 개의, 달과 같은 은백색의 둥근 동전들 때문이라면? 그리고 달을 향해 난 길에 멈춰 서서 등뒤로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의 존재를 의식하게 된다면? 그래도 이륙을 믿고 뛸 것인가, 아니면 그림자에 묶여있는 현실에서 잡을 수 있는 달이란 6펜스임을 인정할 것인가? 정신과 육체가 뚜렷하게 대비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서머셋 몸이 이 책 곳곳에서 내레이터의 입을 빌어 말하듯, 인간의 삶이란 미묘하고 모순된 것이었다. 그가 찰스 스트릭랜드의 이야기를 하면서, 단순히, 일상이란 무의미하고 뜨거운 정열과 모험이 있는 삶만이 가치 있다고 말하려고 했을 것인가? 오히려 일상 속에서, 무의미한 것을 의미 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 삶에 이끌리지 말고 그것을 이끌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한 예술가의 삶을 통해서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하는 의문이 들었을 때가 있었다.
카린(왠지 모를 듯이) 그렇다면 당신은 그 책에 대해서 무언가를 생각중인데, 자꾸만 잊어먹는다는 거죠?
나(당연하다는 듯이) 그렇다고 할 수 있겠죠. 완전하게 잊어 먹는 것은 아니지만, 생각날 듯 하면 사라지고, 없어지려고 노력 할 때는 생각이 절도 나는...그래요. 하얀 탈지면처럼 사라졌다가 없어졌다가 하는 것처럼 말이죠.
카린(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듯이) 그렇다면 책의 줄거리는?
나(글세...하는 듯에 표현으로) 기억에 남을 정도로 읽었던 책이라서 자세히 기억에 나겠지만, 역시 매우 자세히는 힘들어요. 인간의 한계가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더욱더 힘들죠.
카린(자연스럽게 말하듯이) 늙어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젊다는 것을 자랑하지 말며, 항상 살아있음을 감사하며, 누구를 대할 때든 항상 마지막인 듯 대하는 진지한 자세로 살라.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결코 많지 않다. 그동안 우리는 끊임없이 사랑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사랑이 없으면 멸망하리라. 누군가가 말했던 귀중한 말이 떠오르네요. 혹시 이런 내용을 듣기 위해서 이런 아기자기한 바에 있는 저에게 그 소설의 내용을 들려주실 수 있다면...
나(영준의 독백) 결국 이야기는 시작하였다. 나만의 조용하고 슬픈 이야기가 담긴 그 소설의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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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는 다시 회사로)
윤명호(나(영준)에게) 선배님. 아니, 부장님. 오늘 시간 있으세요?
나(영준의 독백) 누군가의 목소리. 익숙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오늘따라 이상하게 나에게 영 시원치 안게 들리는 목소리로 착각했다. 그래서 그런지 왠지 허전하고 지루하게 보이고는 했다.
나(미안하다는 듯이) 아 미안, 김 대리. 요새 영 정신을 한곳에 집중하느라고 무슨 일 있어?
윤명호(아니라는 듯이) 아니요. 다름이 아니라 부장님하고 잠깐 동안의 상담이 필요해서요.
나(무슨 말이냐 듯이) 무슨...상담?
윤명호(말을 계속 이어나가는 듯이) 어느 책에 대해서 말이죠. 그 책에 대해서 부장님과 같이 상담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 말이죠. 그 책이 말이죠...
나(영준의 독백) 모든 인간의 삶이 예술작품이 될 수는 없을까? 어째서 램프나 집은 예술의 대상이 될 수 있고 우리의 삶은 안 된다는 말인가. 어느 누군가 말했던가. 푸코의 존재의 미학을 떠올리며, 욕망을 경멸하고 분노하기를 꿈꾼다라고. 그리고 끝내는 그것과 화해할 수 있기를 꿈꾼다라고. 나는 무엇을 통해서,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에게 의미 있는 세계를 창조할 것인가? 그랬다. 달과 6펜스. 달이라는 정신적인 세계관과 6펜스라는 물질적인 세계관이 달랐기에 나는 하염없이 그리워했고, 나중에야 비로소 참다운 삶의 존재성을 인식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장소는 바 이덴 홀로)
윤명호(말에 무언가를 넣어서 말하듯) 그 책 말이에요. 달과 6펜스. 어제 책방에서 우연치 안게 발견했는데요, 아니 글세 부장님의 이름이 적혀 있어서 부장님에게 가져다 드리려고 이런 곳까지 모셔 온 겁니다.
