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9년 여름, 우린 난데없이 튀어나온 괴물 같은 영화 <매트릭스>와 사랑에 빠졌다. 그래서 돌아온다’ 한마디만 남기고 떠난 연인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하염없이 ‘그 뒷 얘기’를 기다렸다. 긴 기다림을 보상하듯, 4년만인 올 여름에 <매트릭스 2 리로디드>가, 겨울에 <매트릭스 3 레볼루션>이 찾아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린 더 기다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버선발로 달려서, 아니 날아서 갔다. 초특급 보안 시스템을 개비한 채, 문을 닫고 있는 ‘매트릭스 월드’로. - 편집자 애니메이션과 비디오게임으로 미리보는 <매트릭스2 리로디드> <매트릭스3 레볼루션> 버뱅크=박은영 cinepark@hani.co.kr
좁은 통로를 지나 다다른 홀은 칠흑처럼 검었다. 몇 줄기 가느다란 빛이 이리저리 뒤채는 동안 재빨리 훑어보니, 그곳은 술과 음악이 있는 카페이자 비디오게임이 있는 오락실이었다. 검은 벽, 검은 바닥, 그리고 검은 휘장 사이로 <매트릭스>의 녹색 코드를 닮은 칵테일이 부지런히 서빙되고 있었다. <매트릭스>의 초기 화면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 무렵, 저쪽에 지인들과 한담을 나누고 있는 키아누 리브스가, 이쪽에 가볍게 리듬을 타고 있는 로렌스 피시번이, 그 옆쪽에 아내 제이다 핀켓이 등장하는 비디오게임에 열중하고 있는 윌 스미스가 눈에 띄었다. 그리고 저 멀리서 얼굴에 회칠을 하고 실크해트를 눌러쓴 마릴린 맨슨이 발없는 귀신처럼 스르륵 움직여 무대 한가운데 놓인 DJ 박스에 앉는 게 보였다. 꿈같은 현실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이들이 한자리에 모인 건 “매트릭스의 해”(Year of the Matrix)를 자축하기 위해서였다. 지난 2월4일 버뱅크의 워너브러더스 스튜디오에선 이색적인 이벤트가 열렸다. <매트릭스> 속편 마무리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워너브러더스는 <매트릭스> 시리즈의 외전격인 단편애니메이션 ‘애니매트릭스’의 첫 번째 에피소드 <오시리스의 마지막 비상>의 월드 프리미어와 <매트릭스> 시리즈의 또 다른 퍼즐 조각에 해당하는 비디오게임 <엔터 더 매트릭스>의 런칭 파티에 영화 관계자와 국내외 기자들을 불러모았다.
참석한 기자 대부분은 ‘매트릭스’라는 이름을 건 애니메이션과 비디오게임이 극장판 <매트릭스> 시리즈와 관계가 있으리라는 기대는 품지 않았다. 그러나 이 행사의 호스트인 조엘 실버의 말은 달랐다. “세상은 달라졌다. <매트릭스>에 대해 더 깊이 더 많이 알고 싶어하는 팬들에게 우린 뭔가를 더 주어야만 했다. 인터넷과 게임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이를 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 것이다. 더 알고 싶다면 찾아서 보면 된다. 그러지 않는다 해도 지장은 없겠지만.” 익숙한 유혹의 말. 모피어스도 네오에게 그렇게 두개의 알약을 권했었지. 빨간약을 줄까, 파란약을 줄까. 파란약은 그냥 이 세계에 머물러 믿고 싶은 것만 믿으며 살게 하고, 빨간약은 ‘이상한 나라’로 이끌어 그 끝까지 가게 한단다. 그래서 냉큼… 빨간약을 삼키기로 했다. 다음날 인터뷰 자리에서 만난 <매트릭스> 시리즈의 프로듀서 조엘 실버, 시각효과 책임자 존 게타, 의상 디자이너 킴 배럿의 증언에, 첫 번째 애니매트릭스 <오시리스의 마지막 비상>, 그리고 비디오게임 <엔터 더 매트릭스>의 면면을 종합해, <매트릭스> 시리즈라는 ‘이상한 나라’로 인도할 ‘빨간약’을 조제해본다. 그리고 해킹을 시도해본다. 약효는 보장할 수 없다. 철저한 입단속주의자들인 이들 스탭들로부터 영화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캐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으므로. |
4. 조엘 실버는 어떻게 두 속편을 동시에 제작했나 <매트릭스>는 처음부터 3부작으로 기획됐다. ‘매트릭스’의 세계가 워낙 복잡하고 심오하기 때문에 그 공간과 인물을 소개하는 데 1편을 할애하고, 본격적인 이야기를 위해 적어도 두편은 더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워쇼스키 형제의 구상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두편을 동시에 만들고 싶어했다. 비슷한 이야기의 변주 또는 확대로서의 속편이 아니라, 하나의 긴 이야기를 반으로 잘라내 연이어 소개하는 연속극의 개념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위험천만한 아이디어에 날개를 달아준 이가 조엘 실버다. “<매트릭스> 시리즈는 그렇게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미 그렇게 디자인된 작품이니까.”
