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은 보물, 얻은 보물
서 영 복
남미 배낭여행을 하려고 집을 나선 지 한 달이 좀 지났을 때였다. 이미 페루와 볼리비아 칠레여행을 마치고 네 번째 나라 아르헨티나를 여행하며 다른 젊은 여행자들처럼 배낭여행에 익숙해졌다. 고산증도 잘 견뎌내었고 크게 다치거나 아픈데 없이 순조로운 여행을 하고 있었다. 다만 너무 짠맛이 강한 이곳 음식에는 적응이 잘 안 되어 몸무게가 자꾸 줄어서 바지가 헐렁해지고 매 끼니를 어떻게 해결할지가 큰 문제여서 그이와 다투는 일까지 생기기도 하였다.
아르헨티나여행 열흘쯤 되었을 때 수도인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며칠을 보내게 되었다. 이곳 항구에서 500달러 정도만 더 지출하면 일정에 없는 이웃 나라 우루과이에 배를 타고 다녀올 좋은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함께 할 다른 동행자가 없어서 그만 포기하고 시내 관광에 나섰다. 그이와 함께 여행 정보 북에 소개된 유명한 관광지를 찾아다니는 것도 이골이 나서 별 어려움이 없었으니 둘이서라도 우루과이에 다녀왔더라면 그날의 일기장 내용이 많이 달랐을 것이다. 아니 뜻하지 않은 보물을 얻을 기회를 놓쳤을 것이다.
여느 때처럼 아침 일찍 숙소를 나서 달러 환전을 먼저하고 세계 3대 극장이며 18년 동안 지어졌다는 100년도 넘은 콜론극장을 시작으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상징인 오벨리스꼬와 세계에서 가장 넓은 대로를 지날 때까지만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래서 앞으로 이런 여행이라면 다음엔 아프리카 배낭여행에 도전하자며 그곳을 경험한 여행자들에게 유익한 정보를 요청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누가 몇 분 후에 일어날 일을 미리 알 수 있을까? 산마르틴 광장에서 사건은 벌어졌다. 여느 다른 관광지처럼 공원에 놀러 나온 현지인들도 많았고 외국인 관광객들도 많이 있으니 우린 서로 사진을 찍어주다가 함께 찍을만한 장소에서 연인으로 보이는 젊은 외국인 커플에게 휴대전화를 내밀며 사진 찍어 달라고 부탁하였고 그들은 흔쾌히 우리를 향해 몇 컷을 찍어주었다. 하지만 우리가 서 있던 곳이 역광이어서 방향을 바꿔 사진을 찍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그래도 그 아름다웠던 커플에게 땡큐도 했고 충분한 미소도 보냈으니 1분은 걸렸을까? 그렇다면 2분도 채 되지 않았을 그 짧은 시간에 옆에 벗어 내려놓았던 우리의 배낭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여행 일정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그이가 메고 다녔던 검은색 작은 배낭이다.
“여보, 가방 어디 갔어?”
“여기 벗어뒀는데?”
당황해서 서로 얼굴만 보던 우리에게 곁에서 사진 찍는 걸 구경하던 한 소년이
“저쪽으로 도망갔어요”
하는 듯 손가락으로 뒤쪽을 가리킨다. 그이와 나는 그쪽을 향해 무작정 뛰었다. 나는 다리가 후들거려 잘 뛰지 못하고 그이의 뒤를 쫓아가며
“어떻게 해 어떻게 해”
만을 연발하였다. 순식간에 현기증을 느끼기도 했다. 한참을 정신없이 뛰면서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찾아봐도 우리 가방을 들고 달아나는 사람이 보이지 않으니 더 이상 달릴 필요가 없었다. 나는 숨이 차서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우리는 천천히 다시 제자리에 돌아왔다. 아까 손가락질로 알려준 소년은 사라지고 없었다. 사진을 찍어주던 커플에게 물어보니 그 소년은 우리의 반대쪽으로 달아났다는 것이다. 그이도 가쁜 숨을 몰아쉬며 벤치에 털썩 주저앉더니 이젠 틀렸으니 빨리 잊고 옆에 앉으란다.