나(조용하게 놀라면서) 그랬었군. 오랜만에 이것을 보니 감회가 새로운걸.
바텐더(나(영준)에게 인사를 하면서) 어서 오십시오. 오늘은 어떤 칵테일을 준비해드릴까요?
나(영준의 독백) 어떤 칵테일이 나올까? 강한 마티니가 나와서 나의 위벽을 모조리 무너뜨릴 것인가? 아니면 짓궂은 손님에 의해서 모조리 섞인 푸스카페 스타일의 글라스 호퍼가 나올 것인가? 아니면 이 맛도 저 맛도 아닌 그저 씁쓸한 와인이 나올 것인가? 사랑이라는 것도 칵테일이라는 것도 결국은 인간을 구속하기에 과감히 버려야 하고, 인간은 모든 욕망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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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텐더(술잔을 내놓으면서) 오늘은...왠지 좀처럼 갈피를 좀 잡지 못하는 듯 하네요. 무슨 일이라도?
나(처음 보는 듯 하는 표정으로) 아니요. 그냥 얻지 못하는 것을 얻게 되니, 판도라의 상자를 건드린 듯 같아서.
바텐더(눈치를 알아챈 듯이) 판도라의 상자라...제우스가 인간의 모든 죄악과 재앙을 넣어 판도라에게 주었다는 상자...
나(영준의 독백) 그랬다. 판도라가 호기심으로 상자를 열자 모든 재앙이 쏟아져 나왔으나 희망만은 그 속에 남아 있었다고 하는 무서운 재앙. 고대 그리스에서는 물건을 보관할 때 상자보다 항아리를 더 애용했다. 양손잡이가 달리고 뚜껑을 덮게끔 되어있는 암포라는 포도주나 올리브기름처럼 귀한 것을 저장하는 용기로써 그 표면에는 신화의 주요 장면을 장식하곤 했다. 따라서 그리스 식 저장이라면 암포라에 불행과 희망을 넣어두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자가 등장한 이유는 저장보다는 감춤이라는 속성에 있는 듯 싶었다. 상자는 누군가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은 비밀스런 물건이나 보물을 넣어두는 물체이므로, 다른 사람이 몰래 연다는 것은 그 소유자에게 불행한 일임에 틀림없었다. 그렇게 볼 때 상자는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이고, 그걸 열어보는 것은 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일이었다. 판도라 상자는 신에 대한 존재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자세가 행복임을 일러주고 있는 것이다. 그걸 열거나 열지 않거나 하는 것은 개개인의 자유이지만 말이다.
바텐더(나(영준)에 대답에 이어서) 그렇다면 당신만의 판도라의 상자가 있다는 것이군요.
나(그렇다는 듯이) 있다면 불행한 존재성을 가진 존재이겠지요.
나(영준의 독백) 하지만 난 전혀 그런 것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것에 관심을 가져야만 했다.
(장소는 비가 내리는 포장마차 안)
카린(오랜만이라는 듯이) 이런 곳에 오는 것도 운치가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나(그렇다는 듯이) 아마 그렇겠죠?
카린(궁금증이 있다는 듯이) 제가 드린 책, 어떠셨어요?
나(무슨 소리이냐는 듯이) 무슨...책...말씀인지?
