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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6-9 관촌 슬치마을 오관터널(슬치터널)답사와 산중의 하루
자유인 조동화는 “슬치터널(오관터널)”을 지나던 “슬치마을”을 답사했으며, 특히 내몸의 간의 해독을 위하여 숲속에서의 하루를 보내었다.
간의 해독은 산속을 걷는것보다 좋은 해독제는 없다.
평소 한두잔 하던 술을 한이틀 친구들과 병술을 먹었으니 땀으로 배설하여 해독해야지요.
오늘 나는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전주에서 버스로 관촌행 슬치마을까지 이동, 하차하여 슬치마을 아래에 있는 슬치터널(오관터널)을 답사했지요.
슬치터널은 조동화기관사가 전라선을 운전하며 수도 없이 달렸던 철길이었지.
슬치마을은 해발250m에 있으며 아래로 전라선 슬치터널이 지나가고 있는곳으로, 조동화기관사가 낭만을 품고 달리던 철길이었단말이여.
기관사 조동화가 굉음을 울려대며 25/1000의 슬치고개를 오르던 그시절 추억이 그리워 슬치고개 슬치터널을 답사하게 되었지.
남관-관촌간의 철길은 300R, 400R 곡선이 많아 뱀처럼 꾸불꾸불하였으며, 경관이 아름다운구간이었다.
슬치마을과 슬치터널을 두루 두루 살펴보고 슬마마을회관 앞 모정에서 집에서 가지고 온 도시락으로 점심을 한후, 슬치마을에서 한오봉까지 쉬엄 쉬엄 힘들면 쉬어가고 걷는일을 하니 체내의 수분이 땀으로 배설하여 물과 오이등으로 수분을 보충해야했제.
오늘의 산길을 걷는일은 슬치마을(250m)을 출발 갈미봉(헬기장 540m) 쑥제 내산봉(566m) 한오봉(570m)까지 오른후 하산길은 편백나무오솔길을 따라 내려와 유황탕에 발을 담그는거여.
슬치마을을 둘러보니 주민들이 경작하는 농장곳곳에 철망휀스가 설치되여 있는데, 이는 멧돼지의 출몰로 농작물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함이여.
슬치마을에서 한오봉가는 산길 들머리는 찾는일은 슬치마을 할머니에게 물어보아 찾았으며, 마을회관 앞에서 오른쪽 마을길을 따르면 축사가 나오고 다시 오른쪽으로 틀면 이동통신 철탑이 있으며, 철망 휀스(울타리)를 열고 임도를 따라 두시간정도 걸은후에 군부대 철도망이 있었고 헬기장(갈미봉)이 나왔고, 걷고 걸어 다섯시간만에 한오봉에 도착하였다.
걷고 걸어 다섯시간만에 도착한 한오봉(570M).
장엄한 자연의 경치가 한눈에 보이는 장관을 눈으로 확인하고자 오르는 봉우리, 한오봉 정상에서 공기마을 아래 보이는 산하와 고속도로 고가교, 철길이 보이는구나.
숲길을 나홀로 걸는일을 하면서 내발길 가는데로 자유를 만킥하며 누구의 간섭도 받지않고 산에서 품어져 나오는 피톤치드의 향기를 마시며 자연에서의 하루를 즐기는 맛은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기분이었다.
조동화는 가끔 나만의 자유를 찾아 숲속에서 걷는일을 하며 사색을 즐기노라.
살아오며 후회되는일, 오늘의일, 미래의 일을 생각하며 준비되는 시간을 갖어보는것이지.
산림욕이란 편안한 마음으로 아름다운 숲속을 걸으며 새소리와 물소리를 들으면서 푸르름을 만끽하고 신선한 공기와 편백나무가 내뿜는 천혜의 보약 피톤치드를 흡입하고자 하기 위함이여.
피톤치드는 해로운 벌레나 환경의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편백나무 스스로가 내뿜는 물질인 만큼 항균 및 살균작용이 뛰어납니다.
피톤치드는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고 말초혈관을 단련시키고 심폐 기능을 건강하게 하고, 기관지 천식과 폐결핵, 심장 강화에 도움을 준다고 알려져 있다.
그누가 속세를 가리켜 잠깐의 꿈속세상이라 했던가?