그게 그이의 장점이다. 하지만 나는 절대로 금방 잊히지 않았다. 가방 속에 있던 물건 중 먼저 가장 소중한 보물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여행 노트였다. 여행 출발 전부터 900페이지가 넘는 남미 여행 정보 북을 닳도록 읽어보며 한 달 동안 꼼꼼하게 주요관광지를 정리했고, 여행 중에는 하루하루 아무리 피곤해도 빠짐없이 기록했었다. 나라가 바뀔 때마다 틈틈이 해야 했던 환전내용이며, 그날그날 숙소비용이나 대중교통요금 식사비용을 자세히 적었다. 그뿐 아니라, 사과 한 알, 달걀 몇 개 심지어 아이스크림 사 먹은 것까지 아니 현지 가이드가 얼마나 뚱뚱한지 속눈썹이 얼마나 길고 예쁜지 시시콜콜 빠짐없이 기록했던 여행 노트. 돈으로 살수도, 그 어떤 것으로 대신할 수도 없는 나의 여행 보물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남편대로 가방 속에 넣었다가 잃은 물건 중에 형한테 선물로 받은 멋진 점퍼가 있었다. 은퇴 축하 회식 때 남미 여행 잘 다녀오라며 사준 점퍼라서 그 또한 어떤 거로도 대신할 수 없는 것인데……. 아니 천천히 생각해보니 잃어버린 물건들은 여행 중에 꼭 필요한 자질구레한 여러 가지 물건들이 있었다. 한참 후에 생각 난거지만 비상용으로 준비해둔 여권 사본과 여분의 사진도 그 가방 속에 있었으니 제발 쓰레기통에만 버려줘도 내 손에 금방 들어올 것 같았다.
우리는 둘이서 아무 말 없이 앉아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하나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 나의 결론은 꼭 찾아야 하는 쪽이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주변의 냄새 나는 쓰레기통을 모두 열어보았다. 그 넓은 광장에는 수십 개의 쓰레기통이 있었다. 다른 건 가져가면 자기들이 사용할 수 있지만 여행 노트만큼은 읽을 수 없는 한글이니 그것만이라도 쓰레기통에 버려주길 바라고 또 바라면서…. 하지만 모두가 허사였다.
점심때가 되어 배가 고프도록 쓰레기통들을 열어서 일일이 확인하였다. 길에 서 있는 경찰에게도 도난 사실을 말하였지만, 경찰조차 영어가 통하지 않아 번번이 애만 태웠다. 남편은 내가 너무 마음이 상해 있는걸 알고 위로하려고 무척 애를 썼다. 사실은 그날 아침 숙소를 나오기 직전 사소한 일로 약간의 다툼이 있었는데 이렇게 황당한 일을 당하고 보니 우린 언제 그랬나 싶을 정도로 한편이 되어 서로에게 미안해하고 있었다.
나는 남편이 사진 찍기 직전 선글라스를 쓰려고 배낭을 열어 준비하는 걸 보았었다. 내가 배낭을 챙겨줬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하지만 그이는 그이대로 여태껏 자기가 책임지고 계속 메고 다니던 걸 벗어놓았던 게 잘못이었다고 말한다. 한 달여 여행 내내 낮에는 수시로 메모하고 밤에는 정리하느라 보물처럼 소중하게 지켰던 여행 노트였다. 하지만 이 보물이 한순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니 한 달간의 시간이 몇 초 만에 와르르 절벽 아래로 떨어져 다시는 손에 넣을 수도, 기억할 수도 없을 것 같아 울고만 싶어졌다.