카린(모르겠냐는 식에) 제가 전해드린 달과6펜스 말이에요
나(영준의 독백) 그랬다. 김 대리로부터 전해 받은 책이 이 여자가 전해주는 선물이었다니, 나에게는 궁금증을 내 앞에서 감출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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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영준의 독백) 달도 나와 같은 이상을 꿈꿀까? 6펜스 짜리 동전의 반짝임을 긍정할까? 이제는 욕망의 무거운 그림자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맹목적인 바람이 배신일 것도 같았다. 찰스 스트릭랜드가 결국은 무거운 욕망을 긍정함으로써 그것을 짊어지고 힘겹게 비상했던 것처럼, 철저히 고통스러워하면서 꿈을 꿀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니, 고통 속에서 자라나는 작은 새싹의 움직임처럼 우리 역시 꿈을 꾸는 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카린(좀더 자세히 물어보듯이) 찰스 스트릭랜드가 예술가이고 천재이며, 악마적인 인물이라는 점. 그 때문에 당신은 나와는 거리가 먼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했었어요. 하지만 40이 넘은 나이에 화가의 길을 향해 나아갔던 그 모습에, 우리는 너무도 일찍 젊음과 꿈을 포기해버리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죠. 많은 것들이 우리를 지금 이 상태로 머물도록 잡아 끈다라고 하면 어떤 이는 스트릭랜드 부인처럼 물질에 대한 허영심이나 남들의 이목이 자신의 사고와 행동을 결정짓도록 내버려두겠죠.
나(당연하는 듯이) 그랬겠죠. 블랑슈 스트로브가 그랬듯이, 사랑에 모든 것을 바치는 사람도 있었으니까요. 인간은 욕망의 존재이고, 물질에 대한 욕망, 다른 이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망, 사랑하고 사랑 받고 싶은 욕망, 심지어 욕망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은 욕망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몸과 마음은 끈적거리는 욕망으로 가득 차 있는 것만 같으니까요.
나(영준의 독백) 나는 이러한 욕망들, 나를 구속하는 무거운 그림자에 분노했다. 스트릭랜드가 안일한 행복으로부터 뛰쳐나와 무한한 꿈으로 나아간 것처럼 나도 욕망을 벗어버리고, 보다 본질적인 무엇인가를 추구하고 싶다는 충동이 일 때도 많았다. 하지만 세상에 살면서, 사람들과 살갗을 맞대고 사는 삶, 평범한 삶이 지니는 아름다움을 부정할 수만은 없을 것 같았다. 왠지 모를 공포심에 짓눌려서...아니면 스트릭랜드는 블랑슈의 어떤 점이 어리석다고 한 것이며, 나의 분노는 무엇에 대한 분노일거라고 생각하면서, 분노 속에 공포를 감추려고 노력하였다.
카린(자유스럽게 말하듯이) 세속에 대한 욕망과 이상에 대한 욕망이라는 상반된 두 가지 욕망이 갈등을 일으키고 서로 시소놀이를 하는 존재가 인간이 아닌가요? 그녀가 어리석고 신념이 없었기 때문에 죽은 거죠. 찰스 스트릭랜드는 블랑슈의 죽음을 두고 자신을 비난하는 자세에서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악보가 같아도 지휘자가 미숙하면, 아름다운 선율도 단지 지루한 음의 나열이 되어버린다라고.
나(씁쓸하게 말하듯이) 악보가 같아도...지휘자가 미숙하면 지루한 음의 나열이 되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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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는 다시 바 이덴 홀로)
바텐더(나(영준)에게) 사랑이라는 것도 결국은 인간을 구속하기에 과감히 버려야 하고, 인간은 모든 욕망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일까요? 서머셋 몸이 두 사람을 통해 비판하려는 것은 스스로 자기 삶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다른 것들이 삶을 지배하도록 내버려두는 인간들에 관한 것이지 않을까요? 정말 사랑할 것을 사랑하는가, 정말 사랑하는가를 물어본다고 가정 하에 과연, 아니, 어쩌면 나의 욕망은 그 대상 자체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욕망을 모방한 것일 듯도 하겠죠?
나(그럴 수 없다는 듯이) 남들이 다 돈, 사랑, 명예와 같은 것들을 바라므로 나 또한 그것들을 추구하며, 내가 사는 사회가 선하고 가치 있다고 규정한 것들을 아무런 물음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는 말인가?