오늘하루 마음껏 피톤치드를 먹으며 자연과 같이 친구되여 산중에서 울려퍼지는 새소리며, 천연보약 피톤치드의 향기가 좋아 자연에 감사해야지요.
태초의 원시림처럼 울창한 숲길을 걷는일은 즐거운 시간이었다.
인생은 한조각 뜬구름 같은것이며 자연에 순응하며, 오직 한번의 인생 소중한 시간을 즐겁게 살자.
조동화의 벗님들!
싱그러운 녹음의 계절 6월이 시작되여, 신록이 주는 행복, 마음의 평화와 기쁨, 찬란한 6월이 좋구나 좋아............
일상의 평범한 행복 별것 아니지.
울창한 숲길을 걷는일을 하며 아람들이 나무도 보았고 새들의 울음소리고 들었고 삼라만상의 푸른녹음도 맛보았고 대지의 자연은 신기하구나.
자연의 섭리는 위대하구나.
6월의 신록을 즐기고 느바기처럼 쉬엄쉬엄 대지를 걷자.
울창한 숲길에서 새들의 지져귀는 소리에 귀가 얼마나 즐거운가.
피톤치드 향이 좋아 마음이 풍성해 지고 자연이 살아 숨쉬는 희망이 넘치는 푸른 녹음의 숲에 감사하자.
아무쪼록 건강과 행운이 깃들기를 소망합니다.
☛슬치답사시간 : 11:00-13:00(2시간)
☛숲속걷는일 시간 거리: 13:30-18:30 15.0km 3만보
☛산행코스 : 슬치제-장제-갈미봉-쑥제-내산봉갈림길이정표-한오봉-제2등산로-통문-유황샘-상관공기마을-귀로
☛귀로 : 상관에서 752버스로 금암광장하차, 시외버스터미널 귀로
♢슬치마을회관주소 : 전북 임실군 관촌면 슬치리 312-8
♢대중교통 : 전주에서 죽림온천행 752번 시내버스 이용 24분간격으로 25분소요(환승 전동성당 한옥마을) 슬치마을하차
♢시외버스터미널 : 752번 금암광장에서 하차, 5-6분거리 익산행 시외버스 20분마다 3,300원
♢대중교통이용 : 안전한 이동이 장점이고 기다리는 시간이 단점인 반면 도착지 이동이 편리하여 주로 나홀로 산행시 대중교통 이용.
조동화기관사는 슬치마을에 도착하여 마을회관앞 모정에 동네 어른들이 모여 쉬고 있길래, 기관사로 근무하며 수도 없이 슬치터널을 운행하였던 그옛날 추억이 그리워 답사차 익산에서 왔다고 하니 80세된 어르신께서 슬치터널에 얽힌 이야기와 위치를 상세히 알려주어 조동화기관사는 직접 슬치터널에 들어가 답사할수 있었지요.
400m의 슬치터널은 어둠컴컴하여 약 100m 정도만 들어갔다 나왔고, 터널안은 에어콘바람처럼 시원하였다.
마을사람들은 여름철 한더위에는 슬치터널에 들어가 더위를 식힌다고 하였으며,
현재 개인에게 임대하여 터널안 한쪽에는 건축자제 농사자제등이 진열되여 있었다.
슬치고개 슬치마을회관 앞 모정에서 점심을 먹은후 슬치재(250m)에서 한오봉(570m)까지 10km 걷는일을 하며 땀을 구슬같이 흘리고 장장 다섯시간만에 한오봉에 도착하였다.
슬치재는 조동화기관사가 전라선 철길을 수도 없이 운행하였던 바로 그곳이지.
슬치재 얼마나 경사가 높은 고지였던가?
취약구간으로 지정하여 특별운전 취급했었지.
화물열차의 중력의 가속도란 무서운 힘이여.
제동력이 부족하면 낭떨어지로 깨고락지 되는거여.
조금만 방심하고 운전하였다간 제동력 부족으로 남관역 피난선으로 진입하여 탈선 전복, 대형사고가 나지.
슬치고개 아래 옛 전라선철도는 관촌방향으로 임실군에서 운영하는 건물이 들어서 있었으며 대부분 농로로 활용하고 있었고, 400m의 오관터널은 일반에 임대했는지 건축자제가 진열되여 있었다.
