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내가 꿈꾸던 걱정 없는 평온한 세상을 논하던 철학은 바로 도가 사상이었다. 하지만 노자의 무위자연 사상에 비해 장자의 사상은 예전이나 이번에 책을 읽고 난 후에나 그 의미가 무엇인지 이해하기 무척 어려웠다. 그러나 모든 차별을 제외하고 자연 그대로의 본질에 따라 모든 사물과 하나가 되려하는 장자의 제물론은 복잡한 세상살이에 병들고 찌들어 새로운 탈출구를 원하는 현대인에게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자는 모든 존재는 이것과 저것으로 구분이 되지만, 결국 저쪽에서 보면 이것이 저것이 되고 저것이 이것이 된다면서, 세상 모든 진위시비를 가리는 논쟁은 모두 상대적인 것일 뿐이라는 사상을 내세웠다. 사물의 차별의 배후에 있는 근거를 파고들면 모든 사물은 결국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모든 현상은 모두 연관성 지닌 하나의 전체이기 때문에 만물을 하나같이 보는 것이 바로 제물론이다. 조삼모사의 경우와 같이 실제 근본은 달라진 것이 없는데 주관적인 심리작용 때문에 사람의 판단력은 흐려지는 것이다. 도의 관점에서는 선과 악, 미와 추, 나와 너 등의 차별은 무의미하다. 생사도 하나이며 꿈과 현실의 구분 또한 모호한 것이다. 모든 사물을 차별하지 않는 정신적 절대 자유의 경지에 오른 이는 만물 그대로의 자연의 법칙에 따르게 된다는 것이다.
오늘날 현대인은 겉으로는 풍요로워 보이지만 복잡하고 빠른 변화를 거듭하는 세상 속에서 정신적으로는 오히려 황폐화되어 가고 있는 듯 하다. 사람들은 시장 가치와 기능주의를 우선시하고, 물질 만능 주의에 빠져 세상 모든 사물을 자기의 입장에서 판단하고 옳다고 굳게 믿는다. 모두들 세상 흘러가는 가치에 따라 어느 한 쪽만이 옳다는 편견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현대인은 고정관념과 편견, 이기주의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물질을 우선시 하다 보니 올바르지 못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모으려고 하고, 외모를 너무 중시한 나머지 성형 중독에까지 빠진 사람들이 많다. 최근의 환경 문제만 해도 그렇다. 사람들은 자연 까지도 오직 사람들 위주의 입장에서 판단하고 이익이 된다면 파괴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인간의 입장에서 모든 자연을 마음대로 변화시켜도 된다는 차별 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그것이 자신의 가치 판단에 의한 것이라는 입장을 끝까지 고수한다. 모든 사물을 자신의 주관적인 판단에 의해 차별하고 자연 본래의 가치와 의미들을 잊어가고만 있는 듯 하다. 그러나 장자의 제물론에서 말한 것처럼, 어느 누구도 올바르게 판단 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모든 개체는 자연의 입장에서 볼 때 무차별적인 절대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한다. 제물론의 한 부분 중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되어 인간 장주인지도 몰랐는데, 그가 꿈에서 나비가 된 것인지 나비가 꿈에 그가 된 것인지 알 수 없다는 내용이 있다. 현재의 내가 정말 진정한 나인지 우리도 알 수가 없다. 물론 인생은 모두 헛된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되겠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현실에 집착해서 상대적인 가치 판단에만 매달린다면 결코 행복할 수 없을 것이다. 정신적으로 혼란스러운 현대의 지금이야말로, 인간 또한 본래의 타고난 상태인 자연 속에서 조화롭게 하나가 된다면 편안하고 고요한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장자의 가르침을 다시 한번 깊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