나(영준의 독백) 나의 분노는, 이처럼 내가 아닌 외적인 힘에 의해 나의 욕망이 굴절되고 왜곡된 삶, 사회에 녹아들어 유기체의 한 부분으로서만 존재하는 자신에 대한 분노이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다. 이 소설의 첫 부분에서 나는 스트릭랜드 가족을 바라보면서, 일상의 안일한 행복 속에 경계해야할 무언가가 있다고 느끼는데, 그것은 아마 자의식의 상실이지 않을까 싶었다.
바텐더(역시 그렇다는 듯이) 자의식을 상실하고 외부에서 규정한 상식에 몸을 맡겼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주어진 운명을 받아드리고, 곧 닥쳐오는 것은 멈춤, 곧 파멸일 것이겠죠. 하지만 늘 젊은 세대들은 운명을 개척하려 해야겠죠.
나(영준의 독백) 서머셋 몸은, 기존의 것들을 과감히 버리고 모험과 변화를 찾아 떠나서 새로운 것들을 가지고 돌아와 사회를 진화시키는 것은 젊은 세대의 몫이라고 말하고 있다. 찰스 스트릭랜드는 그러한 젊은 정신, 예술가를 대표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을 사로잡는 뜨거운 것이 무엇인지 모르면서도 그것을 추구했다.
나(바텐더에게) 하지만, 스트릭랜드 자신이 구태여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스스로의 자각심을 깨달았다면, 아니면 스스로의 존재를 소설 속에서 인식하지 못하고 허영감속에 빠져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지만...
바텐더(답에 대한 답을 말하면서) 그랬다면 과연 서머셋 몸이 찰스 스트릭랜드를 주인공의 성격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지나가는 나그네의 성격처럼 꾸미되, 주인공의 생각을 그래도 표현했다 라고 한다면 왜? 하지만 그 왜가 책에서 말하는 중요한 단서처럼 말해지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는 경우의 수도 생각해 보아야겠다고 생각하고는 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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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영준의 독백) 고등학교 때, 우연히 학교 도서실에서 서머셋 몸의 대표작인 달과 6펜스가 책 사이로 숨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내가 데려간 적이 있다. 하지만 처음의 감정을 지금까지 잊지 못하고 있다. 허무하고, 딱딱하다라고. 내가 이렇게 느낀 것은 번역가의 책임이 컸다. 아무리 풍부한 감정으로 글을 쓰더라도 우리말로 번역하는 번역가의 감정이 메말라 있다면, 그 글은 딱딱한 형이하학에 불과하다. 번역가에 의해 작가의 순수하고 예민한 감수성이 파괴되고, 변형되고, 약간의 왜곡되어 외국 독자에게 소개되는 것이고 외국 독자는 작가의 진실한 감정을 알지 못하고, 아니 느끼지 못하고 작가의 감수성을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장소는 다시 나(영준)의 집으로)
나(영준의 독백) 집에 와보니 큰아들 녀석이 와있었다. 휴가 차 집에 들린 거라면서 몇 일 머물다 가겠다고 했다.
기준(물어 보듯이) 그거 아세요? 아버지가 읽고 계시는 책 말이에요, 우연치 안게 봤어요. 비행기 안에서요. 어떤 여성분께서 책을 읽고 계시 길래, 물어봤죠. 무슨 책을 읽는 중이냐고? 그랬더니 글세 달을 보면 왠지 모르게 중압감이 느껴진데요.
나(영준의 독백) 중압감. 나에게도 중압감이 있다. 회사에서의 직무와 집안에서의 직무,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인생에 대한 중압감이. 하지만 인간의 발달도 일정한 한계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고 인간은 자신의 모든 결정을 이 한계 안에서 맞추어 나가야 하기 때문에 아무리 자연을 비롯한 모든 것의 주인이 되고 싶어하는 인간이지만 인간도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물계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나(기준이 들고 있는 책을 보면서) 그 책은 무슨 책이냐?
기준(자연스럽게 말하듯) 젊의 베르테르의 슬픔이에요. 요새 아버지가 집에 계시면 책을 읽으신다는 어머니의 말이 맞네요. 그래서 저도 책을 읽으려고요. 예전에 아버지는 책을 자주 읽으셔서 어머니와의 데이트 때에도 늦으신 적도 있고, 데이트에 가셔도 틈만 나면 책을 읽으셨다고 하죠?