슬치재 바로 밑으로 오관터널이 지나가는데 오관터널이라고 명칭을 지었으까?
조동화기관사는 궁금한것도 많네그랴.
뜻이 있을테지만 말이지 그냥 그려려니 생각하면 되야.
오관터널로 부르면 사람들이 잘 인식을 못하니 슬치마을 아래에 있으니 슬치터널로 부르면 되지.
일본이 한국을 침탈하고 나서 전라선 철길을 내는데 오관터널로 부르게 되얐지.
오관이란 말은 관촌하고 관계가 있는말 같여.
일제시대에는 관촌면을 오천면이라 했었지.
에이 비극의 역사는 고만해야겠네.
한국이 다방면에서 일본을 앞지르고 있는거 알아.
슬치마을 슬치고개에는 마을정자가 있고 슬치마을 주차장 마을회관이 자리잡고 있었다.
슬치고개와 기관사 조동화
기관사 조동화가 수도 없이 운행하였던 전라선 슬치고개(해발250m) 아래 남관-관촌사이의 오관터널(길이 400m)이 있었다.
슬치(瑟峙)를 풀이하면 옛날 道人이 거문고를 띁으며 고개를 넘어 왔다 하여 거문고슬(瑟), 고개치(峙)해서 슬치이다.
현재 슬치고개의 밑으로는 대한민국에서 제일 긴 전라선의 슬치터널(6.128km), 순천-완주고속도로의 터널인 슬치터널이 관통하고 있으며, 국도 제17호선 등이 근처에 있으며, 슬치재의 높이는 해발 250m이다.
해발250m의 슬치고개는 구배 경사가 엄청나 난코스였다.
지금은 전라선이 개량되여 슬치터널이 6.128km로 경사도를 확 줄였으며 직선화로 개량되여 속도가 빨라졌으나, 개량되기전 오관터널(일명 슬치터널)의 슬치재를 넘으려면 굼뱅이처럼 느릿 느릿 겨우 오르곤 하였지.
증기기관차 시절에는 남관역에서 슬치재를 넘을 만반의 준비를 한다음 힘겹게 오르지 시작하여, 오르다 증기압력이 떨어져 슬치고개를 넘지 못하면, 남관역으로 되돌아가고 다시 물과 석탄을 가득 싣고 재출발하는 일이 빈번했다.
일제가 건설한 해발250m의 슬치고개 오관터널(400m)은 전라선을 개통하여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농작물을 일본으로 가져가기 위해 건설하였지요.
전라선이 개량되기전 관촌을 출발 오관터널을 지날 때 1000/25-1000/23의 약 5.5km에 걸친 장대하구배가 남관역까지 이어져 있으므로 화물열차는 초제동20k/h이하에서 제동취급 후 일단정차한후 35k/h이하에서 제동취급을 3-4회 반복하여 사용했으며 남관역 장내신호기외방에서 일단정차후 진입하던 시절이 있었다.
관촌-남관 구간은 전라선 취약구간으로서 취약구간 운전취급법을 철저히 준수하여야만 제동력부족으로 인한 정지위치 실당사고를 방지할수 있는것이다.
남관역의 선로구조는 별도로 피난선이 설치되여 기관사가 기준운전법에 의한 제동취급을 결여하여 장내신호기 외방에 일단 정차하지 않고 진입시 피난선으로 들어가게 되여 있었제.
슬치제에 얽힌 기관사의 애환은 오관터널을 지날시 기관차 매연으로 인한 호홉곤란으로 수건으로 코를 막아 숨쉬기를 억제하기도 하였지.
기관사 조동화는 꾸불 꾸불한 전라선 슬치고개 아래 오관 터널을 들어가기전 기적을 우렁차게 울려대며 슬치마을 사람들에게 기차가 지나가는 것을 알렸을 것이다.
40여년전 그 당시 기차와 철길은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향수를 일으키는 촉매제이기도 했고 멀리서 들리는 기적소리는 고향에 대한 강한 향수를 자극했었다.
70년대의 철도는 사람과 화물을 운반하는 국가의 동맥이었고 사람들의 애환과 아련한 추억이 담겨있는 이동수단이었다.