전세계 극장가에서 5억2천만달러를 벌어들이고 DVD 시대 최초의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1편의 흥행에 힘입어, 2편과 3편은 워너브러더스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서 순항을 시작할 수 있었다. 워너가 두 속편에 쏟아부은 제작비는 3억원 규모. 2001년 3월부터 2002년 7월까지 캘리포니아와 시드니의 폭스스튜디오에서 촬영을 진행했다. 300일 가까운 그 긴 촬영기간 동안 ‘내우외환’도 없지 않았다. 새로운 캐릭터 중 하나인 지 역의 알리야가 비행기 사고로, 오라클 역의 글로리아 포스터가 당뇨병으로 운명을 달리했고, 이어 9·11 사건도 터졌다. 조엘 실버가 “작품을 완성한다는 것, 그게 가장 힘들었다”고 회상할 만하다. 2002년 크리스마스 개봉예정이던 2편과 2003년 여름 개봉예정이던 3편은 후반작업의 지연으로 각기 반년씩 개봉이 늦춰졌다(2편은 미국에서 5월15일에, 3편은 11월에 개봉한다). 특수효과가 동원되는 컷이 모두 2500개(1편에선 412컷에 불과했다)에 이르기 때문이다. 개봉 일정이 늦어지긴 했지만, 두 작품을 6개월의 시차를 두고 연달아 공개한다는 계획엔 차질이 없다. “2편을 보고나면 오래 기다리기 힘들어질 것”이라고 장담하는 조엘 실버는 그 호기심 많고 인내심 부족한 관객을 위해 단편애니메이션과 비디오게임까지 내놓는다.
5. 네오는 어떻게 100명의 스미스 요원과 싸우는가 트리니티의 우아한 공중 발차기와 네오의 총알 피하기 장면은 <매트릭스>를 대표하는 이미지가 됐고, <슈렉> <미녀 삼총사> <무서운 영화> 등에 패러디되기도 했다. 카메라가 총알의 속도를 따라잡는 듯 보이는 효과인 ‘불릿 타임’은 그렇게 ‘구시대의 유물’이 돼버린 것이다. 이에 존 게타가 이끄는 시각효과팀은 ‘버추얼 시네마토크래피’라는 신기술을 개발했다. 물리적으로 촬영이 불가능한 장면을, 인물이나 사물을 디지털화해 구성하는 기술로, 고해상 디지털카메라로 기록한 배우의 동작 정보를 컴퓨터에 입력해 이미지를 재창조하는 것이다. 이는 네오가 100명의 스미스 요원과 싸우는 장면은 물론, 시속 3200km로 하늘을 날아가는 장면 등을 만들어내는 데 동원됐다. 실사 소스로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낸 셈이다. “무엇이 허상이고 무엇이 현실인지 분간하기 힘든 장면들이 많을 것이다. 관객이 크게 혼란스러워할 것 같다.” 시각효과 책임자인 존 게타는 ‘진짜 같은 가짜’를 만들어낸 데 대한 자부심이 상당하다. 이는 조엘 실버도 마찬가지. 그는 이번 신기술만은 쉽사리 카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물론 언젠간 따라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분간은 아니다. 이건 상당한 돈과 시간이 드는 작업이다.” 실제로 버추얼 시네마토그래피를 비롯한 <매트릭스> 속편의 특수효과는 7개의 특수효과 하우스가 3년을 투자한 결과물이다.