나(영준의 독백) 그랬다. 책을 읽는 것은 나의 유일한 취미생활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독서부를 가입한 적이 있었는데, 우연치 않게 읽게 된 책에 매료되어서 대학을 졸업하고서도 계속 책에 매달렸었다. 나중에는 책에서 인상깊게 느낀 대사나 명언, 혹은 그 책 내용을 전부 외울 정도였다. 책에 대한 심취가 가면 갈수록 나에게는 책을 단순한 문화활동으로 여기지 않고 책의 주인공들과 대화하려고 노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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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는 바 이덴 홀로)
카린(뭔가에 빠진 듯이) 새가 훨훨 날아가든지, 아니면 이곳에 머물든지 그 선택을 새에게 주겠다 라고 가정한다면, 나는 가능하면 모든 것에 자신을 가두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싶어요. 하다 못해 꽉 끼는 옷 속에라도 날 가두지 않고 자유를 사랑하는 내가 인간은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고 단언하죠. 물론 조금이라도 자유롭고 싶어하는 찰스 스트릭랜드의 몸부림은 이해가 가지만, 난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성숙한 행동이라고 평가하고 싶어요.
나(아니라는 듯이) 인간은 안정을 바라면서 변화를 추구하죠. 인간의 이러한 모순은 그렇기 때문에 인간을 모든 것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해주진 않아요. 오히려 자유롭다고 느끼는 순간 새로운 모순과 갈등에 부딪히게 되죠. 결국 작가의 오만으로 만들어진 책에 불과할 뿐이에요
카린(받아 드릴수가 없다는 듯이) 자신이 남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할 때 아니면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이 나쁜 면을 갖고 있을 때 우리는 각각 오만과 편견이라는 마음을 가지게 되죠. 이 책은 그런 감정을 사랑이라는 고결하고도 순수한 감정과 함께 전달하고 있어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자주 느끼는 감정들이기에 가슴 에 와 닿은 것처럼 말이죠. 결국에는 오만이라고 할 수는 없는 거지요.
나(의견에 대해서 반박하듯이) 하지만, 결국에 가서는 자살로 이어지는 이야기의 주제는 뭐지요? 모순된 이야기 속에서 감정을 느끼고, 그 감정을 상대방의 분풀이로 사용한다면 과연 그것이 진실 된 감정일까요? 그럴 바에는 가두어두는 판도라의 상자의 불과해요
카린(아니라는 듯이 부드럽게) 영준 씨, 그것은 절대로 아니에요. 우리가 만났던 일 기역 나죠? 그때 바텐더가 한 말 기억나요?
나(무엇인지 생각나려는 듯이) 뭐라...했는데요?
바텐더(바텐더의 독백) 바는 쉴 나무, 그리고 부드러움의 텐더, 합쳐서 부드러운 나무그늘이란 뜻입니다. 이 나무가 바, 이것만으론 평범한 술상일 뿐입니다. 하지만 거기에 바텐더가 있음으로 바에 텐더, 부드러움이 생겨나지요.
나(영준의 독백) 그랬다. 부드러운 나무그늘. 하지만 부드러운 나무그늘이 외 관계가 있는 걸까? 마력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달과 6펜스라는 책은 그 내용 외에도 뛰어난 예술적 구성, 인간 심리의 완벽한 해부로 빼어난 문학적 가치로 인해 아직까지도 수많은 독자들을 매료시키며, 그들에게 참다운 달에 대한 인식과 6펜스라는 물질만능주의에 대해서 경고하는 듯이 보이는 듯 하였다. 하지만 시대가 달라지면서 달보다는 6펜스에 좀더 생각하고 다루는 사람이 생기기 시작했다. 결국에는 책에서의 내용이 점차적으로 사라져 간다는 뜻이라고 생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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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는 나(영준)의 집으로)
미해(들어보라는 듯이) 영준 씨, 혹시 시...좋아해요?