그시절 전라선 철길은 꾸불한 꾸불한 300R 400R 곡선이 많아 열차가 느린속도로 운행하였기에, 사람들은 보란 듯이 철길로 걷는 경우가 많았기에 기적을 힘차게 울리며 달리던 시절이었다.
풍광이 아름다웠던 구비 구비 전라선 철길을 달리던 시절이 눈에 선하다.
솔직히 말해서 조동화는 기관사로서 자부심을 느끼며 전라선의 꾸불꾸불한 철길을 운전하며 산하를 포효하였다.
우렁찬 기적을 울리면서 지축을 흔들며 전라선 섬진강변을 달렸을 조동화기관사는 슬치고개에서 그시절을 회고하며 철도기관사가 나의 천직이었고 자랑스러운 시절이었다.
순천기관차에 발령받아 근무하던 정용회 이강열동기생도 슬치고개를 수도 없이 운행했을 것이다.
순천기관차소장으로 근무하던 한재억동기생이 몇일전 고가의 산악자전거를 아들이 사주어 급경사의 삼막사를 내려오던중 어깨가 골절되여 몇 달 고생하게 생겼구만.
재억이 친구 나이들면 매사 조심조심하여야 하는데 어쩌다 앞브레이크를 쎄게 밟아 다쳤는가.
오른쪽 어깨에 철심을 박고 기브스하였다니, 부상정도가 상상이 되는데 의사의 지시에 따라 성의껏 치료 잘 받아 빠른시일에 쾌유되기를 빌겠네.
슬치고개의 오관터널을 기억하여 정용회 이강열 한재억까지 생각에 잠기여 회상하여 보았네그랴.
1984년 모일 전라선 남관-관촌을 운행하는 새벽열차의 조동화기관사는 관촌역 전방 600R 지점 부근이 집인 막 발령받아온 철고 후배의 편리를 위해 정차해준 그시절 추억이 생각나는데 그 후배도 퇴직을 눈앞에 두고 있어 세월은 덧없이 흘러갔구먼.
조동화기관사는 규정준수를 철저히 하면서 그러한 위법운전을 하였다니 상상 못할일이여.
인자 수십년전의 이야기가 되어 추억으로 생각하면 되야.
그려려니 살면 편한거여.
규정데로 하면 추억으로 생각할수 없제.
내가 신혼시절이야기 하나 이야기하자면 이리기관차에 근무하며, 조동화기관조사의 와룡역 집앞 호남선 철길을 지나는 1201 화물열차에 승무시 기관조사 조동화의 편리를 위하여 기관사님은 잠시 나의집 앞 철길에 기차를 정차시키면, 아내는 도시락을 기관차로 가지고 오던 추억이 있었다.
철마의 가감간을 잡아 댕기며 기적소리를 울리며 꼬불꼬불 가파른 고갯길 가쁜 숨을 몰아쉬는 철마에게 고운모래 뿌려대며 거북이걸음으로 기어올라 남관 고갯길을 넘고 넘어 긴 숨을 달랬던가!
오직 희미한 유油등 신호기에 의지하며 작은 눈 크게 뜨고 고요하기만 했던 어느 시골역에 정적을 깨뜨리며 우렁찬 기적소리와 기관차의 굉음을 내품으며 철길을 누볐던 아련한 추억들!
천둥 번개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에도, 레일이 녹아내리는 작렬하는 태양 아래에도, 폭설에 기찻길을 하얗게 덮어버린 길 없는 철길을 오직 철마에 의지하며 용케도 달려 왔던 무용담을 자랑이라고 했었던가?
철마의 추억을 되세기며 전라선 남관 슬치고개 오관터널의 모습을 생각하며 옛시절의 향수에 젖어보았습니다.
<관촌쪽에서 남관쪽을 바라본 오관터널(슬치터널)이여.
슬치마을 입구 바로 아래로 슬치터널이 있군요.
현재는 경사도를 완만히 하기 위해 슬치재 훨신 아래에 6.128km의 슬치터널이 지나고 있지요.
400m의 오관터널은 끝부분이 보였으나 직선이 아니고 남관쪽으로 400R가 시작되는 형태이더군요.
