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명시식과 나의길
차법륜(길진) 칼럼. <뉴저지 후암정사 법사>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 그리고 밤이면 동쪽 조계산속에 소리없이 뜨던 달. 법성요에 작은 책상을 놓고 유마경을 읽을때이면 어김없이 들리던 그 울창한 숲속의 바람소리.
내 젊은 수행의 한때를 보냈던 조계산 송광사 유난히 노스님들이 많아 절도가 있고 기품이 높았던 사찰. 그곳에서 나는 비로서 효봉과 구산의 빛나는 정신을 접했고 또한 인간이 가진 생명의 의미와 대도, 중생구제, 자비광명세계의 실현이라는 원력을 세우게 된다.
수행의 과정이 늘 법열과 알음알이의 성과속에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수없이 계속 쏟아져 나오고 있는 科學의 입장을 종교인의 입장에서 끊임없이 탐구해야 하고 그 뿐 아니라 어쩔수 없이 부딪치는 세간사에 마음의 많은 부분을 쏟아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이른 새벽 잠을 깨어 법당문을 들어설때나 인연있는 불자를 배웅하고 뒷모습을 바라볼때 나는 늘 조계산의 그 푸른정기와 고승대덕, 선지식들의 투철한 보살정신을 번뜩번뜩 깨닫곤 한다.
구명시식.
비틀어진 선조의 한을 바로잡고 인간이 가진 생명의 연속성을 확고하게 하는 의식. 그 구명시식은 단순히 조상의 한을 현재라는 시간대로 이끌어내 이를 푸는 의식일 뿐 아니라 오히려 더 나가서는 자신의 생명과 나의 후손들의 건강한 삶과 의식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특히 송광사의 구명시식은 연배가 높고 불경과 염불, 그리고 선적 수행정도가 높은 스님들에 의해 주도됐는데 당시 법정스님과 비슷한 연배이며 염불과 사경등에 조예가 있었던 법흥스님이 주로 사내의 구명시식을 주관했다.
송광사의 대시주로 현재 호남지방의 유수고속버스 재벌인 K그룹의 창업자도 있었는데 그는 당시 병으로 죽음을 얼마 남겨두고 있지 않아 ·당사로서 억대를 넘는 공사비용을 필요로 하는 지장전의 돌조와 구명시식등을 추진했었다.
사내에서 구명시식을 하게 될때면 주로 불가의 큰 제일이나 거창한 영가의 천도일등에 맞추게 되는데 말사의 비구니 스님들까지 큰절에 와서 일을 돕곤해서 흡사 잔치를 치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정작 구명시식의 현장을 영적인 긴장이 지속돼는 심각한 곳이었으며 죽음과 삶의 한계를 넘어 산자와 죽은자가 대화를 나누고 맺혀진 응어리를 푸는 정곡의 시간과 장소였다.
특히 정령들은 인간의 음식을 쉽게 먹을 수 없기 때문에 수십가지의 음식들을 작은 접시에 지극히 적은 분량만을 놓고 그들을 위로하며 초혼, 현세와 통하게 만드는 방법을 쓰곤했다. 대부분 법흥스님은 불경과 염불을 통해 초혼을 했는데 그러나 영혼의 목소리를 듣고 이를 전향적으로 푸는 단계에까지는 접근하지 못했다. 또한 불교의 인연이 강한 영가들 외에는 초혼의 호응이 쉽지 않았을 뿐 아니라 특히 불교를 멸시하던 공맹추종의 가문자손이나 기독교계통의 뿌리가 있는 후손들에게는 불경 외에 찬송가나 특별한 제의문등을 통해 영혼을 불러낼수는 없는 입장이었다
결국 구명시식의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은 영혼의 초혼과 현세와 내세간의 대화로서 이는 부르는 자와 불리는 자의 소통매개물과 특히 영파가 맞아야하는 특징이 있는 것이다.
여기서 구명시식중 영혼과의 대화시 여러가지 예기치 못할 사건과 상황이 생길수 있으며 이는 결론적으로 죽은자와의 소통채널을 뚫기위한 최선의 행위인것이다. 그러나 불교의 깊이를 모르거나 구명시식을 표면적으로 이해하는 일반인들은 구명시식 자체를 간단한 의식으로 치부해버리거나 더 나아가서는 죽은자와의 대화를 도출해내는 과정을 희극이라고 속단해버리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구명시식은 단순한 불가의 의식뿐 만이 아니다. 큰 절등에서 치러지는 비전적인 의식인 구명시식은 산자와 죽은자, 한과 기쁨의 양극적인 요소를 하나로 통합 이를 현재와 미래의 생명에 연결시키는 의식이기도 한것이다.
단언하건데 불교를 모르고 한국어를 모르는 영혼에게는 염불과 한국말 기원문만으로는 초혼과 천도가 이루어질수 없다는 것이다. 영혼의 세계에도 언어가 중요시하다는 것을 입증하는것인데 이는 결국 일반의 입장에서 죽어봐야만 알수 있는것이다.
구명시식이 가진 방법적인 이의성은 바로 그 이면에 있는 엄숙한 의식의 효과적 수행이라는 목표때문이기도 한것이다.
그동안 인기리에 연재되었던 차법륜칼럼은 이번호로 마감을 합니다. 바쁜 일정에도 원고를 보내주신 차법륜법사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
1993년 1월호 미주현대불교 제33호 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