나(무슨 말이라면서?) 무슨 소리야? 시라니?
미해(모르는 듯이 보는 나(영준)에게) 시요, 시.
나(영준의 독백) 시. 요사이 소설에만 빠져있는 나에게 아내는 시를 읽어 주겠다고 했다. 달과 6펜스로 인해서 현실세계와 소설세계와의 대립적 갈등과 현실과 소설의 이중상태를 자꾸만 되새겨보는 나로썬 시가 나에게 치료 되 는 회복제일 것을 알고 다름없었기에 시를 청하였다.
미해(고운 목소리로 차분하게 읽어 내리 듯)
그래...잠깐 잊고 있었소.
나 역시 한 해만
살다가는 꽃임을...
너에게 말하고 싶소
고달픈 삶 속에서
가끔 천국의 순간을 본다
천국이란 허락되는 너와의 행복이
영원히 지속되는 곳이겠지
그렇소, 나는 단지 이 지상의
나그네에 불과 할 뿐이오...
버릇처럼 비가 내려
넌 또 비에 젖겠지
내 비를 맞아 줄 테니
이젠 도망가지 말아라
비에 젖는 나에게 말해라
천국이 거짓이었다고.
우리 함께 할 수 없다면
천국은 거짓이겠지.
그러면 나에게 말해라
천국이 거짓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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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는 어느 조용한 카페 안)
카린(철학자처럼 강조하면서) 욕망은 끈적이는 거미줄처럼 영혼의 자유를 구속하는 족쇠의 역할이죠. 욕망과 이상이 혼재된 일상은 때론 정신을 혼미하게도 하지요. 일상으로부터의 일탈을 꿈꾸는 목마른 몸짓은 우리 모두의 바램이기도 하겠죠. 서구의 2분 법적 개념은 대립과 대치를 야기할 때, 동양철학의 사유에선 성과 속, 미와 추, 이상과 본능의 화해가 있다고 한다면, 합일의 개념, 일체 일원 원리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마음을 쉬게 해 주고 싶어요.
나(영준의 독백) 날개가 꺾긴 강철의 소년이 언젠가 만날 진실의 문을 통해서 빛을 이루리라고 하고 생각했던 어제의 나는 카린씨가 말하는 어떤 진실에 도달하기 위해서 나 스스로가 몸부림치면서 울고있었다. 아니, 지금까지 울고 있다.
나(조용하게) 책을 읽고 자신의 분명한 주관적 시각으로 날카롭게 비평을 가하는 자세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요. 대다수의 독자들이 비평가의 평론에 크게 의존하는 것이 사실입니다만, 번역은 제2의 창작이라 하지요. 그만큼 번역가에 의해서 작품의 완성도가 크게 달라지는 것입니다. 뭐, 작가의 세밀한 심리적 표현과 감정의 흐름을 잘 반영해 내려면 해당 언어의 특성과 문화를 깊이 이해해야 하고 번역가 자신도 작품을 이해하고 논평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해 있어야 하겠지만 말이에요.
카린(되새겨 보듯이) 삶을 살면서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게 뭘까요? 달과 6펜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나에게 이런 물음의 답을 자꾸만 자꾸만 찾게 했어요. 그들에게는 누가 봐도 불행이라고는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모습이다. 삶의 현실조차 그러하게 보이는 사람들이겠죠.
나(아니라는 듯이) 하지만 그들은 그 곳에서부터 행복을 찾고 있었어요. 보이지 않는 행복을 찾아서 헤매곤 했겠죠. 삶의 빛을 먼 곳이 아니라 가까이에서 찾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아니면 나 자신이라면 어땠을까? 스스로 숫한 물음을 던져 보았겠죠. 나라면? 글쎄?