일제의 식민지시절 우리나라의 농산물을 일본으로 싣어 나르기 위해 일제가 100여년 전에 건설한거지.>
<남관방향 터널입구에 앵두나무 몇구루가 잘 익어 두어주먹 따 먹었제.
주인있는 앵두나무겠지만 주인 허락도 없이 따 먹다니 조동화기관사 겁도 없구만.
조동화는 이런사람이여.
주인이 나타나 뭐라고 하신다면 정중히 사과해야지요.
이렇게 사는것이 인간세상이요. >
<조동화기관사는 그시절 추억을 되세기며 남관에서 관촌방향으로의 터널입구도 관찰해 보았지요.
건축자재와 농사자제를 한쪽에 쌓아 놓았군요.
터널 밖에 철문으로 출입을 못하게 해 놓았으나 감시자가 없어 터널안으로 100여미터까지 들어가 보았지요.>
< 저건너에서 일하는 농부를 찾아보았다.
저농부는 전주에서 생활하는데 주말농장처럼 밭을 가꾸고 있었다.
알맹이가 큰 오디 몇나무가 있는데 마음껏 오디 따먹고 가시요.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조동화기관사보다 세살 적은 저농부는 학창시절 열차를 타고 전주로 통학했는데 슬치고개에서 뛰어 내리던 추억이 있어 이곳에 임야를 사서 가꾼다고 하였다.
그시절 기차를 끌던 기관차가 힘이 부족하여 슬치고개를 아주 천천히 올라가던 시절이었지요>
<철조망으로 둘러쌓인 이곳은 군부대시설로 폭팔물처리장의 위험 푯말이 표시되여 있다. 이지대 수십만평이 철조망으로 사람들이 출입을 못하도록 해 놓았다.
수십년전 관촌 탄약고 작업시 동네후배가 작업을 했다고 하는데 바로 이곳이었구나.
그는 나보다 4-5년 후배였는데 술로 인하여 수십년전 고인이 되었다.
이름이 성은 박이요 이름은 철수
"박철수" 하늘나라에서 오래오래 행복하여라.
철수야 이세상에 사노라면 조동화기관사를 기억할것이지만, 하늘나라에서는 이세상에서 못다 이룬 행복한 인생을 꿈꾸며 영생불멸하시구려.
철수야 너의 고향땅이 와룡땅 너의어머니가 이띠기떡이었지.
내가 늘 이띠기를 걸을때 너의 어머니가 바로 이곳이 친정이었구나 생각하며 걷곤하지.
우리집에서 두어집건너 너의 집이 있었지.
관촌 군부대 철조망을 지나려니 이세상에 없는 철수를 기억 해 보았구랴.
병우 아저씨도 정희 동생도 철수아우가 관촌 군부대에서 작업했다는 소리는 들었겠지.
서글픈 마음에 귀감이 되는 말 한마디는 해야겠구먼.
사람이 태어나는 것은 순서에 의해서
태어나지만 죽는 것은
하늘이 부르는 순서대로 가는거라구.
백 년을 못 살면서 걱정은 천 년치를 한다면 바보같은 인간이여.
하늘만이 인간의 운명을 결정짓는것이기에 즐겁고 행복하세.
어쩌다가 관촌땅을 걷는일을 하면서 군부대 철조망을 걸으려니 철수 생각이 나길래 철수를 기억 해 보았어.
장재를 지나 철조망 3-4km를 걷는일을 한것 같았다.
헬기장(갈미봉 540m)을 지나고 나니 철조망이 무성한 나뭇잎으로 보이지 않았다.
상당히 긴 철조망 옆에 산길이 나 있었다.>
<조동화기관사는 슬치터널이 지나가는 슬치마을 슬치재를 출발하여 다섯시간을 걷는일을 하며 570m고지의 한오봉에 올랐다.
한오봉에 올라 위대한 자연의 경치를 맛 보았지.
한오봉에서 공기마을 아래를 조망하는 기분은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아름다웠다.
주로 걷는일로 무료한 시간을 보내었으나, 한오봉을 오른것은 유토피아처럼 아름다운 경치를 눈으로 확인하기 위함이여.
눈이 얼마나 즐거웠는지 내 두발만능자가용에 감사해야제.
사실 말이지 한오봉등산은 힘든 코스여.