후일에 그이가 한 말이지만 그 당시에 나의 얼굴빛이 하얗게 변해서 겁이 덜컥 났다고 하였다. 남편은 내 어깨에 손을 얹고 빨리 잊으려면 이곳을 떠나는 것이 좋다면서 우선 가까이 있는 과일가게에 나를 끌고 갔다. 천만다행인 것은 현금은 나누어서 각자 몸에 지니고 있었고 여권은 작은 여권용 크로스 가방에 내가 관리했었다. 그이가 바나나와 사과를 샀지만, 가방과 함께 과일 깎는 칼조차 잃었으니 가게에서 사과를 씻고 칼을 빌려서 깎아 주었다. 그리곤 어서 먹고 힘을 내어 다음 관광지에 가자는 것이다.
나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과일을 베어 물고 모래알 씹듯 오래오래 오물거리며 천천히 마음을 진정시켰다. 아르헨티나는 몇 년 전부터 계속되는 경제 불안이 정치 불안을 일으키며 아시아에서 발생했던 경제위기가 아르헨티나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주었다. 가정이 붕괴되어 오 갈데없이 방황하는 거리의 아이들이 늘어났다.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그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아이들 이른바 ‘영혼 없는 소년들’이라는 별명의 아이들이 관광지나 유원지를 배회하며 외국인 여행자들의 주위를 맴돌면서 가방을 노린다는 것을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어왔었다. 과일을 먹고 나자 그래도 좀 마음이 안정되어갔다.
마침 가까운 곳에 성당이 보여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발길을 들여놓았다. 예배는 없었지만, 성당 문이 열려 있었고 나는 뒷자리에 앉아 조용히 눈을 감았다. 까닭 없이 눈물이 흘렀다. 우리에게 반대 방향을 손가락으로 가리켜 주던 소년의 모습이 떠올랐다. 물론 그 아이도 다 같은 한패라는 걸 곧바로 알았지만 어쩐지 그 아이가 밉지 않고 많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가방 속에는 이 나라에서 사용하는 현금이 단 1페소도 들어있지 않았었다.
그 소년들은 현금이 없어 실망했겠지만, 가방과 점퍼가 생겼으니 좋아했을까? 눈을 감고 기도를 드리는데 나는 거짓말처럼 감사 기도가 절로 나왔다. 그이의 말대로 만약 가방을 들고 달아나던 소년을 뒤쫓다가 그를 목격했더라면 체력이 좋은 남편은 어떻게 든 쫓아갔을 것이다. 그리고 몸집이 작거나 힘이 약한 그 소년은 당황해서 가지고 있던 흉기를 던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니 목격하지 않은 것은 오히려 다행이었다. 기도를 마치고 성당을 나오니 누군가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조물주는 지구상의 모든 인구가 지구에서 나는 걸 사이좋게 나눠 가진다면 아무도 굶주리지 않고 살 수 있도록 충분한 물질을 준다고 하였다.
이들이 헐벗거나 굶주리는 것은 어느 쪽에 선지 욕심내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랬다. 내가 여행비로 지출하고 매일 먹고 마시는 달러에도 그 소년의 몫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행복하기 위해 물질을 모으는 동안 지구상에서 누군가는 자신의 것을 빼앗겨 행복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만약 여행 중에 만난 ‘영혼 없는 소년’에게 내가 먼저 가방이나 점퍼를 선물해 주었더라면 이처럼 마음 상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도 마음 졸이며 달아나지 않아도 좋았을 것이다. 나도 그도 정말 행복했을 것이다.
어떠한 재물이든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안전하지 못하다. 언젠가는 모두 없어진다. 아무리 아끼고 꼭꼭 숨겨놓아도 무덤까지 가지고 가는 재물은 단 한 가지도 없다. 그러나 이제야 깨달았다. 재물을 가장 안전하게 보관하는 방법은 재물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나눠주는 일이라고. 받은 사람의 마음에서는 고마운 생각이 가슴에 남아 있기에 잊히지도, 없어지지도 않는다는 것을……. 아르헨티나의 산마르틴 광장에서 나는 또 하나의 보물을 얻게 되었다. 참 고마운 일이다. (2014.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