카린(생각하는 듯이) 세상에서 왜 이렇게 나만 나쁜 일들이 생기는 거죠? 왜 나만 이렇게 힘든 거야, 이런 생각이 내 머리를 가득 채운 때가 있어요. 나에게 불어오는 바람이 너무나 차갑게 느껴지고 나에게 찾아오는 시련들이 너무나도 아프고 가슴 시리게 느끼지는 그런 때가 있죠. 중반부까지 책을 읽으면서 그 곳에 사람들은 매일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을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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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영준)혼자 남은 회사 안)
나(영준의 독백) 이 책은 달과 6펜스라는 제목으로 어떤 것을 누구 대신에 보여준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무거운 옷을 벗어버리는 봄이 찾아오면서 그들에게 희망과 사랑이 찾아온다. 책을 덮으면서 나는 그 책을 가슴에 꼭 끌어안아 보았다. 처음 그 책을 열었을 때는 그저 내가 꼭 읽어 내야 할 책이었지만 마지막장을 덮으면서 그 책은 어느새 내가 가슴에 들어와 있었다. 하지만 가끔 생각해 보면 달과 6펜스가 서로 상극이 맞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왜 일까?
카린(카린의 독백) 앞으로 그 사건이 어떻게 전개가 될 것인가 하는 머릿속으로 하는 생각들은 접어두어도 되요. 대신, 아! 그래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겠지. 쯧쯧! 얼마나 힘들까? 나라면 그러지 않을 거야 하고 말하겠죠. 나처럼 생각하는 마음만 가지면 된다면, 누구나 이 책을 읽고 나면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게 되고 내가 가진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될 것 같아요.
김 대리(김 대리의 독백) 죽음이 주는 너무나도 어둡고 무거운 그렇기에 두렵기까지 한 분위기. 그러나 부장님은 그것조차 가벼운 유머로 넘기는 분이겠죠? 서서히 마비되어 가는 당신의 몸을 보면서도 결코 좌절하는 법이 없으니까요. 슬프거나 울고 싶을 때는 부끄럼 없이 울고 나서 그 감정에서 벗어나라고 다짐하지 않으셨나요?
미스 리(미스 리의 독백) 자신의 감정에 최대한 충실하되 눈물만큼은 부끄럽게 여여야 한다고 생각했고 지금까지 살아왔어요. 그런 내게 당신이 남긴 말 한 마디를 듣고 보니 맘이 조금 편해지기도 했어요. 죽는다는 것은 단순한 것이 아니다. 그저 삶을 이해하는 과정인 것이다라고 말이죠.
택시 기사(택시 기사의 독백) 늙어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젊다는 것을 자랑하지 말며, 항상 살아있음을 감사하며, 누구를 대할 때든 항상 마지막인 듯 대하는 진지한 자세로 살라고들 하죠?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결코 많지 않지만, 그동안 우리는 끊임없이 사랑하며 살아야 하겠죠. 사랑이 없으면 멸망하리라 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죠. 하지만 전 이제 아니에요. 사는 것이 얼마나 더 즐거운가 느끼기 위해서 더 앞으로 나아 갈 겁니다.
윤명호(윤명호의 독백) 부장님 그거 아세요? 어떻게 하면 자신의 시간을 알차게 살아갈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는 시간이 존재한다라고 믿고 있다면, 뭐든 무서울 게 없을 거예요. 하지만 과연 존재할까요? 보이지 않는 시간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할까요? 그러면, 달은 존재할 때, 6펜스는 가려져 있다라고 하는 정의를 내리고 싶을까요? 하지만 그런 정의를 사회에서 아니, 현실세계에서 믿을까요?
최기준(기준이의 독백) 아버지, 진실을 찾는 사람에게는 사람들을 조차 계속 속이고 있다고 해요. 뭐든지 있는 그대로 비춰주는 거울조차도 진실의 모습을 비추진 않으니까요. 하지만, 전 믿고 있어요. 언젠가 푸른 창공을 나는 새처럼 하늘을 자유로이 날고 말겠어요. 그때까지 꼭 지켜봐 주세요.
미해(미해의 독백) 당신이 말했죠? 꽃은 나약하고 덧없어 비나 바람을 피하려고 무턱대고 울타리로 감싸면 꽃은 태양이 그리워서 시들어져 버린다고 말이에요. 폭풍우가 오면 빈약한 울타리는 아무런 방패도 되지 못하지만, 위험한 사람들로부터 안전한 울타리가 된다는 말 말이에요. 아직도 잊지 못했어요.