한오봉에 오르는 동안 땀도 많이 배설하여 해독이 되야 기분이 좋았제.>
스티븐 잡스 임종시 메시지
세계적부호 애플의 최고 경영자 스티븐잡스(1955-2011, 56세 암으로 사망. 아이폰출시)
개인용 컴퓨터 시대를 연 인물이면서 아이폰(iPhone) 출시로, 세상을 바꾼 천재 스티브잡스가 병상에서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마지막으로 남겼던 메세지로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나는 사업의 세계에서 성공의 정점에 이르렀다.
남들이 보기에 내 삶은 전형적인 성공의 본보기였다.
하지만, 일 빼놓고는 즐거움이 별로 없었다.
결국 재산이란 내가 익숙해진 삶의 한 단편이었을 뿐이었다.
지금 이 순간, 병상에 누워 삶 전체를 회고해보면, 그처럼 자부했던 명성과 재산은 곧 닥쳐올 죽음 앞에 빛이 바래고 아무 의미가 없음을 실감한다.
이제야 나는 깨달았다. 삶을 유지할 만큼 적당한 재물을 쌓은 후엔 부와 무관한 것들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을...
어쩌면 이런 저런 인간관계, 아니면 예술, 또는 젊었던 시절에 가졌던 꿈..
쉬지 않고 재물만 추구하는 것은 결국 나 같이 뒤틀린 인간으로 변하게 만들 것이다.
신은 우리에게 재물이 가져다 주는 그 환상이 아니라 각자의 가슴 안에 있는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감각을 주셨다.
내 일생 동안 성취해 놓은 부를 나는 가져갈 수 없다.
내가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사랑에 빠졌던 기억들뿐이다.
그 기억들이야 말로 따라주고, 같이 해 주며 살아갈 힘과 빛을 주는 진정한 부다.
사랑은 1000 마일도 갈 수 있다. 삶에는 한계가 없다.
가고 싶은 곳을 가라. 오르고 싶은 곳으로 올라가라.
모든 것은 마음과 손 안에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비싼 침대는? "병상이다"...
운전해줄 사람이나 돈을 벌어줄 사람을 채용할 수 있지만 대신 아파 줄 사람을 구할 수는 없다.
잃어버린 물건은 다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잃은 후에 절대로 되찾을 수 없는 것이 하나가 있으니 그것은 "삶"이다.
수술실에 들어가면, 아직도 읽어 내야 하는 유일한 책이 "건강한 삶에 관한 책"이란 것을 알게 된다.
가족을 위한 사랑을 귀하게 여겨라. 배우자를 사랑하라, 친구들을 사랑하라...
빌게이츠(1955년 출생- )
빌게이츠는 개인용콤퓨터를 발명하여 세상을 편리하게 바꾸어 놓은 선구자다.
윌리엄 헨리 빌 게이츠 3세(영어: William Henry "Bill" Gates III, 1955년 10월 28일 ~ )는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 설립자이자 기업인이다. 어렸을 때부터 컴퓨터 프로그램 만드는 것을 좋아했던 그는 하버드 대학교를 자퇴하고 폴 앨런과 함께 마이크로소프트를 공동 창립했다. 그는 당시 프로그래밍 언어인 베이직 해석프로그램과 알테어용 프로그래밍 언어인 알테어 베이직을 개발했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근무하면서 게이츠는 2014년 5월까지 회장, 최고경영자, 사장, 최고 소프트웨어 설계자 등의 직책을 맡았다. 그는 1970년대와 1980년대 마이크로컴퓨터 혁명의 선구자이자 가장 잘 알려진 기업가 중 한 사람이다.
게이츠는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전일 업무를 그만둔 이후 자선 사업을 비롯한 프로젝트에 힘쓰고 있다.
===위키백과===
IT강국 스마트폰 컴퓨터 대한민국 만세
IT천재 스티븐잡스와 빌게이츠의 스마트폰과 컴퓨터의 발명으로 한국에는 세계속의 경제 10대강국으로 될수 있었지요.
국운이 따라 주었다고 봐야지요.
박정희대통령의 산업화정책이 부를 이루었고, 김대중대통령의 정보화정책이 IT강국이 될수 있었지요.
한국의 반도체기술은 어느나라도 한국을 따라잡을수 없지요.