6. 워쇼스키 형제는 왜 고속도로를 건설했나
이 역동적이고 위협적인 도로 추격신은 영화에서 대략 15분을 차지한다. 키메이커를 현실세계로 데리고 나오기 위해 가장 가까운 출구(이번에도 전화다!)를 찾아 도로를 달려나가는 매우 급박한 상황. 게다가 도로는 운전자를 가장한 요원들이 진을 치고 있는 곳으로, 매트릭스 안에서 가장 위험한 공간이다. 예측불허의 순간에 요원들이 출몰해 가공할 속도와 힘으로 몰아붙이는 이 장면은 2편의 ‘클라이맥스’로 회자될 전망이다. 이 도로에선 무수한 차량이 부딪치고 부서져야 했을 뿐 아니라, 그 자체로 음산한 폐허의 느낌이 나야 했다. 온갖 장소를 수소만하고도 원하는 곳을 발견하지 못한 워쇼스키 형제의 결론은 간선도로 하나를 새로 짓는 일이었다. 건설 관계자들까지 고개를 내저었지만, 이들은 결국 캘리포니아 남부 알라메다 지역에 3.2km 길이의 간선도로 세트를 지었다. 240만달러의 비싼 세트였다. “당신이 상상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조엘 실버가 자신하는 것을 보면, 영화촬영을 위해 도로를 낸다는, 무모해 보이던 그 시도가 결국엔 최선의 결과를 낳은 모양이다. 존 게타는 이 장면을 “클래식 워쇼스키 슈퍼 스타일 액션”이라고 설명한다. “슈퍼 파워를 지닌 캐릭터들의 추격신은 다이내믹함, 그 이상을 보여준다. 적은 강력하고, 또 신출귀몰한다. 차량을 파괴하면서 돌진하는 적의 위용에선 워쇼스키 형제 특유의 만화적 감성과 스타일이 엿보인다.” |
<매트릭스>로 만든 ‘애니매트릭스’와 <엔터 더 매트릭스> <매트릭스> 3부작을 통해 거대하고 정교하고 심오한 우주를 창조해낸 워쇼스키 형제에겐 ‘못다한 이야기’가 있었다. 그들은 매트릭스와 그 안팎의 인물들에 대한 새로운
애니매트릭스의 첫 번째 에피소드 <오시리스의 마지막 비상>는 2월4일 공개됐다. “<매트릭스> 시리즈의 1.5부”에 해당되는 <오시리스의 마지막 비상>은 기계 군대의 침략 계획을 눈치챈 저항군들이 시온에 그 위험을 알리려 한다는 내용으로, 2부에서 인류에 닥칠 위기를 예고하고 있다. 네오와 모피어스의 대련 공간으로 낯익은 바로 그곳, 눈을 가린 한쌍의 남녀가 상대의 옷을 한꺼풀씩 베어내며 유희에 가까운 검술 대련을 벌이다가, 긴급 사태를 알리는 알람 소리에 비행선 오시리스로 돌아온다. 기계들이 시온의 위치를 파악, 침략 태세를 갖추기 시작한 것. 여자는 시온에 긴급 전갈을 보내기 위해 매트릭스로 들어가고, 남자는 오시리스에 남아 기계들의 공격을 막아내기로 한다. 워쇼스키 형제가 직접 각본을 쓴 이 작품은 하이퍼리얼리즘을 지향했던 3D CG애니메이션 <파이널 환타지> 제작진이 만들어내, 작품의 모양새와 분위기가 <파이널 환타지>와 흡사하다. 미국에서 3월21일 개봉하는 <드림 캣처>에 덧붙여 상영될 예정이다. ‘애니매트릭스’에는 워쇼스키 형제가 열광했을 법한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들도 대거 참여하고 있다. <뱀파이어 헌터 D>의 가와지리 요시야키, <카우보이 비밥>의 와타나베 신이치로, <청의 6호>의 마에다 마히로 등이 각기 1…2편의 단편을 연출했다. 한국계 애니메이터인 <이온 플럭스>의 피터 정도 한 에피소드를 맡았다. 이들 작품이 공개되는 시기와 방법은 다 다르다. 기계와의 전쟁의 역사와 매트릭스의 기원을 다룬 <세컨드 르네상스: 파트 원>(마에다 마히로), 사무라이 트레이닝 프로그램에서 사랑과 동지 사이에 갈등하는 시온 병사 이야기 <프로그램>(가와지리 요시야키), 사이버 범죄자 트리니티를 뒤쫓는 <형사 이야기>(와타나베 신이치로), 인류가 기계의 노예가 된 사연 <세컨드 르네상스: 파트 투>(마에다 마히로)는 2월에서 5월 사이에 인터넷을 통해서 감상할 수 있다. 