바텐더(바텐더의 독백) 당신은 스스로 빛을 내는 사람은 아닐지 몰라도 빛을 전달해주는 사람인 것은 분명합니다. 천재성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천재를 자극하는 놀라운 힘을 가진 사람들 중 하나이죠. 그래서 당신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당신이 그 놀라운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라는 것을.
나(영준의 독백) 사람들의 말이 되새김질해진다. 지금까지 내가 만나온 사람들. 그리고 만났지만, 인연으로 인해서 서로에 대한 것을 알고, 격려해 주고 칭찬해주고, 그리고 자기의 문제인 것처럼 신경 써주는 사람처럼. 우리는 항상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서, 더 많은 것을 누리기 위해 노력하는 우리의 삶을 한 번쯤 더 점검하게 되는 계기가 되는 날을 생각하고 살고 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면 내가 손을 뻗으면 닿을 곳에 눈을 돌리면 보일 곳에 이 책에 주인공들이 살고 있지는 않을지도 모른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다. 하지만 삶의 현장 속에서 보이지 않는 실을 푸는 사람의 존재가 인정되기 전까지 그저 현재의 삶을 순응하면서 사는 방법 이외에는 도저히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다.
(장소는 어느 고등학교의 도서실 안)
미해(기쁘다는 듯이) 결국에는 왔네요. 참석 못할 거라고 같다고 하더니만, 용케 참석하셨네요.
나(아니라는 듯이) 시간을 내서 겨우 올 수 있었어. 이유가 무엇일까?
미해(궁금하듯이) 글세요. 왜, 바쁜 시간을 쪼개서 이런 곳에 오셨을까요?
나(지긋이 말하듯) 시를 짓기 위해서)
미해(도통 이해를 못하겠다는 듯이) 시? 시요? 당신이 시를? 소설밖에 모르던 당신이 시를? 게다가 이런 곳에서 시라니요?
나(알겠다는 듯이) 들어봐. 들어볼 수 있는 시간이 적을 때에는 말없이 들어주는 것도 예의거든.
-18, 19-
나(나긋하게 시를 읽듯이)
가랑잎사이로 가려진 작은 조각이
보이지는 않지만 어느 순간마다
나의 작은 마음 한구석에 자리잡는다
일상적인 삶의 고독을 난 자리매기고 싶다.
가랑잎사이로 가려진 작은 조각이
때로는 작게 아니면 희미하게
보이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그것이 인생의 화려함이란 것을.
작은 조각이 가랑잎사이로 보일 때
인생의 화사함과 종결이 보인다.
왜 그러는 지는 보일 때마다 느끼는
화자의 마음씨가 아닐까?
작은 가랑잎이 오늘도 춤을 춘다.
고독이라는 상대와 쓸쓸함이란 곡을 가지고
화려하되 낭만적인 따스한 고독.
작은 왈츠를 추기 시작한다.
작은 가랑잎 왈츠를 추다가 떨어지매
가랑잎 가락가락 갈라지며
인생의 왈츠도 어느덧
시들어 가겠지.
(고요하게 들리는 괘종시계 소리)
나(영준의 독백, 이제는 처량하게 들리는 듯이) 자정을 알리는 소리. 내게는 그저 단순한 소리로 들리기 시작하는 소리이다. 삶의 현재를 이해하고, 중요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현대사회를 살아간다면, 무서울 것이 없겠지 하고 생각하고는 산다. 댕! 댕! 댕!. 역시 괘종시계는 계속해서 거북한 소리만을 울려대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그 거북한 소리가 그저 나에게 들린다. 달이라는 무거운 소리와 6펜스라는 현대사회의 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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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라디오 극본 공모전에 낸 작품이에요...한번 읽어봐주세요^^
첫댓글 순회신부님~ 드디어 라디오 극본을 쓰셨군요. 대단하네요. ㅎㅎ 순회신부님의 성향이 그래서 그런지 라디오 극복치곤 내용이 좀 무거운 것 같습니다. 좋은 결과를 기다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