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창
우리 어린이만화사를 회고할 때면 필연적으로 거명되는 인사. 고(故) 임창 선생은 1950년대 중반부터 만화 계에 투신, 70년대 말에 이르기까지 신문시사만화와 어린이만화 분야를 두루 섭렵했다.
임창선생이 ‘어린이만화 작가’로만 기억되는 까닭은 창작중반기인 1960년대 중반이후 생애 캐릭터 ‘땡이’를 만들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인기를 장기간 지속시켰기 때문이다.
선생의 등장은 어린이 만화에서 ‘스타 캐릭터’와 ‘차별화된 내용’이 긴요하다는 근대적 의미의 만화산업론을 환기시키는 계기가 됐다. 둥근 얼굴에 둥근 눈, 위로 꺾은 모자 창에다 발랄하기 그지없는 행동 - 선생이 창조한 땡이의 모습은 역대 한국만화 주인공가운데 가장 확실한 오리지널리티를 담보한 수작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거기에 ‘찰리 채플린’ 같은 영화배우의 일생을 조명하는 등 ‘전문소재’를 채택할 수 있었던 능력과 이를 철저히 한국정서에 용해시킨 탁월한 이야기전개가 선생의 작가적 역량을 더욱 빛나게 했다.
이런 ‘전문성’은 당시 발행됐던 여타의 어린이만화들과 ‘확실한 차별’로 부각됐다.
당신의 아류작이 한국 만화 판을 넘치게 할 정도로 당대 어린이만화의 정상의 자리를 차지했지만 선생의 만화인생은 결코 순탄치 못했다.
선생이 활동했던 시기는 어린이만화 단행본 시장이 폭발적인 활황(活況)을 보였던 1960년대-70년대 중반. 소위 ‘만화방 전성기’로 1960년대 중반이후 군소 만화출판사들을 통합해 ‘신촌대통령’으로 불리며 우리 만화시장을 쥐락펴락 했던 이영래(李榮來, 1928년생)씨의 ‘합동’이 대세를 장악하던 시절이었다.
이때 합동의 횡포에 과감히 반기를 들고 선생은 ‘땡이문고’를 설립해 ‘거대독점 자본’과의 일전을 치렀다.
그러나 선생은 중과부적의 한계에 부닥쳐 합동의 전속작가로 회귀할 수밖에 없었나하면, 70년대 중반 또 한차례의 독립을 시도했지만 ‘응어리진 분노’만 안은 채 꺾이고 말았다.
1970년대 후반 절필한 선생은 1982년, 환갑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나이에 타계하고 말았다.
임창선생의 타계는 뜻있는 만화인들을 슬프게 했다. 임창 선생의 만화인생 여정(旅程)은 한 뛰어난 작가가 누릴 수 있는 영광과 거기에 반(反)하는 철저한 좌절까지를 함께 동반한, ‘영욕’(榮辱) 그 자체였다.
(만화규장각)
첫댓글 참 옛기억이 새록하네요. 만화가게. 임창의 땡이. 어떨땐 정말 소학교 땡땡이로 이어질만큼 시간가는지 모르던.
아름다운 과거의 추억이 이제는 "영욕의역사" 로 기록 되는군요.
땡이는 그 당시 가장적인 학생이며 부러움의 대상이었지요. 학교 끝나면 만화방에 가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만화보기에 빠졌던 그 때가 그립네요.
초등학교 앞 국수가게 옆에 붙어 있었던 만화가게 들어가면 제일 먼저 찾던 신보가 임창 화백님 만화였는데...
훈장님, 이런 것 다 어디서 구하셨어요? 고맙습니다...
인터넷에서 이 글과 그림을 발견하곤 정말와 이 곳에 옮겼습니다.
땡이,미라,옥희,탱고......임창 화백의 캐릭터들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다는
탱고가 아니라 맹구. 그외 딱구리, 땡이 동생 방개.
초기에는 땡이의 친구 이름이 탱코였다가 나중에 맹구로 바뀐 걸로 기억합니다. "아리랑 탱코"라는 작품도 있었는데, 거기서는 땡이가 주인공이 아니라 탱코가 주인공이었죠.
임창 화백과 순정만화에서는 엄희자 화백이 가장 뛰어났엇죠? 그밖에 김세종 화백?
꺼벙이의 길창덕, 007의 김, 고우영, 신문수, 손의정, 박부성, 이재학 등의 만화가가 생각나네요.
난 만화는 '60년대에 끊었다는...산,엄희자
이런만화 마저도 안 읽었으니 60년대 이후 violet님의 독서량=0 라는.
임창님의 땡이 시리즈는 제가 어릴 때 참 꿈을 많이 심어주었던 것 같습니다. 훈장님은 다른 사이트에서 봤는 데 박한기 군단참모장 취임 100일 기념 축하 모임에 사진이 나와서 아주 반갑게 봤습니다.
아이고발렌티노님 정말 반갑습니다. 앞으로 자주좀 흔적 남겨주세요.
퀴즈 하나! 땡이의 성은 뭘까요?
라빅크님 정말 궁금한데요. 땡이의 성까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데. 혹 임씨 아닐까요? ㅎㅎ
앗! 그래도 역시 훈장님께서 관심을 보여 주시는군요. 캄쏴~ㅎ 땡이의 성은 "장"가입니다. 이름과 기가 막히게 어울리지 않나요?ㅎㅎ 임창님의 "옛날옛적에"인가 하는 작품에서 장가를 앞 둔 예비 신랑 땡이가 장인장모님에게 절하면서 "장땡이라고 합니다"라고 인사하는 장면이 나오거든요. 그래서 땡이의 성을 기억하지요.ㅎㅎㅎ
제천의 큰아버님댁에 놀러가면 만화가게로 달려가 임창화백과 이근철화백의 만화를 빌려다 보았지요. 이근철화백의 자주 쓰던 대사.."으잉?"..그 시절이 생각나 잠시 회상으로...
이근철 화백의 만화는 주로 독일군하고 싸우는 내용이었다고 기억합니다. 암튼 어린 시절, 특히 비오는 날 만화가게는 그야말로의 거움이었다는.
저도 국민학교 6학년때인 1973년까지 만화방에 드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원효로 남정국민학교 지금의 용산전자상가 부근이지요. 전쟁만화를 좋아해서 권웅, 이근철님이 그린 만화를 즐겨보았지요. 엄희자 이원복님의 만화도 생각나고요 용가리 시리즈도 생각납니다~~~