이들 작품을 포함, 6월에 발매될 DVD와 비디오에 실리는 작품들로는 네오의 교신을 받는 소년 이야기 <키드 스토리>(와타나베 신이치로), 단거리 육상선수가 매트릭스 밖 세상을 보게 된다는 내용의 <세계 신기록>(고이케 다카시), 시스템의 버그인 이상한 집을 발견하는 소녀 이야기 <비욘드>(고지 고리모토), 저항군의 포로가 된 파수꾼 로봇 이야기 <허가>(Matriculated)(피터 정) 등이 있다. 비디오게임 <엔터 더 매트릭스> 역시 워쇼스키 형제의 작품이랄 수 있다. 이 게임은 워쇼스키 형제가 쓰고 감독한 또 다른 영화클립과 배우들의 무술연기를 모션캡처한 게임 엔진으로 구성돼 있다. 게임용으로 제작한 실사 영상은 제이다 핀켓 스미스가 연기하는 니오베가 오시리스 대원들이 시온에 보내려던 전갈을 이어서 전하는 내용 등으로 “신과 신 사이, 영화에서 생략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들 영상이 간간이 보여질 예정. 플레이어가 도스 코맨드를 이용해 매트릭스를 해킹해 들어가는 방식으로 시작되는 이 게임은 최고의 파일럿으로 등장하는 니오베, 불교신자이자 총잡이인 고스트, 두 캐릭터 중 하나를 택해 플레이할 수 있다. 워너브러더스와 샤이니엔터테인먼트가 공동제작한 이 게임은 <매트릭스2 리로디드>의 개봉일인 5월15일에 발매된다. |
<매트릭스> 시리즈 제작자 조엘 실버 인터뷰
조엘 실버는 워쇼스키 형제의 대변인이다. 그는 “영화홍보는 일체 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계약 조건으로 내건 ‘수줍은’ 형제들을 대신해 지난 2년간 호주의 촬영장으로, LA의 크고 작은 이벤트로 몰려든 기자들을 상대해오고 있다.
<뉴스위크>가 “간단한 질문 하나에 1840단어로 답하는 수다쟁이”라고 놀리긴 했지만, ‘신비주의’ 마케팅이 일반화된 만큼 말을 좋아하고 많이 하는 이 프로듀서의 존재가 고마운 게 사실이다. 프로듀서로서 조엘 실버는 <코만도> <러쎌웨폰> <다이 하드> 시리즈 등을 제작하며, 할리우드의 액션 장르를 다시 썼고, 아놀드 슈워제네거, 브루스 윌리스, 스티븐 시걸 등을 재발견했다. <매트릭스> 시리즈는 조엘 실버의 뛰어난 안목과 추진력을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 워쇼스키 형제를 ‘애들’(boys)이라고 부르는 조엘 실버는 그들의 뜻을 도와 두 속편과 단편애니메이션, 비디오 게임의 제작을 관할했다. 지난 2월5일 버뱅크의 한 호텔에 나타난 조엘 실버는 <매트릭스2 리로디드>의 새 트레일러 미완성본을 ‘은밀히’ 보여준 뒤 말문을 열었다.
칸영화제에서 두 속편의 월드 프리미어를 한다는 소문이 있다.
속편에 대해선 알려진 게 거의 없다. 소문만 무성하다.
스튜디오에서 좀더 쉬운 이야기를 원하지는 않았나.
워쇼스키 형제의 작업 스타일이나 태도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
<매트릭스>의 속편을 제작하는 것이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
첫댓글 솔직히 스타일만 있는 영화 같아 그렇게 좋아하진 않았는데 새로 나오는 모니카 벨루치 너무 예쁘고 또 스미스 요원이 귀여워; 기대되네요. 근데 아무리 봐도 모피어스가 구원자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