오늘날 한국사회가 편리한 스마트폰세상속에서 사는 것은 김대중대통령의 임기5년동안 10조를 초고속 인터냇망 구축사업(인터냇고속도로)에 투자한 공로가 있지요.
한국의 산업화를 이끈 박정희대통령의 공로를 이끈 것은 인정하고, 김대중대통령이 민주화를 이룩하고 세계속의 한국이 IT강국으로 우뚝설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고 자부해도 될만한 나라가 되었지.
IT강국 대한민국 만세.......
사실상 대한민국 대통령중 공로를 세운 인물은 박정희와 김대중이여.
스마트폰 세상 즐겁고 행복한 세상 편리하게 살아갑시다.
조동화가 누구이길래 IT가 뭐라고...
IT라는 말을 들어봤을거여.
IT는 “Information Technology”를 줄여 IT 우리나라말로는 “정보통신기술”이라고 한다.
사실말이야 한국은 자원도 없는나라에서 어떻게 세계 10대 강국이 될수 있었는지 알기나 하는거여.
바로 IT분야의 획기적인 발전이여.
대한민국이 반도체가 세계1등인지 알기나 알어.
왜 1998년 김대중대통령이 “빌게이츠”를 만났을까?
빌게이츠가 컴퓨터 발명의 선구자란 말일세.
IT발전의 성장동력이 여기에 있어.
내말 좀들어보소.
조동화의 막내 아들 조경철은 IT분야의 여러 자격증으로 고액의 년봉을 받으며 IT분야에서 일을하고 있고, 18개월된 손녀딸 조혜윤도 IT에 관심이 많아 휴대폰과 컴퓨터를 보면 정신이 없어.
손녀딸 조혜윤이가 공학박사가 되어 세계에 명성을 떨칠치 두고 볼일이여.
<천진난만한 손녀딸 조혜윤 미래를 꿈꾸고 있는 모습이여>
우리들 아들 손자 며누리의 삶에 들어와 있는 핸드폰, 컴퓨터, TV 외의 모든 기기들은 서로 정보를 교환하여 세상을 편리하게 살아가는줄 알기나 하는거여.
핸드폰을 통해 전화를하고, 컴퓨터를 통해 게임을 하고, TV를 통해 세상을 보고, 기타 생활에 정보를 교환하는 것 모든 것들에 IT 발전이 없엇다면 불가능한거여.
IT란? 한마디로 “정보통신기술”이라는 의미로 이해하면 될 것 같여.
IT랑 밀접한 관계인 게 4차 산업혁명인데 4차 산업혁명이라고 한다면 AI, 드론, 로봇기술 등이 주도하는 차세대 산업혁명을 4차 산업혁명이라고 하제.
이것이 왜 IT랑 밀접한 관계인가 하면 이 기술들은 정보통신기술의 융합으로 이뤄지는 차세대 산업혁명이기 때문이여.
현재 우리나라의 직업 중 200만 개가 없어지고, 700만 개의 새로운 직업이 생기고 있습니다. 700만 개의 새로운 직업 중 80% 이상이 IT와 관련된 직업입니다. 미래에 일자리를 연구한 결과 2030년이 되면 근로자분들은 평균 적으로 6번 정도의 경력을 바꾼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제는 하나의 직업으로는 살 수가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때문에 신기술은 물론 기존 전공에 새로운 기술들을 융합한 학과도 새로 개설되고 있죠. 이처럼 IT 기술을 배우는 것은 이제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습니다.
조동화의 벗님들!
내말 들어주어 감사하구먼.
고속도로가 경부고속도로만 있는거 아닌지 알었는가.
인터냇고속도로망이 전국에 새알같이 깔려 있기에 스마트폰 세상에서 살게 되얐지.
현대의 편리한 세상, 자원도 없는나라가 세계 10대강국이 될수 있었던 덕분은 김대중대통령의 정보화 정책때문이고, 우리국민의 저력이 있었던거여.
인자 스마트폰이 없으면 귀머거리 소경되여 사는거여.
조동화의 말이 쓰짤띠 없는 것 같아도 미래세대에 귀감이 될수 있다고 자부하는 바이여.
푸른 녹음의 계절에 즐거운 시간되고 행복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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